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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카스 여행 10 ] 지식청년의 피로 사막 한가운데 피어난 녹색섬 '아라얼'.

작성자마실정회동|작성시간26.06.11|조회수90 목록 댓글 0

협곡을 나선 것은 해가 기운 오후였다. 

신발 밑창에는 아직 홍석림의 붉은 모래가 묻어 있었다.

차에 오르면서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저무는 햇살을 받아 더욱 진하게 타오르는 바위 기둥들이 마치 배웅이라도 하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것들은 수천만 년 동안 저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저렇게 서 있을 것이다. 

 

아라얼까지는 멀었다.

차는 타림 분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달렸다.

홍석림의 붉은 잔상이 눈 속에 남아 있는 동안 바깥 풍경은 조금씩 색을 잃어갔다.

황토와 회색, 그리고 가끔 스쳐 지나가는 가느다란 방풍림만이 창밖을 채웠다.

어두워질수록 사막은 더욱 깊어졌고, 헤드라이트 빛이 닿는 도로 양편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이 쌓였다.

세상이 사막 하나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맞은편에서 가끔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갈 때면 그 불빛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졌다.

아라얼 시내에 들어선 것은 밤이 제법 깊어진 뒤였다.

도시의 불빛이 사막의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을 때, 나는 그것이 반가우면서도 기묘하게 느껴졌다.

이 광활한 모래 한가운데 저토록 환한 불빛이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낯설었다.

 

오랜 이동의 피로가 어깨에 납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방 열쇠를 받으며 잠깐 로비를 둘러보았다.

매우 규모가 큰 리조트식 호텔이었다. 

벽에는 지청관련 내용의 벽화가 있고, 천정에는 엄청나게 큰 상들리에가 걸려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샤워를 마치자마자 의식을 잃듯 잠이 들었다. 창문 너머 아라얼의 밤은 무겁고 고요했다.

 

눈이 떠진 것은 새벽,  커튼 사이로 아직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가볍게 옷을 걸쳐 입고 호텔 밖으로 나섰다.

새벽의 아라얼은 가로등 빛이 포플러 가로수의 잎사귀들 사이로 조각나 내려앉고, 드넓은 도로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피곤한 눈으로 흘깃 보고 지나쳤던 거리가 이제야 비로소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발걸음을 타림강 쪽으로 향했다.

강변에 닿았을 때 동쪽 하늘이 막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회색빛 새벽이 연분홍으로 바뀌고, 그 빛이 강물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타림(塔里木). 위구르어로 '물줄기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뜻의 이 강은,

천산에서 흘러내린 아커쑤 강과 쿤룬에서 내려온 화탄 강, 야르칸드 강이 한 몸이 되어 이루는 강이다.

중국에서 가장 긴 내륙 하천인 이 강이 없었다면 아라얼도, 이 오아시스도, 이 도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폭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지만, 강물은 조용하고 깊었다.

서두르지 않는 물의 움직임 속에 만년설이 녹아내린 시간과 빙하가 품어 온 침묵이 함께 실려 오는 것 같았다.

 

강변에는 호양나무 숲이 이어져 있었다.

새벽빛을 받은 호양 잎들이 은빛으로 바르르 떨렸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을 서 있고, 쓰러져도 천 년은 썩지 않는다는 나무.

뿌리는 지하 수십 미터 깊이까지 물을 찾아 뻗어 내려가고, 잎은 수분 증발을 줄이기 위해 햇빛을 비껴가며,

껍질은 소금기 머금은 땅에서도 갈라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여미는 나무. 그 나무들 사이에 서자 땅이 부드러웠다.

모래가 아닌 흙의 냄새가 났다. 오래된 것들, 살아남은 것들만이 내는 냄새였다.

한참을 강변에 서 있었다. 물소리가 낮고 고른 박자로 귀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강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발걸음을 공원 쪽으로 돌렸다. 지청기념공원.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인기척이 거의 없었다.

이른 새벽이기도 했지만, 이 공원은 원래 관광객보다는 기억을 위해 존재하는 곳 같았다.

자갈을 깐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가자 형형색색의 조경 식물들 사이로 커다란 황토빛 바위 하나가 나타났다.

붉은 글씨로 새겨진 네 글자. 上海知青紀念林. 상하이 지청 기념림.

나는 그 앞에서 멈추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와 표지석 위에 걸렸다.

어젯밤 먼 어둠 속을 달려온 것이, 오늘 새벽 타림강 변에 서 있던 것이,

그리고 지금 이 표지석 앞에 서 있는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지청(知靑), 지식청년(知識靑年). 그 두 글자 안에는 한 시대 전체의 비극과 청춘과 상실이 압축되어 있었다.

1960년대 초, 상하이의 거리에는 군복을 입고 군모를 눌러쓴 젊은이들의 물결이 넘쳤다.

그들은 대부분 열여덟, 스물 안팎의 학생들이었다.

마오쩌둥의 지시가 있었다.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가라. 빈농에게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이라 불린 이 거대한 이주의 물결 속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상하이의 젊은이들이

황푸강 변의 도시를 떠나 실크로드의 끝, 타클라마칸 사막의 변경으로 보내졌다.

그 목적지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라얼이었다.

그들이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아라얼은 황무지였다.

염분이 들끓는 불모지, 모래 폭풍이 천막을 쓰러뜨리는 밤,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야 하는 낮.

상하이의 번화가에서 황푸강 소리를 들으며 자란 젊은이들이

처음 이 가혹한 침묵과 마주했을 때의 심정은 기념림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다만 훗날 그들이 남긴 글 속에서 조금씩 읽힌다.

처음 며칠은 밤마다 울었다고. 어머니 손맛을 꿈에서 그리면서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였다고.

 

그러나 시간은 흘렀다. 그들은 괭이를 들었다. 수로를 팠다. 땅을 갈았다. 서로를 의지했다.

낮에는 뙤약볕 아래 밭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모여 앉아 시를 읽고 노래를 불렀다.

사막의 모래가 손바닥을 굳게 만드는 동안, 상하이의 서정은 타림강의 거친 숨결과 뒤섞였다.

그렇게 아라얼의 땅은 그들의 청춘을 먹고 조금씩 초록으로 물들어 갔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1978년, 개혁개방의 물결과 함께 하방 정책이 철회되자 젊은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아라얼의 상하이 지청들은 달랐다.

그들은 돌아가고 싶었다. 간절히.

1979년, 이들은 자체적으로 '상하이 청년 연합위원회'를 결성하고

귀향을 허락해 달라는 탄원서를 손에 쥔 채 베이징을 향해 상경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국은 이를 가로막았다. 상하이의 인구 압력, 신장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유로 들며 귀향을 불허했다.

결국 3만 명의 상하이 지청은 영원히 이 땅에 남겨졌다.

고향을 그리면서도, 이미 이곳에 내린 뿌리를 뽑지 못한 채로.

기념림의 표지석은 그 3만 명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땅에 와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그 땅이 고향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아침 햇살 아래 표지석 주변에 심긴 나무들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저마다 다른 빛깔의 잎을 가진 그 나무들은, 어쩌면 각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이의 골목을 기억하는 누군가의 이름, 어머니 손맛을 꿈에서 그리던 누군가의 이름,

그리고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이 모래 위에 뼈를 묻은 누군가의 이름.

뿌리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시간이 함께 밀어 내려가는 것이라는 것을.

표지석 앞에 서서 나는 오래 그 생각을 붙들고 있었다.

 

공원을 나설 때 해는 이미 완전히 떠올라 있었다. 아라얼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포플러 가로수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고, 멀리 농경지 쪽에서 트랙터 소리가 들려왔다.

일상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아라얼의 일상.

그러나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저 목화밭 한 뼘 한 뼘이 어떤 손으로 일구어진 것인지를. 타림강이 왜 이토록 조용하고 깊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호양나무가 왜 그렇게 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고 있는지를.

 

위구르어로 아라얼은 녹색 섬이다.

사막 한가운데 물이 모이고, 나무가 자라고, 사람이 사는 것.

그것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슬아슬한 일인지를 이 도시는 온몸으로 알고 있다.

군인의 땀으로 닦인 수로, 지청의 눈물로 적셔진 밭,

그리고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삶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이 오아시스는,

어제의 홍석림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장엄함으로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홍석림이 지구가 혼자 수억 년을 들여 빚어낸 장엄함이었다면,

아라얼은 인간이 함께 고통을 나누며 맨손으로 빚어낸 장엄함이었다.

어느 것이 더 위대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두 풍경이 나란히, 그리고 깊이 마음 안에 새겨졌다.

여유를 두고 아라얼을 돌아 보고 싶지만 

아쉽지만 주어진 여정이 허락하질 않는다.

 

마실 정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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