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는 호텔 1층
식당에서 해결했다.
소박한 뷔페였다. 죽과 만터우, 절인 채소, 그리고 달걀 몇 가지. 어느 도시의 어느 호텔에서도 비슷하게 차려지는 그런 아침.
그러나 그날의 아침 식사만큼은 평소와 달리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오늘 우리가 건너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클라마칸.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의 사막. 오늘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호탄(和田)까지 가야 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라얼의 아침 햇살은 깨끗하고 단호했다.
타림강변에서 보았던 그 조용한 새벽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마친 뒤 차에 올라탔을 때, 나침반은 어김없이 남쪽을 가리켰다.
차는 아라얼 남구(南口)를 빠져나와 서서히 사막 쪽으로 향했다.
사막공로(沙漠公路)의 입구에 도로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모래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허(阿和) 사막공로. 아라얼(阿拉尔)의 '아(阿)'와 호탄(和田)의 '화(和)'를 한 글자씩 따서 붙인 이름이다.
총연장 424킬로미터, 그 중 407킬로미터가 순수한 사막 구간.
2005년 6월에 착공해 2007년 11월에 완공된 이 도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유동성 사막을 관통하는 장거리 공로다.
첫 번째는 같은 타클라마칸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룬타이—민펑 구간의 522킬로미터 사막공로로,
1993년에 착공해 1995년에 개통되었다.
두 도로 모두 원래는 타림분지 석유 개발을 위해 뚫린 것이었지만, 지금은 남신장 주민들의 혈관이 되어 있다.
이 도로가 생기기 전, 아라얼에서 호탄으로 가려면 314국도와 315국도를 크게 돌아 1,000킬로미터 이상을 달려야 했다.
지금은 그 절반도 안 걸린다.
도로는 일직선으로 뻗어 모래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로가 그냥 세계 밖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막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불과 몇 킬로미터를 달렸을 뿐인데, 바깥 풍경에서 초록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젯밤 아라얼에서 보았던 호양나무 가로수도, 타림강 변의 갈대밭도,
목화밭의 희끄무레한 빛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모래와 하늘만이 남았다.
하늘은 구름이 낮게 내려 앉았고, 모래는 무겁게 회색으로 누워, 그 두 가지 색깔만으로 세상 전체가 이루어졌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면적 27만 평방킬로미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동 사막이다.
천산산맥이 북쪽을 막고, 쿤룬산맥이 남쪽을 막고, 파미르 고원이 서쪽을 막는다.
세 방향에서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니 어떤 습기도 이 분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연간 강수량이 10밀리미터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 모래 언덕은 바람을 따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이동한다.
오늘 지도에 표시된 사구(沙丘)는 내일 다른 자리에 있다.
그러니 이 사막에 한번 들어간 자는 길을 잃기 쉽고, 길을 잃은 자는 돌아오기 어렵다.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이름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 이름에 얽힌 전설이 하나 더 있다. 옛날 이 사막 한가운데에는 아름다운 왕국이 있었다.
강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지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던 곳.
그러나 어느 날 하늘의 신이 그 왕국의 왕에게 진노하여 모든 물줄기를 거두어 가버렸다.
강이 마르고 나무가 쓰러지고 모래가 밀려들어 왕국은 하루아침에 사막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이 사막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밤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시달렸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 애처롭고, 동물의 울음이라 하기에는 너무 사람과 닮은 소리.
사막 위구르인들은 그것이 모래 속에 잠든 왕국의 영혼이 내는 소리라 했다.
마르코 폴로도 13세기에 이 사막을 지나며 비슷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밤이 되면 요괴가 여행자의 이름을 부르고, 동행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길을 잃게 만든다고.
그 요괴의 정체는 아마도 거대한 사구가 바람에 밀릴 때 내는 진동음이었겠지만,
그 소리 속에는 분명 뭔가 인간의 심장을 쥐어드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 전설이 허황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이 사막 아래에 사라진 왕국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란(樓蘭). 기원전 2세기부터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번영했던 이 왕국은,
4세기 이후 강물이 방향을 바꾸면서 오아시스가 말라붙자 흔적도 없이 사막 속으로 사라졌다.
1900년,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이 우연히 이 왕국의 유적을 발견했을 때,
모래 속에는 수천 년 된 목재 기둥과 문서와 심지어 미라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누란의 미녀'라 불리는 그 미라의 얼굴은, 발굴자들을 경악시킬 만큼 아름다웠다.
3,800년 전 이 사막 변두리를 걸어 다니던 여인의 얼굴이, 모래와 건조함 덕분에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 있었던 것이다.
타클라마칸의 극도로 건조한 공기는 사람의 얼굴까지 지켜냈다.
차는 계속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도로 양쪽으로 낮은 식물들이 가느다란 줄기를 뻗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한참 만에야 깨달았다. 저것이 방호림(防護林)이구나.
이 사막공로가 단순히 아스팔트를 깐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도로를 뚫는 것보다 뚫은 도로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웠다.
유동 사막에서 모래는 늘 움직인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면 아스팔트 위에 순식간에 모래가 쌓인다.
1995년 첫 번째 사막공로가 개통되었을 때, 관리자들은 매일 모래와 싸워야 했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방호림 조성이었다.
2003년 착공해 2006년에 완성된 이 방호림 생태공정은, 도로 양측에 총 436킬로미터, 폭 72~78미터의 녹색 띠를 조성했다.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내건성, 내염성 식물 2,000만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그 식물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 4킬로미터마다 우물 하나씩, 총 109개의 우물집(水井房)을 세웠다.
그 우물집 하나가 저 멀리 보였다. 낮고 단단한 집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선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대개 부부가 한 쌍씩 거주하며, 맡은 구간의 방호림에 매일 물을 준다.
봄부터 가을까지, 해가 뜨면 물을 주기 시작해 해가 질 때까지 계속한다.
이전에는 경유 발전기로 펌프를 돌렸는데, 발전기 소리가 하루 종일 귀를 때렸다.
밤이면 발전기를 끄고 나면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과 침묵뿐이었다고, 12호 우물 관리인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어둠 속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무서웠다고. 요즘은 태양광 패널로 교체되어 발전기 소음은 사라졌지만,
사막의 어둠과 침묵은 여전하다고. 그럼에도 봄이 되면 다시 들어온다고.
우물집에는 빨랫줄에 옷 몇 가지가 걸려 있었다. 그 작은 광경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이 광대한 모래 바다 한가운데, 누군가의 일상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도로는 끝없이 이어졌다. 일직선이었다.
지구가 이렇게 넓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이 그 앞에서 이렇게 작다는 것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드문 경험이었다.
사막의 모래 언덕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부드럽게 굽은 능선이 빛의 방향에 따라 밝음과 그늘을 나누며 물결처럼 일렁였다.
바람이 모래를 조각하는 방식은 파도가 해변을 조각하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차 안에서 오래 바라보다 보면 최면에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조롭기 때문에 오히려 빨려 드는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따금 호양나무 군락이 나타났다.
사막 한가운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솟아오른 금빛 나무들.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 쓰러져도 천 년. 죽은 호양나무의 하얗게 바랜 몸통이 모래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기도 했다.
그것조차 아름다웠다. 죽어서도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면, 사는 것은 얼마나 단단한 일인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마주치는 차량은 드물었다.
가끔 대형 유조차가 반대 방향으로 지나갔고, 가끔 SUV 한 대가 멀리서 다가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 사이사이 도로는 우리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일직선 길을,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아무도 없이 달리는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고독이라고 해야 할까, 자유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둘이 사실 같은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몇 시간을 달렸을까. 차창 밖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래 언덕의 높이가 낮아지고, 색깔이 조금 옅어지고, 드문드문 다른 빛깔이 섞이기 시작했다. 사막이 끝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윽고 멀리 쿤룬산맥의 흐릿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평선에 걸린 하얀 줄이 점점 선명해졌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저 산맥의 발치에 호탄이 있었다.
쿤룬의 눈녹은 물이 흘러내려와 사막의 변두리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그 오아시스 위에 수천 년의 역사가 쌓인 도시.
호탄(和田). 옛 이름은 우전(于闐). 실크로드의 남쪽 경로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기원전부터 이 땅에서는 옥이 났다. 도시를 동서로 가르는 두 강, 백옥하(白玉河)와 흑옥하(黑玉河).
이름 그대로 하얀 옥과 검은 옥이 강바닥에서 나왔고, 사람들은 지금도 강변에서 옥돌을 줍는다.
이 옥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원으로 흘러가면서, 사실 실크로드는 비단길이기 이전에 옥의 길이었다.
기원전 5000년, 아직 비단이 교역되기 훨씬 전부터 호탄의 옥은 중국 동쪽으로 운반되었다.
그리고 호탄에는 비단 전파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오랫동안 중국은 누에고치의 비밀을 국가 기밀로 지켰다.
비단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자는 사형이었다.
그러나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한나라 공주가 호탄의 왕과 혼인할 때, 머리에 쓴 화관 속에 누에고치를 몰래 숨겨 가져왔다고.
황궁을 나서며 검문을 받는 공주의 머리를 아무도 함부로 헤집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호탄에 전해진 양잠 기술은, 이후 서역 전체로 퍼져 나갔다.
비단이 서쪽으로 가는 길목에서 호탄이 단순한 통과 도시가 아니라, 비단 기술 자체를 서역에 전파한 도시가 된 것이다.
화관 속 누에고치 하나가 세계의 직물 역사를 바꾼 셈이다.
호탄 시내로 진입하는 길, 도로 양편으로 포플러 가로수가 늘어서 있었다.
그 초록이 너무 진하게 느껴졌다.
몇 시간 동안 오직 모래와 하늘만 보다가 마주하는 초록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눈이 촉촉해지는 느낌이었다. 식물이 이토록 반가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사막을 건너기 전에는 몰랐다.
차를 세우고 잠깐 내렸다. 바람이 불었다. 쿤룬산맥에서 내려오는 바람이었다.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아니라, 만년설의 차가운 기운을 조금 머금은 바람.
그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아라얼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그 사람이, 지금 이 바람 앞에 서 있다는 것이.
그 사이에 타클라마칸이 있었다.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사막이. 그러나 우리는 나왔다.
도로가 있었기에, 우물집 지킴이 부부들이 있었기에, 2,000만 그루의 식물이 모래를 붙들고 있었기에.
호탄의 하늘은 넓고, 공기는 모래 냄새와 꽃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사막은 뒤에 있었다. 우리가 건너온 그 광대하고 아름답고 두려운 사막이.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타클라마칸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 외에,
어쩌면 '나올 수 있기에 더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