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티베트 자료방

Re:**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와 기원의 오색 깃발, ‘룽-따’ 2

작성자다정/김규현|작성시간14.04.03|조회수318 목록 댓글 4

 

기원의 오색 깃발, ‘다르촉’

 

“옴 마 드리 무에 사례 두!”

 

 마치 무슨 마법의 주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만트라는 밀교의  대표적인 진언인 “옴 마니 반메 훔”에 해당되는 융둥뵌뽀교의 주문으로 지금도 불교진언 못지않게 티베트에서 많이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티베트어가 아니라 고대 샹슝(象雄)1)왕국의 언어로 알려져 있어서 불국토가 되기 전의 설역고원의 상황을 추정하게 해준다.

 

이 샹슝이란 왕국은  서부 티베트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고대 문명으로 티베트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인 기원전부터 643년까지 융둥뵌교의 발원지이자 중훙지였던 곳으로  티베트의 고대사에 의하면 티베트 중서부의 패자로 자주 언급되고 있고 그 수도는 큔룽지방에 위치한 큔룽은성(琼隆银城, 白銀城)2)으로 알려져 있다.

 

 이 처럼 설역고원 도처에 남아있는 고대 종교 뵌교의 끈질긴 생령력의 잔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무엇보다 이 뵌교의 특징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다르촉’ 이다.

 아마도 티베트에 관한 정보중에서 가장 부정확하게 알려진 이 용어를 이번 기회에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다르촉은 티베트어로 그냥 깃발이란 보통명사로 일반적으로 5색[白, 黃, 紅, 綠, 靑色]3)으로 한조를 이루고 있다. 이 색깔들은 위와 같은 차례로ㅡ 구름, 황토, 불. 물, 하늘-을 상징하는 자연의 색깔로 우주 전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기원의 오색깃발‘이라고 부른다. 이 깃발은 대체로 신년초에 전 티베트의 마을 마을의 입구를 비롯하여, 고개 마루, 나루터, 다리 난간이나 양끝, 굴뚝, 지붕 위, 대문간, 고목나무, 큰 바위 등등, 말하자면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걸어 둔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티베트고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반기는 것도 바로 이 깃발이기에 어찌 보면 온 티베트 땅을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야성이 살아있는 강열한 햇빛 속에서 난반사되어 반짝이는, 펄럭이는 오색깃발은 온통 가시광선으로 변하여 두 눈을 찌르기에 더욱 현란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그 펄럭임 소리는 그렇지 않아도 산소부족으로 잠을 설치게 마련인 잠자리까지 따라 들어와 마치 새 날개의 펄럭임 소리 같은 환청으로 이어져 귓가를 맴돈다. 그렇기에 이 오색깃발들은 티베트를 다녀간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남는다.

 

 깃발의 이름을 말하다가 부연 설명이 길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깃발 속에 무슨 내용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는데 헷갈림이 생긴다. 이 직사각형의 오색천 조각에 경전을 새긴 목판을 찍어 문양을 만든 경우는 ‘경전의 깃발-경번[經幡]’이 되지만, 말[馬]을 찍는 경우는 <바람의 말-‘룽따’>가 된다. 번역하여 ‘풍마기(風馬旗)’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룽따도 다르촉에 속하기에, 룽따보다 다르촉이 좀더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깃발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설역고원을 뒤 덮였는지는 그리 명확하지는 않지만, 고급종교가 자리를 잡기 전의 샤머니즘적 사고방식이 일반적인 가치기준을 이루고 있을 원시상태였을 당시, 처음에는 그냥 색깔 있는 천을 걸어서 경계색으로 신계(神界)를 표시하던 것이었는데 후에 점차로 의미와 형식이 부여되어 고착화되었다고 보인다는 가설이 개연성이 많을 뿐이다.  

 불경이 새겨지지 전에는 아마도 ‘룽-따’가 대세를 이루었을 것이다. 바람 많은 고원에서 사는 뵈릭-티베트인은 바람을 ‘신(神)-Lha)'의 뜻을 전하는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람을 상징화하여 말로 표현하였다. 말하자면 '바람의 말'을 이미지화하여 ’아이콘‘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 한 장의 <룽-따 목판화>를 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자. 중앙에 온갖 치장을 한 말이 있고 그 위 말안장에는 불꽃이 실려 있다. 여기서 불꽃은 빛과 영혼을 의미한다. 그리고 말은 근대문명이 달리는 기계를 만들어내기 전 까지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바람을 잘 타는 깃발에 말과 불꽃을 새겨놓은 이유는 빨리 신과 영적인 교류를 하고 싶은데 있었다. 하늘을 날아야 하기에 그냥 말로서는 불가능하기에 날개 달린 하늘 말이 필요하였다. 이 빠른 말도 부족하여 바람을 가세시켰다. 주마가편이었다.

 ‘바람의 말’에 다시 빛과 영혼을 의미하는 불꽃을 얹어 놓은 유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가설로는 초기 뵌교는 BC 6세기에 출현한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타교(Zoroaster)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뵌교와 배화교는 여러 면으로 연결고리가 얽혀져 있다. 우선 두 종교는 빛을 숭배하였고 지리적으로 인근 지방에서 출현하였다. 그리고 배화교의 전성기인 2세기, 페르시아의 샤산왕조 때에 뵌교의 교조 센랍미우체가 나타났다는 것과 이론적으로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과 교주가 둘 다 31살에 성도를 했다는 것 등등이다. 4)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근거는 룽따에 실려 있는 불꽃이다. 불꽃을 숭배하는 종교는 그리 많지 안타. 그리고 배화교의 죽음의 신인 ’이마(Yima)‘는 지금도 ’야마(Yama, 閻羅王)‘로 이름만 바꾼 채 여전히 무서운 모습으로 설역고원의 중생들을 노려보고 있는 것도 배화교가 불교나 뵌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로 보인다.

 

 이 ‘룽-따’는 우리 천마총에서의 역할처럼 일종의 무마(巫馬)였다. 깃발은 바람을 부른다. 바람이 불어야 무마가 달리는 것이 아니다. 말이 새겨진 깃발만 허공에 달아 놓으면 바람이 달려오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날개 달린 천마가 영혼을 싣고서 바람을 타고 티베트광야를 나는 광경을… 그 얼마나 환상적인가?

 

 

 

 

 

 

 

 

 

 

 

 

 

 

 

 

 

 

 ‘무당 말’의 기능은 신과 인간과의 의사전달 말고도 죽은 자의 영혼을 실어 나르는 역할도 하였다. 티베트인의 장례의식에 쓰는 용어에는 고개나 나루터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영혼이 가야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론적 배경으로, 이승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빠르고 안전하게 천계에 도착하기를 기원하여 이 ‘바람의 말’이 새겨진 룽따를 고개나 나루터 같은 행인이 반드시 거처 가야만 하는 곳에 이정표로 돌무더기 탑을 쌓아 나무 깃대를 꽂아 높이 걸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면 바람은 불어오고 ‘무당 말’은 하늘을 나는 것이다. 둔황에서 발견된 이른바 <둔황문서> 중에는 『제마경(祭馬經)』5)이란 자료가 있는데 이 속에는 금마와 은마 사이에서 태어난 포푸차오용이란 이름을 가진 천마에 대한 전설이 실려 있다. 한 구절 만 인용해보자.

 

 “원하옵건대 천마여 !

산 사람의 몸을 태우듯이 죽은 이의 영혼을 태워서 들짐승처럼 빠르게 남쪽에서 똑바로 북쪽으로 가라.

사자(死者)가 아홉 산을 넘을 때 다리 힘이 부족하면 그의 다리가 되어…”

 

 두 번째의 룽따의 역할은 잡귀를 쫓는 벽사(酸邪)에 있었다.  다시 한 번 이 그림을 살펴보자. 천마의 사방에 매 또는 봉황, 용, 사자, 호랑이가 새겨져 있다. 이는 사방의 방위를 맡은 신성한 호위 동물들이다.

 이들과 오방색의 의미는 후에 중국의 음양오행사상이 전래됨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형태인데 티베트에서는 자연의 색깔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은 중앙과 황토를, 백은 동방과 흰 구름을, 홍은 서방과 불을, 청은 남방과 푸른 하늘을, 녹은 북방과 녹색 물을 상징한다.

 세 번째로의 역할은 기원에 있었다. 이는 후에 불교가 뵌교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생긴 것인데, 주로 티베트불교의 상징인 길상팔보(吉祥八寶)가 천마를 밀어내고 자리잡게 되면서 행복과 창운(昌運)을 비는 내용의 불경구절이 빈 공간에 추가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옴 마니 파드메 훔” 같은 것이 화제(畵題)로 등장하였다는 말이다. ‘경전의 깃발-경번(經幡)’으로 변한 것이다.

 

 한 번 더 정리해보면 다르촉은 처음에는 눈에 잘 띄는 원색의 천을 사용하여 길가의 이정표시를, 또는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점차로 의미가 부여되면서 신들과의 교감방법으로, 영혼을 실어 나르는 송혼마(送魂馬)로, 벽사용으로 ,다시 불보살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개인의 소원과 복을 비는 용도로 변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원시 샤머니즘의 신물에서 고급종교의 아이템으로 진화되었던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과 그 찬란한 햇빛 아래서 펄럭이는 오색깃발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영혼’이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특별히 이 깃발에 관심을 두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우리 한민족의 수 천년된 습관성 행위의 유전인자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더 솔직한 이유를 꼽자면 그것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몇 년을 작업을 하여 1997년 티베트대학에 머물던 때 몇몇 티베트 친구들의 도움으로  라싸 미협 전시장에서 ‘다르촉’만을 주제로 하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 후 티베트에 갈 때 마다 새로운 내용의 다르촉을 목판에 새겨 수 백장을 찍어, 가는 곳 마다 걸어 놓은 버릇이 생겼다. 일종의 ‘행위예술작업’인 셈이다.

 매번 그 내용과 글귀는 달라지지만 근본 형태와 정신은 살리면서 시각적으로는 좀 더 현대화 시키려 하고 있다. 물론 화제는 티베트어와 한글을 혼용하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다.  해동의 나그네가 만든 오색깃발이 설역고원 곳곳에 휘날리면서 지나가는 행인과 영혼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1) 군소왕국으로 난립되어 있던, 티베트고원을 통일하여 강력한 왕국으로 만든 영걸이며 33대 쩬뽀인  송첸감뽀는 명재상인 가르통첸의 계략에 따라, 빼어난 미모의 여동생인 사드마카를 샹슝으로 보내 정략혼인을 시킨다. 그리하여  샹슝왕국의 마지막 국왕 리미캬(李彌夏, Ligmikya)는 사드마카의 유인에 의해  복병이 있는 곳으로 인도되어 암살 당함으로  결국 샹슝왕국은 643년 티베트 왕조에 병합되었다. 그 뒤  송첸에 이어 즉위한 망송망쩬이 677년 사망하자 독립을 시도하지만, 역시 명장 가르통첸의 다섯 아들들에 의해 진압되고 만다.

2) 카일라스 순례의 베이스캠프인 더르첸에서 서쪽으로, 70km지점의 마을 먼즈[門士]에서 좌호전하여 6km 지점에 희고 붉은 바위로 된  산과 큰 개울과 온천이 나타난다. 바로 딜타푸리이다.  샹슝의 옛도성, 큔룽은 개울을 건너 다시 8km를 도보로 가야한다. 허지만 이무것도 없는 폐허의 빈 동굴군 만이 나그네를 맞는다.  
 

3) 우리가  흔히 쓰는 ‘오방색’ 과는 2개가 차이가 난다.  우리의 오방색은 방위를 강조하여 동서남북에 정 중앙을 상징하여, 동쪽은 ‘파랑(靑)’, 남쪽은 ‘빨강(赤)’, 서쪽은 ‘하양(白), 북쪽은 까망(黑), 중앙은 ‘노랑(黃)’이다.

4) 그외에도  배화교의 제자중에 황인종의 유목민이 있어 그들의 고향에 전교를 하였다는 것과 두 종교가 ’사향지로‘를 통하여 설역고원에 전파되었다는 등등을 종합해보면 배화교가 뵌교에게 키친 영향은 거의 확실하다.

5) 주준지에[諸俊杰], <吐蕃本敎喪儀軌硏究, 中國藏學>
티베트학자 토마스(WH Thomas)도 위의 문서를 정리하면서 천마의 족보를 언급하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오아시스 | 작성시간 14.04.03 아하~ 그렇게 구별되는군요
  • 작성자여울목 | 작성시간 14.04.04 *역시 티벳문화의 달인이십니다ᆞ
  • 작성자동해의 푸른/ 이상기 | 작성시간 14.04.04 다르촉, 경번, 룽따... 고판화박물관에서도 봤어요.
  • 작성자다정/김규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4.06 아, 세월은 잘 간다 아야야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