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티베트 자료방

8. 수미산순례기

작성자다정/김규현|작성시간14.04.07|조회수353 목록 댓글 5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Manasarova) >

비록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영적으로는 무한히 충만하였던 카일라스산의 꼬라의식을 무사히 끝마치고 다음 순례지로 이동할 준비를 하면서 마음은 벌써 신비의 호수가로 가 있었다.

 다르첸 마을에서 부터 펼쳐진 넓은 스와스띠까[卍]1) 벌판 가운데 누워 있는 태고의 전설이 가득한 호수는 저녁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는 히말라야의 굴라만다타 연봉(7,728m)2)의 만년설이 역시 저녁 햇살에 빛나며 레이져 쑈를 펼치고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고산병 증세로 정상이 아닌 눈을 더욱 황홀하게 하였다.

 뒤처진 일행 때문에 마나사로바 호수가의 치우곰파3)에 도착한 때는 이미 어둠이 호수에 깔리고 난 뒤였다. 일행은 즉 3박4일의 순례를 함께 끝낸 터라 모두 탈진상태에 있었지만 끈끈한 우정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신성을 마주 대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을 하고 말을 아끼며 조용히 움직였다.

 

 잠자리를 배정받고 우리는 다시 민박집 거실에 모여 들었다. 자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말린 야크 배설물을 연료로 하고 있는 납작한 난롯가에는 때 아닌 축하파티가 벌어졌는데, 각기 준비한 각국의 비상간식에다  티베트의 민속주인, ‘창’ 과 뵈차[수유차, 티베트 차] 그리고 맥주까지 곁들인 풍성한 식탁이었다. 모두 잔을 따라 낙오자를 부축하며 무사히 꼬라를 원만하게 끝내게 해준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였다.

 해동의 외로운 순례자 또한 스스로에게, “따시데릭[Good Luck], 푸부 킴 [Mr 金] !”하면서 축하인사를 건네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번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성취한 것 같은, 그런 홀가분함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실로 오랜만에 마시는 몇 잔의 술은 고산지대 특유의 증상인 가슴의 콩닥거림과 이명현상을 몰고 왔지만 ‘수미산화두’는 놓치지 않았다.

  이번의 코라는 난해한 경전이란 밀림 속에서 희미한 옛길을 겨우 찾아내어 신화 속 나라의 전설적인 산을 다녀온 것이었다. 어찌 보면 순례라기보다 학술답사에 가까웠던 길이었다. 그것도 신화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아주 무거운 테마였다.

 까마득한 고대에 중요한 패러다임이었던 신화일지라도 현대에서는 이미 퇴색한, 아니 거의 탈색해버렸기에 ‘신화로의 집착과 회귀’는 도무지 무가치한 일인지도 모른다. 생명체까지 복제하여 신의 경계를 넘보는 기고만장한 인류에게 박물관의 뒤쪽 선사시대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신화나 전설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기에 아직은 신화시대로의 귀소본능 은 완전히 폐기처분해야 할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문명의 앞날의 비전을 제시할 대안 중의 하나로서 효용가치가 있다. 앞으로만 치닫는 인간의 의식 속에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는 회귀본능도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새 천년의 패러다임이 사이버세상을 여는 것이라도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에덴동산에의 그리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종말이 인류의 끝이라면 신화는 시작인 것이기에 우리는 그 ‘창조의 일 번지’라는 호수를 신화 그 이상의 의미로 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해동의 나그네로서도 이번 꼬라는 그런 메시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 셈이어서 가슴 가득 뭔가 차오르는 기분을 억제할 수 없었다.

 

 신비의 호숫가에서의 첫 날은 맑고 쾌청하였다. 특유의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빛도 여전하였다. 호숫가 동북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치우곰파 아래의 민박집 옆에는 온천이 솟고 있었다. 전설에는 티베트에 밀교를 전한 구루린뽀체, 빠드마삼바바4)가 이 지방을 지나가다가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지팡이로 구멍을 뚫어 솟게 하였다고 하는 전설적인 온천이었다. 큰 온천이라기보다는 옹달샘 규모의 것이었다. 게다가 서너 채의 부락민들이 식수 및 빨래터를 겸하고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기에 속옷을 입은 채로 샤워밖에 할 수 없었지만5) 보름간의 순례길에서 누적된 때와 피로를 씻어내기에는 충분하였다.  일행 모두 교대로 더운 물로 샤워를 하며 밀린 빨래도 함께 하면서 모처럼의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는 햇빛이 비치는 민박집 토담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세찬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서 각기 나름대로의 이 번 꼬라의 의미와 그 동안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이번 순례를 위해 급조된 우리 팀은 가이드와 운전기사 두 명을 제외한 모두 4개 국적의 8명으로 구성되었다. 조금 늦었지만 우리 일행을 독자들에게 소개 한다.

 모두 경비절감과 허가절차의 편의를 위해 구심점 없이 모였지만 그 동안 동고동락을 한 터이라 이미 완벽한(?) 한 팀으로 변해 있었다. 모두 카일라스 신드롬에 걸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모두 개성이 특이한 멤버들이었다. 나와 일본계 미국인 야마시다를 제외하면 모두 유럽인이었는데 그 중 네덜란드의 마임니스트인 이사벨6)은 단연 이채를 띤 존재였다. 그녀는 한마디로 푸른 눈의 무당이었다. 틈만 나면 이상한 요령까지 흔들며 주문을 외우는 기세는 자못 그럴 듯하였다. 그녀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한조가 되었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후에 내가 내린 진단은 “그녀는 신을 받으러, 즉 ‘내림굿’을 받으러 이곳에 온 것이다” 였다.

 그 외에 영국의 피터부부는 런던에 있는 티베트불교의 명상센타에 다니는 신도부부로 이미 오랫동안 수련을 한 탓인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이 제법 안정되어 보였다.

 그리고 야마시다는 비밀스런 일을 하나 하러 온 것이었는데, 바로 그의 조부가 남긴 유촉을 수행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조부는 유명한 불교학자였다는데 1900(?)년 대 초에 티베트 라싸에 밀입국하여 오랫동안 머물다 귀국하였지만 카일라스에는 와보지 못했기에 유언으로 그의 유해의 일부를 이곳 마나스호수에 뿌려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자인교의 신자인,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도 그의 유해의 일부를 이 호수에다 뿌렸기에 현재도 많은 이들이 그런 유촉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말은 신빙성이 있었다. 중국에 이은 아시아대륙의 점령과 2차대전을 준비한 일본은 이미 1900년부터 불교학자 또는 과학자를 가장하여 정부의 비밀지령을 받은 스파이들을 여러 명 티베트에 밀입국 시켰다. 『티벳에서의 3년』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긴 가와구찌 에까이[河口慧海]7)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름이 확인된 사람만도 1950년대 까지 무려 10여명이다. 8)

야마시다는 팀에서의 내 역할 때문에, 나를 믿고 사실을 털어 놓았고 나는 흔쾌히 협조를 약속하였다.  

 사실 내 역할이란, 중국어와 티베트어에 대한 유일한 번역통이였기 때문에, 영어가 가능한 가이드를 도와서, 가끔 현지인, 공안원, 운전수에게 개별적인 의사소통을 시켜주는 일과 가끔 중국식당에 들렸을 때 음식을 추천해주는 정도의 일이었다. 티베트식 식당에서는 메뉴가 단조로워 딴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나도 저거 달라”9) 하면서 따라서 주문하면 되었지만 중국음식체계를 이해 못하는 서양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입맛을 통일시켜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자연히 팀의 리더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오후가 되어 바람이 다소 잠잠해지자 우리는 이사벨의 제의에 따라 자리를 치우곰파가 있는 건너편 언덕으로 옮겨 명상훈련에 들어갔다. 그녀는 네팔인 스승에게 명상훈련을 전수받았다고 하였는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자세가 제법 안정돼 보여 모두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그녀를 따라 자리를 잡고 그녀의 지시에 따라 호흡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거기에 참석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뒤에서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 광경은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우선 그 배경부터 범상치 않다. 그곳 치우곰파에서 바라보면 발 아래로는 사바세계 염부제주의 배꼽 옴파로스에 해당되는 터키석 색깔의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고 눈을 들어 호수 건너편을 보면 지구별의 중심 안테나인 카일라스의 하얀 왕관이 구름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무한한 우주와 영혼의 텔레파시를 주고받는지 그렇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런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상적인 명당에서 지구촌 각지에서 모여든 남녀 순례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카일라스 산 일원은 우주의 중심축에 해당되지만 이를 다시 딴뜨라 사상이나 음양오행론으로 풀이하면 카일라스 산은 양(陽)과 동적 에너지를, 마나스 호수는 음(陰)과 정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방편(方便)과 반야(般若), 자비와 지혜, 행위와 침묵 같은 이원론적(二元論的) 구도로 대별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마나스 호수는 마이너스에너지의 원천으로 지구의 배꼽 또는 자궁에 해당되고 한편으로는 우주의 단전(丹田)에 해당되는 곳으로 창조와 정화가 시작되고 완성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마야 부인이 이곳에서 성욕(聖浴)을 함으로써 육신의 몸으로 신성(神性)을 얻어 싯다르타를 잉태할 수 있었으며 또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신의 부인들과 수많은 천신들도 이 성스러운 호수의 물로 정화를 함으로써 신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풀이하면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양에너지’의 상징이고 또 하나는 ‘음에너지’의 총화인 것이니 둘이 이웃해 있는 모습은 그냥 보통의 자연물이 아닌 것이다.

 그런 배경을 뒤로 한 천하의 명당자리에 우리들은 가부좌를 틀고 삼매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한 폭의 그림 아니 만다라 였을 것이다.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 세상 끝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각자의 자세로 명상에 들어 있는 모습은…

 

 

 

 힌두 딴뜨라10) 철학에서 보면, 소우주에 비유되는 인체에는 척추아래의 회음부(會蔭部)에 에테르 상태의 ‘기(氣)’가 마치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잠들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수행자는 호흡법[Prana]으로 위로 끌어 올려 인체의 일곱 기관[Chalcra, 穴]을 통과시키면서 에너지 파(波)를 증폭시킨다. 그리하여 최후에는 이마 부분의 백회혈(百會穴)까지 끌어 올리면 일천 송이의 연꽃이 개화되는 것 같은 폭발적인 우주적 에너지를 얻게 되며 초월의 세계에 이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힌두철학에서 카일라스 산은 ‘지구별의 수메루(Sumeru) 즉 척추’11)에 해당된다. 땅과 하늘의 기가 흐르고 있는 중앙 연결통로로  바로 ‘우주신경의 중심축’ 으로 본다.

  인도인들은 이 광경을 ‘우주창조의 일번지’라고 인식하여 온갖 이론을 이끌어 내었다. 현대언어로 요약하면 이 호수는 ‘우주의 자궁’이다. 우주적 심볼 남근에서 흘러나오는 창조의 정액을 받아들여 만물을 잉태하는 모태라는 것이다.

 

  이 마나스 호수의 창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힌두교 교리체계에서 보면 ‘창조의 신’은 부라흐만인데, 그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카일라스에서 수행을 하였다. 그들은 오랜 고행의 더러움을 씻을 세정처가 필요하여 부친에게 부탁을 하였다.  이에 부라흐만신은 카일라스와 한 쌍을 이루는 그 어떤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으로 생각하자 “마음을 씻을 정화력이 있는 호수”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의 호수’,  ‘마나사로바’ 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에 그의 아들들은 기뻐하며 ‘정화의 호수’와 함께 ‘창조의 산’을 함께 경배하였다고 한다.

 후에 힌두교의 지역별, 시대별 변천에 따라 이 창조의 일번지는 시바교[Shivism]의 근거지가 되면서 <링가(男根)와 요니(女陰)>라는 음양의 조합 으로 상징화 되어 힌두 사원 안으로 들어와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인도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 것들을 말한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카일라스의 주인자리가 처음에는 인드라신에서 시바신으로 바뀐 사실을 살펴보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이에 브라흐만신도 당연히 추가시켜야 한다.

 10억이 넘는 인도인들에게 카일라스 산과 이 마나스호수는 그들의 생명수인, ‘강가(Gangga)’, 즉 갠지스 강의 원천으로서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시바신과 그의 두 부인, 우마 그리고 파르바티 여신의 집과 세정처로서 인식되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적으로는 같은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인도인들을 볼 때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흔히 신화와 현실의 모호성에 있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가의 정화력’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의 눈에도 그 물은 더럽게 보일것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 물이 정화력을 가진 신비한 신통력이 있다고 철석하게 믿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연장해보면 강가의 원천수인 이 마나스 호수가 얼마나 그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논제는 새삼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된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아름다운 호수는 신화가 아니라 수 천년 전부터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인도신화의 다소 허황한 내용을 믿지 못한다고 치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분명히 아름답고 숭고하다. 어찌 보면 이곳은 카일라스라는 우주적 산에서 흘러나오는 정액을 받아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우주의 모태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모태처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번 순례기의 주제가 불교 쪽 시각에 있으므로 이산과 호수에 대한 힌두교의 연결고리를 더 깊게 파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사실은 이 지방은 힌두교의 영향이 강한 곳임을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불교 탄생의 토양이 힌두이즘에 있으므로 두 종교의 구분은 무의미하지만, 특히 ‘수미산설’에 관한 부분은 더욱 그러하다. 이곳의 주인인 브라흐만신이나 인드라신은 후에 불교의 판테온으로 들어와 한자로 대범천(大梵天)이나 제석천(帝釋天)으로 번역되어 여전히 이산과 호수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고 하겠다.

 사바세계의 4대주 중에서 우리 인간계가 사는 대륙을 ‘남염부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산스끄리트어로는 ‘쟘부디파(Zdambudipa)’라고, 티베트어로는 ‘잠부링’이라고 하는데 이는 “‘쟘부’라는 나무가 자라는 땅”이란 뜻이다. 이 거대한 우주수(宇宙樹)는 아뇩다지, 즉 마나스 호수에서만 자라는 나무이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창조주 브라흐만은 마나스호수와 함께 쟘부 나무를 만들어서 하늘을 떠받치게 하였으며 또한 온 세상에 골고루 맑은 물을 공급하게 하여 인간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4대강이 바로 그 강물들인데, 신의 영토인 이곳에 올 수 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하류에서나마 은총을 받게 하여 생명수나 정화수로 이용하게 안배하여 갠지스 강은 지금도 전 인도인의 몸과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을 갖게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쟘부 나무가 자라는 땅 또는 쟘부의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뜻의  쟘부디파 는 지금 우리가 사는 대륙의 이름이 되었다. 물론 염부주나 섬부주 같은 한역 경전 속의 명사는 쟘부 의 번역임은 우리는 앞에서 이미 짚어본 바 있다.

 

 우주의 마이너스 에너지의 총화인 마나스 호수에 이윽고 핏빛 같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지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우주와 하나 된 엑스터시를 맛보고 있으리라 …  

 ‘우나 사루스’, 즉 ‘대 자유’에 들어 있으리라 !

 <계속>

 

 


1)  이 기호는 그리스, 로마, 아시리아, 인도, 중국 등괴 같이 고대문명이 찬란하였던 곳에서 흔히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서 결론적으로 태양에너지를 상징한다는 것이 설이 지배적이다.  
 우선 동양권에서는 힌두교의 3신중의 하나인 비슈누(Vshnu))신의 가슴에 난 선모(旋毛)를 상징하여 스와스띠카(Svastika)등 4가지로 불리면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초기불교의 판테온에 도입되어, 비슈누의 그것처럼 붓다의 53번째 신체적 특징으로 패러디되어 기원전후의 발생된 대승불교권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불교를 상징하는 기호로 굳어졌다.

2) 나무나니 라는 이름으로도 볼린다.  

3)  다르첸에서 30km 거리에 있는 치우곰파는 마나스호수 꼬라의 베이스캠프에 해당되는 곳이다. 교통도 편한 편이고 온천도 있고 하여 여러모로 편리하다. 카일라스에 오기까지 고산증세가 가라앉지 않으면 호수코라를 먼저하고 다음에 산으로 가는 방법도 좋다. 이곳을 기점으로 104km의 호수를 우회전이나 좌회전이나 골라서 할 수 있다. 민박집에는 간단한 생필품도 팔고 있다. 보통 3박4일 걸리는 꼬라는 식량과 숙소만 해결하면 해볼 만한 순례코스이다. 군데군데 토굴 속에서 수행하는 고행승이 있는데 이야기만 통하면 숙식도 해결할 수 있다. 혹 인연 있으면 맨눈으로 물을 끓이는 ‘투모술’의 초능력자와 축지법, ‘렁곰술법’도 행하는 도인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4) 구루 린포체(“소중한 스승”. Guru Rinpoche) 또는 로폰 린포체(Lopon Rinpoche)로, 한자로는 연화생(蓮華生)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연꽃 봉우리 안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8세기에 탄트라 불교를 부탄과 티베트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티베트의 왕이었던 치쏭데짼 왕은 빠드마삼바바가 라싸에 오자 위대한 스승이 온 것이 너무 기뻤던 나머지 라싸 근교까지 마중을 나가고 많은 금을 바치며 가르침을 구했으나, 그때 그는 금을 모래로 만들고는 "나는 금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후 모래를 다시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빠드마는 인도에서 온 또 한명의 스승인 산타라크쉬타와 함께 티베트 최초의 사원인 삼예사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현재는 고파, 홍모파로 불리는  ‘닝마빠 종파’의 종조로 추앙받고 있다.  

5) 2001년 마지막으로 이곳을 갔을 때에는 온천에 흙벽돌로 칸막이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되면 마음 놓고 옷을 벗고 샤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소식을 듣자니 요즘은 남녀별로 구분된 건물을 지어 요금까지 받는다고 한다.

6)  이사벨은 나와의 만남으로, 결국 짐을 싸서 티베트 대학으로 이사오게 되였고 내 전시회 발문도 영어로 써주었다.

 

7)  일본 황벽종(黃壁宗)의 승려로서 1900년 단신으로 네팔을 통하여 티베트 땅을 밟은 그는 카일라스산 꼬라를 마치고 라싸에 잠입하여 몽골인으로 위장하여 쎄라사원에서 3년간 겔룩파 승려 노릇을 하면서 공부한 뒤 신분의 위협을 느껴 귀국하였다가 10년 뒤 다시 한 차례 잠입하여 대장경을 수집하여 가져갔다.
그의 수집품은 지금 동북대학(東北大學)의 “가와구찌 콜랙션”으로 영구보관되고 있다. 그의 여행기는 『티베트여행기』전5권, 講談社, 1978년> 으로 발행되었고 다시 『Three years in Tibet』이란 이름으로 영역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 방면의 고전이 되었다.

8)  가와구찌의 뒤를 이어  1913년 입국하여 세라사원에서 10년간 체류한, 다다도우강(多田等觀)를 비롯하여 能海寬, 寺本婉雅, 成田保輝, 矢島保, 靑木文敎, 長谷川, 野元, 木村, 西川一三 등이 있다.  이를 보면 일본인들의 티베트학에 대한 관심을 짐작케 한다.

9) 근데, 우리말로 ‘저거’는 중국말로는 ‘이것’에 해당되는 지시대명사여서, 다들 경험해본 일들이지만,  중국생활 초기에는 간혹 엉뚱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10) 탄트라의 기원은 기원전 1500년경의 <베다> 문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탄트라는 인도 사상의 근저에 놓여있기 때문에 힌두교는 물론이고 불교와 자이나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힌두탄트라에 의하면 절대자 브라흐만은 그 자체 안에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의 양면성을 가지고 창조와 파괴를 반복한다. 여기서 남성적 요소는 원리적이고 비활동적인 쉬바이고, 여성적 요소는 변화하고 활동하는 샤크티이다.
탄트라는 본래 종교나 철학을 이론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이 본래 하나라는 인도의 전통적인 사고로 돌아가자는 실천 운동으로 어려운 종교 철학의 문제를 이론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인간 본래의 우주적 생명력을 회복시켜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자는 실천 수행법이다.  
이 힌두탄트라는 다시 세 종류로 구별된다. 첫째 가장 주도적인 유형은 종교적인 우도 탄트라이다. 이 파는 샤크티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의례에 중점을 둔다. 둘째 일반인들에게 많은 오해와 비난을 사는 좌도 탄트라이다. 이 파에서는 샤크티와 쉬바를 결합시키는 의식으로 인도 전통사회에서 금기하는 술, 고기, 섹스 등을 수행의 한 방편으로 채택하는 특징이 있다. 셋째 요가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유파이다.
 탄트라는 내용적으로 다시 4부(지식·요가·예절·실천)로 구성되는데 난해한 '베다'에 비교하면 하층 계급의 민속 신앙 등을 혼입시켜 평이해졌으며 더구나 윤좌숭배(輪坐崇拜) 등에서는 카스트 외의 천민 계급까지 포함시켜 행하여졌기 때문에 벵골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인도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또한 불교에도 영향을 미쳐서 좌도밀교(左道密敎)의 융성을 촉진하였다.

11)  산스크리트의 ‘수메루’는  수미산의 음사되기 전 본래 이름이기도 하지만 딴뜨라 철학에서는 ‘척추’를 의미하기도 한다. 수미산을 ‘우주의 중심센타’로 보는 설의 결정적인 근거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여울목 | 작성시간 14.04.07 마나스루와 카일라스ᆞ음과양
    의조화 라고 하니 더욱 흥미롭습니다ᆞ
  • 작성자명사산 | 작성시간 14.04.08 신비롭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 작성자곤륜산자 | 작성시간 14.04.08 강가의 시원지가 마나사로바 호수로군요.
  • 작성자천산 | 작성시간 14.04.09 역시 깊은 내공
  • 작성자동해의 푸른/ 이상기 | 작성시간 14.04.13 우루무치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마나스 호수가 바로 이곳이군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