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토)일 구체적 일정 없이 우리 가족은 춘천으로 떠났다. 첫 목적지가 가평 남이섬이었기에 친절한 네비는 서울 부근을 지나도록 안내했다. 주말인데다 휴가객들의 마음이 일치해 춘천행 도로는 답답하게 막혀있었다. 그래도 대성리와 청평을 지나는 경춘가도의 추억이 주섬 주섬 찾아와 운전하는 나를 미소 짓게 했다. 특히, 대학생일 때, MT 장소였던 청평에서부터 서울까지 걸었던 두 젊은 청년의 무모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남이섬에 도착했다.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표현의 어감이 낯설었지만,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은 같았다.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짚라인을 타고 들어갈 수 있지만, 나는 줄에 매달린 타잔이 될 용기가 없었다. 남이섬은 예전 그대로였다. 나무가 훨씬 커졌고, 외국인이 많다는 점이 ‘나미나라’ 느낌을 살짝 줬다고 할까? 남이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연기를 아주 잘했던 타조였다. 우리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마치 무엇인가를 맛있게 먹는 흉내를 너무 리얼하게 하고 있었다. 귀여운 타조 ^^
남이섬을 나와 가평에서 저녁으로 감자탕을 먹었다. 아들에게 볶음밥까지 먹는 감자탕 식사 코스를 보여주었다. 강촌을 지나 춘천 게스트하우스(더로컬)에 이르렀다. 2층 침대가 있었는데, 아들딸이 서로 2층에서 자겠다고 재잘댄다. 저녁 배가 너무 불러서 운동할 겸 공지천변을 걸었다. 춘천은 호수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져 있어서 매력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8월 4일(일) 2일차 일정은 삼악산 케이블카로 시작했다. 의암호를 가로질러 대략 3.6km 정도 거리를 20분 정도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다른 곳에서 타본 케이블카에 비해 흔들림 없이 상당히 부드럽게 움직였다. 상부터미널에서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는 데크가 설치되었다. 대략 10분 정도면 간단하게 갈 수 있는데, 춘천 조망이 멋졌지만, 해가림이 없어서 오래 있다가는 전자렌지 햇살에 익어버릴 것 같았다. 두 번째 일정은 손흥민 선수와 관련 있는 인필드 카페였다. 조용한 카페일 것이란 기대와 달리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대기 번호를 받고 기다려야 하며, 입장하더라도 옷과 모자를 팔고, 커피와 빵을 팔고 사람들이 계속 오고 가서 건물 안이 상설시장 같았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란 책을 읽기 위해 가져갔는데, 집중이 되지 않아서 정말 이곳은 이상과 현실이 ‘모순’인 장소라 생각했다. 피하듯 밖으로 나왔지만, 엄청 더워서 다음 일정으로 춘천시립도서관을 추가했다. 서산의 도서관과 비교되는 춘천시립도서관이 참 부러웠다. 어린이열람실 한편에 앉아서 ‘모순’을 다 읽었다. 사람의 삶과 생각은 모순투성이지만, 대부분 자기 삶과 생각은 합리화하고, 타인의 삶과 생각은 지적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나와 애니메이션 박물관에 갔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애니메이션 역사와 제작과정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로봇 박물관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VR, AR 체험장도 잘 갖추고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동면의 소양강 댐 아래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목표한 음식점의 주차장이 가득하여, 결에 소양감 댐까지 올라갔다. 주차장에서 소양강을 한참 바라보고, 예전 청평사 갔던 배의 항로를 그려보았다. 한 시간 정도 머무르다가 다시 닭갈비전문점으로 내려왔다. 아들딸이 너무 맛있게 먹었고, 바로 앞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었다. 카페 앞에 소양강 댐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는 강이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본 풍경은 물이 아니라 하얀 안개가 흘러가는 몽환적 구름강처럼 보였다. 둘째 날 숙소는 KT&G 상상마당 스테이였다.
8월 5일(월) 셋째 날 일정은 인제자작나무 숲이었다. 양구를 거쳐 소양강 댐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택했기에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주 멀게, 돌아서 찾아간 ‘인제자작나무숲’은 월요일과 화요일이 쉬는 날이라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나처럼 주차장 팻말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뒤로 조금 더 있었다. 이곳은 국립공원이랑 다른 곳이었나보다. “월요일, 화요일 = 인제자작나무 숲 운영 안함” 아주 큰 교훈을 얻었다. 대안 일정으로 차를 한참 몰아 백담사에 갔다. 주차장에서 셔틀을 타고 7km정도 이동했는데, 가는 계곡 길이 너무 멋져서, 내려 올 때는 걸어오자고 제안했지만, 나만의 생각인지라 다시 셔틀을 타야 했던 점이 무척 아쉬웠다. 백담사 바로 앞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깨끗하고 시원했다. 계곡에 듬성듬성 보이는 각양각색의 돌탑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과 희망을 쌓고 있었다. 가을 풍경이 참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양구 읍내에 들러서 저녁을 먹었다. 셋째 날 숙소는 춘천 인근에 용화산 자연휴양림이었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통나무 숙소였다. 산장에 들어가자마자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밤새 비가 내렸다.
8월 6일(화) 넷째 날은 춘천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기에,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아쉬운 마음에 하남스타필드에 들렀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3층 놀이시설로 가서 3시간을 알차게 놀았다. 서산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경이었고, 오랜만에 편안한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3박 4일 춘천 여행은 더위가 가득한 여행이었지만, 한여름 여행은 좀 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가지 아위운 점은 그제부터 이상하게 이빨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디서 딱딱한 무언가를 씹다가 그랬는지, 여행 후, 치과에서 어금니 쪽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여행이 준 아픔이랄까?” 갑자기 모순덩어리가 몰려드는 삶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