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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설교]가장 좋은 교육방법은?(딤후1:1-5) - 어린이주일 설교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18.05.04|조회수547 목록 댓글 0

가장 좋은 교육방법은?(딤후1:1-5)

 

2018.5.6 어린이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 고사 성어는 중국 전한(前漢)시대 조충국(趙充國)이라는 장수의 지혜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단지 전장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교육에서도 적용된다.

 

인구는 전 세계의 0.2%지만, 전 세계 노벨상의 21.3%를 차지하고, 미국 최고부자의 16%를 차지하는 민족이 있다. 바로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오늘날 실질적인 세계의 지배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그들의 신앙중심의 독특한 교육방법에 있다는 것은 유대인을 연구한 사람들의 거의 공통적인 결론이다. 예를 들면 팀을 짜서 집단의 힘을 이용하려는 방식이나(“아무리 훌륭한 사슬이라도 고리 하나만 끊어지면 쓸모없게 된다”- 유대속담), 끊임없이 인내하는 훈련(“금과 은은 불속에서 정련되어야 비로소 빛난다”- 탈무드), 다름을 이상함으로 보지 않고 재능의 꽃을 피워주는 사고방식(“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만 걸어간다면 지구는 금방 기울어질 것이다”- 탈무드), 끊임없는 토라(율법) 암송과 다양한 질문법, 몸으로 보여주는 체험학습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모든 교육을 실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릴 때부터 부모 또는 조부모가 행동으로 본을 보여줌으로서 자연스럽게 자손들에게 그 모습이 흘러가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본대로 배운다. 물론 누군가에게 본을 보여주는 것이 유대인들만의 방법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도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들과의 차이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보여줌은 곧 신앙의 전수를 뜻한다. 가장 좋은 교육방법은 삶 속에서 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제자였던 디모데는 투명하고 거짓 없는 믿음을 가졌던 분이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거짓 없는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원인은 그의 부모와 조부모가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왕 때 주변나라들이 연합하여 침범해 왔다. 그때 여호사밧은 모든 백성들을 성전 뜰에 모으고 기도했다. 그들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서있는 모습이 역대하 20장 13절 말씀이다.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대하20:13)

 

이 말씀을 보라. 그들은 국가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의 자리에 어린이들이라고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는 어린자녀들에게 민족적인 어려움 왔을 때, 다함께 손잡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이 그들의 교육방법이고 신앙고백이었다.

 

또한 본을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의 교육방법이기도 했다. 예수님은 말로만 교육한 것이 아니라, 데리고 다니시면서 친히 몸으로 본을 보여주셨다. 밤낮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전도하는 모습이나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3:9)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자녀손과 가족들, 성도들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는가? 과거나 지금이나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본대로 배우고, 본 것을 흉내를 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으로 굳어지는 패턴을 보인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심지어 “저렇게 하면 안되지”라고 비판하면서도 나중에는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래서 ‘욕하면서 배운다’라는 말도 있다.

 

그렇기에 ‘무엇을 보여주는가’ 또는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쓰는 신실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약(藥)을 줄 수도 있고, 독(毒)을 줄 수도 있다. “나는 안하지만 너는 잘해라”는 말을 희망사항일 뿐이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자신은 안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하면 그들은 꼰대가 잔소리 하는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부모가 애들 몰래 이상한 행동을 해도, 아이들은 마치 그것을 본 것처럼 따라서 한다는 사실이다. 애들 모습이 곧 내 모습이다. 예배나 기도를 경시하는 부모 밑에서 예배를 경시하는 자녀가 나오고, 기도하는 부모 밑에서 기도하는 자녀가 나온다. 공부하는 부모를 본 아이들은 공부한다. 반대로 부모나 할머니가 욕을 잘하면 애들도 욕을 잘한다. 부모가 도박하면 애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부모 밑에서 중독자가 나온다. 부모가 목사님을 목사라고 부르면 자녀들도 그렇게 부른다. 교회도 영적인 가정이기 때문에 이와 유사하다.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의 행동을 성도들이 은연중에 보고 배운다. 욕심쟁이 권사 밑에서 욕심쟁이 집사가 나오고, 잘 섬기는 장로 밑에서 잘 섬기는 성도가 나온다. 주일학교 교사가 결석하면 이상하게 그날은 그 반 어린이들도 많이 빠진다.

 

우리 지역에서도 농어촌의 어려운 환경 중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를 잘 양육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본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회에 보낸다. 자녀를 교회에 보내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야 한다. 그것은 단지 “보내는 부모”에서 “보여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믿음의 명가(名家)가 되는 비결은 다함께 하나님 앞에 다함께 더불어 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냥 보여주면 된다. 자녀손들에게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성경을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예배할 때 함께 옆에 같이 있어주면 된다.

 

본 설교자가 어린 시절에 어머님은 우리 형제들을 늘 교회에 데려가셨다. 심지어 구역예배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시키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이미 일반 찬송가를 많이 익혔다. 그 기억이 평생을 지배한다. 질병 중에도 기도하고 천국을 확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앞에 둔 성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어쩌다 고깃국을 끓이시면 아버님과 목사님과 담임선생님 것을 먼저 챙기셨고, 우리 형제들에게 노란 양은냄비에 담아서 목사님과 선생님에게 갖다 드리도록 했다. 그때 몇 점 안되는 국이 든 냄비를 받으시며 감격해 하던 사모님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섬김과 나눔의 기쁨을 몸으로 깨달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이여, 사람은 본대로 배우고 본대로 흉내 낸다. 내가 한대로 자녀들도 내게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 어떠함을 보여주자. 그래서 우리 모두의 가정은 믿음의 명가를 이루고, 우리교회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자.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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