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초월하는 믿음(빌4:18-19)
2018.7.22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이 세상에는 행복을 갈망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행복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 행복한 요소들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등에 옷이 걸쳐져 있으며, 잠 잘 곳이 있다면 당신은 지구상의 75%의 사람들보다 부유합니다. 만약 당신의 은행계좌나 지갑에 얼마의 돈이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8%의 부유층에 속합니다. 만약 당신이 자가용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7%의 부유층에 속하고, 컴퓨터를 갖고 있다면 이 세상의 12%의 부유층에 속합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세계 30억 명의 사람들보다 축복받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힘들게라도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20억 명의 사람들보다 축복 받았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이나 가진 것들 때문에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 내 통장에 재정이 많아지고, 건강이 좋아지고, 자녀들이 좋은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고 그리고 내가 꿈꾸던 환경으로 되어 가면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반대의 상황이 되면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만약 참된 행복과 기쁨의 기준이 환경이나 그가 소유한(또는 소유하고 싶어하는) 그 어떤 것들의 유무에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다 저주받은 것인가? 질병 중에도 미소 짓는 사람들은 정신병자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풍요할 때보다 오히려 가난했지만 서로 사랑하고 의지했던 때가 더 행복했었던 기억들도 많다. 상황이나 가난과 같은 것들은 우리의 삶을 좀 불편하게는 할 수 있어도 행복과 불행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성경적인 참된 행복과 기쁨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환경을 초월(超越)할 때부터 시작 된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핵심 단어는 “초월”과 “나눔”이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빌립보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것들을 여러 번 공급해 주었던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쓴 감사와 격려의 편지다. 그래서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라는 말도 많이 나오고, 그들을 칭찬하고 축복하는 내용도 많이 나온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런 칭찬과 격려의 내용이다. 다함께 읽자.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8-19)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에도 그는 로마 감옥 안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이처럼 행복과 기쁨을 강조하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축복한 이유는 자신이 깨달았던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빌립보교회 성도들도 가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12절).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깨달았던 “일체의 비결”이란 무엇일까? 그가 깨달았던 “일체의 비결”은 ‘사람의 기쁨이나 행복은 그가 처한 환경이나 소유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주님과 함께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의 모든 기쁨과 능력이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다. 바로 이것이 모든 환경을 초월한 믿음이다. 똑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상황 밑에 있는 사람이 있고, 상황 위에 있는 사람이 있다.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 염려, 근심, 두려움이 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지배하면 주님이 주는 평강이 내 마음에 가득 찬다.
이처럼 주님이 나를 지배하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기도며, 나눔이라는 것은 주님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계시고, 내가 지금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신앙고백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 상황 때문에 염려하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믿음이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시돈에 속한 사르밧 땅의 한 과부와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온다.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1-16)
엘리야 선지자와 아합왕 시대에 삼년 반 동안이나 심각한 가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셨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그 여인이 마지막으로 갖고 있었던, 그래서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했던 바로 그 “가루 한 움큼”으로 작은 떡을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 그 여인은 결단을 내리고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했다. 그랬더니 그 집의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 무엇을 원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이 여인에게 원했던 것이 지금 이 시간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그 여인에게 원했던 것은 한 움큼의 가루나 단지 작은 떡 조각하나가 아니다. 만약 단지 작은 떡 한 조각이 필요했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엘리야에게 다른 방법으로 공급해 주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과부에게 기대했던 것은 가뭄의 상황을 초월하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녀는 엘리야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가루를 기꺼이 나누었다. 그녀의 이런 행동이 쉬운 것같아 보이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엄청난 결단이다.
이 상황을 잘 보라. 그녀가 나눈 작은 떡 한 개는 단순한 떡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생명을 나눈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상황을 초월한 믿음의 고백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받으시고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워주셨다. 바로 이 믿음이 사도 바울이 깨달았던 것이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칭찬했던 이유이고, 지금 이 시간 우리들에게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지난 주중에 신학대학원 동기를 모임이 세종시에서 있었다. 오랜만에 모여서 옛날 신학생 때 이야기도 하고, 현재 목회사역의 이야기들도 하면서 은혜를 나눴다. 그중에 한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다. 하루는 신학교 기숙사에 묵상하는 중에 자신의 등록금을 다른 친구에게 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전화 했더니, 마침 그 친구는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할 고려하던 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지체 없이 자신의 등록금을 그 친구에게 흘러가게 했다. 이렇게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작 자신이 등록할 돈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외부에서 어떤 분이 정확히 전날 친구를 도와줬던 액수의 두 배되는 장학금을 보내왔다.
언뜻 보면 자신의 등록금을 다른 사람에게 나눈다는 것이 바보짓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거룩한 바보’라고 부르고 싶다. 만일 우리들이 이런 비결을 깨닫고, 오늘 이 시간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정말 여러분의 마음속에 믿음의 실재로 믿어진다면, 더 이상 무엇이 두렵겠는가? 참된 믿음이란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무책임한 분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목마를 때 ‘옜다~ 여기있다’라고 하시면서 적선하듯이 작은 생수 한 병 던져주고 끝내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믿음으로 주님 앞에서 나아오는 모든 성도들에게 퍼내고 나누어도 계속해서 솟아나는 생명의 샘물을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뿐 아니라 이 지역의 모든 분들이 이와같이 환경을 초월하는 거룩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주민 여러분이여,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앞길, 진학과 진로, 노후, 사역 그리고 뭐 먹고 살지에 대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겨라. 그대신 사도 바울이 깨달았던 상황을 초월하는 믿음, 사르밧 과부가 가졌던 그 믿음 그리고 말씀 앞에 순종했던 성도들의 그 모습을 갖기 바란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손에 어떤 작은 것이 있다면, 그러면 그것을 쪼개서 믿음의 나눔을 시작해보라. 그 나눔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넘치는 축복의 밸브를 여는 출발이 될 것이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