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장년설교]왜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을까?(마21:1-9)- 종려주일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19.04.11|조회수331 목록 댓글 0

왜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을까?(마21:1-9)

 

2019.4.14 종려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부활절 일 주일 전으로서 종려주일인 동시에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자신들의 겉옷으로 길을 덮으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라고 하면서 찬송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호산나(Hosanna)라는 말은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환호와 만세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공개적으로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동안은 기적을 행하시고도 여러 번 자기를 알리지 말라고 하셨고, 심지어 예루살렘에 비밀히 올라가셨던 적도 있었다(요7:10). 그랬던 주님이 공생애를 마무리하시면서 공개적으로 입성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만백성의 구주(救主)시며, 하나님 나라의 왕(王)이심을 보여주고 선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을 자세히 보면 왕이신 예수님은 좀 특이한 방식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신 것이다(마21:6-7). 일반적으로 어느 나라든지 개선장군이나 왕이 등장할 때에는 말(보통 백마) 위에 높이 올라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오지 나귀를 타는 법이 없다. 그것도 나귀 새끼를 말이다. 이 장면은 일반적인 왕들의 입장모습 과는 전혀 어울리지를 않는다. 심지어 당황함을 넘어 우스워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주님은 볼품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을까? 예수님께서 나약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이유가 이 시간 오늘 종려주일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다. 우리는 오늘 본문 안에서 최소한 두 가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오늘 본문 4-5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21:4-5)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

 

이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돈키호테처럼 행동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무려 오백여년 전인 B. C 520-518년경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던 말씀을 성취하고자 하신 것이다(마21:4-5, 슥9:9).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반드시 친히 준비하시고, 친히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준비하시고 이루어 가셨는지,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찾아보자. 마태복음 21장 1-3절 말씀을 다함께 읽자.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마 21:1-3)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맞은편 마을로 가면 나귀 새끼가 있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탈 나귀를 이미 오래 전부터 태어나게 하시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도록 친히 준비해두셨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친히 자기를 위해 직접 준비하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

 

그래서 일찍이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굳게 믿었던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모리아산으로 올라 갈 때,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창22:7-8).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7-8)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들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고, 전도대상자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과 열방에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을 위해 친히 준비하고 이루어 가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전도, 섬김, 봉사, 기도, 진로문제 등)을 하면서 지금 당장 눈앞에 뭔가가 보이지 않고, 응답이 더디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너무 초조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고, 응답은 오고 있는 중이다. 다만 지금 우리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이 진짜 하나님이 명하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한 내 생각한지는 스스로 깊이 고민해 봐야한다. 이 시간 여러분을 향한 영적인 깨달음이 번쩍하고 깨달아지기 바란다.

 

계속해서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를 5절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21:5)

 

이 말씀을 보라.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또 하나의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했는가? “그는 겸손하여”라고 했다. 주님의 겸손하신 성품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왕의 권세와 권위를 가지신 분이다. 그러한 주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셨다. 왜?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 15-18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5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5-18)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목숨을 버려야 한다. 나의 권리를 다 누리고, 나의 권리는 눈곱만큼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얻는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주님은 목숨을 버릴 권세와 얻을 권세가 다 있으셨지만, 양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다. 나에게 낮아짐을 거부할 수 있는 힘과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위해 스스로 낮아지는 것이 성경적인 겸손의 개념이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이고, 진정한 낮아짐이고, 진정한 강자의 모습이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주님의 겸손과 낮아짐을 배우라. 주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강자가 되기 원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 강함이나 장점을 복음을 위한 섬김의 통로로 사용하기를 또한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눈높이로 낮아져서 겸손하게 섬기자. 우리의 강함와 장점들을 복음을 위한 섬김의 도구로 사용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동네 주민 여러분이여, 우리들도 나귀 새끼를 타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처럼 더 낮아지자. 고난주간 동안 최소한 한 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분은 하루에 한 끼 정도를 금식하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님의 이름으로 남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 보자. 그래서 날마다 작은 것에서 부터 순종함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