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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설교]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잠31:30-31)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19.06.07|조회수448 목록 댓글 0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잠31:30-31)

 

2019.6.9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예전에 연세가 지긋하신 어느 할머니 권사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이 좋아서 이렇게 말했다.

 

“권사님의 기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랬더니 그 권사님은 연신 손을 내저으면서 “아이구구~ 늘갱이 주름살 바가지가 뭐가 이뻐? 안이뻐 안이뻐!”라고 하셨다. 분명히 아름답다고 말했는데, 안예쁘다고 대답하셨다. 왜 그럴까? 나이든 모습은 안예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예뻐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한다. 화장도 하고, 보톡스도 맞아보고, 성형수술도 하고, 운동도 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성형수술을 해서 오히려 얼굴이 이상해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잘생긴 것이 항상 멋진 것도 아니다. 예쁜데 아름답지는 않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예쁜 것이 아름답지 않을 때는 그 예쁜 것이 오히려 추한 것이 되고 만다. 예전에 전도사 시절에 구치소 특수사역을 할 때, 재소자들 중에 남녀를 불문하고 못생긴 제비나 사기꾼을 거의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세상의 미(美)이라는 것은 그 기준이 시대나 지역에 따라 변한다. 고대에는 강한 노동력이 미의 기준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들판에서 양(羊)을 어깨에 메고 오는 사람(大)을 빗대어서 미(美)라는 글자가 생겼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쌍꺼풀 수술을 하면 예쁘게 보인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중동 이란 등에서는 쌍커플이 없는 것을 예쁜 것으로 생각해서, 돈 들여서 쌍커플을 푼다는 뉴스를 읽어 본 적이 있다. 심지어 태국 고산지대의 카렌족은 목이 긴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어떤 종족은 소뚜레처럼(?) 큼지막한 코걸이를 하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나 서양에서나 예쁘다(pretty)는 말은 대체로 나이가 어리거나 외형적인 모습을 칭찬할 때 주로 쓰인다. 그에 비해 아름답다(beautiful)는 말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내적인 성숙함이나 아름다운 행동까지를 다 포함한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나 헌신적인 부모님들의 모습을 예쁘다고 표현하지 않고,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사실 사람의 외모는 나이가 들어가면(대체로 60대 중반 이후) 미스 코리아나 안미스코리아(?)나 다 비슷해진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특히 성도들은 더욱더 겉모습이 예쁜 것 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해 한다. 내적으로 아름다워지면, 그 아름다움은 겉 사람까지 덩달아 예뻐지게 만든다. 반대로 마음의 염려와 근심은 겉 사람의 아름다움까지 빼앗아 간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님의 은혜로 채워야 한다. 히브리서 13장 9절과 베드로전서 3장 3-4절 말씀을 함께 읽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3:9)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

 

그러면 여기서 말씀한 “은혜”와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의 말씀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1장 25절과 잠언 3장 8절 말씀을 보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

 

“이것이(말씀)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3:8)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양약(良藥)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안에서 상처 난 것들을 치유하고, 연약한 몸과 심령을 소생시킨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인생의 해답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든지 그 심령이 살아난다. 일단 눈빛부터 부드러워지고 얼굴이 편안해 진다. 이런 상태를 흔히 “은혜 받았다!”라고 표현한다. 은혜 받으면 얼굴도 예뻐진다. 은혜 받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해 진다. 행복은 전염된다. 이것이 속사람이 말씀으로 아름다워질 때 생기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성도들은 예쁜 얼굴보다는 은혜로운 얼굴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말씀과 은혜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전도의 문도 쉽게 열린다. 이것을 모르고 겉모습 치장에만 힘쓰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화장으로 떡칠을 하고, 주름살 하나 없는 여자를 보면서 “아가씨는 나이가 몇 이유?”라고 물었더니, “잉~ 내 나이 80이야!”라고 대답하면, 예쁜 것이 아니라 무섭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잠언 31장 31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다 같이 읽어보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31:30)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147:1)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5)

 

이 말씀을 보라. (세상의) 고운 것이나 아름다운 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고 했다. 왜 거짓되고 헛된 것인가 하면, 그런 것들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원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삶은 거짓되고 헛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일은 아름답고, 복음을 전하는 그 발걸음이 아름답다. 이런 사람이 바로 현숙(賢淑)한 여인이고, 멋진 신사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할 아름다움의 방향이고,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예전에 안흥항에 전도하러 갔다가 90대 중반의 오기생집사님께서 안흥하우스라는 식당 앞 테이블에 앉아서 조용히 성경을 읽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다 못해 반짝이기까지 하는 바닷물과 따스한 햇볕 그리고 그 곁에서 묵묵히 성경을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내가 왜 카메라를 안 들고 나왔을까 후회가 될 정도였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 “천사의 날개 워십팀”이 우리교회 식당에서 연습을 한다. 그런데 연습하는 그 손짓과 표정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매주일 낮과 밤 그리고 수요예배 때 서는 찬양단과 성가대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 매일 새벽 말씀을 사모하는 눈빛들, 빛과 소금 봉사단에서 봉사할 때의 행복한 미소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라. 이것이 바로 마음을 말씀과 은혜로 채우고,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오는 참된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러한 행복과 기쁨을 뺏기지 말고, 놓치지 말고 더욱 추구하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해 진다. 우리교회는 예수님 때문에 더욱 행복한 교회가 되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우리 지역이 되게 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예뻐지는 것 보다는 아름다워지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이 되자. 그렇게 하면 겉 사람도 함께 예뻐진다. 이것을 위해 늘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마음을 채우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음을 전하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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