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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설교]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시139:1-14)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21.02.19|조회수2,856 목록 댓글 0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시139:1-14)

 

2021.2.21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우문현답(愚問賢答)같은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 앞에 어떤 고성능 전자제품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물건에 대해서 짐작으로 억지 부리는 사람과 그것을 만든 사람 중에 누가 그 제품에 대해서 더 잘 알겠는가? 당연히 제품을 만든 사람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들 앞에 한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옆집 아줌마와 그 아이의 엄마 중에 누가 그 아이에 대해서 더 잘 알겠는가? 당연히 엄마다. 왜 엄마가 잘 알까? 엄마는 처음부터 그 아이를 낳았고, 같이 생활하며 길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기자녀에 대해서(성격, 장단점, 입맛, 몸상태, 재능 등)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아는 것과 누가 나를 더 알겠는가? 당연히 하나님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서 아는 체하면서 떠벌이면, 우리는 “지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라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은 내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숨은 잠재력, 약점, 생각 등). 왜 이렇게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잘 아실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과 몸을 지으셨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한 옆집 아줌마처럼 아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하나님처럼 체험적으로 경험해서 아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안다”라는 말의 의미다. 우리말에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성경에서는 말하는 “안다”라는 개념에 가장 가깝다. 그렇기에 늘 체험적으로 주님을 알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

 

오늘 본문인 시편 139편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직접 체험하고 겪어서 알게 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노래한 내용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믿어 보니까 하나님은 이런 분이더라. 그러니 이러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자”라는 말이다. 그러면 그가 체험해서 깨달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시편139편 1-4절을 보자.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

 

이 말씀을 보면, ‘아신다’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윗이 누구인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다윗은 어린 시절 집안에서부터 평생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모든 과정들 속에서 뼈저리게 체험하면서 알게 된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셨다. 심지어 그가 심각한 실수들(블레셋으로 도망, 밧세바 사건 등)을 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손을 내미셨던 것을 경험했다. 시편139편 9-10절이 그런 고백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5-10)

 

그렇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심지어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앉고 일어서는 것과 나의 생각과 삶의 무거운 짐과 상처에 힘들어하는 속사람의 신음소리까지 다 아신다. 그래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시면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맞춤형 은혜’를 주신다.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았기에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여기서 쓰인 “내장”은 히브리어로 “킬르야”로 신장을 뜻하지만, 문맥상 몸의 모든 장기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내장을 지으신 하나님이기에 우리의 내장 깊이 숨어있는 문제들도 가장 잘 아신다. 그렇기에 의술로 안 되는 것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해결하실 수 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을 지으신 것이 “심히 기묘”(신묘막측-개역)하다고 했다. 이 말은 ‘놀랍다. 경이롭다’는 뜻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몸 안에서 넣어 놓으신 신체 메커니즘은 경이롭기만 하다. 작은 실례로, 사람의 몸에 복원력을 넣어 놓으셔서, 상처가 났을 때도 스스로 회복되게 하셨다. 작은 씨앗의 DNA 속에 그 생명체의 평생을 압축해서 넣어 놓으셨다. 사람의 창자 속에 천 가지가 넘는 균들을 넣어 놓으시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신다.

 

이렇게 우리들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붙드시고, 품어 주신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와 보장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시139:5-개정성경)

“주는 앞뒤로 나를 둘러싸고 계십니다. 주는 주의 손으로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시139:5-쉬운성경)

 

여기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은 심방이나 임직식을 할 때 받는 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와 보장을 뜻한다. 어떤 사고나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부모가 아기를 껴안고 머리를 감싸고 보호하는 모습이 이 말씀의 의미와 유사하다(사진 참조). 만약 여러분 중에 특별한 사고를 경험한 분은 그 사고 순간에 하나님이 나의 앞뒤를 둘러싸고 머리를 잡아주신 것을 깨닫기 바란다(시140:7).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들도 다윗처럼 늘 여주동행(與主同行, 주와 더불어 동행함)하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한다. 아마 나름대로 신앙의 연륜이 좀 있으신 분들이라면, 다윗처럼 자신이 체험했던 은혜를 나누고 싶은 말씀들이 있으실 것이다. 그렇게 나누고 싶은 은혜들을 글로 적으면 시편처럼 신앙시(信仰詩)가 되고, 성도들에게 말하면 간증이 되고, 이웃에게 말을 하면 전도가 된다. 특별히 본문 속에서 다윗은 찬양시를 통해서 감사와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성경에서 감사와 예배는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우리들이 “워십팀” 등의 명칭에서 사용하는 워십(Worship)이라는 말이 바로 예배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가치있다’는 뜻을 가진 워스(Worth)와 상태나 관계를 뜻하는 십(Ship)의 합성어다. 우리들이 늘 감사와 예배로 최상의 가치를 주님께 올려드리면, 하나님은 더 놀랍고 경이로운 은혜들을 한량없이 베풀어 주신다.

 

예전에 KBS “생로병사의 비밀”라는 프로에서 감사에 대해 분석을 했던 적이 있다(2017.1.25). 이 방송내용의 의하면, 감사일기나 감사하는 말들을 계속하게 되면, 뇌의 측두엽에서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과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로 인해 우리 몸은 심장 박동과 혈압이 안정되고 근육이 이완되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감사는 항암효과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몸에는 보통 하루에 암세포가 약 300개 정도가 생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몸속의 면역력이 암을 제압하기 때문이다. 이 면역력의 균형이 깨지면 암이 발현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암세포가 1/10이 줄어들고, 면역력은 10배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마음(불평, 의심, 미움 등)을 품으면 암세포는 3000개 정도로 증거하고 면역력은 1/10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예배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교회 마당에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우리도 늘 다윗 같은 마음으로 이러한 믿음의 말들을 더 많이 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필요와 생각과 문제들에 대해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다.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잊거나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다윗처럼 늘 감사와 예배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올려드리자. 그래서 우리들도 나를 치유하시고,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더 깊이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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