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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설교]진짜 희망(요5:1-9)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21.03.05|조회수816 목록 댓글 0

진짜 희망(요5:1-9)

 

2021.3.7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제 귀에까지 정보가 들려왔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 말은 예전에 취직자리를 알아보던 어떤 청년이 했던 탄식이다. 나는 어디서 어떤 자리가 났는지 조차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벌써 알고 취업했고, 자리를 잡았다는 말들이 들려올 때, 느껴지는 좌절감과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청년의 문제뿐이 아니라, 지금 모든 세대의 총체적인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운데, 코로나로 인해서 더 어렵다. 청년들은 취업은 둘째 치고 알바자리도 구하기 어렵고, 중년세대는 쉬고 싶어도 쉬면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노년은 노인 일자리나 공공근로 등을 해보지만 그 마저도 나이나 건강 탓으로 잘리기가 다반사다.

 

오늘 설교본문에 보면 이와 유사한 탄식을 했던 한 병자가 등장한다. 요한복음 5장 7절 말씀을 보자.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5:7)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이 말을 했던 사람은 무려 38년 동안이나 아파서 거동을 잘 못하던 병자였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Bethesda)라는 연못가에서 38년이나 된 병자를 고쳐주신 장면이다. 베데스다 연못은 인공으로 만든 일종의 인공 물 저장고(庫)로 가로 세로가 50m 60m에 이른다. 지금은 베데스다의 흔적만 남아 있다(사진).

 

성지순례 중에 예루살렘 베데스다 연못을 방문했을 때 모습

 

예수님 당시에 이 연못에는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내용은 이 연못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연못 주변에는 늘 환자들로 넘쳐났다.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 몇 명쯤이나 모여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요한복음 5장 2-3절 말씀에 의하면,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아마 연못에 먼저 뛰어 들어가기 위한 생존 경쟁률이 최소한 수백 대 일에 달했을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 모였던 병자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었겠는가? 돈이 엄청 많은 사람들?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의사에게 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의술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 환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모여든 곳이 베데스다 연못이었다.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물이 움직일 징조가 보이면 인정사정 볼 것이 달려야 한다. 가족이 있는 환자는 가족의 부축을 받았을 것이고, 연고가 없는 환자들은 뒤뚱거리면서라도 정신없이 달렸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속에 뛰어 내리려 하면, 기를 쓰고 달려들어서 밀쳐내고 먼저 뛰어들려는 사람들로 요란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 베데스다 연못은 절망과 실낱같은 희망이 교차하는 양날의 칼과 같은 곳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희망 보다는 절망에 더 가까운 곳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뚫고 제일 먼저 물속에 뛰어든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베데스다 연못, 그곳은 이 시대 우리들이 살아가는 고단한 삶의 현장처럼 무지갯빛 희망으로 포장된 사실상 절망의 현장이었다. 그곳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조차 없는 현장이었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면 내가 죽는 곳이며, 자비나 양보는 배부른 사람들의 사치품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장 무기력한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 요한복음 5장 4-5절을 보라.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요 5:4-5)

 

38년이라는 숫자를 보면, 어쩌면 그는 거기 모여 있는 모든 환자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병자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38년이라는 기간은 그의 거의 모든 평생을 병으로 고통당했다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의 힘이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려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4절 말씀을 보면,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라고 했는데, 그 “가끔”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는 명확치 않다. 천사가 일 년에 한 번만 물을 움직이게 했어도 이 병자는 최소한 38년 동안 38전 38패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병자에게 몸의 통증보다 더 큰 고통은 마음의 병이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7절) .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내려가나이다”(7절)

 

참으로 가슴 아픈 말이다. 그에게 가족과 친척, 친구들은 진짜 전혀 없었을까? 있기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3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관계는 단절되었을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몸의 통증도 고통이지만, 이러한 마음의 통증이 더 큰 고통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그 시대-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일 뿐 아니라, 사실은 이 시대-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절망의 현장에 주님이 찾아 가셨다. 그리고 그에게 품으시고, 고쳐 주셨다.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요5:6-9)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이시다. 주님은 긍휼이 한이 없으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넉넉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지금도 주님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양날의 칼과 같은 우리들의 삶의 베데스다에 찾아오신다. 그래서 수없이 넘어지고, 실수하고, 실패한 사람에게도 치유의 손을 내미신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희망이다. 그 베데스다의 현장이 친구들과 무한 경쟁을 벌이는 교실이거나 취업의 현장, 바다와 갯벌, 고통스러운 생업의 현장일 수 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가 주님을 만났을 때, 그 곳은 희망의 장소로 변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왜 나에게는 주님이 오시지 않는가?”,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라고 탄식할지도 모른다. 그 답답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라. 주님은 이미 오셨다. 주님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곁에 계셨고, 지금도 사랑의 손을 내밀고 계시다. 다만 죄가 내 영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고, 내 안에 포기되지 않은 자아로 인해 주님의 손을 붙잡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런 그림이 있다(사진). 낭떠러지 중간에 있는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 머리 위에서는 구조하려는 손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머지 한 손으로 잡고 있는 보따리를 잡고 놓지 않는다. 그 보따리에는 “나, 자아(Ego)"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이것은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십자가 앞에서 항상 나를 내려놓고(죄, 자아, 욕심, 자존심, 체면, 혈기, 열등감, 선입견, 내 생각 등), 주님의 손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실 때, 다른 이유 붙이지 않았다. 의심하거나, 비웃거나,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았다. 체면타령도 안했다. 다만 그는 “곧(즉시, 동시에, At once)“ 순종했다. 병자가 했던 일은 그뿐이다. 이것이 기적이 일어났던 전부다(8-9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요5:8-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주님이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에게 가신 것은 그를 고쳐 주시려고 가신 것이다. 38년동안 38전 38패했던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만났을 때, 새로운 인생의 역전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신 것은 우리를 일으켜 새사람되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예수님은 진짜 희망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있는 절망의 베데스다에서, 주저 없이, 지체 없이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의 손을 굳게 붙들자. 단지 믿음과 순종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주님의 권위와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1+1은 얼마든지 무한대가 될 수 있다. 이 시간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손을 붙드는 마음으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찬양을 하면서 나를 주님께 올려드리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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