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마21:1-5)
2021.3.28 종려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던 날, 수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종려나무(Palm tree) 가지를 흔들고, 겉옷으로 길을 덮으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하면서 환영한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호산나(Hosanna)는 ‘이제 구원 하소서’라는 뜻으로 일종의 환호와 만세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든 것 보다 초라하고 볼 품 없어 보이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이다. 백마나 멋진 수레를 타고 입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 속에서 오늘 종려주일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믿음으로 받자. 먼저 오늘 본문 4-5절을 다시 읽으면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4 이는(나귀 새끼를 탄 것)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 21:1-5)
우리는 4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주신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5절 말씀을 보면, 나귀 새끼를 타신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겸손하시기 때문이셨다. 이 두 구절을 연결해서 묵상해 보면, 우리의 마음에 번쩍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귀 새끼를 타신 주님의 겸손은 단순한 성격이나 성품의 겸손이 아니라, 말씀의 겸손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단지 성품이 온화해서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타셨다. 이 시간 이 점을 밝히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진정한 겸손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나를 복종시키는 것이다. 겟세마네의 기도를 비롯해서(막14:36),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항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셨다. 이것이 겸손하신 주님의 삶이셨고, 오늘날 제자의 길을 가기 원하는 우리들 모두가 맞춰야할 인생의 방향이고, 사역의 초점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매일 성경말씀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초라하게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도록 계획하셨을까? 또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의 본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을까? 아하!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이 말씀으로 겸손해지지 않고는(=낮아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였구나 .... 그렇다! 내가 살아있으면(생각, 혈기, 욕심, 자아 등),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그 후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쫒으라고 말씀하셨다(마16:24). 야고보는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1:20)고 말했다. 반대로 자신을 못난이라고 부당하게 질책하는 것도 역시 말씀 앞에서의 겸손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신 주님의 모습이 내 모습되고, 말씀 앞에 순종하신 예수님의 겸손이 내 겸손이 되기를 기도하고 힘써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이나 마귀 사단의 공격이 쉴 새없이 밀려온다. 세상은 우리들이 경건하게만 살도록 그냥 놔두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때로는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인생의 시계 바늘이 거꾸로 가는듯한 때도 있다. 또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하실 때도 있다. 기다림의 고통은 너무 힘들다.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종은 더 아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내 삶에 버티기 힘든 고난의 파도와 사람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들이 나를 때릴 때(삼하7:14),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그 믿음의 모습을 통해 찬송의 종소리는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반드시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 큰 영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과정 속에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한 삶을 살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매우 중요한 약속을 한 가지를 숨겨 놓으셨다. 그것이 무엇인지 1-3절 말씀을 함께 읽자.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마21;1-3)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이 타실 나귀를 이미 한참 전부터 친히 준비해 두셨다. 또 예수님도 나귀 새끼가 있는 지점까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의 대업을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이미 다 준비해 두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고 확신한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라!”, “~하라!”, “~되라!” 또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통하여 감동과 확신을 주신다면, 그 약속의 이면에는 그것들을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과 축복의 열매까지도 이미 다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이 말씀은 기도하면 주시려고 이미 응답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말씀 앞에 순종하면 된다.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책임한 하나님이 결코 아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모리아산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이삭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질문할 때,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라고 대답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번제할 양을 준비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하나님은 산 너머 반대편에서는 번제할 양을 몰아오고 계셨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하나님이 준비하심)이다.
오래 전에 중고등부를 지도할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여름수련회 저녁집회 때, 창세기 22장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기도시간에 성령의 감동에 따라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응답은 반대편에서 오고 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선언했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여집사님 교사가 다른 교사에게 자신의 어려운 문제를 털어 놓으면서 오늘 밤에 응답받기 원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도시간에 응답 주시기를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교사가 급하게 그 집사님을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 지금 목사님께서 반복해서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응답이 지금 반대편에서 오고 있습니다’라고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 말씀이 지금 하나님께서 집사님에게 주시는 응답이 아닙니까?”
그때 그 말을 들은 교사는 기도하다 말고, 정신이 번쩍났다. 마치 “열려라 에바다” 찬송 가사처럼, 그 순간에 막혔던 마음의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응답의 확신이 확 들었다. 물론 그 후에 믿음대로 그 분의 가정은 풍성한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체험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준비하심은 아브라함이나 예수님 또는 믿음의 선진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이 자리에게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하다고 확신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말씀 앞에서의 겸손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셨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친히 예비하셨다. 이것은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향해 이미 출발했다, 이미 오고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새 일(사43:19)”은 이미 진행 중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딸아, 힘내라.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준비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란다. 너는 다만 겸손하게 말씀 앞에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순종만 하거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굳게 믿고, 말씀 앞에서의 겸손과 강력한 기도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내 것으로 누리자. 이 시간 이러한 우리의 믿음과 결심을 주님께 올려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