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들에게 주신 인생의 숙제(딤후3:14-17)
2021.5.2 어린이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만약 자녀들로부터 자신의 결함이나 능력이 부족한 것은 “부모 탓”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그 말을 들은(또는 이미 듣기 전부터) 부모는 대부분이 억장이 무너지고, 깊은 자책감과 좌절감에 빠질 것이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막장 부모들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비록 자식에게 남들처럼 충분한 뭔가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정말 자녀들의 모든 문제가 다 부모 때문일까? 이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는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왜냐하면 타고난 부분에서 이미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또 부모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 자체가 키우고 교육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명한 부모역할이 요구된다. 어떤 문제를 가진 아이라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 탓이 아니라(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부모 역할이다. 그렇기에 아이를 잘 키우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동아일보,2021.3.10 A28면).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고, 쉽게 대해도 괜찮은 사람도 하나도 없다. 어린이의 생명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녀양육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인생의 숙제이다. 그 숙제가 바로 부모역할이다. 어떤 경우에는 조부모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부모역할을 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주신 인생숙제를 잘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 이 부분을 함께 나누고 기도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부모역할을 잘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떤 분들은 머릿속에 “우리 집은 가난해서...”, “난 아는 것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좋은 부모역할은 이런 것들로만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것들이 없어도 부모역할을 잘 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비록 부모가 가난하고 못 배웠어도 다른 면에서 충분히 좋은 부모역할을 잘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정직의 본을 보이고 사랑으로 품어주는 모습, 행복한 삶을 위해서 점수나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등이 다 여기에 해당한다.
성경적으로 부모는 하나님과 자녀 사이의 생명의 끈을 연결해 주는 매듭과 같은 존재다. 또한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들을 양육시킬 책임(사명, 인생의 숙제)을 부여받은 청지기들이다. 그렇기에 자식에게 성경말씀을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왜 자녀에게(우리들 자신을 포함해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성경말씀을 듣고 배우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듣고 배우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과 자녀를 또는 우리들 자신을 연결하는 것이다. 성경이 자녀들 교육에 주는 유익들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했던 내용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딤후3:14-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4-17)
이 말씀처럼 성경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우리와 자녀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것이 인생을 올바로 사는 것인지에 대한 지혜가 생긴다. 그렇기에 아이의 손에 성경을 들려주고, 그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마치 거친 바다를 항해하려는 여행자의 손에 나침판과 지도와 먹을 수 있는 식량과 물을 들려주는 것과도 같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자녀 사이를 신앙으로 잘 연결했던 올바른 부모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또 이와 반대였던 사람들의 경우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중에도 가장 올바르지 못했던 부모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실례들 중의 하나가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헤로디아(Herodias)라는 여인과 그녀의 딸이다. 헤로디아는 혈통적으로는 헤롯대왕의 손녀다. 그녀는 처음에 삼촌인 빌립과 근친결혼을 했고, 딸도 하나 낳았다. 그런데 그녀는 마음 깊이에서 뱀처럼 꿈틀대는 정치적인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편과 이혼하고, 또 다른 이복 삼촌인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와 재혼했다(헤롯왕의 입장에서 보면, 헤로디아는 조카이자, 제수씨). 예수님이 고난을 받을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빌라도 총독과 서로 책임을 떠넘기던 분봉왕 헤롯왕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야말로 막장 집안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추악한 행태를 세례 요한이 지적했다. 그러자 헤롯왕은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둬 버렸다. 그러던 중에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는 딸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아서 달라고 시켰다. 그래서 결국 헤롯은 세례 요한을 처형시키고,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서 어린 딸에게 주었다. 그 어린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피로 흥건한 소반을 들고 엄마에게 달려간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정치적인 야욕을 위해 어린 딸을 저주의 길로 내몰았다. 헤롯왕과 헤로디아는 사악한 부모역할을 했던 전형적인 사람들이다. 나중에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대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후에 헤롯왕과 헤로디아는 황제에게 미움을 받아서 폐위 되었고, 프랑스 남부 골(Gaul) 지방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죽었다. 로마황제는 이들이 다스렸던 땅을 자신의 절친인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에게 주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사도행전 12장 23절에 나오는 벌레에 먹혀 죽은 헤롯왕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신앙적으로 부모의 역할을 잘했던 경우도 성경에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 이 시간에는 오병이어 소년과 그 어머니를 언급하고 싶다. 오병이어(五餠二魚)란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를 말한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은 한 소년이 바친 오병이어로 장정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아 배불리 먹이고, 거둔 것이 열 두 바구니나 되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 소년의 부모는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보내서 말씀을 듣게 했다. 오병이어 소년의 부모는 최고로 현명한 부모역할을 했다. 자녀를 예수님 앞으로 보내서 자녀와 예수님 사이를 연결 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후에 사도 요한의 제자이자 초대교회의 유명한 속사도 교부인 폴리캅(Polycarp)이다(속사도 교부 : 사도들에게 배운 제자들).
자신에게 주어진 부모로서의 인생숙제는커녕 탐욕을 위해 딸을 저주의 길로 보냈던 헤로디아와 자신의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보냈던 오병이어 소년의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대조적이다. 이들의 대조적인 부모 역할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들이 어떤 부모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해답은 명확하다. 우리들도 자녀들과 손주들을 주님을 만나는 자리에 보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교회학교에 자녀나 손주들을 보내는 것이다. 이것만큼 쉽고 간단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교육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교회학교는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녀손이나 동네 아이들을 교회학교에 보내고, 교회로 함께 데리고 나오는 것이 결국 부모역할을 제일 잘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정형편이나 지식의 유무와도 상관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자신은 아직 교회에 못나오고 있지만, 아이들은 보내는 분들도 계시다. 이런 분들은 일단은 그 아이를 위해 가장 탁월한 부모역할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여기에 부모님 자신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면서 신앙의 본을 보여 준다면 아이에게나 자신에게나 그야말로 최상의 상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자신도 믿고 자녀손들도 다 잘 믿고 있다면, 이는 매우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생의 숙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할 중보기도라는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 자녀들이 아직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거나, 안하고 있거나, 쉬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스스로 너무 심한 좌절감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인생의 숙제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다른 어떤 것보다 최우선적인 기도제목으로 삼고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면 그 또한 이미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있는 중인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눈물로 기도의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두는 날은 반드시 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아이들의 문제 모두가 부모 탓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좋은 부모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최고이자 가장 현명한 노력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교회학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자녀손을 오병이어 소년의 부모처럼 주님 앞으로 보내자. 또한 우리들이 먼저 신앙의 본을 보이자. 더 나아가 모든 성도들이 나서서 이 땅의 어린생명들을 주님 앞으로 데려오자. 이것이 참된 부모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