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청지기가 되자(벧전4:7-11)
마지막 때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④
2021.7.25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예전에 목사안수를 받을 당시에 선배 목사님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권면들 중에 한 가지가 ‘평생 좋은 목사가 되어가라’는 말씀이었다. 그 권면의 말씀들을 들으면서 평생 좋은 일꾼이 되어 가기를 힘쓰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가짐은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을 비롯해서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복음증거의 사명을 함께 받은 주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교회나 사회에서나 늘 이러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이처럼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청지기라는 단어로도 표현한다.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4장 9-11절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때 성도들이 삶을 말하면서, 청지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9-11)
여기서 쓰인 청지기(오이코노모이)란 관리인, 일꾼, 종을 뜻한다. 청지기라는 말은 이미 그 단어 자체가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청지기의 일을 맡긴 주인은 누구일까? 그분은 바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청지기라는 단어 앞에 “선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선한 청지가가 되라는 말씀은 우리들이 단지 주님의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 보다도 좋은 일꾼, 좋은 청지기가 되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 속에서 성도들의 언어생활과 봉사하는 것을 실례로 들면서, 어떤 사람이 선한 청지기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모든 언행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하듯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사람이 선한 청지기이다.
선한 청지기”라는 말은 역으로 생각하면 악한 청지기도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누가 악한 종인가? 주인 되신 주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 종이 악한 종이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막하고, 자기 짐작대로 밀어붙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서 주인 행세하는 종이 악한 청지기다. 지금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각종 환경오염이나 코로나(COVID-19)도 사실은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된 재앙들이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이 하나님께 하듯이 정중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또 어떠한 봉사나 섬김을 하든지 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청지기는 자기가 인정받고, 알아주기를 바라고, 높임 받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우리들은 훗날 주님께 칭찬받기만을 소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주인 되신 하나님만 드러나면 된다.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가질 삶의 자세다.
이러한 선한 청지기의 자세를 가장 선명하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실례들 중의 하나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이다.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그들의 재능에 따라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와 1달란트를 맡겼다(1달란트=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 하루 품삯). 그들 중에 5달란트와 2달란트 맡은 종은 액수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해서 이익을 남겼다. 그리고 주인은 이들에게 한 글자도 다름이 없이 똑같은 칭찬을 하셨다(마25:21,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그러나 1달란트 맡은 종은 적게 준 것에 불만은 품고 그것을 땅에 묻어 버렸다. 땅에 묻었다는 것은 단지 돈만 뭍은 것이 아니다. 주인의 마음과 기대와 주인과의 모든 신뢰 관계를 한꺼번에 묻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무익한 종이라고 크게 책망을 받고 쫓겨난다(마25:26-30).
그러면 이들이 충성된 종과 무익한 종으로 나눠지게 된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남겼던 이익의 액수에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마음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었느냐에 있었다. 1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이 아니라, 주인에게 받은 돈의 액수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이 사람은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생각의 늪’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들도 주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이렇게 되기 쉽다. 그러나 5달란트와 2달란트 맡은 종들은 그들의 모든 관심과 일하는 목적을 주인에게 초점을 맞췄다(주인의 마음, 뜻, 사랑, 성품 등). 그래서 적은 일에서부터 충성을 다했다.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가질 삶의 자세다.
이러한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맡았던 종들처럼 주님이 기뻐하는 선한 청지기로 살았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張起呂 1911-1995) 박사이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그를 부를 때 박사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는 박사 이전에 장로였고, 신실한 성도였고, 주님의 선한 청지기였다. 장기려 장로님은 1911년에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에 할머니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지금의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지원하면서, 하나님께 '이 학교를 들어가게 해준다면 의사를 한 번도 못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일본에 유학해서 외과 의학박사가 되었고, 귀국 후 평양에서 의사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 때 둘째 아들과 함께 월남했다. 그는 평양에 남기고 온 아내와 다른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일생동안 가슴 아파했다. 장기려 장로님이 소천하시기 몇 년 전에 남긴 “북에 남기고 온 아내에게 쓴 편지”에는 가족 사랑과 그의 신앙과 인품이 잘 나타나 있다(유투브에서 “장기려박사가 북녘 아내에게”를 검색). 2000년 8.15 이산가족 상봉 때, 아들인 장가용 박사(의사, 서울대 교수)가 어머니를 마침내 상봉하였다.
장기려 장로님은 변변히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피난민들을 살리기 위해 1950년 겨울, 천막 병원을 시작으로 부산 영도에 복음병원(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전신)을 세워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밀려오는 행려병자들의 무료진료로 병원 재정이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1968년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받을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 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을 설립해서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확대될 때까지 20년 동안 20만 명의 영세민에게 의료수혜를 받게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집 한 칸 마련하지 않고 병원 옥탑방에서 평생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장기려 장로님이 어려운 이웃을 섬겼던 일화는 수 없이 많다.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의 처방전에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를 주시오”라고 쓰고, 자신의 월급에서 닭 값을 지불해 준 일이나 병원비를 못내는 가난한 사람들을 병원 뒷문으로 나가게 했던 일들, 심지어 어떤 때는 자신의 월급을 몽땅 가난한 환자에게 준 일도 있었다. 1976년 은퇴 후에도 부산 동구에 청십자병원을 설립, 85세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료진료와 사회봉사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1979)을 수상했으며, 국가에서는 그에게 국민훈장 동백장(1976), 적십자 인도장 금상(1978), 국민훈장 무궁화장(1996)을 수여했다.
장기려 장로님의 생애는 이 시대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들에게 선한 청지기의 삶이 어떤 것인지 우리들에게 잘 말해준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분이었다. 그러나 청소년의 시절 의과대학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평생을 가난한 자를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그의 선한 청지기의 삶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이 모습이 바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기대하시는 바로 그 모습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우리들도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서 울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장기려 장로님처럼 주님께 마음의 초점을 맞추자. 그렇게 하면 우리들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슴 뭉클한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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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려 박사에 대한 동영상 몇 개 링크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ro-9gHyvaE&t=2939s
https://www.youtube.com/watch?v=RcGjYQ7y7pw
* https://youtu.be/ceFn6yPl7p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