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시107:10-15)
2021.10.3 김상수목사(안흥교회)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인해 어수한 판에, 요즘 검사 고발사주 사건이나 화천대유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회사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회사에서 한 의원의 아들이 6년간 대리로 근무한 퇴직금이 50억 원이었다는 소식이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그런데 여러 국가기관에서 조사 중이지만, 50억 정도는 깃털 정도에 불과하고 더 많은 엄청난 검은 거래들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돈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고, 오히려 돈의 노예로 불행하게 살아갈 뿐이다.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은 이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예전에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서는 이 모씨가 여고 동창생이 친구인 박모씨와 세 살 아들 그리고 10개월 된 딸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씨는 자취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면서, 일주일에 3-4차례 씩 이년 동안을 친구의 집을 드나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자기보다 못했던 친구가 번듯한 가정을 꾸린 것에 질투심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 듯이 친구와 아이들이 없어지면 친구의 남편과 재산이 자기 차지가 될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을 짜고 친구 박씨를 살해하고 아이들도 죽였다. 이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친구를 죽이면 친구의 남편과 재산이 내 것이 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마음을 갖게한 것이 누구겠는가? 바로 마귀 사단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이들이 가졌던 착각들의 배후에는 영적인 존재가 있다. 그것은 마귀 사단이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가룟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은 것은 마귀 사단이었다. 화천대유나 여고 동창생을 죽인 사건들은 독버섯 같은 인간의 탐욕과 쾌락에 눈이 가려있고,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면 그것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착각하고, 독사의 혀와 마귀 사단의 간계에 속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들 주변에서도(어쩌면 우리들 자신이) 영적인 착각 속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람이 죄와 탐욕 속에서 마귀에게 속으면서 살아가게 되었을까? 시편 107편 10-11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다함께 읽어 보자.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107:10-11)
이 말씀을 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존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과 곤고와 쇠사슬에 사람들이 매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한 것에 있다는 것을 말씀한다. 정말 그렇다! 이 말씀처럼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부터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는 것에 인간의 모든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있다.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고,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은 착각일 뿐이다. 물 없는 곳에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고통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먼저 기억할 것은 내(사람의) 힘으로는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단지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는 정도는 가능).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의 해결방법이 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뭔지 시편 107편 13-14절 말씀을 보라.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시 107:13-14)
우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환란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이다. 우리들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얽어 맨 줄을 끊으신다. 어떤 방법으로 부르짖어야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모든 저주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사망의 사슬이 끊어지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저주의 사슬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마귀의 세력을 멸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우리의 죄와 죽음과 마귀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기 위해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이처럼 무궁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고 기도하면 된다. 그게 전부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이름으로 부르짖는 자는 누구든지 운명의 사슬과 팔자, 마귀 사단의 사슬에서 풀려지고 해방된다. 지금 우리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성도들이 된 것을 감사하자.
지난 추석 연휴 때 “KBS파노라마”에서 “차다-학교 가는 길”라는 다큐멘터리를 재방송하는 것을 보았다. 이 영상은 지난 2014년도에 제작이 되었고, 그 당시 아시안TV어워즈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몇 년 전에 설교시간에도 이 내용의 일부를 소개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만에 다시 한 번 이 영상을 보면서 아버지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돌이켜 보았다.
** KBS 파노라마: 차다 학교가는 길 - https://www.youtube.com/watch?v=ZFdocpcjVZM&t=2343s
인도 서북쪽, 히말라야 산맥 깊은 곳에 ‘잔스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바깥세상과 왕래하는 유일한 방법은 히말라야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차다(chaddar: 얼음담요)’라는 이름을 가진 강이 매년 1-2월경에 완전히 얼었을 때, 얼음 위를 일주일가량 걸어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을 일 년에 한 번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한낮에도 영하 20도가 넘는 차가운 얼음 강을 건넌다.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그 짐 위에 아들까지 태우고, 일주일씩 거친 히말라야 험산준령 골짜기를 걸어간다. 중간에 얼음이 녹은 곳을 만났을 때, 아버지들은 자식과 무거운 짐을 등에 업은 채 망설임 없이 옷을 벗고 그 차가운 차다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나(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다 주고 싶어 하실까?”
이에 대해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성경의 명확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학교 가는 길’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라는 천국에 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 뿐 아니라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면 여러분들이여, 세상의 아버지도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하물며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사랑 안에 굳게 붙어 있자. 만약 지금 붙어 있지 못하다면, 속히 주님 앞에 나아가자. 그래서 주님께만 간절히 부르짖자. 왜냐하면 이것이 참된 행복의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