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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설교]예수님의 영적싸움 : 말씀과 침묵(눅23:39-43) - 사순절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22.04.01|조회수656 목록 댓글 0

예수님의 영적싸움 : 말씀과 침묵(눅23:39-43)

 

2022.4.3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우리 앞에 얇은 종이가 한 장 있다고 가정해 보자. 종이 한 장은 어린아이가 힘을 줘도 찢어질 만큼 약하다. 그러나 아무리 약한 종이라도 그것을 벽에 붙여 놓으면 그 누구도 쉽게 찢을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재질이 낮은 종이라도 그 종이에 임금의 글씨가 적히고 어인이 찍히면, 그 순간부터 그 종이는 귀한 문서가 된다. 마찬가지로 나는 약하지만 십자가에 굳게 붙어 있으면, 주님의 힘은 나의 힘이 되고, 주님의 보혈은 내 보혈이 된다. 또한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우리의 마음판에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있고, 성령으로 인(印)쳐진(엡1;13,“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귀한 주님의 편지들이다(고후3:3, “그리스도의 편지”).

 

그런데 우리들이 이처럼 십자가에 붙는 것을 방해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전달되지 못하도록 오염시키고 방해하려는 존재가 있다. 바로 마귀 사탄이다. 마귀 사탄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든 죄의 원인 제공자이다(창3장), 지금도 온갖 간계로 사람들을 미혹해서, 찢어지고 구겨진 오염된 종이와 같은 삶을 살게 만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러한 마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딱 붙어 있으면 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머리를 박살내셨고, 인류구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십자가에 붙어 있는 삶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주동행(與主同行, 주님과 동행)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날마다 성경말씀과 동행하면 그것이 곧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늘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에 딱 붙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셨다. 이 시간에는 이러한 주님의 승리하실 수 있었던 비결을 나누고, 우리들도 주님처럼 영적싸움에 늘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하고자 한다.

 

오늘 설교의 본문말씀인 누가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까지 있었던 마귀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을 면밀히 관찰하고 묵상해 보면, 주님은  간절한 기도와 더불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까지 시도되었던 마귀 사탄의 공격을 두 가지 방법으로 물리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만 집중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침묵(沈默)이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무리 신경을 자극하는 말을 들었어도 그것들에 대해서 감정이나 혈기로 맞대응 하지 않으셨다.

 

오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두 강도들이 각각 함께 매달렸다. 그때 한 강도가 자신도 죽어가면서 주님을 향해서 비방하는 말을 했다(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눅23:39)

 

주님을 비방했던 강도는 자신도 죽어가면서 왜 그렇게 자신에게 백해무익한 심한 말을 했을까? 흔히 하는 말로 제 정신으로는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끝까지 방해하려 마귀에게 이용을 당한 것이다. 마귀 사탄은 이때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끊임없이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또는 사람들을 통해서 수없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저지하고 방해하려고 시도했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주님은 공생애 초기에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다. 그때도 마귀 사탄은 세 번에 걸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하면서 주님의 감정을 자극하며 미혹했다(마4:3, 마4:6, 마4:9).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마귀 사탄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주님의 감정과 혈기를 자극하면서 십자가를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이때도 그들이 비방했던 말들은 40일 금식 후에 마귀가 공격했던 말이나 십자가 위에서 강도가 했던 말과 거의 유사한 패턴이다(마27:39-41). 이러한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귀의 전형적인 방법들 중의 한 가지이다.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마 27:39-41)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눅 23:35)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눅 23:36-37)

 

그러나 주님은 달콤한 미혹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말들에 대해서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떻게 이렇게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나 공격에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려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 외에 다른 음성에는 신경 쓰지 않으셨다. 40일 금식 후에 찾아왔던 세 가지의 마귀의 미혹도 기록된 성경말씀으로 모두 물리치셨다(마4:4, 마4:7, 마4:10).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마 4:4-10)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반대편 강도에게도 딱 한 마디만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3)

 

왜 주님은 주님을 시인하는 강도에게 이 한 마디를 해주셨을까? 그것은 주님의 마음에는 한 영혼도 잃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중심에 품고 계셨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대응할 가치 없는 말들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침묵하셨다. 이것이 주님의 “거룩한 침묵”이다. 지금도 때로 거룩한 침묵은 그 자체가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는 방법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도 주님처럼 성경말씀을 이루는 것을 내 인생의 분명한 목적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말씀에만 집중한다면 마귀 사탄이 아무리 간계를 부리면서 감정과 혈기를 자극하며 공격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넉넉히 이길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순교자는 영국인 로버트 토마스(R. J. Thomas,1840-1866) 선교사는 대동강변에서 순교를 당하기 직전에 “야소(예수)! 야소(예수)!”를 외치면서 자신이 가져온 성경책들을 주변의 조선 사람들에게 던졌다. 그는 어떻게 순교의 칼이 목을 향해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 담대히 “야소”를 외치면서 성경책을 던질 수 있었을까? 그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직 말씀만이 조선의 영혼들을 구원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도 동일하다. 우리들도 이 땅에서 주님처럼 또는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마귀의 온갖 공격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내 삶의 목적과 방향과 목표로 삼아야 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M. Montaigne)가 이런 말을 했다.

 

“어느 곳을 향해 항해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몽테뉴의 말처럼 만약 우리들이 성경말씀 속에 기록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내 삶의 목적과 목표에 삼고 집중하지 않는다면, 마귀 사탄의 공격에 흔들리면서 삶의 방향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도 마귀 사탄은 예수님을 공격했던 방법과 동일하게 우리들을 향해 “네가 성도라면~해봐”, “네가 장로라면~해봐”라는 식으로 자존심과 감정을 자극하면서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돈이나 쾌락이나 코로나와 같은 것들로 우리의 마음의 시선을 빼앗고, 두려움을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모두가 사람의 음성일 뿐이고,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에 집중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종이 한 장처럼 약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께 딱 붙어 있으면, 주님의 능력은 내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께만 붙어 있자(여주동행).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면서 오직 성경말씀에만 집중해야 하자. 내 삶의 방향을 흐리게 만드는 감정이나 혈기를 자극하는 말들에 대해서 거룩한 침묵을 하자.

 

만약 여러분들 중에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나, 요즘 주님과의 사이가 멀어진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을 계기로 다시 주님께 딱 달라붙기로 결심하기 바란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지역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이루어 가자. 이것이 마지막까지 넉넉히 승리하셨던 영적싸움의 방법이었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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