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엡6:4)
2022.5.1 어린이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수개월 전에 간이식을 해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한 청년의 이야기가 뉴스에 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청년의 아버지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 알콜 중독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아내를 학대하고, 어린 자식들을 때렸다. 그 청년의 부친은 자녀들의 목을 조르고, 고막을 다치게 하고, 머리채를 잡는 것은 물론이고 술병을 던지고, 심지어 칼로 살해의 위협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이런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청년과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청년은 자신을 학대했던 부친으로부터 간을 이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청년과 동생은 고민하다가 거절하기로 했고, 얼마 후 부친은 사망했다. 이 뉴스를 두고 인터넷 상에는 찬반의 의견이 많았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청년과 동생의 마음에는 간이식을 거절할 정도로 깊은 상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뉴스는 무엇이 올바른 부모의 역할인지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은 5월 1일, 가정의 달의 시작이자 어린이 주일이다. 가정 안에서 부모와의 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는 가장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잘 모르는 관계일 수 있고, 가장 친절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불친절한 관계일 때도 있고,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관계일 수 있는 고차방정식과 같은 사이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풀어내기 어려운 방정식은 자녀의 관계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농사가 자식 농사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만약 손주를 양육하는 분들이라면, 더 어렵게 느낄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가족 관계에서도 동일하다(전도자와 전도 받은 분, 주일학교 교사와 학생, 제자양육을 하는 분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분과 처음 나온 분들의 관계 등).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많은 경우에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양육인지 조차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은 짧은 한 절이지만, 성경적인 자녀 양육에 있어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말씀해 준다. 그러므로 복된 어린이주일에 이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우리, 가정, 교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기를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자.
1. 하지 말아야 할 것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사도 바울은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쉽게 말하면, ‘상처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실제로 여기에 쓰인 “노엽게 하지 말고(메 파로르기제테, μή παροργίζετε)”라는 말의 원뜻은 ‘격노케 하지 말라’, ‘약 오르게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주로 상대방을 인격적(人格的)으로 무시하고 비난해서 낙심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인격과 존재 자체를 무시함으로 자녀의 마음을 노엽게 만드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줄 위험성이 늘 있다(엡4:26-27).
그렇다면 어느 때 자녀들이나 사람들이 상처받을까? 사람이 상처를 받고 노엽게 되는 것은 단순히 실수나 실패 때문이 아니다. 다만 실수나 실패를 이유로 그 사람의 인격을 비하하거나 고압적이고 독선인 태도로 정죄하고 심하면 폭행까지 서슴지 않을 때, 자녀들의 마음에 노엽게 되고 상처 받는다. 예를 들면 “너 같은 놈은 태어나지 않았어야해”, “될 놈은 떡잎부터 안다더니, 넌 싹수가 노란해 인마”, “못난 놈”, “오사육시 할 놈”, “나가 죽어라” 등과 같이 인격 자체를 비하하는 말들이다. 또 사랑하는 표현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줄 몰라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어른들끼리의 관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부모들 특히 아빠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있다. 비싼 게임기나 선물을 사줘야만 얘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예전에 우리 집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학부모참여수업에 참석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나는 이럴 때 아빠가 가장 좋아요”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젊은 아빠들은 대부분이 장난감이나 맛있는 것을 사줄 때 자녀들이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1위는 “아빠가 함께 놀아줄 때”라는 대답이었다.
이런 면에서 지난 2월 26일 89세로 소천하신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이야기는 오늘 같은 어린이 주일에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어령 전 장관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지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분이다. 이어령 장관은 10년 전에 소천한 큰 딸 이민아 목사의 영향으로 노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되었다. 그가 신자가 된 후에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어령 장관의 딸 이민아 목사는 생전에 쓴 책에서 어린 시절 아빠에 대한 아픈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자기 전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아버지가 글을 쓰고 있는 서재 문을 두드렸다. 오늘 따라 특별히 예쁜 잠옷을 입었기에 아버지가 ‘굿나잇’ 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손을 흔들기만 했다. ‘오늘도 역시’ 하는 생각에 시무룩해져 돌아섰다.”(땅 끝의 아이들, 2011)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어린 시절에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는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도 했다. 이어령 전 장관은 딸이 암으로 사망한 뒤, 이러한 딸의 글과 말에 너무나 가슴에 걸렸던 것 같다. 그래서 지난해 출간된 그의 마지막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2015)’에서 후회와 그리움을 토로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좋은 피아노를 사주고 널 좋은 승용차에 태워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빠의 행복이자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느낀다.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나의 사랑 그 자체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고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그리고 정말 보고 싶다.”
고 이어령 장관의 마지막 글은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상처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 기준이 아니라, 눈높이를 낮춰서 아이의 입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안 되면 본의 아니게 잘해준다고 한 것이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다.
2. 해야 할 것 -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부모나 조부모들이 자녀 손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다. “오직”이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훈계와 노엽게 하는 것, 양육과 사육 그리고 징계와 폭행의 차이를 혼돈하지 않는 것이다. 사육은 짐승을 키울 때나 쓰는 말이고, 양육은 자녀를 키울 때는 쓰는 말이다. 성경은 자녀를 양육하라고 했지 사육하라고 하지 않았다. 훈계나 양육은 그 동기가 사랑이다. 쉽게 말하면 내 뜻을 강요하면서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것은 사육이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기를 힘쓰는 것은 양육이다. 자녀를 폭행하는 것은 사육이고, 사랑으로 징계하는 것은 양육이다. 하나님도 때로 우리를 아들로 대하시고 사랑하시므로 징계하신다(히12:6-8). 그러나 폭행하지는 않으신다.
그렇다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가장 좋은 양육 방법은 뭘까?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여주고, 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방법이다. 흔히 말하는 신앙의 뿌리가 있는 믿음의 명가가 되는 것은 부모나 조부모가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욕쟁이 할머니 밑에서 욕쟁이 손자가 나오고, 기도의 어머니 밑에서 기도하는 자녀가 나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만약 신앙생활을 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동안 본 것도 없고, 보여줄 기회도 없었다면, 지금부터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훌륭한 믿음의 집안도 첫출발은 그 집안에서 누군가가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가문에서 신실한 믿음의 조상이 되기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실제 혈육의 자녀 손들이든, 아니면 신앙적으로 영적인 자녀들(주일학교 학생, 초신자, 구역식구 등)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 모두에게 주신 사명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노엽게 해서 상처주고 그 인생을 힘들게 만들지 말고, 오직 주의 말씀으로 양육하기를 힘쓰자.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될 것과 꼭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