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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원시 그리스도교 혼합주의('바울 종교의 헬레니즘화'를 중심으로)조태연교수(이화여자대학교)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01.03.22|조회수510 목록 댓글 0
{신약 논단} 3 (1997) 원고

원시 그리스도교 혼합주의('바울 종교의 헬레니즘화'를 중심으로)

조태연교수(이화여자대학교)



I. 들어가는 말

우리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꽤나 긴급한 무엇을 알리려 할 때, 특히나 자신의 모국어 밖에는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라면, 우리는 어떠한 언어로 접근할 수 있을까? 유대인들의 땅에서 기원한 예수의 가르침을 낯설고 물설은 헬레니즘 세계에 전파한다면, 유대인들의 방식으로 해야 할까 혹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해야 할까? 바울 같으면 어떠했을까? 헬레니즘 세계에 그리스도교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던 그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어"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되었고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이 되었노라고 자신의 이력을 소개한다(고전 9:19-22).
헬레니즘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무엇과 같았을까? 그 발생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그 기원의 시간에 주변 세계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종교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을까? 그것들은 정말 원시 그리스도교 형성에 하나의 독립적인 변수로 '작용'하였을까? 만일 그것들이 달랐다면 그리스도교가 다르게 형성되었을까? 그리스도교 기원의 대답에 가장 훌륭히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당시 주변 세계와의 관련에 대한 종교사적 접근이다.
이 연구는 그리스도교의 기원이 헬레니즘 문화와 갖는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 특히 바울 종교가 (헬레니즘 세계 안에서) 헬레니즘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 세계에 얼마나 창조적으로 '토착화'되어 갔는가를 보이는 일이다. 물론, 역사적 예수와 예수운동으로부터 바울과 원시 '그리스도교'를 바라보는 방향을 기본적인 시각으로 택할 것이다.
하필이면 연구의 과제가 왜 헬레니즘적 '그리스도교'이고 바울의 종교인가? (1) 그것은, 헬레니즘적 '그리스도교'야말로 예수운동과 함께 아득한 기원의 시간에 그리스도교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며, 바울의 신학이야말로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 신앙의 전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2) 물론 원시 그리스도교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종교사적 배경에는 히브리 유산 및 유대교 전통도 포함된다. 이들의 영향은 토착화가 아닌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지만, 분명 종교 혼합주의와 토착화의 결과이다.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유대교의 영향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 다른 것만큼이나 원시 그리스도교의 성공적인 토착화를 반증하는 셈이다. (3) 헬레니즘 세계에 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구약성서의 인용과 해석 등 히브리 유산과 유대교 전통의 유입은 주로 유대교 회당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공동체들에게 유대교야말로 이미 헬레니즘화된 유대교였고, 회당은 헬레니즘적 사상과 문화를 소개하는 매개로 기능하였다. (4) 헬레니즘 세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야말로 케리그마 신앙에 가장 충실하고 오늘날의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진정 그리스도교라 생각하는 그것이지만, 그들도 예외없이 주변 문화와의 역동적 상호관계 속에서 창조적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다. 도무지 예수든 바울이든 유대적/유대교적 영향만 받은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사이에(예수와 유대교 사이 그리고 바울과 유대교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인정치 않으려는 것과 동일하다.
이 연구는 종교사적인 방법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원시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적 혼합주의를 밝히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과 구조를 먼저 제시하고 그것이 헬레니즘 세계의 어떤 종교사적 배경을 가지는가를 말하는 것은 좋은 접근 방법이 될 수 없다. 원시 그리스도교야말로 결코 일사분란한 조직과 통일된 신앙체계를 갖춘 단일 현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시 그리스도교의 형성과 관련된 헬레니즘 세계의 주목할 만한 종교사적 배경들을 먼저 제시한 후 그것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학에 창의적으로 유입되었는가를 살필 것이다. 헬레니즘 세계의 종교사적 측면들로는 (1) 그리이스 철학, (2) 영지주의, (3) 밀의종교, 그리고 (4) 아스클레피우스 제의와 신인사상을 연구의 주요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원시 그리스도교와 관련하여서는 신앙의 골격을 이루는 우주론, 인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그리고 사후 심판과 내세 신앙, 세례와 성만찬 등 그리스도교 예전들 등을 헬레니즘 세계와의 주요 접점으로 설정할 것이다.


II. 그리이스 사상

A. 플라톤 철학
플라톤(427-347 BCE)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아(idea)의 이론이다. 그의 {공화국} 제 8권에 등장하는 "동굴의 신화"는 그림자와 실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과 철학자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이데아의 세계를 본 철학자의 차원과 그림자와 같은 감각적인 세상 사람의 차원을 이원화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이데아는 실체이지만, 물질 세계는 이데아의 형상(form)이나 서툰 모방에 불과하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은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였다. 그의 이데아 이론은 육체로부터 구별된 영적 실체에 대한 강조, 불멸에 관한 교리, 영혼 및 그와 관련된 윤리적 이론의 분석 등 영혼에 대한 가르침으로 발전하였다. 그리스도교 인간관과 서구 사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육체와 영혼의 이원화는 플라톤 사상의 산물이다.
그가 제시한 귀신 이해(demonology)도 주목할 만하다. 그를 따르면 귀신은 신들과 인간 사이의 모든 중간 존재로서 그 양자 간을 중개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혼과 정신, 대기, 그리고 하늘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계층을 구성하였다. 그 후 크세노크라테스(Xenocrates, 338-314 BCE)는 플라톤의 귀신론에 선과 악의 개념을 추가하여 선한 귀신(천사)과 악한 귀신(마귀)으로 구분하였다.
이후 중기 아카데미(3-2 세기 BCE)는 마침내 이원론적 인간론과 우주관에 도달하였다. 그들은 플라톤의 두 개의 세계영혼(two World Souls) 이론을 취하였다. 크세노크라테스는 이미, 선한 귀신이 하는 일은 선한 세계 영혼 때문이고 악한 귀신이 하는 일 배후에는 악한 세계 영혼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 전통을 따라 포시도니우스(Posidonius)는 플라톤적 이원론을 받아들여, 달 위의 천상(天上) 세계와 달 아래의 월하(月下) 세계를 구별하였다. 그는 특히 삼원론적 인간관을 주창함으로써 자신의 이론 체계를 개발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영(spirit)은 태양에서 기원하였고, 혼(soul)은 그 영이 달로부터 받은 것이며, 육(body)은 그 혼이 월하 세계로부터 받아 거기에 생기를 넣은 것이라 하였다.
헬레니즘 뿐 아니라 그 세계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플라톤 철학의 영향은 매우 컸다. (1) 플라톤의 귀신론은 플라톤학파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서도 사용, 발전되었다. 그래서 져스틴(Justin Martyr)은 이 이론을 이교도들과의 변증에 사용하였다. 그는 이교들을 가리켜 마치 그것들이 구약 예언의 성취인 양 속이기 위하여 악한 귀신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사탄과 신들로 구성된 우주관 즉 원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이원론은 플라톤 철학의 이러한 가르침에서 온 것이다. 인간이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리스도교 인간관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바울의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플라톤 철학의 가장 큰 영향은 '이데아'(idea)와의 관련이다. 전통적인 히브리 사상과 팔레스틴 유대교가 일원론에 입각해 있다면, 헬레니즘 세계의 원시 '그리스도교'는 소위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강하다. 그래서 헬레니즘적 원시 '그리스도교'의 한 전형인 바울 종교는 현세를 넘어서는 초월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한 예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설명할 때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요 ...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39-40, 48, 53). 이미 죽은 자들에게 구원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다(고전 15:42-44). 아직 육체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심"이며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으로써 획득하는 신성이다(갈 2:19-20). 바울을 따르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의 성품과 생명을 공유하는 것도,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의 신비한 연합을 이루는 것도 모두 죽음과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옛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가능케 하는 첫 부활이다(고전 15:20-26). 바울이 제시한 이 믿음과 구원은 범상한 인간의 경지를 넘어 초월적 차원으로의 진입을 의미하고 그만큼 현세를 '벗어나는' 초월절 신성의 획득을 보장한다.

B. 스토아 철학
스토아 철학은 제노(Zeno, 333 BCE-?), 그의 후계자인 클레안테스(Cleanthes, 331- 232 BCE), 그리고 스토아 교리를 체계화한 크리시푸스(Chrysippus, ?-208 BCE)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이 철학은 도시 현상이었고 범신론적이었다. 각각의 지역 신들(local gods)은 '보편적'인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계승자를 자처했고, 윤리 특히 미덕을 최고의 가치로 치부했다. 도덕적 삶의 유일한 목적 즉 텔로스( )는 로고스( ) 및 자연( : Nature)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연은 물질 세계가 아닌 인간 존재의 본질( : nature, 자연스러움) 즉 로고스를 의미한다. 인간의 이성은 전체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과 일치한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은 세계 이성(이는 제우스 신과 동일하다)과 우주 사이의 일치를 주장하는 우주관을 전제한다. 여기서 우주란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그들은 비교적 유물론적이며 결정론적인 관점을 유지하였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정치적 동물이고( ), 사회적 존재의 운명을 타고났다( ). 그는 자신의 가족들, 친구들, 아랫 사람들, 윗 사람들 등 사회의 자연 질서 안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그 의무는 목록으로 작성되어 제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이상은 자유( )이다. 만일 인간이 자유하고자 원한다면, 그는 모든 전통적 선악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여기에는 재물에 대한 욕심, 정욕, 명예욕, 권력에 대한 의지 등이 속한다.
원시 그리스도교는 스토아 철학과 여러 가지 병행을 갖는다. (1) 바울이나 제 2 바울 서신들에 나타나는 바 사회 구성 단위와 관련된 권면들은 "가정규율서"(Haustafeln, 또는 household codes)라 불리는데,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스토아적 영향을 보여준다. 골로새서 3장 18절-4장 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가정 생활에 대하여 권면한다.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하며, 남편들은 아내들을 사랑해야 한다. 자녀들은 또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며, 아비들은 자녀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에배소서 5장 21절-6장 9절(제 2 바울서신)은 올바른 가족 관계에 대하여 가르친다.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며,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한다. 부모를 향한 효도에 대하여 말할 때,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이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며 땅에서 장수하는 것이라 가르친다. 그 외에도 베드로전서 2장 13절-3장 7절은, 세상의 제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와 아내들과 남편들의 자세에 관한 권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종해야 한다. 그들은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왕을 공경해야 한다. 이 본문은 남편과 아내들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도 포함한다.
(2) 스토아의 자연신학은 헬레니즘적 유대교를 경유하여 전해졌는데, 바울(로마서 1-2장)과 누가(사도행전 17장)에 영향을 미쳤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18-20).

바울의 이 선언에 나타나는 추상명사들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 "그의 영원하신 능력"( ), "신성"( ), "밝히 보여 알게 됨"( ) 등은 헬레니즘적 통속철학 즉 스토아학파에서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스토아철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은 만물의 주재자시요 생산자이시며 오직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분이시다. ... 신에 대하여 이런 것을 숙고해야 한다. 그는 능력에 있어서 가장 강하시며, 그는 의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우시며, 생에 있어서 결코 죽지 않으시며, 덕에 있어서 탁월하시니, 모든 죽을 생물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그 행적들로부터 보여진다" (Pseudo-Aristoteles, Demundo 339a-b).

(3) 그리스도교인의 자유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스토아 철학에서 온 것이다. 종이 자유인이 되는 패러닥스와 함께 바울의 다음 선언들은 전형적으로 그 경우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전 6:12; 3:21-24 참조);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니..."(빌 4:12 이하).
(4) 바울은 영, 양심, 로고스, 미덕, 자급자족, 말의 자유, 합리적인 봉사 등 스토아주의에 숙달된 개념들을 사용했다. 빌립보서에 나타나는 수많은 어휘들 뿐 아니라 이상적 공동체 형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사상과 본문은 스토아 철학에 의해 "형성되었다"(shaped). 로마서 12장에서 개인의 명예와 공동체의 하나됨을 다룬 바울의 사상도 디오 크리소스톰처럼 철저히 스토아 철학에 기반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고린도전서 8-9장에서 우상 제물 등의 문제와 관련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형제/자매 사랑을 다루는 바울의 사상도 스토아 철학의 강한 영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C. 견유학파 철학
견유학파 철학의 창시자는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 400-328 BCE)이다. 씨닉(견유학파) 철학자들은 문화적 가치와 부르조아적 생활을 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이 용맹스러웠기로 "개"라 불리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생활 패턴(그의 가르침이 아니라)을 따라 거리나 공공 장소를 배회하며 모든 종류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철학을 논하였다. 그들은 특별한 교리의 창달이 아닌, 어떤 특정한 행위의 모범을 창시했고 전수하였다. 견유학파 철인들은 사치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려 했으며, 따라서 금욕적 행위에 의하여 자신들을 곤경에 익숙하게 하였다. 그들은 비난을 도발하기 위해 일부러 사회의 관습에 어긋나는 행위를 함으로써 스스로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난폭하고 사나운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더러운 옷을 입고 다녔다. 때로는 사람들 앞에서 변을 보거나 성행위를 하였고, 미친 척하기도 하였다. 쾌락을 거부하고 불명예를 자청함으로써 고난과 무관심,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였다. 양털로 된 외투, 지팡이, 구걸하는 가방, 긴 수염 등 그들의 독특한 외모는 지중해 연안 전 지역에서 그들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소유물을 포기하고 스스로 고난을 초래하였다.
철학 방법론에 있어서 그들은 '대화'(dialogue)를 버리고 '다이어트라입'(diatribe)을 택하였다. 대화가 동료 철학자와 제자들과 나누는 철학적 담론으로서 플라톤의 {대화록} 즉 심포지움이 그 전형이었다면, 다이어트라입은 거리나 장터에 있는 철학을 모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것은 구걸하는 씨닉들의 가르침과 선포가 개발한 일종의 논쟁법이다. 본래 이 용어는 오락(pastime)을 뜻했으나, 기원전 4세기에는 스콜레( : 강의실이나 학교를 뜻함, 행 19:9의 두란노 "서원")와 함께 철학 학교(학파)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다이어트라입은 고상한 언어와 기술적인 용어를 경멸했고, 그들의 난폭한 점을 표현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의 통속적인 언어를 사용하였다. 가상적인 대담자가 반대 의견을 내거나 혹은 잘못된 결론을 유도하면, 견유학파 철인은 그것을 거부하거나 수정한다. 이 스타일에는 직접적인 제언, 질문들과 대답들, 실례를 들어 호소함, 그리고 시(詩)나 다른 전거들로부터의 인용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스도교는 많은 점에서 견유학파 철학과 병행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로마서에 나타나는 바울의 다이어트라입 수사학이다. 로마서 2장 17-29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의 유대인 대화 상대를 끌어들여 그가 이방인에게 빛이 되지 못한 것을 비난한다. 바울의 다이어트라입은 계속되는데(3:1-9; 3:27-4:2), 여기서 그는 이방인에 대한 교만한 우월감을 버리도록 촉구한다. 나아가서 바울은 6-11장에서 반대 입장 및 잘못된 결론들을 제기한다(6:1,15; 7:7,13; 9:14,19; 11:1,11,19). 물론 이들은 바울의 의도와 정반대인데, 거의 어김없이 강한 부정( : "결코 ...이 아니다")에 의해 뒤집힌다. 또한 2인칭 단수("너")로 가상의 대화 상대를 설정하고 말하는 경우(2:1-5,17-29; 8:2; 9:19-21; 11:17-24; 14:4,10)나 바울의 "오, 형제여"로 시작하는 조롱 섞인 수사의문문도 다이어트라입의 전형이다. 그 외의 사례들은 덕목과 악목(롬 1:29-31; 갈 5:19-23; 고전 6:9-11), 의인법(롬 11:17-24), 비교(롬 7:1-6; 고전 12:12-26 등등), 예화(고전 3:5-4:7; 9:1-27; 10:1-13; 빌 2:1-11; 갈 1:10-2:21), 수사의문문(고전 4:7-9 등등) 등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9-35절은 다이어트라입의 여러 특성들이 복합되어 있는 경우이다.
다이어트라입의 논쟁법을 사용하는 또 다른 예는 야고보서에도 잘 나타난다(2-5장). 견유학파의 이러한 방법은 원시 그리스도교의 문학 스타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세네카, 무소니우스, 에픽테투스, 두로의 말시무스, 루시안. 그리고 보다 후대에는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바질, 그레고리 나지안주스, 그리고 쟌 크리소스톰과 아마시아의 아스테리우스 등도 같은 경우이다.
견유학파 철학의 여러 다른 특징들이 예수운동들에서도 나타난다. 생필품을 지참하지 않는 그들의 배회는 팔레스틴 초기 예수운동 지도자들 특히 방랑하는 카리스마들과 어느 정도 동일하다(눅 10:2-12; 막 6:7-13). 사회 관행에 비판적이었던 반문화적 에토스(Social Ethos)도 그 양자에게 공통적이었다. 예수전승 가운데 문학 현상으로서의 아포프떼금(apophthegm), 크레이아(chreia), 선언문 이야기(pronouncement stories), 아포리즘(aphorism), 일화(anecdote)는 이미 견유학파 철학자들에 관하여 축적된 수많은 전승과 전혀 동일한 문학 양식을 보이고 있다.


III. 영지주의

영지주의 신화는 영혼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해서 영혼이 빛의 세계 안에서 기원하였고, 땅에 추락하여 낯선 존재로 살았으며, 육체 안에 갖히게 되었고, 마침내 해방되어 하늘로 올라가 빛의 세계로 복귀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영혼은 인간의 참된 내적 자아로서 본원적 인간 즉 하늘에 있는 빛의 존재의 한 부분이며 섬광(불꽃)이다.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에 이것이 어둠의 악마적 세력에 의해 정복되어 추락한 것이다. 지고신은 그 빛이 갖혀있는 것이 안쓰러워, 그들을 구하고자 하늘의 그 빛 즉 자신의 아들(Son)을 내려보내신다. 그 보냄받은 자는 "나는 목자이다," "나는 진리이다"라고 말하면서 잠자는 자의 의식을 깨우고 그들이 하늘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도록 가르쳐준다. 이 일을 완성한 후 그는 승천하여 하늘로 되돌아가는데, 그러면 이 세상은 끝장나고 자신의 본래적 카오스로 되돌아가며 세상엔 어둠만이 남게 된다. 이것이 심판이다. 영지주의 인간론은 육, 영, 자아로 구성된 삼분법이다. 구원이 철저히 외계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영지주의는 철저히 초월적이다. 또 세상을 철저히 부인한다는 점에서, 영지주의 우주론은 '코스모스'를 '카오스'로 이해한다(자연의 법칙대로 운행하고 또 예배의 대상이었던 별들은 불꽃들을 가두는 악마적 세력에 불과하다). 영지주의는 점차 밀의종교처럼 되었다. 자아가 '승천'하기 위해 주문처럼 외우도록 공식문이 전수되었고, 또한 자아를 정결케 하고 강하게 하기 위한 성만찬과 세례와 거룩한 공동식사가 제도화되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영적인 사람들'끼리만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cultus)나 종파를 만들지 않았다.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영지주의의 영향은 크고 다양하다. (1) 바울의 편지들에 나타나는 바 "우주의 별들"( )(갈 4:3,9. 우리 말 성서는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 번역하였지만, 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초자연적 세력들 즉 별들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골 2:8,20; 벧후 3:10-12 참조), 권세자들(정사들)과 능력과 주관자들(롬 8:38; 골 1:16)에 대한 언급은 모두 영지주의로부터이다.
(2) 그리스도의 선재와 원인간(아담)의 타락을 말하는 바울의 사상도 영지주의적 사고 구조에서 온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빌 2:6-9);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5-47). 물론 여기서 아담의 본질을 "육의(psychic) 몸"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영의(spiritual) 몸"으로 규정하는 것도 영지주의 언어이다(고전 15:44-46).
(3) 무엇보다도 바울의 그리스도 이해는 영지주의적 혼합주의의 빼놓을 수 없는 증거이다. 아버지로부터 오신 지고자의 '아들'인 그는 하늘에 있는 빛의 세계로부터 내려온 신적 인물로서, 육신의 인물인 채 베일에 가려져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는 선재했고 종의 형태로 땅에 왔다(빌 2:6-11). 세상의 주관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끝내 그를 처형하였다(고전 2:8 이하). 영지주의 구원론으로부터의 영향은 요한의 예수 이해에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예수는 말씀으로서 미리부터 존재하던 '하나님의 아들'이다(요 1:1).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아,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빛을 그리고 보는 자들에게는 어둠을 주기 위해 '빛'으로 이 세상에 내려왔다(요 9:39). 그러나 세상은 그를 영접지 않았고 오히려 죽였다. 그는 땅으로부터 '위로'( ) 올리워져 하늘로 되돌아가심으로 말마임아 자기의 사람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셨다(14:6):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12:32).


IV. 밀의종교

A. 개괄적 소개
미스테리아( )는 기원전 5 세기경부터 데미터(Demeter)와 카비리(Cabiri) 등의 제의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밀의종교(mystery religions)란, 동방으로부터 들어와 그리이스-로마 세계에서 기존의 문화적/종교적 전통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형태를 갖춰나간 종교들이다. 중요한 것으로는 그리이스에서 온 엘리우시스 미스테리(Eleusis)와 디오니수스(Dionysus, 바카스), 이집트에서 시작된 오사이러스(Osiris)와 아이시스(Isis)에 대한 종교의식,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미트라스(Mithras) 종교, 소아시아(프리지아)의 대지모신 시벌리(Cybeli)와 그녀의 남편 아티스(Attis), 그리고 시리아 및 팔레스틴에 근원을 가지고 있는 아도니스 숭배(Adonis)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곧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이들은 원래 특정 종족에만 국한된 종교였는데 노예들, 상인들, 그리고 군인들에 의해 서방에 전파되면서 헬레니즘 세계의 가장 보편적인 대중 종교가 되었고, 그 범위와 규모도 종족 문화권을 벗어나 세계 종교가 되었다.
밀의종교들이 보이는 공통적 특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밀의종교는 그 기원에서부터 농경 문화를 그 배경으로 한다. 원래 흙에 그 근원을 두고 있었고 자연의 주기와 관련하여 풍년, 안전 등을 보장받기 위한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2) 이들은 보통 농사력의 주기를 따른 초목의 죽음과 재생에 상응하도록 신 또는 영웅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신화의 암송이나 혹은 재연을 포함하기도 하였다. (3) 비밀스런 입회식 절차를 강조하였기로 '밀의종교'라 불리웠다. 그러나 대중적인 경축 행사를 가짐으로써 큰 구경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예배의 핵심은 선포하는 말씀이 아니라 드라마였다. 그러한 제의와 관련하여 거룩한 식사(sacred meal)도 있었다. (4) 밀의종교에는 예비적인 "학습"과 비밀 지식의 "전수"( )가 있었고, 또한 이를 통하여 "완전한" 혹은 정확한 "지식"도 획득할 수 있었다. 비밀을 전수받은 사람은 전수받지 못한 사람들과 구별되었다. 비밀을 전수받은 사람에게는 거룩한 성구나 상징적인 표를 나누어 주어 서로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5)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알레고리( , allegory)이다. 그러나 디오니수스를 포도나 포도주와 동일시하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다. 아폴로는 태양과 동일시되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지는 아이시스를, 나일강의 생명수는 오사이러스를, 그리고 그 물이 흘러 들어가는 바다는 타이폰(Typhon)을 가리켰다. (6) 서품을 하여 인간이 거듭나게 됨으로써 불멸의 효력에 이르게 된다고 믿었다. (7) 제의적 상징과 전통의 해석은 교의적으로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지역에 따라 달랐다. (8) 외부인들에겐 기괴한 측면들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가입자들에게 불멸성과, 신과의 신비한 합일과, 그리고 긴밀하게 짜여진 공동체에 들어오는 소속감의 특권을 보장해 주었다. (9) 기독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의 여부와 무관하게, 양자는 공통의 환경을 공유하였다. 많은 비그리스도교인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을 동양의 유대교적 밀의종교로 인식하였다.
팔레스틴의 예수운동들과 달리, 헬레니즘 세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특히 바울의 종교는 제의(cult)화됨으로써 밀의종교를 닮아 새로운 형태의 종교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묵시종말적 칭호 "사람의 아들"은 사라지고 "그리스도" 칭호조차 고유명사가 되고 만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 또는 "주"( )라 불리우고, 구속의 대리인으로서 예배를 받는다. 특히 "주" 칭호는 방언이나 황홀경 체험 등의 예배 때에 사용되던 칭호로서, 이는 예수가 밀의종교의 신과 같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는 죽지만 극적으로 부활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세례와 성만찬을 통하여 그와의 신비한 합일을 경험한다. 교회의 기초는 더이상 출애굽이나 율법의 증여와 같은 이스라엘의 경험적 역사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극적으로 부활하셨다는 케리그마의 '신화'적 드라마에 있다. 케리그마의 이 신화적 선언은 세례와 성만찬 제의를 통하여 고정되어 있다.

B. 아이시스와 오사이러스
헬레니즘화 과정에서 아이시스(Isis)의 영향력은 점차 증대되었다. 헬레니즘화된 아이시스는 천상의 여신이자 만물의 어머니로 경배되었다. 이 여신에 대한 하나의 찬양을 인용한다:

인류의 가장 거룩하고 영원하신 구세주, 당신은 우리의 생명을 아낌없이 품으시고 우리의 재난 위에 어머니(Mother)의 포근한 웃음을 주십니다. ... 하늘의 신들이 당신을 예배하고 지옥의 신들도 당신 앞에 절을 합니다. 당신은 땅을 돌리시고 태양을 빛나게 하십니다. 당신은 우주를 다스리시며 지옥을 밟고 계십니다. 별들은 당신의 질서대로 운행하고 계절은 되돌아옵니다. 신들이 기뻐하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조합합니다. 당신의 끄덕임에 미풍이 불어오고, 구름이 모이며, 씨들이 솟아나고, 꽃들이 만개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산 위에서 울부짖는 짐승들도, 땅 속에 몸을 숨긴 뱀들도, 바다를 잠행하는 괴물들도 당신의 위용 앞에선 몸을 떱니다 (Apuleius, Metamorphoses XI.25).

아이시스는 다른 신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그들의 업적을 자신에게 돌린다: "나는 유일한 신이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의식 속에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온 세계에서 예배를 받는다"(Apuleius, Metamorphoses XI.5). 이상의 글들에는 보편성 및 유일신 사상과 같은 우주론적, 점성술적 개념의 영향도 보인다.
아이시스 제의의 입회식은 그리스도교의 혼합주의적 성격을 보이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사제 계급이 되기 원하는 자들에게는 엘리우시스(Eleusis)를 본딴 신비스런 입회 예식이 요구된다. 입회식 날짜는 꿈을 통해 계시된다. 먼저 간단한 문답을 받으며 목욕재계를 해야 하고 제 10일 저녁 입회가 베풀어질 때까지 열흘 간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입회자는 헝겊으로 옷을 지어 입고 해질 무렵 성역으로 인도된다. 입회식은 죽음의 경험이고 그것은 자발적인 선택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입회자에게 생의 새로운 여정과 구원을 가져다 준다: "나는 죽음의 경계에 이르렀다. 프로스페린[지하 세계의 여왕, 아이시스와 동일]의 문지방을 넘었고, 모든 힘을 다하여 나갔다가 돌아왔다. 한밤중에 나는 태양이 영광 가운데 눈부시도록 비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래의 신들과 위의 신들 곁으로 가 그들 옆에 섰다. 그리고 나는 그 신들에게 예배하였다"(Apuleius, Metamorphoses XI.23). 이 예식에서 이집트인들은 밤에 태양이 지하 세계를 거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사제들이 들고 있는 횃불을 태양으로 보았다. 다음날 아침에 입회자는 열두 겹의 영대(stole: 지하 세계 밤의 12시간과 12궁을 상징)를 입고서 성화된 채 사람들 앞에 나타나 태양신으로 단장하고 그들에게 자신을 내보였다. 그 후부터 그는 아이시스를 섬기면서 그녀의 교훈을 추종해야 하며 그는 언제나 죽은 사람들의 심판주 오사이러스(Osiris) 앞에 설 수 있도록 덕스럽게 처신해야 했다. 이러한 입회 예식을 통해 입회자는 지고신과의 합일을 경험했고, 변화하는 지상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 의식을 통하여 입회자는 죽음과 재생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교리는 원시 '그리스도'교 특히 바울의 가르침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중생의 헬레니즘적 개념이 아이시스 미스테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물론 중생의 가르침은 요한복음 3장에도 나타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6:4). 바울의 이 선언은, 아이시스 미스테리의 입회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아이시스 미스테리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모든 시간을 다하여 여행한 끝에 죽음에까지 내려가면, 너희는 거기(땅의 감추인 곳) 엘리우시스 들판(이상향 낙원)에 살면서 나의 은총을 인하여 나를 찬양하리라"(Apuleius, Metamorphoses XI.6). 죽은 후 영생을 기대하는 그리스도교 신앙도, 죽어 어두움을 맛보지 않을 것을 믿던 아이시스 제의와 다르지 않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롬 6:9).
마리아 신앙에의 영향도 특기할 만하다. 고대의 후기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종교 간의 대립 속에서도 기독교는 아이시스 제의로부터 많은 특징들을 빌려오게 되었고 특히 마리아 신앙이 이것과 융합된 것이다. (1) 요한계시록 12장에는 메시아 탄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여인은 태양으로 옷입고 머리엔 12궁의 황도대를 쓴 채 달 위에 서 있는데, 그녀는 임신했고 신생아를 데리고 용을 피해 도망하려 하고 있다(1-2절). (2) 아이시스의 초상화는 흔히 그녀가 아기 하포크라테스(호우러스)를 무릎에 않고 젖을 먹이는 매혹적인 자태를 그리고 있는데(대모신 신앙), 이것은 우주의 어머니이며 여신인 성모 마리아 신앙의 전례가 된 것이다.

C. 오르피즘(오르페우스교)과 내세 신앙
오르피즘(Orphism)의 기원은 트라키아의 가수 오르페우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연대는 대략 호머 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오르피즘은 B.C.6세기에 시작되었으며, 어떤 특정한 정체성과 조직적 교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관심과 비슷한 생각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운동을 대표한다. 오르피즘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오르피즘 이전에, 남부 이탈리아에 있었던 피타고라스는 이미 영혼불멸과 윤회를 믿었으며 사람의 영혼이 동물에게도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잔존자들은 점차 오르피즘 집단들로 흡수되었다. 호머에서의 영혼은 뚜렷하지 않고 가려진 개념인 데 반해, 오르피즘의 문서들에서 영혼은 현재의 육체적 삶을 전후해 존재하는 인격체이다. 몸은 영혼의 무덤으로 여겨졌다. 몸과 영혼의 이원론은 아직 헬레니즘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금욕주의적 성향을 주었다. 금욕주의는 영혼을 육체의 불결함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다. 오르피즘은 지옥과 사후 형벌의 개념과 영혼의 이주라는 교설을 통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헬레니즘 시대의 일반적 의견은, 죽은 후에 영혼은 그들이 진정한 의식을 가질 수 없는 그림자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오르피즘은 그리스도교 교리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유일신론의 경향성은 오르피즘 신학의 커다란 특징이다. 크세노페인의 유명한 인용구에 나타나는 "신은 한 분이다"라는 공식은, BC 3세기 이후의 오르피즘 본문들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죽은 후 영혼의 이주, 내세에 대한 신앙, 사후 심판과 지옥, 장례 예식, 사자(死者) 숭배 등 그리스도교의 전형적인 교리와 관행들은 오르피즘으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다양한 고대의 신앙들은 죽음을 제의적 측면으로 보았고, 마법적인 행위들이 꽃을 피웠다. 죽은 자를 위해 무덤으로 음식과 술을 가져가는 관습이 있었으며, 땅 속으로 통하는 관(pipe)을 통해 술을 붓기도 하였다. 만일 좋은 몫만 배당 받을 수 있다면, 죽음은 음식과 포도주의 향연을 지속적으로 즐기게 하는 것이라는 믿었다. 죽은 자를 위한 식사는 이내 관습이 되어 확산되었고, 이것은 후에 순교자 무덤에서의 그리스도교적 식사로 이어졌다. 또, 저주의 글을 쓴 판을 무덤 속에 묻었는데 이는 죽은 사람이 저주를 옮겨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난폭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나 무덤에 묻히지 않은 사람의 영혼은 그 이웃의 주위를 맴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마법을 사용하여 그들을 소환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한 믿음은 악한 행위에 대한 형벌과 선한 행위에 대한 보상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오르피즘의 가르침과 신피타고라스 학파의 교훈은 후에 불멸성에 대한 이러한 믿음을 공식화시키고 확장시켰다. 사후 세계의 형벌에 대한 오르피즘의 사상은 지옥에 대한 묘사의 기초를 제공했고, 이것은 헬레니즘 시대에 유대교(1 Enoch)와 기독교(베드로 묵시, 도마행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V. 아스클레피우스 제의와 신인사상

그리스도교 혼합주의의 한 단서로서 그리스도교 형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의 밀의종교는 아스클레피우스 제의이다. 이 제의는 떼살리 지방의 트리칼라(Trikkala)에서 기원하여 B.C. 5세기 초부터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신전은 지중해 연안에 약 300여 군데나 되었는데 코스, 코린트(고린도), 아테네(아덴), 페르가멈(버가모) 등의 신전이 대표적이었다.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에서는 뱀과 막대기의 상징을 많이 이용했다. 포로스 출신의 트라시메데스(Thrasymedes)는, 지팡이를 짚고 뱀과 개를 거느린 아스클레피우스의 예배용 신상을 만들었다. 세계 도처에서 의사들은 지팡이와 뱀이 있는 아스클레피우스의 상징을 휴대하였다. 뱀의 껍질갈이는 아름다움을 보장했고, 영원한 젊음과 의학적 치료의 의미를 가진 재생을 상징하였다. 뱀은 예배를 받았고 건강을 호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막대기는 다산과 힘의 상징이었고 또한 생명과 죽음 사이를 결정하는 힘을 가진 신의 상징이었다. 뱀이 지팡이를 휘감는 것은 오래된 신의 초자연적 힘의 상징이었다. 치료 방법으로는 꿈(신이 꿈에 나타나 치료의 행위를 함), 치유기적, 징벌기적(마땅히 바쳐야 할 봉헌물을 바치지 않을 때나 자신이 조롱받을 때 발생), 욕탕 찜질이나 운동 강연 독서 등 심신의학적 치료, 그리고 체계적인 의학 치료(외과 치료기구 사용) 등을 포함하였다. 꿈과 치료는 신과 개인적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었다. 노예나 가난한 자들에게는 댓가없이 음식과 의학적 치료를 제공하였다.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 그 앞에서 자고 꿈꾸고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일체감을 가졌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 치료에 대해 신을 찬양하게 되었고, 신의 영광에 봉헌물과 헌금을 바쳤다.
그들은 또한 아레탈러지스트들(aretalogists)을 고용하여 신들의 위대한 행위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들에 의하면 눈병, 중풍, 종양, 청각 장애, 언어 장애, 무기나 짐승 때문에 입은 상처, 수태 문제, 소화기관 질환 등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있었다. 심지어는 잃은 것을 다시 찾게 해달라는 청원 뿐 아니라, 대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게 해달라, 득실거리는 이를 없애달라, 금광을 발견하게 해달라, 닥쳐오는 투기에서 이기려는 조바심으로 생긴 두통을 낫게 해달라, 깨진 술잔이나 향유 그릇을 원상으로 복구시켜달라는 등의 유별난 간구와 기적도 드물지 않았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신들이나 신인(神人, , divine man)들의 위대한 기적은 아레탈러지(aretalogy)라는 문학 장르 안에 기록되어 남게 되었다. 아레탈러지라는 말은 대략 B.C.300-A.D.300년에 "신의 놀라운 기적에 대한 기록 혹은 찬양"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머튼 스미스(Merton Smith)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훌륭한 선생의 뛰어난 생애에 대한 설명으로 도덕적 교훈을 위한 토대로 이용되었고, 그 선생의 초자연적인 재능 가운데는 흔히 이적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교훈은 폭군의 적개심을 유발하게 되며 결국 그의 손에 순교를 당하게 된다." 아레탈러지는 전기문학의 한 형태이며, 일정한 양식 속에서 기적 행사자의 기적적인 탄생, 반대파와의 투쟁, 그의 순교와 신격화 등을 묘사함으로써 어떤 탁월한 인물에게 신의(또는 신적인) 능력이 존재함을 전제하거나 입증한다. 따라서 이 양식은 특히 제의적 선전과 포교를 위한 훌륭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하나의 전형적인 예는 아이시스(Isis)의 아레탈러지이다. 여기서 그녀는 "에고 에이미"( : 나는 ... 이다)라는 양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Apuleius' Metamorphoses XI.51-53).
기적 이야기 및 이들을 담는 아레탈러지 문학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매우 보편적이었던 신인(神人)사상을 전제로 한다. 일찌기 유헤메러스(Euhemerus)는, 신들이 한때는 모두 인간이었고 또 인간에게는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철학자들은, 사실 왕이야말로 최고의 인간으로서 신적 권리를 갖는 신과 같은 존재라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레테이( : 미덕, 덕망, 영광스런 행위들)가 탁월했을 때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탁월한 영웅이나 지배자에게는 명예가 주어졌으며 사후에 신격화되었고, 시인들에게는 신성을 부여했다. 본시 그리스인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 명확히 구분을 두지 않았다.
아스클레피우스 제의는 다른 어떤 신보다도 아스클레피우스의 형상에 인간적인 면을 가장 잘 반영한다. 반신반인의 개념인식과 기적적인 능력 및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동정심, 인내, 선한 의지 등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교와 병행을 이룬다. 그뿐만 아니라, 아스클레피우스 제의와 신인사상의 영향은 아래에서 살피듯 원시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갈래들을 통하여 광법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하는, 원시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 영광(능력)의 신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리를 잡았는지를 보일 것이다.
(1) 헬레니즘 세계의 신인사상과 기적을 사역의 주된 전제와 내용으로 한 흔적은,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집필할 때 그의 상대역(또는 적대자들)이었던 고린도교회의 여성 예언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앤 와이어(Antoinette Clark Wire)에 의해 처음 재건된 것처럼, 성령을 통하여 그 여성 예언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가졌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축제적 만찬에 참여하였고 배불리 먹었으며 부요하였다(고전 4:8). 하나님의 말씀 곧 신탁은 그들에게 나서 그들에 의해 널리 선포되었다(14:36). 그들은 반대 세력(바울)과 변론하였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그 변론 속에 역사하심을 체험하였다(11:16; 14:34-38). 미련하고 약하고 수치스러웠던 그들은 이제 하나님이 주신 성령과 그 능력 안에서 지혜롭고 강하며 명예로왔다(1:26; 4:10). 그들은 영적인 양식과 음료로 자양을 얻었으며, 배부르고 부요하며 지배권을 얻게 되었다(10:3; 4:8). 그들은 기적과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매개자'가 되었다. "천사의 말"을 하던 그들은(13:1), 예언과 기도(11:5; 14:1-38)로써 하나님과의 신령한 소통을 가졌다. 그들은 헬레니즘적 신인사상에 입각하여 "영광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2) 고린도후서에 반영된 바 바울의 적들에 대한 탐구도,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렇게 기적 행사를 목회 사역의 핵심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보편적인 현상이었나를 확인케 한다. 그들은 "추천서"를 지참하였는데, 디에터 게오르기(Dieter Georigi)가 밝힌 것처럼 이 추천서에는 그들이 행하였던 '기적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치유와 귀신 쫓음 뿐만 아니라 황홀경 체험과 능력의 행사 및 기적(고후 12:11 이하. 비교, 5:13), 신비 체험과 환상 그리고 성공적인 기도(고후 12:1-9), 구약성서에 대한 신비한 영적 주석(고후 3:4-18)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였다. 이러한 능력의 과시는 모세나 예수의 경우처럼 신의 힘을 소유케 하고 또 신인이 되게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선전'은 이미 헬레니즘 세계 신인사상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3) 고린도교회에 여성 예언자들이 자생한 것도 그리고 "큰 사도"(super apostles)에 의한 기적과 신비의 신학이 교회 안에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도 바울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던 듯하다. 바울에게도 기적의 사역은 이미 목회의 중요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일찌기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기적의 행사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 )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살전 1:5). 그 후 고린도교회에 적대 세력이 나타나서 기적의 복음을 선포했을 때에, 바울은 "눈물의 편지"(고후 10-13장. 참조, 고후 2:4)에서 자신을 적들(영광의 신학)의 관점에서 비교하게 한다(고후 11:16-12:10). 그는 우선 다음과 같은 타이틀로써 자신을 적들과 비교한다: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의 씨," "그리스도의 일꾼." 바울 자신의 심오한 개인적 경건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다. 그는 "삼층천"에 이르도록 환상을 보았고, 성공적인 기도는 물론 "계시"까지도 체험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단언한다: "...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1-12).
분명 헬레니즘 세계의 최초의 그리스도교 그룹들 안에서 기적 행사의 사역과 그에 입각한 '영광의 신학'은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였음이 틀림없다. 초대 교회는 아스클레피우스 이야기 등 당시 헬레니즘 시대의 신인사상과 아레탈러지 장르를 빌어 그리스도교의 기적 이야기를 기술하였다. 이러한 경향성은 주후 1세기 그리스도교에서 보편적이었고, 그 기원은 아마도 헬레니즘 세계의 선교적 프라퍼갠다(propaganda)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바울과 원시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헬레니즘 세계에 충실히 토착화되었는가를 보이는 증거이다.


VI. 나가는 말

이 연구는 종교사적인 방법에 의하여 원시 그리스도교 가운데 주로 헬레니즘 세계의 '그리스도교'의 혼합주의적 성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선은 그리이스 철학, 영지주의, 그리고 밀의종교 등 원시 그리스도교 형성과 관련된 헬레니즘 세계의 주목할 만한 종교사적 배경들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학에 창의적으로 유입되었는가를 살폈다. 그 결과, 바울 등 원시 '그리스도교'가 헬레니즘 세계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과연 바울은,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되어 헬라인의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아니, 그것은 헬레니즘 세계의 원시 그리스도교가 헬레니즘으로부터 단지 영향을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우주론, 인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그리고 사후 심판과 내세 신앙, 세례와 그리스도교 예전들 등에서 헬레니즘과의 밀접한 교류를 가졌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차용함으로써 신앙의 골격을 '형성'하여갔음을 의미한다. 바울의 교회들 등 헬레니즘 세계의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헬레니즘 문화에 스스로를 창조적으로 '토착화'하여 간 것이다. 이들 원시 그리스도교의 형성은 이렇게 혼합주의와 토착화의 개념을 배제하고는 '설명'될 수 없다.
바울 신학의 헬레니즘화와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가 없고 신(神) 그리스도만이 남는 종교, 그래서 역사가 사라지고 케리그마의 신화가 남는 종교가 된다는 뜻이다. '역사의 신화화'라고 할까? 이것이 바울로 역사의 예수를 버리게 한 원인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것은 '예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창건이었다. 그러나 바울 신학의 밀의종교화는 몇 가지 중요한 성취를 보인다. 첫째, 헬레니즘과 밀의종교 자체가 가지는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여러 갈래의 예수운동과 달리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보다 더 극적이며 '종교적'인 특성을 가지게 하였다. 둘째, 헬레니즘의 그 대중적 문화와 종교를 수용하고 그리스도교적으로 변용하여 현지인들(이방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복음의 세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셋째, 나아가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들고 예수의 가르침을 밀의종교의 패턴으로 대체함으로써 예수 없는 예수교를 만들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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