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A.연구의 동기와 목적
로마서를 읽으면 읽을 수록 필자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과 로마서 11:21-22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 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嚴威)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리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의 구절이 서로 대조 되면서도 한 성경 서신내에 공존하고 있다는것이었다.
즉, 칼빈주의에 입각하여 볼 때, 로마서 8:29-30은 칼빈주의의 구원의 도리인 이중예정론의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므로 그들은 절대로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타락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는 일은 없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11:21-22은 칼빈주의가 로마서 8:29-30을 해석하여 나온 결론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즉, 여기서는 구원으로 접붙임을 받은 신자도 타락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됨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더우기, 하나님께서 직접 그영원한 형벌로 가는 기로(岐路)에서 그 결정을 하시며 실행하신다는데 그 놀라움이 가중된다고 하겠다.
필자는 이러한 의문과 모순에 대한 대답들을 여러 문헌을 통하여 찾아 보았는데, 그 결과 두 가지의 결론이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 그 첫번째는 로마서 8:29-30에 근거하여 로마서 11:21-22를 해석하는 것이요, 두번째는 로마서 11:21-22을 근거하여 로마서 8:29-30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전자에서는 로마서 8:29-30이 너무나도 확고하므로 로마서 11:21-22은 그 문자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신자의 근신(謹身)을 위한 단순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후자에서는 전자가 내린 로마서 11:21-22의 해석을 편견에 의한 억지 해석으로 보고 그 문자의 의미를 그대로 수용한다. 결국, 신자의 타락 가능성을 시사하게 되며, 로마서 8:29-30을 예지 예정 (믿을것을 미리 아신 후의 예정으로 그 예정은 신자의 계속적인 믿음에의 순종을 전제로 한다)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있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주장을 자신의 것으로 취해야 하며, 또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취한 그것이 더욱 성경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지적 소원이 본 논문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현대적 감각에 뒤진 구태의연(舊態依沿)한 작업이라고 지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의는 예정의 문제를 취급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미 수 백년 전에 충분히 논의되어졌고, 지금에 와서는 별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말의 성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논의는 구원론과 직접적인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누가 구원을 받으며, 어떻게 구원받고, 왜 구원 받는지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의 목적이 있으며, 더불어 그 이해는 개인의 구원에 대한 확증과 선교적 사명의 수행을 위한 방법론적인 측면, 그리고 그밖의 많은 교회 공동체 사역에서도 커다란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로마서 8:29-30과 로마서 11:21-22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체계화된 칼빈의 예정개념과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연구하지 않을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한쪽 (로마서 8:29-30)의 관점에서 다른 한쪽 (로마서 11:21-22)의 내용을 해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것만으로는 의문을 풀기에 부족함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쪽의 일방적인 외침이기 때문이다. 어떤 결정이든 양자(兩者)의 주장을 동일하게 들어보아야 정당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한쪽의 주장을 대표할 만한 인물은 누구일까? 이에대해 와인쿱 (M. B. Wynkoop)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칼빈주의 대한 침된 반제(antithesis)는 웨슬레안이며, 역동적이고 생활을 동반하는 의미를 지닌 성경적 성화 개념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즉, 다른 한 쪽(로마서 11:21-22)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웨슬레의 신학을 알아야 한다.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 2장에서는 기독교 강요를 통해서 칼빈이 직접 언급한 이중예정론의 내용에 대해 알아 보겠다. 칼빈의 사상은 역시 최종판 기독교강요에 나타나 있으므로 그것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 하겠다. 한편, 어떤 방대한 사상일지라도 그 사상의 핵심적 항목은 있기 마련이므로 칼빈 자신이 직접 가장 짧게 요약하여 나타낸 기독교 강요를 통해 이중예정론의 개념을 먼저 정리할 것이다.
제 3장에서는 이중예정론의 체계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칼빈주의 5대교리에 대해서 알아 보겠다. 먼저 칼빈주의 5대 교리가 나오게된 배경을 밝히고, 다음으로 그 교리의 내용을 차례차례 웨스트민스트 신앙 고백서와 칼빈주의 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정리할 것이다.
제 4장에서는 웨슬레 신학을 통해서 이중예정론에 대한 비평적 이해를 시도 하여,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각 항목마다 웨슬레의 견해를 통해 재조명 해 보겠다. 이것은 앞서 밝힌대로 칼빈주의 5대 교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모순적인 내용이 성경에 많이 나타나므로, 칼빈주의의 구원의 도리와는 색다른 면이 있는 웨슬레의 신학사상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구원의 도리를 점검해 보는 것이며, 이것은 보다 나은 성경적 신학사상의 정립을 위해서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제 5장 결론에서는 본론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하겠고, 본 논문의 결과와 의의(意義)를 밝히겠다.
그런데, 각 장(章)의 진행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본 논문은 한 편(로마서 8:29-30)의 용어를 중심축으로 하여 논의가 전개된다. 즉, 이중예정론을 가운데 놓고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측과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측이 각기 최선을 다 하여 자기의 주장과 해설을 시도하는 형식으로 본 논문은 진행된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중예정론에 대한 전체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St. Augustine), 현대에 와서 새로운 해석을 가한 바르트(Karl Barth)를 빼놓을 수 없으나 본 논문에서는 칼빈주의에 한정함을 밝힌다.
Ⅱ. 기독교강요를 통해 본 이중예정론 의 기본적 이해
A. 기독교강요에 대하여
(1) 집필동기와 목적
기독교강요는 라틴어로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인데,institutio(강요)란 `원리들' 혹은 '주된 교의적 주제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독교강요는 신학의 모든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주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와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자신이 가장 중시한 책이며, 칼빈주의의 전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안에는 칼빈 사상의 종합적인 이론이 나타나 있으며, 그 자체로서 충분한 이론서가 된다. 그러므로, 칼빈과 칼빈주의에 있어서 기독교강요는 참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칼빈이 이 기독교강요를 집필하게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기독교강요 초판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칼빈이 기독교강요 초판을 작성하여 출판하게 된 해인 1536년에 그는 독일의 바젤(Basel)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의 노용(Noyon)을 떠나 바젤에 머무르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않는 곳을 찾아서 여러가지 질문들을 해오는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않고 공부를 계속하고자하는 욕망 때문이었고, 둘째는 당시 프랑스에 있었던 프로테스탄트의 박해의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칼빈이 바젤에 있는 동안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었고 그러던 중 칼빈의 용감한 친구인 에띠엔 드 라 포르즈(Etienne de la Forge)가 사형에 처해 졌다. 이에대해 프랑스왕(프란시스 Ⅰ세,1515-1547)은 희생자들에대한 외국의 동정을 막기 위해 2월 1일의 선언에서 처벌당한 자들은 단지 재세례파들과 내란음모를 꾸민 자들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서 그들은 신실하고 성도다운 사람들이었으며 거룩한 순교자들이었다. 왕이 잔인성 위에 중상의 죄까지 더했다는 사실은 절대 불문에 붙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므로 칼빈이 기독교강요(초판)을 출판하게된 목적은 동료 신자들에 대한 거짓된 비난을 옹호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기독교강요가 쓰여진 목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강요 초판 자체에 칼빈 자신이 이 책을 집필했던 원래의 목적을 밝혀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어떤 기초적인 사실들을 전달함으로써 그것에의해 종교적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참된 경건에 도달하게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기독교강요 초판의 원래 목적은 기독교의 기초적 사실을 전달하기위한 것이였으나,주변 상황에의해 박해자들에 대한 옹호의 성격을 띄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기독교강요 초판에 대한 집필 동기와 목적을 알아 보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될 재판들과 최종판의 집필 동기(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1539년에 독일의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에서 출판된 기독교강요 제2판에서 칼빈이 독자들에게 간단히 쓴 서문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원하는 신학 후보생들에게 준비를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독교강요 최종판인 1539년판(제네바)에도 '신학생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읽기위한 준비를 하게'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었다.
그러므로, 종합해 볼때 기독교강요는 처음에는 기독교의 기초적인 사실들을 설명하고 자기 동료들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학생들을 위한 성경교리의 요약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개정판들의 구성과 특징
가. 초판 (1536년 3월, 바젤)
초판은 1536년 3월에 바젤(Basel)의 출판업자 토마스 플래터(Thomas Platter)와 발사스 라시우스(Balthasar Lasius)에 의해 출판 되었다. 이것은 포켓형의 단권으로 된 516페이지의 적은 분량이었는데, 1장은 율법, 2장은 신조, 3장은 주기도문, 4장은 성례전(세례와 성찬)으로서 루터의 요리문답의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5장은 거짓된 성례, 6장은 기독자의 자유로 총 여섯장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권두에는 '왕에게 보내는 서간'(Epistle of the King)이 인쇄되어 있다.
형식에 있어서 5장과 6장은 1-4장의 요리문답 형식의 교훈과는 달리 변증적 형식의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제5장에서 칼빈은 종부성사와 결혼예식, 그리고 견진례와 고해성사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제6장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는 복음에 입각하여 형성된다는 사상을 피력하였는데, 이것은 1934년의 벽보비난사건 의 대답이 되었다.
초판의 몇몇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저자는 칼빈 자신의 이름 그대로 하지 않았으며 '마르티아누스 루카니우스'(Martianus Lucanius)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둘째, 이것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발행된 지 1년도 못되어서 완전히 매진되었는데, 라틴어로 출판되어 독자층이 비교적 소수의 지식층에 한정됨을 생각할 때 상당한 호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 제 2판 (1539년 말, 스트라스부르그)
제2판은 1539년 말경에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의 출판업자 웬델린 리헬(Wendelin Rihel)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것은 본래(초판)의 내용 중 어떤 부분들은 다시 보충해서 새로운 제목들을 달았고, 그 만큼 새로운 사실들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책의 두께도 세 배로 늘어났다. 즉, 본래 6장이던 것이 17장이 되었다. (1장은 하나님의 지식, 2장은 인간의 지식, 3장은 율법, 4장은 믿음(사도신경), 5장은 회개, 6장은 믿음에 대한 의인(義認), 7장은 구약과 신약, 8장은 예정, 9장은 기도, 10장은 성례, 11장은 세례, 12장은 주의 만찬, 13장은 기독인의 자유, 14장은 교회의 권위(Ecclesiastical Power), 15장은 시민의 정부, 16장은 5가지의 거짓된 성례, 17장은 기독인의 삶)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판과 같이 라틴어로 쓰여져 있으며, 프랑스에서의 보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철자 바꿔쓰기로 개조한 알쿠이누스(Alcuinus)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둘째, 초판이 포켓용으로 된 소책자라면 재판부터는 책상용으로서 학생들을 위한 성경교리의 요약으로 확대되었다. 436페이지의 분량에, 크기는 13x8인치였으며 독자들의 메모를 위해 넓은 여백을 마련해 두었다. 세째, 재침례교파, 카톨릭, 세베투스, 스트라스부르그의 개혁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얻은 결론들을 많이 수록해 놓고 있다. 본 논문의 주제인 이중예정론도 스트라스부르그의 개혁자들과의 논쟁과 부처(Bucer)의 영향을 통해 2판에 추가된 것이다. 네째, 어거스틴에 대한 자료가 상당량 보강된다. 이를 통해, 초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칼빈의 기독교적 인류학과 교회론에 대한 연구가 어거스틴에게서 상당히 힘입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2판에서는 교부 존 크리소스톰의 영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다섯째, 이 라틴어 제2판은 1941년, 칼빈이 제네바로 돌아온 후 몇 주 후에 출판업자 쟝 지라드(Jean Girard)에 의해 불어판으로 출판된다. 이것은 우아하고 세련된 문체로 된 최초의 불어판 신학서로 인정되고 있으나, 당시 프랑스에서는 아직 프로테스탄트를 용인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 책의 많은 사본이 프랑스의 교계와 정치계에 불안을 야기하게 되었고, 결국 1544년 2월 노틀담에서 소각되고 공식적으로 금서가 되었다.
다. 제 3판 (1543년, 제네바)
역시 라틴어로 출판되었으며, 1545년에 불어로 번역되었다. 제2판보다 4장이 증보되어 총 21장이 되었다. 증보된 장들의 내용은 맹세, 인간의 전망, 교회의 권한, 교회 조직에 관한 것이다.
라. 제 4판 (1550년, 제네바)
라틴어로 되어 있으며, 1년 후 불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장(章)의 수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종전과는 달리 각 장들이 몇 단락으로 세분되어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 판은 여러 판을 거듭하며 출판되었는데, 성경과 성경의 권위에대해서, 그리고 성자 숭배, 형상 숭배에 관한 것을 논박하고, 인간 양심을 해설한 것이 증보 되었다.
마. 최종판 (1559년, 제네바)
기독교강요 최종판은 1559년 제네바의 로베르 에띠엔(Robert Etienne) 출판사를 통해 나왔으며, 다음 해에 불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것은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전 4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제1권은 신론으로 모두 18장이며, 제2권은 기독론으로 총 17장이고, 제3권은 성령론으로 25장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제4권은 교회론인데 20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체적으보면 총 80장이다.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최종판은 칼빈이 극도의 병마에 시달리면서 다가오는 죽음의 불안과 함께 자신의 저서의 새롭고 최종적인 결정판을 출간할 것을 결심하며 쓴 것이다. 둘째, 과거의 판들과 비교하여 수정이 거의 없다. 칼빈 역시 자신의 저서에 어떤 결함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결점들을 보완하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이러한 이유의 첨가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저서를 거의 수정하지 않았다. 주요한 개정은 대체로 보다 체계화된 구상과 본질적인 논리에 따라 내용의 새로운 배열에 역점을 두고 행해졌다. 세째, 최종판은 개혁주의 신교의 신학적 대전(Theologica Summa)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칼빈주의 정통주의의 급진적 성장의 큰 배경이 되었다.
(3) 기독교강요의 원천
앞서 우리는 기독교강요의 형성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 보았다. 그런데, 모든 철학적, 도덕적, 신학적 이론의 역사는 가장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사상으로 보여지는 이론도 실제로는 그 주창자의 창조적인 힘보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기존의 사상을 새롭게 배열하는 독창성에 더 많이 기인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칼빈 역시 이 일반적 법칙에 예외적인 인물은 아니며, 따라서 칼빈 역시 선대의 여러 업적과 사상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과업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칼빈이 자신의 기독교강요를 쓰는데 참조되었던 사상의 원천은 무었이었을까? 웬델(Wendel)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종합하고 있다. 첫째, 다른 어떤 개혁가 보다도 구약성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초기 교회의 교부들의 많은 저서들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미스티우스(Themistius), 키케로 뿐만 아니라 존 크리소스톰, 오리겐(Origen), 어거스틴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하게 인용하였다. 초기에 칼빈은 그리이스 교부들 중에서 크리소스톰을 특히 선호한 것처럼 보이며, 점차 어거스틴의 영향이 증대하였다. 특히, 교리에 관한 문제는 전적으로 어거스틴에게서 차용하였다. 세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중세의 일부 사상에 보다 밀접해 있다.(어떤 신학자는 그 근거를 로마법의 영향이라고 보기도 한다.) 네째, 우리는 칼빈의 보다 동시대의 요인 중에서 인본주의자들과 개혁가들에게 당연히 촛점을 맞추게 된다. 칼빈이 영향받은 인문주의자들로는 발라(Valla), 에라스무스(Erasmus), 부드(Bude)등이 있으며, 개혁파들로는 루터, 멜랑톤, 부처등이 있다.
한편, 부처는 본 논문의 주제인 이중예정론과 관련하여 칼빈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었으므로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칼빈은 1537년 부처와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첫 대면을 하기 전에도 이미 통신 연락을 하였고, 최소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 대한 그의 주석을 탐독하였던 것 같다. 예정론에 있어서 부처와 칼빈은 인간의 범주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받은 자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실제적인 관찰에서 동일하게 출발한다. (이것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1936년판에서 일찌기 나타난다.) 또한, 칼빈이 이중예정론의 보다 완벽한 체계를 구축한 1939-1941년판의 기독교강요에서 그는 부처의 [로마서 주석](Commentery upon the Espitle to the Romans)에서 부처의 독특한 논지를 활용하였고, 예정론의 실제적 중요성과 그 결정적이고 불가피한 특성, 또 로마서 8장 30절에 따른 하나님의 소명과 칭의와 영광에 의한 예정론의 역활 등 부처파의 신학 이론적 관점을 채택하였다.
따라서, 칼빈의 예정론은 부처와 비교하여 예정과 예지를 뚜렷이 구분하고(부처에게 있어서 예지론과 예정론은 서로 연합), 선택과 유기의 균형을 분명히 하였다는(부처에게 있어서는 유기가 점차 이면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음) 상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의 예정관은 칼빈에게 있어서 지대한 영향이 되었다
B.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이중예정론의 내용
(1) 칼빈 자신의 해설판에 나타난 예정 개념
존 맥닐(John T. McNeil)은 `1936년에 라틴어 초판이 나온 직후 불어판이 나왔다는 것에 회의적이었으나 역사가들은 칼빈이 1937년에 쓴 불어로 된 기독교강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이래 340년이 지나서야 하나의 원문으로된 책(액센트없이 고딕체로 된)이 1877년 파리에서 보르디에(H. Bordier)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책은 초판 기독교강요에 대한 칼빈 자신의 요약이며, 원 제목(기독교 신앙의 교의와 신앙고백:Introduction et Confession de Foy)이 말하듯이 그 내용은 로마 카톨릭 신학에 대한 공격이나 논쟁을 삼가고 기독교 신앙의 적극적인 주장들을 제시하였다.
이 책은 모두 33개의 장(또는 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3절에 '선택과 예정'이란 항목을 두었다. 비록 2페이지로 기술된 작은 분량의 내용이지만 칼빈 자신이 직접 쓴 가장 요약된(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에 있어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이 책에 나타나 있는 예정 개념의 주요 명제들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 어떤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나 어떤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신다. 둘째, 하나님께서 영원한 선택과 영원한 심판의 이유를 밝히시지는 않으셨으나 그 결정은 의로운 것이다. 세째, 우리가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소유하여 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했을진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더 이상 캐물을 필요가 없다. 위의 세가지 명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논의될 것이요, 이중예정 개념의 밑바닥에서 계속 부르짖을 것이다.
(2) 최종판에 나타난 이중예정론의 내용
우리는 앞서 기독교강요의 최종판은 전 4권으로 되어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그 4권 중 예정론에 관련된 항목은 3권의 21장부터 24장까지이다. 제21장의 제목은 < 영원한 선택 : 하나님은 이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은 구원에, 또 어떤 사람은 멸망에 처하도록 예정하셨다 >이며, 모두 7절로 되어 있다. 제22장의 제목은 < 성경의 증거에 의한 이 교리의 확인 >이며, 총 11절로 되어 있다. 제23장의 제목은 < 이 교리를 겨냥한 거짓되고 부당한 비난들에 대한 반박 >으로, 14절로 되어 있다. 마지막 제24장의 제목은 < 선택은 하나님의 소명으로 확인되나, 악인은 예정된 공정한 멸망을 자초한다 >이며, 모두 17절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기독교강요의 서술양식은 '대립 구조'이다. 이런 구조성을 파악하면 기독교강요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데, 이런 성질을 통해 21-24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21-24장 전체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자유 대(對) 인간의 자유를 대립 시켰다. 22장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운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대 우리의 공적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豫知)에 따른 선택을 대립 시켰다. 23장에서는 예정설의 납득하기 어려운 본질 대 성령의 한계를 벗어나 그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인간 이성의 노력을 대립 시켰다. 24장에서는 선택과 유기의 은밀한 섭리 대 인간 의지를 다소 인정하는 여러가지 이론을 대립 시켰다.}
가. 제 21장 (영원한 선택: 영생과 영벌의 예정, 7절)
1-4절에서 칼빈은 < 예정 교리의 진술에 있어서 무례한 논의나 침묵은 모두 그릇되다 >고 하였다. 1절에서 칼빈은 예정론의 필요성과 그 유익을 밝혔는데, <필요성>은 우리의 구원이 어디에서 오는 지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 이며, <유익>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서 옴을 알아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취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동절에서 칼빈은 예정론의 지나친 호기심으로 인한 위험성을 지적했는데, 그 이유는 주님께서 의도하신 것보다 인간이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합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2절에서 그는 예정 교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구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성서에서 정해준 한계까지만 언급하고 그 외는 '박학한 무지'의 상태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고 하였다. 3절에서는 선택의 교리에 대해 침묵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침묵해서는 안되며, 침묵은 성경의 진리를 아는 데 발전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4절에서는 예정 교리에 위험성이 있다는 반대에 대한 답변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러한 반대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신성 모독과 같은 것이며, 예정설은 삼위일체설이나 창조설처럼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5-7절에서 칼빈은 < 예정을 이스라엘 민족과 각 개인에 관련해서 설명 >하였다. 5절에서는 예정과 하나님의 예지를 구분하여 정의하고, 이스라엘의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즉, 예지란 하나님은 과거에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모는 일도 역시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므로, 하나님은 모든 일을 미래도 과거도 아닌 오직 현재의 일로 알고 계신다는 것이요, 예정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신조로 이로써 하나님은 각 인간이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한 뜻을 결정하신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선택도 하나님의 예정의 한 예이다. 6절에서는 5절의 내용을 이스라엘 개인들에게 적용시킴으로써 개인의 선택과 유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나타내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에 있어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다 선택된 것이 아니라 보다 한정된 두번째 선택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에 대한 선택으로) 이스마엘에 대한 이삭, 에서에 대한 야곱의 선택이 그 예가 된다. 7절에서는 실질적인 선택은 개인에 대한 선택임을 강조하고,`남은 자'(Remnant)의 예로 그것을 설명하였다.
마지막에서 칼빈은 선택의 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영원 불변의 계획에 의해 구원해 주실 자와 파멸하도록 버려둘 자를 오래 전에 이미 확정해 놓으셨다. 둘째, 선택은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 것이며, 유기는 하나님의 납득하기 어려운 심판에 근거하며 정당하다. 세째, 선택자에게는 소명과 의인(義認)이 있으나, 유기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지식과 성화(聖化)를 단절시키신다.
나. 제 22장 (성경의 증거에 의한 예정 교리의 확인, 11절)
1-6절에서 칼빈은 < 선택은 인간의 공적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에 의한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절에서는 선택 대(對) 공적에 대한 예지를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1:4-5("창세 전에 ... 우리를 택하사")의 예를 들어 우리가 선택되는 것은 우리의 가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하였다. 2절에서는 에베소서 1:4-5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하면서, 선택은 창조 이전의 일이며 공적에 대한 예지와는 무관한 일임을 설명하였다. 3절에서는 거룩의 문제를 언급하여, 선택받음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지 이미 성스럽기 때문에 선택받는 것이 아님을 디모데후서 1:9("하나님이 우리를 ...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 대로 하심이 아니요")과 에베소서 1:4("... 우리를 택하사 ...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시려고")을 결합하여 논증하였다. 4절에서 칼빈은 로마서 9-11장을 예정론을 위한 중요한 장으로 보고, 9:6("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예정론을 전개해 나같다. 5절에서는 야곱과 에서의 경우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구별한 것은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의 부르심 여부에 따라 된 것임을 주장하며 행위에 대한 주장을 논박 하였고, 다른 예로 이삭과 이스마엘,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들었다.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부여하신 모든 지상적 복은 선택된 자의 표상이며, 베드로도 은밀한 예정설을 가르쳤으며(베드로전서 1:2,19,20), 출애굽기 33:19("...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대한 증거라고 하였다.
7-11절에서 칼빈은 < 예정의 성경적 근거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 >한다. 7절에서는 요한복음을 통해 선택에 관한 그리스도의 증거를 제시하였는데, 요한복음 6:37, 6:39, 6:44, 10:28, 13:18, 17:6, 17:9을 그 예로 들었다. 8절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교부들의 생각을 평가하였는데, 암브로스와 오리겐, 제롬이 주장한 '하나님의 예정은 각 사람이 자기의 은혜를 선용하리라고 예견하신 대로 사람들 사이에 은혜를 나누어 주신 것'이라는 견해를 반박하고, 한 때는 어거스틴도 이 견해를 가졌었다고 하였다. 9절에서는 아퀴나스를 반박하여, 사람의 공로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가 선택과 연결되는 이유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런 공로를 가능케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10절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보편성(普遍性)과 특수성(特殊性)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요한복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는 부르심의 보편성을, 요한복음 1: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는 부르심(선택)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11절에서 칼빈은 유기되는 것도 행위 때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로마서 9:18("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强愎)케 하시느니라")을 그 근거 구절로 하였다.
다. 제 23장 (예정 교리의 비난에 대한 반박, 14절)
첫째 반대는 "선택의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폭군(暴君)"이라는 것으로, 칼빈은 이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의(義)의 표준'이며, 하나님은 버림을 받은 자에 대해서 공정하시다"고 주장하였다.
둘째 반대는 "선택 교리는 사람에게서 죄책과 책임감을 제거한다"는 것으로, 이에 대해 칼빈은 9절에서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하나님의 계율은 (비록 우리는 알 수 없으나) 그 자체의 공평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공평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다.
세번째 반대는 "선택의 교리는 하나님이 개인에 대해서 편애하신다는 견해를 거져 온다"는 것으로, 이에 대해 칼빈은 "공적이 구별되지 않는 두 사람 중 하나님이 한 사람은 버리시고 다른 한 사람은 받아들이시는 일은 어떠한가? -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유로운 자비(慈悲) 뿐이다" 라고 하였다.
네번째 반대는 "선택의 교리로 인해 인간의 곧은 생활에 대한 열정이 모두 파괴되어 버린다"는 것으로, 칼빈은 이에 대해 "그러나, 에베소서 1:4에서 바울은 우리가 선택된 목적이 거룩하고 흠없는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만일 선택의 목표가 거룩한 생활에 있다면, 선택은 아무 선행도 하지않는 구실을 우리에게 준다기 보다도 보다도 도리어 우리의 마음을 거룩한 생활에 집중하겠다는 열의를 일으키며 자극할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 (12절)
다섯째 반대는 "선택 교리는 모든 충고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이에대해 칼빈은 13절에서 "어거스틴이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는 거침없이 하나님의 진실을 주장해야 한다"는 말로 그 답변을 대신하고 있다.
라. 제 24장 (선택은 하나님의 소명으로 확인되나, 악인은 예정된 공
정한 멸망을 자초한다, 17절)
1-5절에서 칼빈은 < 선택된 자들은 결국 부름을 받아 그리스도의 무리 속에 합쳐진다 >고 주장하였다. 1절에서는 소명은 선택에 의존하며 전적인 은혜의 사역임을 설명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아버지라 명하고 또 자신의 자녀를 불러 믿음의 한 가족을 이루시는 것은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비에 대한 증거가 되지, 인간의 반응에 따라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2절에서는 부름 자체의 양상을 통해 볼 때,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하며, 부르심은 '말씀의 가르침'과 '성령의 계몽' 속에 있다고 하였다. 3절에서는 믿음은 선택의 결과이고, 선택이 믿음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4절에서 칼빈은 '선택의 확신을 얻고자하는 올바른 길과 그릇된 길'에 대해서 피력하였는데,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탐구하는 것은 치명적 함정이라고 지적하면서 로마서 8:33("누가 능히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에 따라 안식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준다고 하였다. 마지막 5절에서는 선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해되고 자각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만일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와 교통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양자로 선택되었음에 대해 충분하고도 확고한 증거를 갖게될 것이라고 하였다.
6-11절에서 칼빈은 < 그리스도의 보호하에서 선택된 자들의 견인(牽引)은 확실함 >을 밝히며, 반대 견해자들이 주장하는 성경 구절을 해석하였다. 6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의 선택이 불변하며 영속하다는 확신을 주신다고 하였으며, 그래도 남아있는 미래 상태에 대한 걱정은 마태복음 22: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을 들어 성도의 견인은 선택받의 자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여 안심을 주었다. 7절에서는 진실로 믿는 자는 낙오되 수 없으며, 잠시동안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가 떨어져 나간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매달린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8절에서는 일반적인 부름과 개별적인(특별한) 부름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9절에서는 유다의 예가 예정 교리의 반증이 되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17:12("...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을 통해 볼 때 유다는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단지 양의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며, 사도라는 직책에 선택된 것이지 구원을 위해 선택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10절에서는 선택은 부름받기 전에 되어지며, 따라서 선택의 씨앗은 없다고 하였는데, 덧붙여 말하기를 비록 선택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로 멸망하지 않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죄인들과 동일하다고 하였다. 11절에서는 인간에게 선택의 씨앗이 있다는 생각에 대해 그것은 성서적 보장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씨앗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속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12-17절에서 칼빈은 <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자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는가 ? >에 대해서 다루었다. 12절에서는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 방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예정대로 되어지도록 그들에게서 말씀을 듣는 능력을 빼앗으시며, 혹은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그들의 눈을 어둡게하고 지각을 마비시키신다고 하였다. 13절에서는 바로의 예를 들어 때로는 말씀의 선포가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가 있다고 하였다. 14절에서는 마음이 강퍅하게 되는 원인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타락한 자들이 말씀을 듣고도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 타락한 자들을 저주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15-16절에서는 예정 교리에 상응하는 성경 구절을 해석하였다. ①에스겔 33:11("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 이것은 사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크신 친절함과 선하심에 응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죄가 이중(二重)으로 됨을 신자들에게 확신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②디모데전서 2:3,4("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모든 사람, 즉 모든 계층의 사람(예, 왕과 통치자)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막지 않으며 오히려 자비를 마구 퍼부어 주신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17절에서는 결론을 맺으면서 그 밖의 반대론들에 대해 답하고 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약속과 예정이라는 이중의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것인데, 칼빈은 그것이 "순간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보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있다"고 하였다. 두번째는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죄를 지어 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 아닌 사람들까지 창세 전에 버리신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왜 한송이 꽃처럼 한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나 ?"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이 만드신 것을 미워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옳은 말이나 타락한 자들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17절 마지막에서 칼빈은 바울과 어거스틴을 들어 최후의 변론을 하고 있다. 바울 :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 하느뇨"(롬 9:20). 어거스틴 : "인간적 판단의 척도에 의해 신의 심판을 측정하고자 하는 자는 거꾸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Ⅲ.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통해 본 이 중예정론의 체계적 이해
A. 칼빈주의 5대교리의 유래
(1) 알미니우스의 등장과 알미니안 5대 교리
칼빈이 죽은 지 25년 후인 1589년에 학식있는 평신도인 코른헤르트(D. V. Koornheert)는 네덜란드에서 신적 작정에 대한 베자(Theodore Beza)의 타락전 예정설 이론을 논박하는 학술 강연과 저서를 발행하여 신학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베자가 말한 대로 만약 하나님께서 죄의 원인이시라면 하나님은 바로 죄의 창시자가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코른헤르트는 절대 예정론에 대한 반대 저술을 내는 동시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규합하여 이른바 화란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의 수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도전에 접한 개혁 교회의 지도자들은 당시 논리에 뛰어나고 토론의 명수였던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 1560-1609)에게 코른헤르트의 이론에 대한 반박문을 기초하도록 위탁했다. 이에 알미니우스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성경, 특히 로마서에서의 예정에 관한 진지한 연구로 부터 시작했는데, 그의 로마서에 대한 연구가 깊어질수록 바울의 실제적인 교훈은 오히려 베자가 주장한 예정에 대한 논박이었다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개인 구원은 항상 신적 작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 이루어 졌으며,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의(義)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신적 작정에 관한 타락전 예정설의 개념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부하였다. ① 그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② 과거 1500년간 그것은 책임있는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지도 않았었고, 전체 교회에 의해 수용되지도 않았었다. ③ 그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든다. ④ 그것은 창조되지 않은 사람에 관해 선택의 작정을 만든다.
그러나 알미니우스는 예정이나 그에 관한 성경적 교훈을 부인하지 않았는데, 그는 네가지 작정(decrees)에 비추어 자신의 예정 이론을 다음과 같이 정립하였다. 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파괴하는 자로 ...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작정하셨다. 그리스도는 선택된 사람(Elect Man) 이다. 각 개인들은 구원에 선택되어지지 못했으나 그리스도는 인간들의 유일한 구세주로 선택되었다. 구원의 방법은 예정되었다. 이런 면에서 예정의 전체 개념이 바뀌는데, ⓐ 특별한 인간 개인에 대한 강조에서 그리스도로, ⓑ 구원의 조건이 신적 작정에서 그리스도로 변화되었다. 즉, 선택이나 신적 작정이 구세주요 구원의 문이 되는 대신에, 그리스도가 구세주요 구원의 문이 되게 하였다. ② 하나님은 회개하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시기로 작정하셨다. 따라서, 주된 강조점은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이다. ③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한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부여되었다. 그것은 선행적 은총으로, 모든 인류로 하여금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 은총에 의하여 인간들은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④ 하나님께서는 신적 예지에 근거하여 예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믿을 사람과 믿지 않을 사람을 아시고 거기에 따라 예정하신다.
이와같은 알미니우스의 주장에 대해 칼빈주의자들은 잠잠할 수 없었고, 그를 이단자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알미니우스는 교회의 친교를 깨뜨리지 않고 문제들을 논의하고 결정짓도록 회의를 가지려고 애썼으나, 그러한 공개 토론회는 그가 죽을 때까지 거부되었다.
알미니우스가 사망하자 후계자인 시몬 에피스코피우스(Simon Episcopius, 1583-1643)가 알미니우스파의 대표가 되었고, 자신들의 입장을 체계화하고 발전 시켰다. 그 후 알미니우스파는 1610년에 우이텐보게르(Uytenbogaert)가 기초하고 46명의 목사들이 서명한 다섯 조항의 항변론(Articuli Arminiani Sive Remonstrantiae)을 세상에 공개하여 그들의 입장을 밝히며 칼빈주의자들을 공격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항> 하나님은 그가 예지하신 대로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속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정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끝까지 불신앙을 고집하는 자에게 영원한 형벌을 주시기로 정하셨다. 이 항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內包)되어 있다. ① 죄인은 하나님의 성령과 협동하여 중생(重生)이 되든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여 멸망하든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② 인간의 의지(意志)는 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종속되어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역사도 인간의 자유(自由)를 간섭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신다. ③ 믿음은 인간의 행위이며, 중생에 선행(先行)한다. <제 2항>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으로써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이 되셨으나, 오직 그를 믿는 자들만이 예비된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누가 믿을 것인 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으며, 누가 구원을 위하여 선택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인간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선택은 인간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제약되는 것이다. <제 3항> 인간은 본성으로(In Nature) 부패되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 그런고로, 그는 믿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되기에 앞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나타났는데, 이로써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제 4항> 인간 속에 선(善)이라고 일컬어 질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이 은총은 인간 자신의 성향에 상반되게 행동하도록 그를 강요하지 않으며, 저항을 받고 끝내 거절될 수 있다. 즉, 죄인이 응하기 전에는 성령은 생명은 줄 수 없으며 성령은 그로 하여금 그들과 더불어 그의 길을 취하게 하는 자들만 그리스도에게로 이끄신다. < 제 5항> 신자로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그들이 직면하게 될 모든 시험을 견디어 내도록 풍성한 은총과 능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은혜와 능력을 소홀히 함으로써 은혜에서 떨어져 결국 멸망 당할 수 있다. 즉, 믿음으로 인해 참으로 중생한 자도 그들의 믿음을 유지하지 못함으로 그들의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 모두 다 이 점에 일치하지는 않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신자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며 죄인이 일단 중생하면 결코 유기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결국 위와 같은 5개 조항의 항변론(抗辨論)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예지에 기초한 - 조건적 선택(Conditional Election). ② 인간의 개인적 믿음에 의해 제한되어 지는 - 만인 구속설(Universal Atonement). ③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선을 행할 수 없는 - 자연적 무능력(Natural Inablity). ④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 - 인간의 선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으로서 , 죄인들의 사악한 의지에 의하여 거부되어지고 따라서 그 효과를 잃을 수도 있다. ⑤ 조건적 견인(Conditional Perseverence) -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에서 충분한 은총을 주실지라도 인간은 이것을 무시하고 은총에서 떠나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 있다.
(2) 돌트 총회와 칼빈주의 5대 교리
이렇게 알미니우스파가 5개항의 항변론을 들고 당시 칼빈주의 기독교 국가였던 네덜란드 정부에 항의하자, 개혁교회안에 큰 파문이 되었고, 합리적인 사상을 가진 젊은 층간에는 상당이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물의가 일어나자 이 문제의 수습과 해결을 위해 돌트총회(The Synod of Dort)를 열게 되었다.
돌트총회는 네덜란드 남부지방 도시인 돌트에서 1618년 11월 13일에 시작되어, 154번의 회의를 계속한 후에 1619년 5월 9일에 끝났다. 102명의 네덜란드 정통 칼빈주의자들과 영국, 스코틀랜드 등지의 외국에서 온 28명의 칼빈주의 대표자들이 회의의 공식적인 구성원이었다. 알미니안의 대표자들은 13명이 참석했으나 그들은 이미 교회와 국가의 전 영역에 대한 항거와 그들의 신학적인 입장때문에 반역죄를 선고받았으며, 따라서 그들은 발언권과 선거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알미니안주의의 항변론은 정죄되었고 칼빈주의적인 반항변(反抗變, Contra Remonstrantia)이 신앙 규범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의 그 가혹한 억압하에서도 알미니우스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고, 알미니안주의 목사들은 다른 여러 나라에 가서 그들이 굳게 믿었던 교리를 전하였다.)
그러나, 이 결정은 결과론적으로 볼 때는 칼빈주의의 신학적 승리였으나, 이와 동시에 정치적 연합(결탁)에 의한 승리이기도 했다. 돌트회의는 사실상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토론된 칼빈주의자들만의 일방적 회의였으며, 그 결과 나오게 된 결론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회의는 칼빈적 사상을 잘 요약하고, 체계화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하겠으나, 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한 대표적 실례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돌트총회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확립하게 되었는데, 알미니안 5대 조항과 비교할 때,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 무조건적 선택 또는 특별 예정.(Unconditional Election or Particular Predestination) ② 단지 선택된 사람들만 위한 - 제한적 구속.(Limited tonement) ③ 전적 무능력 또는 전적 타락.(Total Inablity or Total Depravity) - 중생은 회심보다 우선한다. ④ 불가항력적 은총 또는 유효한 하나님의 부르심.(Irresistible Grace or Effectual Calling) - 하나님께로부터 은총을 부여받은 인간은 구원을 받는다. 그는 은총을 거부할 수 없다. ⑤ 최종적 견인(Final Perseverance) - 무조건적으로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 이것은 그 첫자를 조합하여 'TULIP'이라 불린다.
B. 이중예정론의 체계화된 모습으로서의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내용
(1) 인간의 전적 무능력 (Total Inablity, 또는 전적 부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원(原) 부패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고, 행할 능력도 없고, 선한 것이 그 속에 없으며, 전적으로 악을 행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이 원 부패로 부터 모든 실제적인 범죄들이 나온다." 따라서, 인간의 전적 무능력이라 함은 본질상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고 비정상적이고 죄악되다는 것이며, 그 결과 인간은 아무런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에 관하여는 스스로 아무 것도 행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직 완전하신 하나님만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수 있으며 복음을 깨닫는 것 조차도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전적 무능력의 상태를 스펄젼(Charles H. Spurgeon) 목사는 예레미아 13:23("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의 구스인(흑인)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흑인이 그 피부 색깔을 바꾸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듯이, 인간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무엇을 한다는 것 역시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뵈트너(Loraine Boettner)는 전적 무능력을 인간의 자유의지와 겸하여 설명하기를 [ 날개를 다친 새]와 같다고 하였다. 즉, 날개를 다친 새는 하늘을 날아다닐 자유를 가지고 있어도 날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자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전적 무능력한 인간이 복음을 대하는 상태를 [교양없는 사람]에 비유하여, 교양없는 사람이 예술품을 볼 때 다만 눈에 띄는 하나의 사물로는 볼 수 있지만 그 미(美)를 감지하지 못하듯이 전적 무능력한 사람(중생하지 못한 사람)이 복음을 대할 때도 이와 동일하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전적 무능력의 중생하지 못한 인간도 일반은총을 받아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덕행들에는 하나의 큰 결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덕행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있지않다는 치명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해적 집단]의 예를 들었는데, 해적의 집단에서도 그 자체에 있어서 선한 일은 많이 있으나 그들은 국가의 법률에 사악한 반역을 가하는 자들 인 것 처럼,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덕행을 행할 수는 있을 지 모르나 그러한 모든 것은 불법인 것이라고 하였다.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었다.(제 3장 3절) ②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에 자신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목적과 그리고 그의 뜻의 비밀한 계획과 선하신 기쁨을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셨으며, 오직 그의 거져 주시는 값없는 은혜와 사랑에서 그렇게 선택하신 것이며, 믿음 또는 선한 행위, 또는 그들 안에 있는 어떤 다른 것을, 그를 감동시켜 선택케하는 조건들이나 원인들로 미리 보신 것 없이 하신 것이며, 모두가 의의 영광스런 은혜를 찬미케하려고 선택하신 것이다.(제 3장 5절) ③ 피택자(被擇者) 이외의 나머지 인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조물들 위에 행사하시는 그의 주권적인 능력의 영광을 위하여 ... 그 자신의 뜻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을 따라서, 그들을 간과하시고, 그리고 그들이 치욕과 진노를 당하도록 작정하시기를 기뻐하셨으니, 이는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케하려 하심이라.(제 3장 7절)
따라서, 무조건적 선택이란 인간의 전적 무능력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완전히 인간이 죽어있고, 속박되어 있고, 볼 수 없다면 이 모든 상태에 대한 치료책은 인간 자신 밖(外)에,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은 특정한 어떤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고, 나마지는 유기되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임을 알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기의 결정이 하나님의 공의를 해치는 것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는 택하시고, 다른 이들은 제외하셨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할 의무가 있었다고 하지 않는 한 제외된 자들에게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명심해야 할 것은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은헤로 택하시고 구원받도록 주권적 결정을 내리시지 않으셨다면,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팔마(Edwin H.Palmer)는 이러한 무조건적 선택을 정치적 선택과 대비하여 설명하였다. 즉, 인간의 정치적 선택은 항상 조건적인 선택이요, 뽑힐 자의 인격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하나님의 선택은 항상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스펄젼 목사는 선택과 유기의 이유에 관해서 설명하기를, "하나님이 한 인간을 사랑하신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이라면 정말 옳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왜 어떤 사람을 미워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똑같이 대답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심하게 대하신다면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그럴만하기 대문입니다."라고 말하여 선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유기는 하나님의 공의로 설명하였다. 그는 또한 이교리의 목적을 다음과 같은 6가지로 설명하였다. ① 이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②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확신에 차서 믿게하는 어떤 것을 준다. ③ 이 교리는 사람들에게 견고케하는 어떤 것을 줄 뿐만아니라, 실제로 그 사람들을 견고케 한다. ④ 사제의 책략적인 모든 주장(예, 면죄부)을 부순다. ⑤ 이 교리는 사람에게 자신을 쳐다보도록 한다. ⑥ 죄인에게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충만한 만족을 준다.
한편, 뵈트너는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혹자는 구원하시고, 혹자는 구원치 않으시는가하고 스스로 질문하며 답변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게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고자하는 소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의 완전한 공의에 모순되기 때문인데, 그것이 왜 공의에 모순되는지는 성경의 교시(敎示)가 없음으로 알 수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이것에 관련하여 라이스(N. L. Rice)는 "일찌기 자연이나 성경을 연구해본 자로써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철학자는 사실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학자도 하나님의 계시로써 족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영생으로 선택하지 않으심에 대한 이유는 밝혀질 수 없음을 피력하였다.
(3)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① 구속 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로 말미암아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렇지만 그 구속 사역의 효력, 효능과 유익은 창세로 부터 계속적으로 모든 세대의 피택자들에게 전달되었는데, ... (제 8장 6절) ② 하나님께서 피택자들을 영광에 이르도록 작정하신 것처럼 ... 오직 피택자 외에는 다른 아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거나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거나, 의롭다 함을 받거나, 입양되거나, 성화되거나 구원받지 못한다.(제 3장 6절)
따라서, 제한 속죄라함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효과에 대해서 언급하는 교리로서, 그리스도는 오직 신자(택자), 즉 실제적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자들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스펄젼 목사는 이 교리를 변호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사람을 위해 완전한 속죄를 하셨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 수 천년동안 지옥불 속에 있었던 자들을 위해서도 속죄하셨단 말입니까?" 결국, 스펄젼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오직 피택자에게만 효능이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교리는 그리스도의 은총이 인류 전반에 미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칼빈주의자들은 말하고 있는데, 컨닝햄(Cunningham)은 이것을 대변하여 말하길,"특정적 구속이나 제한 속죄를 주장하는 자는 전 인류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으로 말미암은 중요한 은택이 전 인류, 심지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까지도 미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속죄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특유한 결실인 축복을 전 인류에게 하신다는 것, 즉 그리스도의 속죄와 화해를 전 인류에게 미치게하신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4)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ible Grace, 또는 유효한 부르심)
이 교리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① 하나님께서 생명에 이르게 하도록 예정하신 모든 사람만을 그가 정하시고 받아들이실 때에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도록 영적으로 또한 구속적으로 게몽하시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시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다.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하사 그들로 하여금 선한 것을 행할 수 있게 하는 전능하신 힘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게 효과적으로 이끄시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자발적으로 가장 자유롭게 나온다.(제 10장 1절) ②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가령 그들이 말씀의 전도를 통해 부름을 받고 성령의 일반적 활동을 어느정도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그리스도에게 참되게 오지 않으므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 ... 가령 그들이 믿는 종교의 본질이나 법을 따라서 그들의 생을 꾸며 나가는데 매우 열심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고 유지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치명적이요 미움받을 행동이다.(제 10장 4절)
이것에 근거해 볼 때, 불가항력적 은총(유효한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며 인간은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가 아니면 비록 종교적 모습을 가졌을지라도 그는 참되게 그리스도를 모신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는 멸망받을 수 밖에 없음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인간의 구원 사역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가 다함께 관여하신다고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즉, 성부 하나님은 창세 전에 자기 백성이 구원받도록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성자에게 주시고, 성자는 정한 때에 세상에 오셔서 구속하심으로 그들의 구원을 보증하셨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행위(예정과 구속)가 구원 사역의 완성은 아닌데, 왜냐하면 성령의 중생 사역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중생 사역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이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이 부르신 죄인은 틀림없이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스펄젼 목사는 불가항력적 은총(유효한 부르심)을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내가 주님을 완전히 들어오시도록 할까요? 주님은 지금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전에도 문을 두드리셨읍니다. 내가 주님을 들어오시도록 할까요? 그러나, 주님은 '지금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을 두드리시지도 않고, 도리어 문을 산산 조각이 나게 부수시다니! 주님은 걸어들어 오셔서 '나는 들어가야만 하겠다. 나는 들어가고 싶다. 나는 들어갈 것이다. 네가 너의 악과 불신앙을 아무리 주장해도 나는 아랑곳하지않고 반드시 들어가야만 하므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즉, 피택자에게 행해지는 하나님의 은총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df the Saints)
이 교리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①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 안에서 용납해 주시고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또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될 리 없으며, 그들은 끝까지 그 상태에 꾸준히 인내하여 머물러 있게 되며, 또한 영원히 구원받을 것이다.(제 17장 1절) ② 그렇지만 성도들은 사단과 이 세상의 시험들 때문에, 그리고 그들 안에 남아있는 죄의 부패한 요소가 온 몸에 퍼져있고, 그들을 보존해주는 은혜의 방편들을 무시함으로서 비참한 죄에 빠질 수 있으며 ... 일시적인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제 17장 3절)
위의 내용에 근거해 볼 때, 성도의 견인이란 가장 짤막한 말로 표현하면, 한번 구원 받으면, 계속해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 교리에 관해 스펄젼목사는 [결혼]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와 함께 결혼으로 결합한 것을 성령께서 가르치십니다. 이 결합이 나뉠 수 있읍니까? 하늘 나라의 신랑께서 은혜의 줄로 하나된 택한 영혼과 이혼하시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즉, 유효한 부르심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은 마치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과 같아서 절대적으로 그 결합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신앙을 버리는 행위에 대한 경고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성도가 실제로 신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방황하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또한, 성경에 언급된 배도의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그것은 그리스도를 안다고만 말할 뿐 하늘의 삶을 실제로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례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스트롱(A. H. Strong)은 신자의 죄악에 대하여 말하길, "신자는 등산하는 사람이 비록 이따금씩 미끄러져 내려오지만 항상 정상을 향하여 다시 올라가는 것과 같으나, 중생치 못한 자는 아래를 향하고 있어서 항상 미끄러져 내려가기만 한다" 고 하여, 신자도 죄를 범하나 일시적 현상이요 다시 회복된다고 주장하였다.
Ⅳ. 웨슬레 신학을 통해 본 이중예정
론의 비평적 이해.
A. 전적 무능력(Total Inablity)에 대하여
이 교리는 원죄(原罪)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것을 "첫 조상 아담의 죄로 안해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으며, 이로인해 인류는 영혼과 육체의 모든 기능과 부분이 전적으로 더럽혀져서 우리는 선(善)에 전적으로 싫증을 느끼고 무능해지며, 그것을 반대하게 되었으며, 악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칼빈도 이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인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사악한 물결속에 휩싸여 있어서 죄가 없는 곳이라고는 한 부분도 없으며, 그래서 결국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 죄악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인간성 그 전체에 선한 요소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웨슬레 역시 죄관은 역사적 기독교의 원류(原流)를 따라서 성 바울과 어거스틴과 루터와 칼빈등의 그것을 답습하였다. 창세기 6장 5절을 구절로 한 그의 [원죄]라는 설교의 결론 부분에서 "우리는 교리적인 체계로서 생각할 수 있는 기독교와 가장 세련된 이교(異敎)간에 한 가지 중대하고도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은(이교도) 모든 인간의 선은 결핍되어 있으며, 악한 행위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인간성의 전체적인 기능에 있어서까지 전적으로 타락되어 있다는 시실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였습니다"라고 하여 전적 무능력(부패)에 관한 그의 견해를 잘 표현하였다.
한편, 웨슬레에게 있어서 이 원죄의 교리는 이교와 기독교를 구별하는 근거로써 이해되었다는데 특이점이 있다. 웨슬레는 어떠한 제목을 내걸든지 간에 원죄의 실재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이교와 기독교를 달리하는 근본적인 법에서 이교도"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아담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칼빈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 즉,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권을 나타내기 위하여 아담의 범죄와 죄의 도입을 하나님의 의도에 의한 것으로 보았는데, 웨슬레는 범죄 행동의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진 범죄자이므로 하나님이 그 죄책을 질 수 없다 하여 죄의 도입과 그 책임을 인간에게 돌렸다.
또한, 웨슬레는 아담 한 사람의 범죄요 전 인류가 다 함께 죄성과 함께 죄책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어긋남이 아닌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칼빈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 즉, 칼빈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지(豫知)의 능력과 의지로 멸망당할 자를 창조하셨으나, 우리는 "그가 왜 멸망당할 자를 지으셨나 하는 것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인간으로서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며, 만일 우리가 공의의 문제를 논한다면 이것은 신의 '최고의 공의에 속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칼빈의 예정적 논리에 대하여 그것은 계시 자체의 모순성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아담의 범죄의 결과가 그 후손에게 미치는 것은 혹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간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선행 은총과 그의 절대의 사랑으로 제 2의 아담인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그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질병과 인간성의 부패에 치료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 ... "라고 하여 칼빈(주의)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B.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에 대하여
뵈트너는 이 교리에 대해서 때로 개혁주의의 `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아주 중요한 교리임을 천명 하였다. 이 교리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전제로 한 것인데, 그 인간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은총을 받아 선택된 사람은 구원을 받고,하나님의 간과하심으로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 교리에 있어서 아주 단호하게 칼빈주의를 부정 하였다.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말하길, "이 선택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것은 마치 성경이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았다고 보는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무조건 선택이라는 것은 믿을수가 없다. 이런 도리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을뿐 아니라(다른 이유는 말 않고라도),이것은 동시에 무조건적 유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덧붙여서 그는 "유기의 도리를 내포하지 않은 선택의 도리를 지적해 보자, 그러면 나는 무조건 선택의 도리도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경이 하나님께로서 왔다는 사실을 믿는한 유기의 도리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신구약 전체의 내용이나 흐름과는 전연 상치된다."고 했다.
웨슬레의 이 교리에 대한 중요한 반대 몇가지를 들어보도록 하자. 웨슬레는 그의 `예정론에 대한 냉정한 고찰' (predestination calmly considered)과 `필연성에 대한 논구' (thoughts upon necessity)라는 논문에서 무조건 선택의 교리와 그 반대론 중 어느것이 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영광스런 속성들, 즉 그의 지혜와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는가를 검토해 보자고 하였다.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미리 결정하심이 없이 생명과 사망, 선과 악의 길을 준비해 놓으시고 인간의 자유 의지로 그 두 길중 하나를 택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에 더 합치한다는 것이다.
둘째, 유기의 도리를 내포한 선택의 도리는 또한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 멸망 받기로 결정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혜가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범한 죄과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내리신다면, 이에서 더 불공평하고 무자비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째로,이 교리는 하나님의 사랑에도 어긋난다.가령 여기 어떤 사람이 그의 입김 한번으로 수 백만명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데도, 그중에 단 몇 사람만을 구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려두고 말하길 "그것은 내가 구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자비한 하나님이라고 하겠는가?
네째로, 이것은 전도의 필요성을 없앨 것이다. 전도는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선택을 받은자는 전도의 여부없이 마침내 구원을 받을 것이요, 멸망 받기로 예정된 자는 전도를 듣거나 못 듣거나간에 결국은 틀림없이 멸망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이 교리는 하나님을 거짓말 장이로 만든다. 성경에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원하시느니라" (딤전 2:4, 겔 18:23)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멸망받기로 확정 하셨다면 하나님은 일구 이언하는 거짓말장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교리는 성경의 몇 구절만을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고집하나, 성경의 다른 곳에는 이를 반증 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으며, 그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사상이나 흐름은 이것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웨슬레의 주장은 그의 성경 해석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칼빈주의자들이 무조건 선택의 교리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고 하는 성경 구절들은 `요 6:37', `엡 1:4,5', `롬 8:29,30', `롬 9:13'등이다. 이 구절들을 웨슬레는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아보면서 `무조건 선택'의 교리를 부인했는지 알아보자.
(1) 요 6:37,3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자기를 잃어버린 자로 여기고 아버지의 끌어당김에 이끌려 따르는 자는 모두 아버지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아들에게 주신다. ②"내게로 올 것이요"- 신앙으로, 오직 신앙으로만이 예수께로 올 수 있다. ③ 그리고 이렇게 하여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쫒지 아니하리라"- 만일 끝까지 참고,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기만 하면(요 5:35) 용서와 성결과 하늘이 주어진다. ④ "내게 주신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요 17:6, 12를 보라. 그들이 만일 끝까지 참으면 잃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참지 못했다.
(2)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① "우리를 택하사"-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미리 아신바 된 유대인과 이방인 전부를 가리킴이다. ② "그 기쁘신 뜻대로" - 그 기쁘신 뜻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자, 오직 믿는 자에게 값없이 이 축복을 내리신다는 영구 불변의 흔들림 없는 뜻이다. ③ "우리를 예정하사 ...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후일에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자 (嗣子)가 되는 광명을 누리게 하기위해 미리 정하셨다는 뜻이다.
(3) 롬 8:29,30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①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때가되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에베소서 1:4-5의 해설 참조) 그의 복음과 성령으로 부르신다. ②"부르신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들이 하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행 26:19),그들을 용서 하시고 받아 주신다. ③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들을 계속하여 그의 인자하심 안에 있게 하시고는 (롬 11:22), 마지막에는 영화롭게 하신다. 사도바울은 여기서나, 그리고 그의 서신의 다른 부분에서도 어떤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영화롭게 된다고 하는 말을 명백하게 언금한 일이 없다. 그는 단지 이런 것이 곧 하나님께서 한 단계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가시는 방법이란 사실만을 단언한다.
(4) 롬 9: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①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이 사랑은 특이한 사랑 이었다. 즉,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푼 사랑이 바로 그것이었다. ② "에서는 미워하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자손인 에돔 족속을 미워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알아 두어야 한다. 첫째, 위의 사실들은 야곱이나 에서 개인에 관한것이 아니라는 것과 둘째, 그것은 그들이나 그들 자손들에게 적용되는 영구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등이다.
이와같이 논문과 신약성서 주해를 통해 볼때 웨슬레는 선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수의 사명을 맡겨주기 위하여 어떤 특정의 인물을 택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보통 개인적이요, 무조건적이다. 이러한의미에서 고레스(Cyrus)왕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사도바울은 12제자와 함께 복음의 선포를 위하여 선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영원한 복지와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선택된 자 중에도 구원받지 못한 자가 있기때문이다.(예, 가롯 유다, 요한복음 6: 70)
둘째, '선택하셨다'는 성경상의 용어에 대한 문제이다. 웨슬레는 이러한 용어들은 기독교가 유대인들로 부터 채용한 것들이라고 하였다. 즉, 우리의 주님과 사도들은 본래 유대인이며, 이스라엘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용어는 자연히 이스라엘 사람들의 용어로 전파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개념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상 숭배와 악행에 젖어있는 백성들로 부터 분리시켰다는 개념과 동일한 것처럼, 신약 성경상의 '선택하셨다'는 용어는 비그리스도인들의 사이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다른 것은 선택하셨다는 말이 구약 성서에서는 모든 보이는 교회의 회원들에게 적용시킨 것이라면, 신약 성서에서는 보이지않는 교회의 모든 회원들에게 적용시켰다는 점이다.
세째, 이것은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교리에 가장 확실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써, 웨슬레는 "선택이란 어떤 사람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택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버리심(유기) 처럼 조건적"이라고 하였다. 이 두가지 도리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마가복음 16: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진실된 신자는 성경상으로 택함을 받은 자이고, 불신자는 그가 믿지 않는 한 버림받는 자이다. 즉, 웨슬레는 칼빈과 달리 믿음에 의한 '조건적 선택'을 주장하였다.
C.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에 대하여
지금까지 계속 논의해 왔듯이 웨슬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실재에 있어서는 오직 선택된 자에게만 제한된다는 '제한 속죄'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도, 공의에도, 지혜에도 모순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웨슬레의 속죄에 대한 견해는 '제한속죄'와 비교하여 '보편 속죄'로 나타난다.
이것은 웨슬레가 퀘이커 교도인 바클레이(Barclay)의 허락을 받고 다음의 3가지 점을 인용한데서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① 모든 인류는 본질상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그가 보시기에 악하다. ②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죽게하셨고, 그리스도는 세계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각성시킨다. ③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오는 이 혜택은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지식에서 제외된 자들에게도 미친다.
웨슬레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하여 다음과같이 3가지로 구분하여 말하였다. ①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 즉 죄 중에 죽은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죽었다.(고린도 후서 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意味)를 밝혀준다. ② 그는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화해의 제물이며,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이다.(요한 1서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능(效能)을 밝혀준다. ③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그 분을 위하여 살도록하기 위한 것이다.(고린도 후서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죄에서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계획과 목적(目的)의 표현이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 위해 대신하여 짊어지신 죽음인 것이다.
또한, 웨슬레는 자신의 이런 견해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그대들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에 노골적으로 밝히신 말씀 중에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지않고 다만 몇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 위한 화해의 제물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의 죽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위하여 죽으신 그 분을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반문하며 '제한 속죄'의 견해를 일축하였다.
이와같이 웨슬레에게 있어서 속죄는 매우 중요시 되었다. 그것은 인간을 죄의 사슬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에게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은총의 원천(源泉)이다. 더우기 앞으로 중요하게 논의될 선행적 은총(Preventing Grace)마저도 이 속죄에서 유래되며, 이 은총은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들을 초월해서 인간의 모든 자녀들에게 확산된다.
D.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able Grace)에 대하여
지금까지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웨슬레의 입장에서 이중예정론을 파헤쳐 보았는데, 개별적으로 볼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는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문제란 웨슬레가 믿음에 의한 '조건적 선택'과 '보편 속죄'를 주장하면서도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동시에 주장하였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다시 말하여 웨슬레가 지적하는대로 전적 무능력(부패)한 인간은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믿음 조차도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일찐대 어떻게 그런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웨슬레는 '선행적 은총'이란 교리로써 잘 설명해 주었다. 선행적 은총이란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 중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된 임재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상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이것에 근거하여 웨슬레는 "누구나 고의적으로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전에도 하나님은 그의 성령으로 모든 인간의 심령 속에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선행적 은총의 사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첫번째 결과로써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이다. ② 그 대상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로, 인간 중에 이 은혜를 받지 않은 자는 하나도 없다. ③ 그 내용은 인간의 원죄의 죄책(The Guilt of Original Sin)을 사해 주신 것이다. ④ 나아가 인간은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에 능동적으로 응답할 수있는 능력, 곧 어느 정도의 자유 의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⑤ 이것은 우리가 '생래(生來)의 양심'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교화(敎化)하시는 빛 등을 의미한다. 또한, 선행적 은총이란 성령께서 때때로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시어 깨닫게 하시는 것 전부를 말한다.
이와같은 웨슬레의 사상을 통해 그가 칼빈의 '불가항력적 은총'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을 표명했을지는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불가항력적 은총'에 의해 그의 선택된 자들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선행적 은총에 의한 부르심'으로 전 인류를 부르시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설교문 [자율적 구원의 성취]에서, 본문인 빌립보서 2: 12-13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의욕을 일으키심과 동시에 구원의 성취를 위한 행동을 하게 하신다"라고 말한데서 확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의 심령 속에서 구원을 위하여 이와같이 일하신다면 왜 모든 인간이 다 구원받지 못할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여기에 칼빈주의의 예정 교리의 근거가 있는데, 그들은 이것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들과 못 받을 자들을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와는 반대로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역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그들의 자유로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레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의하나 여기에는 역시 인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편, 이렇게 성령이 인간의 심령 속에서 '소원' 즉 '의욕'을 일으키시는 그 역사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원에 관한 몇몇 진리들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우리는 그의 도우심을 받아 구원을 향하여 노력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역사를 중지히실 것이다. 웨슬레는 이것을 설명하여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는다"(마태복음 25:29)는 말이라고 하였다.
선행적 은총은 양심(良心)과 자유 의지(自由 意志)에도 연관되어 있다. 웨슬레는 인간의 도덕적 선의 뿌리를 인간의 양심으로 보았으며, 이 양심이 존재하게된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요 그것은 선행적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웨슬레는 에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선(善)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자유(自由)와 의지(意志)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유는 의지의 작용이 아니요, 인간 영혼의 독립된 속성으로서, 영혼의 각 심리작용과 신체의 동작을 관장하는 능력으로 보았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 결단의 능력으로써 "나는 비록 내 성품의 부패때문에 내 마음을 통제할 능력을 갖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 아래 선이나 악을 택할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복음에 나타난 구원의 신앙을 두 갈래의 유기적 부분으로 구분하여 말했다. 그것은 하나는 완성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미완성된 부분이다. 완성된 부분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의 구원과 축복을 위하여 실제로 어김없이, 그리고 완전히 이루신 모든일을 말하는 것이며, 미완성 부분이란 하나님께서 기독교회의 집단적인 경험을 통해서와 각 신자의 개별적인 경험안에서 계속적으로 역사하시는것을 말한다. 이와같이, 성령은 개별적인 경험안에서 계속적으로 '선행적 은총을 통한 부르심'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웨슬레는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대비하여 '전적 무능력'은 그대로 수용하였고, '무조건적 선택'은 믿음에의한 '조건적 선택'으로, '제한 속죄'는 '보편적 속죄'로, '유효한 부르심'은 '선행적은총에 의한 부르심'으로 정립하였음을 알았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성도의 견인' 대한 웨슬레의 입장은 어떠한가를 알아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웨슬레는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강겨하게 반대 하였다. 그는 그의 논문에서 성경 상의 8가지 예를 들어서 그것을 반박 하였다.
(1) 진실되 신자, 즉 즉 하나님의 판단에 거룩하고 의롭던 자라도 마침내 은혜에서 떨어지는 사실을 우리는 에스겔 18: 24에서 볼 수 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2) 좋은 믿음을 줄 수 있는 좋은 양심을 받은 사람이라도 마침내 타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디모데 전서 1:18-19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허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3) 좋은 감람 나무라할 수 있는 신령한 보이지 않는 교회에 접붙임을 받은 자도 마침내 타락할 수 있음을 로마서 11: 16-22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찍히는 바 되리라."
(4) 참된 넝쿨에 속한 그리스도의 가지라도 마침내 타락하여 떨어질 수 있음을 요한복음 15: 1-6을 통해 알 수 있다.-"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쿠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
(5)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이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오염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도, 미끄러져 다시 오염되고 영원히 멸망할 수 있음을 베드로 후서 2: 20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
(6)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고린도 후서 4: 6), 성령을 나누어 받고, 성령의 증거와 그 열매를 가진자(로마서 8:16, 갈라디아서 5:22)라도 떨어져 영원히 멸망할 수 있다.
(7)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져서 영원히 죽을 수 있음을 히브리서 10:38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에서 물러간다함은 물러가 멸망한다는 것이다.
(8) 계약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자라도 타락하여 마침내 영원히 죽을 수 있음을 히브리서 10:26-29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
한편, 불가항력적 은총에 대하여 칼빈주의는 요한복음 10:28-29, 베드로 전서 1:4-5 등을 들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1)요한복음 10:28-29("...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 "): 이 구절에 대하여 웨슬레는 그 앞 절로 소급하여 해설한다. 즉, "내 양은 내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여기에는 세가지 조건부 약속이 있다. ① 신앙으로 나의 음성을 듣는자. ② 나를 사랑하는 자로써 나에게 알려져 나의 인정을 받는 자. ③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따르는 자. 그러므로, 위의 세가지 조건에 근거할 때만 저희는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2)베드로 전서 1:4-5(" ...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만 구원받으며, 유지되는 것이다.
한편, 칼빈주의는 이 교리에 관련하여 구원의 확실성을 설명 하였는데, 웨슬레는 그것을 부정하고 성령의 증거에 의하여 구원의 확실성의 도리를 전개 하였다. 왜냐하면, 성도(피택자)의 견인 이라는 개인 영혼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선택교리의 근원에서 분리되어 결코 확신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비록 예정론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는 결코 자신이 예정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선택에서 제외 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을 일으킬 뿐이다.
웨슬레는 그리하여 성령의 증거에 의한 구원의 확신교리를 발전시켰는데, 성령의 증거에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the Direct Withess of the Spirit)와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 (the Indirect Witnes of the Spirit), 그리고 성령과 우리 영과의 공동증거 (the Joint of the Spirit the our own spirit)가 있다고 하였다.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란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에게 강하게 주는 내적 느낌 (Inward Impression on the soul)"이며, 사람이 중생할때 평생에 단 한번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신자안에 내재하시는 한 지속되는것이 원칙이다.
또한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란 웨슬레가 때로 우리 영의 증거 (the Witness of our own spirit) 또는 선한 양심의 증거 (the Witness of a good conscience)라고 부른 것으로 이는 "우리가 우리 안에서 (in our own souls)느끼는 것을 곰곰히 생각하여 행하거나 또는 이성적으로 추리한 결과에서 오는 확신"이며, 성서가 묘사하는 신자의 표적에 기초하여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구나 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 선한 양심의 증거가 성령의 직접증거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며, 도리어 성령의 직접증거가 이에 선행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공동증거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어떻게 인간의 환상이나, 마귀의 현혹에서 구별 할 수 있는가 하는 영적분별의 문제를 다룬것으로 "신자가 의식하는 내적인상 (Inward Impression), 곧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는 선한 양심의 증거에 의하여 일치를 보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열매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된 모순된 내적 느낌을 하나님의 영적 느낌인 양 주제넘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할것은 우리가 시련을 당할때에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일시 사라질 수 도 있으며, 범죄할때는 이 성령의 증거가 소멸된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다시 주 안에서 걸어가면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증거가 회복되며 증가 되는것이 보통이라고 웨슬레는 말했다. 이러한 성령의 증거의 소멸과 재형성을 고려할때, 한번 성령의 증거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구원을 보증하는것은 아니며, 또한 이러한 확신이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성령의 증거를 통해 개인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으나 성령의 증거를 가진자만이 구원받은자인것은 아니다.
이러한 확신의 교리에 관련하여 스코트 (W. A. Scott)는 말하길, "웨슬레의 생각으로는 기독교 생활은 명확한 회심의 경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게서 죄의 용서와 구원함을 받았다는 내적인 확신의 느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런 경험을 조장하려는 데 웨슬레의 일차적 목적이 있었다."고 하였으며, 그리하여, "그의 설교는 구원 받았다는 느낌을 일깨우려는 노력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웨슬레의 설교는 일반적으로 두려움과 뉘우침을 자아내려고 했으며 죄인임을 가능한 한 철저히 느끼게 하려고 하였다. 그 다음 이와 같은 강도 (强度)로서 구주이신 그리스도에게 신뢰를 두도록 호소하였다.
또한, 와인쿱(M. B. Wynkoop)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확신은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 중요한 진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하여 웨슬레의 입장을 잘 대변 해주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위험에서 가능한 모든 도움으로 우리를 보호하도록 그 분을 충동한다는 사실인데, 따라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또 다시 타락 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둘째의 중요한 진리는 성결의 본질로써, 믿음안에서의 인내는 그 사람 자신의 믿음에서 유도된 힘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의 정도 (Quality)이다. 즉, 우리의 믿음의 힘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
Ⅴ. 결 론
A. 요 약 (SUMMARY)
구원의 복음이 왜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가라는 칼빈의 질문은 이중예정론이라는 교리를 낳게 하였다. 즉, 하나님은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결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정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밝히시지 않으셨으므로 알 수 없으며, 인간은 그것을 알기위한 호기심을 발동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교리는 칼빈주의 안에서 부터 반동(反動)이 있었는데, 그 대표자는 알미니우스라고 할 수 있다. 알미니우스는 로마서를 연구하던 중 바울의 의도는 이중예정론에 근거한 타락전 예정설 같은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주장한 것이라고 하였다.
칼빈주의 진영에서는 이것에 반발하였고, 도르트 회의에서 이중예정론의 체계화된 모습인 칼빈주의 5대 교리를 결정하였다. 그 내용은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무조건적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제한적 속죄, 항거할 수 없는 은총, 신자의 영원한 구원 보장으로 요약된다.
그 후 18세기에 와서 영국에서도 커다란 종교 개혁의 물결이 일게 되었는데, 그 대표자는 웨슬레이다. 웨슬레는 그의 풍부한 성경 원문에 대한 지식과 깊은 영적 감동으로 이중예정론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였다. 그 핵심적인 것은 유기설(遺棄說)에 대한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웨슬레는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해서는 전통과 초기 종교 개혁자의 사상과 동일하였다. 그러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발하여, 계속적인 믿음에 의한 '조건적 선택'을 주장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한성' 역시 모든 인류를 위한 '보편적 속죄'로 대치하였다. '항거할 수 없는 은총'에 대해서도 반대하여 '선행적 은총'에 의한 인간의 순종과 책임을 주장하였으며, '신자의 영원한 구원 보장'에 관해서도 오직 '계속적인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B. 연구의 결과
칼빈주의는 칼빈의 이중예정론에 근거하여 '칼빈주의 5대 교리'라는 체계적인 구원의 도리를 정립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통해서 나온 사상이라고 확신하는 데서 그 정당함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열정으로 강단에서 설교되고, 지면을 통해 유포되었다.
이러한 신학체계에 근거하여 성경을 볼 때, 성경은 참으로 그 교리가 타당성이 있음을 입증할만한 구절들을 손쉽게 보여줄 것이다. 그러한 구절들은 지금까지 본문을 통해서 여러가지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위와같은 신학 체계와 교리 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내용들이 성경에는 무수히 많음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 중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마가복음 16: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것은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교리를 강력히 부인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미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면, 위의 구절은 하나의 기만(欺瞞)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인간의 단순한 믿음을 의(義)로 보시고, 그를 선택하시어 구원하시는 '오직 믿음에 의한 조건적 구원'을 나타낸 것이다.
(2)요한일서 2:2("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 이 구절에서 어떻게 칼빈주의의 '제한 속죄'라는 교리를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온 세상의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이 확실하다.
(3)요한계시록 3:20("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을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설명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문 밖에 서서 노크만 하고 계셔서는 안된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셔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문 밖에 서서 노크하시며 안에서 문 열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따라서, 이것은 인류의 구원이 전 인류에게 차별이 없고, 인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와 오직 믿음으로 복종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에 기인함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4)로마서 11:22("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嚴威)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여기에서 칼빈주의가 말하는 견인의 교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여기에 나타난 견인의 도리는 오직 하나님의 인자에 거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계속적인 믿음을 견지해야하며,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안에 있게되고 그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으시기에(로마서 8:37-39) 우리의 구원도 변함없이 확고한 것이다.
위의 구절들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이중예정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중예정의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대 전제에 의하여 잘 다듬어진 신학적 체계임을 인정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러한 관점에서 정리한 체계는 불가피하게 편협한 면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칼빈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아주 조금 밖에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신의 사랑 대신에 신의 영광을 내세웠다. 그가 신의 사랑에 관해서 말할 경우에 그는 다만 선택된 자에 대한 사랑에 관해서만 말한다. 신의 사랑의 보편성이 부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은 모든 것을 보존하는 힘으로서의 신의 사랑의 교설에 모순된다. (이 사랑의 교설은 단테가 지옥의 입구에 걸어 놓았던 다음과 같은 말, "우리는 신의 전능과 최고의 예지(叡智)와 최상의 사랑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구절에서도 인정되었다.) 그런데, 사랑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영원히 단죄되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이 교리는 자신이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서 너무 과도하게 사고되어 졌다. 그것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정죄를 하나님의 불변하는 천의(天義)에로 소급시킨 것이다. 바울이나 어거스틴, 그리고 루터도 그렇게까지 주장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칼빈주의가 선택의 교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유기(遺棄)의 교리까지 이르게 된 것은 과도한 논리적 추측이며, 성경의 밑받침이 없는 철학적 유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성경에 나와있는 선택 사상에 대한 완전한 부정으로 나아가서는 안될 것 이다. 칼빈주의 예정론이 성경의 선택 사상을 편협하고, 과도하게 추리하여 이중예정론에 까지 이르렀으나 그렇다고하여 성경의 선택 사상까지 소멸시키거나, 언급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구원에 있어서 선택이라는 용어는 분명히 성경에 제시되어 있으며, 초대 교회 당시 핍박에 처한 기독교인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중요한 메세지로 작용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경에 나와 있는 선택의 개념을 편협하고 과도한 논리적 상상을 뛰어넘어 옳바로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 참 고 문 헌 >
Battles,Ford Lewis. [칼빈의 기독교강요 분석]양견 강명희 공역. 서울:대
한예수교장로회교육국,1983.
Boettner, Loraine. [칼빈주의 예정론] 홍의표 김남식 공역. 대구: 보문
출판사, 1990.
Burtner, R. W. R. E. Chiles. A Command of Wesley's Theology.
Nashville: Abingdon Press, 1956.
Calvin, John. [기독교강요 요약] 지원용 역. 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사, 1984.
____________. [기독교강요(초판)] 양낙흥 역. 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
트사,1990.
____________. [기독교강요 요약] 이형기 역. 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사, 1986.
____________. [기독교강요(中)]김종흡 신복윤 이종성 한철하 공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1986.
____________. [기독교강요 색인]김문제 편역. 서울:세종서적,1981.
Cannon, William R. The Theology of John Wesley. Nashville: Abingdon
Press, 1956.
Cell, George Croft. [존 웨슬레의 재발견]송흥국 역. 서울: 대한기독교출
판사, 1988.
Henel, I. C.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송기득 역. 서울:한국 신
학 연구소,1987.
McNeil, John T. [칼빈주의 역사와 성격] 정성구 양낙흥 공역. 서울:크
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90.
Niesel, Wilhlem. tr. by Harold Knight. [칼빈의 신학 사상] 기독교학술
원 역. 서울: 기독교문화사, 1988.
Palmer, Ediwin H. [칼빈주의 5대 교리] 박일민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8.
Rapp, Robert S.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 서울: 성광문화사, 1981.
Sneller,Alvin Roy. [칼빈주의 신학과 선교] 서울:성광문화사,1987.
Spurgeon, Charles H. [칼빈주의 5대 교리 설교] 김군섭 역. 서울: 크리스
챤 다이제스트사, 1991.
Steel,David N. Curtis C. Thomas.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김남식
역. 서울: 정음서림, 1975.
Wendel, Francois. [칼빈주의 신학 서 론]한국칼빈주의 연구원 편역. 서
울:기독교 문화사, 1986.
Wesley, John. [존 웨슬리 총서 Ⅱ] 박봉배 조종남 역. 서울: 유니온출판
사, 1983.
____________. [존 웨슬리 총서 Ⅸ] 송흥국 이규준 김광식 공역. 서울: 유
니온출판사, 1983.
____________. [존 웨슬리 총서 Ⅴ] 유동식 김용옥 역.서울: 유니온출판사,
1983.
____________. [존 웨슬리 총서 Ⅵ] 김길손 정보경 역. 서울: 유니온출판
사, 1983.
Wood, Skevington. [존 웨슬리 총서 Ⅲ] 김선수 역. 서울: 유니온출판사,
1983.
Wynkoop,M.B. [칼빈주의와 웨슬레 신학] 한영태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1.
Yocum,Dale M. [기독교 신조 대조] 손택구 역. 서울:예수교 대한 성결교회
(연합)출판부, 1988.
김광식. [기독교 사상] 서울:종로서적, 1989.
김장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 대구:양문 출판사,1989.
김하진. [주제별 칼빈주의] 서울: 한국문서 선교회, 1988.
나균용. "웨슬레 구원론의 특징" [신학과 선교] 제 7집 부천:서울신학대학
출판부, 1981.
송흥국. [웨슬레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8.
이근삼, [칼빈 칼빈주의] 부산:고신대 출판부,1978.
정성구. [칼빈주의 사상과 삶]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4.
______. "돌트총회와 칼빈주의 운동" [신학 지남] 제 215호 (1988.봄)
정원태. [열정 칼빈주의] 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0.
조종남. [요한 웨슬레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