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릇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라!(창41:14-16)
2002.10.4(서울제일교회 금요기도회)
"14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 41:14-16)
1. 하나님의 역사는 한 순간이다...
1) 사람은 한치의 앞날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한 치의 앞날을 내다 볼 수 없다는 것보다도, 이미 예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만한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올 가을 개봉 예정 영화 중에 "광복절 특사"(예고편)라는 영화가 있다.
"광복절특사로 석방되기 위해 열심히 교도 생활을 하는 모범수(?) 재필. 조금만 참으면 사랑하는 애인 경순과 결혼할 수 있다. 하지만 고무신은 군대에서만 거꾸로 신는 게 아니란 걸 몰랐던 탓일까? 어느 날 면회 온 애인으로부터 '결혼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는다. 변심한 애인의 맘을 되돌리기 위해 탈옥을 결심한다. .... 어느 날 오후, 탈옥에 성공한 두 사람... 아침 일찍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펼친 순간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끼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탈옥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특사로 감옥을 나왔으면 대문으로 보란 듯 당당히 나올 수 있었을 그들은 너무 일찍 담을 넘어 버린 것이다...."광복절 특사"(예고편)
2) 광복절 직전에 일본에 변심한 친일파(親日派) 중에서는 그 이전에 애국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었다. 6.25 때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그들이 몇 일 뒤에 광복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얼마후면 서울이 다시 수복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랬겠는가? 앞에서 말한 영화 속의 탈옥수가 자신이 특사로 풀려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탈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좌절하고, 타락한다. 하나님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 순간이다. 즉 하나님의 때가 있고, 그 때는 일 순간에 다가온다. 어둠의 길이 계속될 때,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언제 고난이 끝날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다 알고 있다.
4) 본문에 나타난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본문의 전후 상황은 바로왕이 감옥에 갖혀 있는 요셉을 최초로 부르고, 꿈을 해석하게 하는 장면이다.
5) 14절에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라고 했다. 이 부름이 있기까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었다. 요셉은 바로의 전령이 감옥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리고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멈추고, 감옥 문 앞에서 "요셉아!"라고 이름을 부르기 직전까지도 그는 몇 초 후에 전개될 놀라운 일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요셉의 상황이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6)(연결어)그렇다면 이처럼 한 순간에 상황을 변화시키기 까지, 왜 하나님은 2년 전에 즉시 술 맡은 관원을 통해서 출옥하게 하시지 않고, 굳이 2년 동안이나 더 요셉을 감옥에 머물게 하셨는가?
2. 왜 하나님은 2년 동안이나 감옥에 Holding 시키셨는가?
1) 하나님이 우리들의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계획들을 이루시는 것은 한 순간인데, 왜 하나님은 그때를 지연시키고 있는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이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의 가슴에 정조준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2) 하나님이 요셉에게 축복을 주실 준비(토양작업)가 덜 되어서 그랬을까? 언뜻보면 하나님이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한 순간에도 변화시킬 수 있고, 또 이미 어린시절 요셉의 비전을 주실 때부터 앞길을 예비하고 계셨다.
3)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영적인 해답을 16절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15-16절을 보라.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 41:15-16)
4) 이 말씀을 보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흑 상황 속에서도 요셉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어둠의 상황이 평생 갈지도 모르는 상황일지라도, 그는 배신하거나 낙망하지 않았다.
5) 16절을 보라. 바로의 갑작스런 소환과 물음에 대해서 요셉은 "예 임금님,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하였다.
6) 요셉이 이러한 대답을 하고, 즉시로 왕의 꿈을 해몽해 준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평상시에(감옥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곧 그 어둔운 시기에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7) 또한 꿈을 해몽해 줄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은 2년 전에 한 번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즉시 해몽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은 곧 감옥 안에서도 계속적으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기간을 통해서 개인적인 가정총무 수준이 아니라, 민족을 담는 큰 그릇으로 확실하게 준비되었다. 마치 가을철에 더욱더 완전히 익어서 터질 것 같은 감과 같이 되었다.
8)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이 준비가 덜 된 것이 아니라, 요셉이 완전히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하나님은 완벽하지만, 그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일치하기 까지 아직은 요셉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나듯이, 하나님이 예비하심과 그 예배하신 축복을 담을 수 있는 우리들의 준비 일치되어 한다. 바로 이때가 상황이 변화되는 결정적인 '한 순간'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년 동안 감옥생활을 연장하신 이유이다. 엄밀히 본다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때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3. 당신의 그릇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라....
1)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열매가 익기까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래의 길을 준비해 놓고도, 아직 그때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곧 '그릇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그릇 준비하는 기간을 나에게 주신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자신을 준비 시키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2) 하나님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한 순간이다. 여러분의 그릇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담을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기 바란다.
3) 어떻게 하는 것이 요셉처럼 그릇을 준비하는 것인가? 그것은 2년 동안 그러했던 처럼, 우리들도 요셉처럼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그의 은혜 가운데 계속적으로 머물며,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야 한다.
4) 하나님이 나를 쓰시겠다고, 'OO 야!'라고 부르실 때, "예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오늘 이 밤의 기도시간이, 바로 이처럼 영적인 그릇을 준비하고, 채우는 시간과 계기가 되기 바란다. 성령으로 인하여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2002.10.4(서울제일교회 금요기도회)
"14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 41:14-16)
1. 하나님의 역사는 한 순간이다...
1) 사람은 한치의 앞날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한 치의 앞날을 내다 볼 수 없다는 것보다도, 이미 예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만한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올 가을 개봉 예정 영화 중에 "광복절 특사"(예고편)라는 영화가 있다.
"광복절특사로 석방되기 위해 열심히 교도 생활을 하는 모범수(?) 재필. 조금만 참으면 사랑하는 애인 경순과 결혼할 수 있다. 하지만 고무신은 군대에서만 거꾸로 신는 게 아니란 걸 몰랐던 탓일까? 어느 날 면회 온 애인으로부터 '결혼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는다. 변심한 애인의 맘을 되돌리기 위해 탈옥을 결심한다. .... 어느 날 오후, 탈옥에 성공한 두 사람... 아침 일찍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펼친 순간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끼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탈옥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특사로 감옥을 나왔으면 대문으로 보란 듯 당당히 나올 수 있었을 그들은 너무 일찍 담을 넘어 버린 것이다...."광복절 특사"(예고편)
2) 광복절 직전에 일본에 변심한 친일파(親日派) 중에서는 그 이전에 애국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었다. 6.25 때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그들이 몇 일 뒤에 광복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얼마후면 서울이 다시 수복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랬겠는가? 앞에서 말한 영화 속의 탈옥수가 자신이 특사로 풀려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탈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좌절하고, 타락한다. 하나님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 순간이다. 즉 하나님의 때가 있고, 그 때는 일 순간에 다가온다. 어둠의 길이 계속될 때,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언제 고난이 끝날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다 알고 있다.
4) 본문에 나타난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본문의 전후 상황은 바로왕이 감옥에 갖혀 있는 요셉을 최초로 부르고, 꿈을 해석하게 하는 장면이다.
5) 14절에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라고 했다. 이 부름이 있기까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었다. 요셉은 바로의 전령이 감옥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리고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멈추고, 감옥 문 앞에서 "요셉아!"라고 이름을 부르기 직전까지도 그는 몇 초 후에 전개될 놀라운 일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요셉의 상황이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6)(연결어)그렇다면 이처럼 한 순간에 상황을 변화시키기 까지, 왜 하나님은 2년 전에 즉시 술 맡은 관원을 통해서 출옥하게 하시지 않고, 굳이 2년 동안이나 더 요셉을 감옥에 머물게 하셨는가?
2. 왜 하나님은 2년 동안이나 감옥에 Holding 시키셨는가?
1) 하나님이 우리들의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계획들을 이루시는 것은 한 순간인데, 왜 하나님은 그때를 지연시키고 있는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이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의 가슴에 정조준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2) 하나님이 요셉에게 축복을 주실 준비(토양작업)가 덜 되어서 그랬을까? 언뜻보면 하나님이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한 순간에도 변화시킬 수 있고, 또 이미 어린시절 요셉의 비전을 주실 때부터 앞길을 예비하고 계셨다.
3)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영적인 해답을 16절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15-16절을 보라.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 41:15-16)
4) 이 말씀을 보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흑 상황 속에서도 요셉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어둠의 상황이 평생 갈지도 모르는 상황일지라도, 그는 배신하거나 낙망하지 않았다.
5) 16절을 보라. 바로의 갑작스런 소환과 물음에 대해서 요셉은 "예 임금님,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하였다.
6) 요셉이 이러한 대답을 하고, 즉시로 왕의 꿈을 해몽해 준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평상시에(감옥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곧 그 어둔운 시기에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7) 또한 꿈을 해몽해 줄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은 2년 전에 한 번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즉시 해몽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은 곧 감옥 안에서도 계속적으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기간을 통해서 개인적인 가정총무 수준이 아니라, 민족을 담는 큰 그릇으로 확실하게 준비되었다. 마치 가을철에 더욱더 완전히 익어서 터질 것 같은 감과 같이 되었다.
8)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이 준비가 덜 된 것이 아니라, 요셉이 완전히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하나님은 완벽하지만, 그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일치하기 까지 아직은 요셉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나듯이, 하나님이 예비하심과 그 예배하신 축복을 담을 수 있는 우리들의 준비 일치되어 한다. 바로 이때가 상황이 변화되는 결정적인 '한 순간'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년 동안 감옥생활을 연장하신 이유이다. 엄밀히 본다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때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3. 당신의 그릇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라....
1)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열매가 익기까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래의 길을 준비해 놓고도, 아직 그때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곧 '그릇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그릇 준비하는 기간을 나에게 주신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자신을 준비 시키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2) 하나님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한 순간이다. 여러분의 그릇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담을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기 바란다.
3) 어떻게 하는 것이 요셉처럼 그릇을 준비하는 것인가? 그것은 2년 동안 그러했던 처럼, 우리들도 요셉처럼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그의 은혜 가운데 계속적으로 머물며,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야 한다.
4) 하나님이 나를 쓰시겠다고, 'OO 야!'라고 부르실 때, "예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오늘 이 밤의 기도시간이, 바로 이처럼 영적인 그릇을 준비하고, 채우는 시간과 계기가 되기 바란다. 성령으로 인하여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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