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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설교]묵상을 위한 기초 성경해석 방법 : 특강

작성자김상수|작성시간12.03.22|조회수118 목록 댓글 0

묵상을 위한 기초 성경해석 방법

 

2012.3.24(김상수 목사)

 

1. 묵상하는 사람과 성경해석방법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닌 묵상하는 일반 평신도들에게도 최소한의 기초 성경해석방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까? 이에 대한 나의 결론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성경해석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왜 필요한가?

 

첫째는 묵상의 대상이 성경말씀이기 때문이다. 묵상은 성경을 통하여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묵상본문에 대한 전후 문맥 파악이나 성경이 쓰일 당시의 상황,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영적인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단들을 보라. 모두가 그릇된 성경해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단들은 성경의 문맥이나 저자의 의도, 역사적인 상황 등을 무시하고, 교주 중심으로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편협되게 해석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조직이나 교주의 정당성을 위해서 특정한 단어나 성구들을 뽑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세운다. 최근에 유행하는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를 비롯해서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등등 모든 이단들이 다 마찬가지다. 따라서 묵상을 위한 복음적인 기초성경해석방법에 대한 지식을 어느정도 갖고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의 영적인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셋째로 성경해석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는 다른 사람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쳐야할 직분들이 있다. 교회학교 교사나 소그룹 리더, 제자훈련 리더, 새신자 양육자, 직분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렇기에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성경의 전반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내생각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복음적인 성경해석을 위한 기본원칙

 

(1) 글의 흐름을 타라 : 문맥(文脈)

 

모든 글에는 흐름이 있다. 성경에도 흐름이 있다. 이것을 문맥(文脈)이라고 한다. 날마다 해당 묵상본문이 있을 때, 그 부분만 보지말고 해당 본문의 앞뒤 전후의 흐름을 속에서 그 묵상본문을 봐야 한다. 이 말은 곧 문맥을 타라는 말이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문맥의 흐름 속에서 각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맥에는 근접문맥과 원접문맥이 있다. 근접문맥이란 ‘내가 지금 해석하고자하는 문장이나 그 문장 가까이에 있는 전후의 흐름을 말한다. 성경에서 한 절씩 따로 볼 수 있는 예외적인 책이 있다면, 그것은 ‘잠언’ 정도가 될 것이다. 여타의 다른 책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만약 해당된 본문이 “그러므로”, “그러나”, “그리고”등과 같은 말로 시작되고 있다면, 그 본문은 그 앞의 내용과 필연적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왜 그러한 말이 등장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앞 부분을 읽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해석할 경우에는 그 뜻이 왜곡 될 수 있고, 때로는 정반대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엡4:30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만을 본다면 성령을 근심케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전후 문맥을 보면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의 삶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이단(異端)들이 이것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필요한 말씀을 뽑아서 연결한다. 예컨대 행17:2에서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라는 말씀이 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행17:2)

 

여기에서 “자기의 규례대로(As his custom, 자기의 습관, 관례대로)”라는 말을 ‘안식교나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같은 이단들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회당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3절에 보면 왜 회당에 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수 있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17:3)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율법(안식일 등)을 지키기 위해서 안실일에 회당에 간 것이 아니고, 모든 율법(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증거하기 위해서 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할 목적을 위해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 문맥상 여기서의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2)”란 말은 유대교의 규정처럼 안식일을 준수하기 위해서 들었갔다는 말이 아니고, 사도 바울 ‘개인이 유대인에게 전도하던 습관대로’ 라는 말이다. 또한 본문이 분명히 ‘자기의(his)’라고 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유대교(또는 구약)의 규례대로'라고 적지 않았다. 실제로 바울은 평상시에도 유대인이 모이는 회당을 전도의 장소로 사용하여 왔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은 모습으로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과 같은 모습’으로 선교방법을 행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회당에 간 것이다. 사실 바울은 평상시에도 유대인들이 모인 곳이면 서슴지 않고 찾아갔다. 그런데 안식교나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에서는 그것을 구약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어느 특정 구절만을 뽑아서 아전인수(我田引水) 방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정말로 모든 성도들이 구약의 안식일과 율법들을 지켜야 한다면, 왜 사도 바울이 정식적을 다른 목회서신들을 통해서 이것을 직접적(直接的)으로 말하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그는 율법준수를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항해서 피나는 싸움을 싸웠고, 행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이방인에게 몇 가지를 제외한 율법을 준수를 강요하지 않았다.

 

원접문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원접문맥이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전체 흐름을 보는 것이다. 크게는 성경전체의 흐름을 보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요한 웨슬레는 어려운 부분의 해석에 있어서 다른 성경책의 병행(竝行) 구절들을 찾아서 병행되는 구절들을 성령의 도움으로 비교하면서 해석하였다. 이것은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이므로 각 성경은 내용은 자연히 통일성(統一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의 관주 활용하거나 공관복음서 비교 대조 또는 영어 성경들을 이용할 수 있다. 실례로 마7:11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그런데 눅11:13에서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성령이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이를 위해 영어성경(NIV, RSV, NRSV, NASB등)을 참조하거나, 사복음서 대조, 주석성경 또는 한글 번역 중 여러 가지 (예컨대 개역,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 성경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성경들에 대한 자료는 한국컴퓨터선교회, 대한성서공회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 역사적인 맥락을 보라 : 사맥(史脈)

 

성경은 하나님께서 저자들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상황) 속에서 주신 책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맥, 역사적인 배경과 문화들을 이해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이것을 사맥(史脈)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성경의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서 지금 여기에서의 올바른 적용도 가능하게 된다. 이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이나, 지리적인 환경 등을 기본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이미 우리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함께 나눈바가 있음).

 

(3) 구속사적인 흐름에 따라 해석하라 : 경맥(經脈)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어떤 본문이든지 성경은 성경전체의 맥락 속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할 성경의 전체맥락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통한 구속사의 흐름’이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中心)으로 전체적인 통일성(統一性)을 가지고 있다. 흔히 구약은 ‘오실 메시야’,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 말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흐름을 경맥(經脈)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예수님이 성경의 중심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임을 밝히셨고, 수 없이 많이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에게 눅24:2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7)

 

이러한 것은 초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사도행전에 보면 어떤 말씀으로 시작했든지 간에 그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로 집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스데반의 설교나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도,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서 시작해서 그것에 대한 해석의 결론을 예수 그리스도도 연결시켰다(행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특히 히브리서의 기자는 히브리서 전체 내용을 통해서 구약의 모든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기록되고 있음을 증거하였다. 예컨대 히11:26에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모세의 민족을 위한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라고 표현하면서, 구약의 모든 역사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였다(히11:24-26)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성경통독이 마치 산맥의 흐름을 보는 것처럼, 전체 구도를 보는 것이라면, 개인묵상(QT)는 숲 속에 들어가서 자세히 살피고, 그 나무들을 취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묵상하는 사람은 해당 본문의 전후 문맥을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평상시 통독(通讀)을 통해서 성경의 전체를 함께 볼 수 있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4) 체험과 전통에 비추어 해석하라.

 

저명한 웨슬레 신학 연구가인 ‘윌리암 아네트(W. Arnett)’ 박사는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웨슬레의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들을 몇 가지 정리했다. 웨슬레는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체험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그는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하면서 연구해도 아직 어떤 의심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체험한 목회자에게 의뢰할 것을 말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성도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영감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개인의 체험보다는 공동체(共同體)의 체험을 더 중요시하였다. 공동체의 체험이란 곧 교회의 전통과 초대교회의 결정 등을 말한다. 예컨대 삼위일체에 대한 초대교회들의 결정이나 사도신경의 고백같은 것들은 그 실례일 것이다.

 

(5) 이성의 도움을 받되, 믿음의 유추에 따라 해석하라.

 

웨슬레는 이성(理性)은 이해와 판단과 하나님께서 주신 논술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물론 웨슬레가 말하는 이성은 성령의 인도함를 받는 이성을 말한다. 그는 성령 아래에서만이 비로소 이성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면에서 웨슬레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귀납적(歸納的)인 접근방법을 사용했다. 이 분야에서 그의 방법은 선구자적이다. 그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관찰, 해석, 적용’의 단계를 사용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방법은 지금에 와서는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우리들이 묵상하거나 성경을 가르칠 목적으로 준비할 때에도, 이 귀납적인 방법은 적용된다. 예컨데 성경 본문을 읽을 때, “왜?”라는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랬을까?’, ‘왜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같은 것들이다. 어느 책이나 글이든지 거기에는 말하는 사람의 목적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그것을 찿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6)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해석하라.

 

성경의 저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성령님 자신이다. 그렇기에 묵상을 시작하기 앞서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베드로후서 1장:20-21절의 말씀처럼 성경말씀은 사사로이(자의적, 편협적, 나 중심적) 풀 것이 아니며, 성령님께 의지하면서 읽고 해석해야 한다.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3. 말씀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제자가 되자

 

나는 믿음의 청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다윗처럼 묵상하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말씀의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멋지게 지어가기 바란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묵상함으로 형통한 삶이 되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묵상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함께 읽으면서 이 특강을 마친다.

 

“7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7-8)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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