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연길공항12시경도착>>>도문(두만강변) (미니버스로50분쯤)>>>연길시내(시외버스터미널옆 여인숙같은 호텔)투숙
(6월4일) 연길역앞광장에서시외버스로 북파산문까지(3시간)이동>>>셔틀버스로온천지대까지이동>>>산행시작(40분정도)>>>
폭포아래에서 다시 하산>>>셔틀버스로산문까지이동>>>연길행시외버스탔지만 이도백하에서 혼자 하차>>>저녁식사후민박
(6월5일) 아침은가지고간햇반 취사후 한족들만탄 15인승버스에간신히얻어타고 송강하(2시간)도착>>>송강하에서 서파산문
까지는 셔틀버스로약 40분쯤>>>산문에서 다시셔틀버스로 백운봉 아래까지(40분정도)이동>>> 여기서 천지 까지 1236개단
통과후 1시간정도 산행>>>다시 역순으로 이도백화에 민박
(6월6일)아침일찍 이도백하에서 완행열차타고 龍井(용정)역(3시간)에도착>>>택시타고,용정중학교에서 윤동주 기념비비롯하여
연변역사에대해배우고 >>>다시택시로 해란강 거처 일송정 있는산 정상까지이동>>>버스타고(12원)연길시내까지진입(30분정도)
연길시내 "연포사우나(현지어로는 인푸)에서 50원에 간단한 발 맛사지받으면 취침까지가능(아침7시까지는 나가야됨)
(6월7일) 연포사우나 큰사거리에서 대각선쪽에 김밥천국에서 김밥한줄로 아침때우고 연길공항으로,,,, 이하
### 우리 산악동지여러분의성원에 힘입어 정통코스는 밟지 못했지만 상당히 즐겁고 싱그러운 체험을하고 무사히 돌아왔어요
우선 처음 대전에 알고있는 조선족의소개로 연길에서 한청년을 만났지만 우리말만좀 할줄알지 도무지 아는것이없고 영양실조까지 걸려서 짜증이겹쳐 바로 떨처버리고 전자사전의 도움으로 여행을시작했어요. 더러운담요 보단 침낭 가져오길잘했고, 연길에
묵었던 호텔바로옆에 주유소에서 500ml패트병하나 휘발유넣는데 4원 줬어요. 중국물가 생각만큼크게 싸지않아요. 결정적으로
한화303,000=중국돈 1800위환 이것이면 충분하리라생각했지만 벌써 백두산트래킹비(1000원)+가이드비용(850원)+문표값등 첫쨌날날씨도나빠 입산이금지됬지만 국가기관에서 발행해준 안내인(가이드)증을 목에걸고 같이 산행해야된다내요.
나중에 용정중학교에서 읽은내용이지만 1860년자연재해(지진났었나?)로 함경도와 평안북도일대가 폐허로변해 삶의 터전을찾고자 연변으로 조선인들이 대거 이주해서 조,옥수수등 밭작물에서 벼농사로 전환시키면서 황무지땅을 아주비옥하게만들다,,,
일제강점기때 중국공산당에적극가담하여 독립운동의 요충지이기도하고 따라서 중국정부로부터자치지구로 독립했다,,,
연길시내만해도 상점간판이 대부분 한글과 한자같이 공존하고 40%가 조선족이라네요.
도문 두만강 폭은겨우 50m정도로 건너편 북한들녁이 바로입니다.. 몇일전 탈북일가족이 현지인의신고로(탈북자들은 생계때문에 각종범죄와살인까지도 일삼는다고..)공안에걸려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는데 마중나온 북한군인들이 송아지 코뚜레 하는식으로
5살꼬마아이까지 줄줄이역어 끌고갔다고,요샌 총살않시키고 감옥에서 생옥수수가루와 콩몇알로 죽지않을정도만 준다는군,그쪽 조선족에게서 얘기듣고 가슴이 아파,신고하지말고 한국대사관에 먼저 알리라는말과함깨 한국에선 귀를 많이뚫고 일부러 싹 굶는애들도있다고..농담을하자 "피식 "
이튿날 내가탄 리무진버스는 한번 15인승쯤되는 미니버스는 하루 4번있지만 미니버스는 이도백하까지만 간답니다
3시간쯤걸려 도착했지만 짙은안개비와 비가많이와 도로가 없어 졌대요, 이도백하에서 조선족이 운영하는식당에서 저녁을먹으며
정보를 입수한결과 차 학감님이 알려준 트래킹코스는 불가하고 거금800원에 다음날아침 "한족"들로만 이루어진 산행 미니버스에
자리하나 만들어 준다길래 탈탈 털어서 대신 그돈으로 잠자리까지 얻었어요,,여기까지왔는데 천지는 보고가야지,,
아침에 햇반 라면등 가져간음식 취사해먹고 맨뒤 구석자리에앉아 2시간정도 송강하까지가는데 " 은인"을 만났어요
소개를하자면, 23세한족아가씨, 한자어로는로 "이효아" 이도백하에서 알바하면서 (호텔기념품판매대) 중학교도 졸업못했지만
어머니의 적극권유로 한국어배우고있으며 아주명랑하고 착하고 7,80년도 한국영화 여주인공처럼 순수하고 예쁜 처녀,,,
결국 우리둘은 따로 떨어져나와 둘만의 산행을 즐겼답니다, 천지에서 사진도 같이찍고 가이드 역활까지 해주었어요,,
"이도백하"는 "백하"라는지명에 2도에 걸처져있어서 생긴이름이고 아버지를 여의고 백하로 이사온지는8년 되었다고,,
"천지는 자신도 처음가보고 안내원증서를 오늘받아 목에 걸고 처음나왔다내요, 엄청 좋아하더군요 결국 내가 첫 손님인 샘,
산행을 해본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하산할땐 좀 힘들었어요, 언젠가는 트래킹 코스로 백두산에 다시올텐데 그때까지 운동열심히해서 같이올라가자고 약속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백두산 협곡 두루두루 산행을했내요
돈이 떨어져 산밑에서 비박을 해야될형편이라 했더니,"자기네집에 가자" 하더군, 자기가쓰던 침대를주겠대요
난 그녀의 어머니와 다 쓰러져가는 우리네 옛날시골집이지만,그곳에서 중국인들의 선입견이 확 바뀌었어요
줄 돈이 없다고해도 손님이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마음씀씀이와 음식들,, 6월6일은 중국 단오절 인데 대나무입에 찹쌀을넣어찐
떡을 한족들은 다 해먹는대요.그떡을 "먹어본 적있냐?"고 묻길래, "내가 거래하는 중국집 절반가량이 한국"화교"라서 알고있고 얻어먹어본적있다" 하니 떠날때 싸 주겠다고,,,
다음날아침일찍 마당에서 그녀어머니와 어린동생이 장작을 패고있길래 미안한마음에 도끼를 뺏어들자 발등 찍는다고 못 하게합디다 . 내가 검도 유단자라 그런염려는없다하고 1시간가량 등짝에 땀나도록 다해주는걸로 숙박비 대신 했내요
8시50분 용정역까지 가는 열차(14원 ,3시간타고갔는데 정말 쌉니다)가 50분 연착해서 도착했어요
집을나설때 보따리에 그 떡과 삶은계란을 잔뜩싸주면서" 열차안에서 먹으라"하는데 어쩜! 우리네 정서하고 그렇게 똑같을수가,,,
용정역 앞에 도착하니 한자보다도 더크게 "연길"행 이라는 미니버스가 있었지만 학감님이 알려준 용정중학교를 들러 사진도보고
여학생들의 체육시간도 보면서 운동장구석에서 싸준 도시락을 까먹자니 마냥 행복감을 느꼈읍니다
운좋게 조선족 택시기사를만나 30원에 이곳저곳 구경하고 일송정에 올라서니, 다들아는 노래<선구자>,, 기념비에선 가슴이 "찡"
암튼 이번여행은 뿌듯했네요, 여유가되면 또가고싶어요 천지 정식코스도 밟고 "효아"한테 빚도 갚을겸,,
<< 참고로 연길시내에 등산 장비점한곳 발견해서 알고있고 내가 다녀간곳 전화번호 다있음 다음달 우리클럽 참조하시길,,
중국산 일회용 카매라와 휴대폰으로 사진찍은거 있는데 실력이 안되서 컴에 올릴수 있을지,,,
다음달 우리클럽 성공리에 산행하기를기원하며 참 길게도 썼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