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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2026년 0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작성자klaray|작성시간26.06.23|조회수51 목록 댓글 1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마을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어긋나는 긴장이 흐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말씀이 결국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것도 인간의 저항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 긴장의 바탕이지요.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을 가진 요한이라는 이름 대신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지으라는 사회적 압력은 하느님을 향한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순종 앞에서 힘을 잃고 맙니다. 즈카르야가 마침내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그는 다시 말을 하게 되고, 그가 처음으로 하는 말은 하느님을 향한 찬미가 됩니다.
즈카르야의 해방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계획 앞에서 인간의 망설임은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그리하여 하느님의 계획이 거침없이 펼쳐지리라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즈카르야의 이웃들은 두려움, 곧 거룩한 경외심에 사로잡힙니다. 사람들은 이를 마음에 간직하며 묻지요.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 오늘 복음은 다음 말을 덧붙입니다.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1,66).
여기서 우리는 루카 복음서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역사 안에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작은 마을이 오랫동안 간직한 전통 의식과 이름 하나를 통하여 구원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전통과 관습을 넘어서는 구원과 은총이 그렇게 인간 공동체 한가운데에 새겨집니다. 현실 논리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과학이나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정당하다고 인식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그분의 섭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즈카르야의 이웃들처럼 우리도 묻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펼쳐질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물음으로써 하느님을 잊지 않고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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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6.06.23 new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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