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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6월 09일

작성자klaray|작성시간26.06.08|조회수12 목록 댓글 0

    복자 마리아 타이지(Maria Taigi) / 06월09일

 

안나 마리아는 도미니코 타이지라는 짐꾼과 결혼을 했고 일곱 자녀를 낳았다. 성녀는 특별히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추기경, 왕후들, 갑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등 온갖 불의의 사람들이 끝임없이 성녀의 집에 모여들었다. 성녀는 어느날 가시관으로 된 태양에 현시를 보았고 그때부터 심한 육체적인 고통속에 숨졌다.
 

  에프렘(Ephrem) / 06월09일

 (306-373년) 306년 메소포타미아의 나시비스에서 출생한 성 에프렘은 설교와 저술로써 교회를 옹호하는 사명에 힘썼다. 그는 대중음악을 이용해 교리를 가르쳤으며, 최초로 공식예배에 노래를 도입하는 등의 업적으로 '성령의 하아프'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교황 베네딕도 15세에 의해 시리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헨리코(Henry) / 06월09일

 '신기료 장수 혹은 좋은 사람 헨리코'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헨리코는 파리에서 '구두장이회'를 조직하여 주민들과 여행자들에게 봉사하였다. 그는 하찮은 일에서도 주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릴 줄 아는 사람으로 공경을 받는다.

  다이아나(Diana) / 06월09일

 1290년 동정 성 도미니꼬가 이탈리아 내의 자기 수도회 활동을 위하여 한적한 곳을 찾았을 때, 그는 볼로냐를 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소망하던 유명한 대학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수도원을 지었으나 반대가 극심하였다. 그것은 그 땅을 소유하고 있던 안달로가의 위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안달로의 무남 독녀 다이아나의 간절한 호소에 굴복하였다. 성 도미니꼬는 사적으로 그녀의 동정서원을 받아들였고, 가능하면 수도생활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동안, 그녀는 자기집에 그대로 살면서 회개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녀는 도미니꼬 수녀회의 수도원을 짓도록 집안 사람들을 설득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부친은 완강히 거부할 뿐 아니라 그녀가 수도회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집을 나와서 아우구스띠노회에 입회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온 가족이 몰려와서 그녀를 집으로 강제적으로 데려왔다. 집에 온 그녀는 독방에 갇혀지냈으나, 또 다시 집을 탈출하여 록사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방해할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삭소니아의 성 요르단이 안달로와 그의 아들들을 설득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미니꼬 수도원을 짓는데 도움까지 베풀도록 마음이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다이아나는 1222년에 4명의 동료와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 로마의 산 시스또 수녀원에서 4명의 수녀들이 왔는데, 그들 중에 체질리아와 아마따가 있었다. 이 두 수녀의 생활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이아나와 마찬가지로 높은 성덕으로 유명하였고,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으며, 1891년에 시성되었다. 체칠리아는 체사리니의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이며 뛰어난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17세 때 뜨라스떼베레 수녀원에 들어갔다. 다이아나는 1236년에 1월 9일에 35세의 일기로 운명하였고, 체칠리아는 창설자 성 도미니꼬를 오랜동안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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