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네리오(Raynerius) / 06월17일
1160년 은수자 피사 성 라이네리오는 피사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는 다소 경박한 짓들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의 삼촌의 영향 때문에 산 비또 수도원의 뛰어난 수도자인 알베르또 레까뻬꼬레와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려는 뜻에서 먹기를 거부한 채 3일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는데, 그 이후부터 맹인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날마다 주님께 기도한 결과, 마침내 하느님이 기적을 베푸시어 영혼과 함께 육신의 눈을 밝혀 주셨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팔레스티나로 가서 살았는데, 타보르산에서 그는 십자가를 그음으로써 맹수를 쫓은 적이 있고, 또 빵을 많게 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한 기적도 행하였다. 피사로 돌아온 그는 계속하여 엄격한 생활을 하다가, 성 비또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기적의 성수로 치유의 은사를 베풀었으므로 "데 아꽈"라는 별명을
▶데레사(Teresa) / 06월17일
포루투갈 왕 산초 1세의 장녀이며, 성녀 마팔다와 성녀 산치아의 언니인 데레사는 레옹의 왕 알폰소 9세와 결혼하였고 여러 자녀를 두었으나, 사촌간의 결혼이었으므로 혼인 자체가 무효화되어 다시 포루투갈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영지에 로르바요에 베네딕도 수녀원을 세웠으며, 이곳에서 지냈다.
▶군둘포(Gundulphus) / 06월17일
6세기경 주교 부르주
▶그레고리오 바르바디코(Gregorio Barvadicus) / 06월17일
주교 증거자
▶넥탄(Nectan) / 06월17일
6세기경 순교자 월리암 위르체스트의 기록에 의하면, 성 넥탄은 웰스의 왕 브리찬의 24명의 자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이 성인은 아마도 데본과 콘월에 성당을 세운 분인듯 하다. 지극히 거룩한 이 넥탄은 어떤 지역을 개척하기 위하여 숲을 정찰하던 중, 일단의 강도들에 의하여 처단되었다. 그분에 대하여 기록된 것은 위의 내용 뿐이다.
▶니깐데르(Nicander) / 06월17일
4세기경 순교자 로마 이 성인들은 로마군의 군인이었으나, 크리스챤을 박해하는 칙서가 하달될때, 스스로 제대해버렸다. 그런데 이 사실 자체가 범법 행위로 간주되어 지방장관인 막시무스에게 끌려가서, 이방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명을 받았다. 니깐데르는 그 명령의 부당성을 역설했고, 같은 자리에 있었던 그의 아내인 다리아 역시 남편을 옹호하였다. 이떄 막시무스는 다리아에게 물었다 :"그대는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가?" "저는 남편의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그분은 하느님만 믿고 있으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말한 것 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르치아노 역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이 두 분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니, 다리아는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라는 말로 그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마르치아노(Marcian) / 06월17일
4세기경 순교자 로마 이 성인들 로마군의 군인이었으나, 크리스챤을 박해하는 칙서가 하달될때, 스스로 제대해버렸다. 그런데 이 사실 자체가 범법 행위로 간주되어 지방장관인 막시무스에게 끌려가서, 이방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명을 받았다. 니깐데르는 그 명령의 부당성을 역설했고, 같은 자리에 있었던 그의 아내인 다리아 역시 남편을 옹호하였다. 이때 막시무스는 다리아에게 물었다 :"그대는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가?" "저는 남편의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그분은 하느님만 믿고 있으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말한 것 뿐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마르치아노 역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이 두 분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니, 다리아는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라는 말로 그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몬타노(Montanus) / 06월17일
300년경 순교 가에타
▶몰링(Moling) / 06월17일
697 주교 지랄도 캄브렌시스는 성 바뜨리시오, 꼴룸바, 몰링 그리고 브로칸을 아일랜드의 4대 예언자라고 손꼽는다. 그는 웩스포드 지방의 킨셀라그 태생으로 렌스터의 왕손이었다. 그는 글렌달르그에서 수도자가 된 후, 아캅 카인이급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여기서 그의 영적 지혜와 표양이 유명하여 "테크몰링"으로 높은 공경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그는 속이 텅빈 그루터기 속에서 살았는데, 찾아오는 손님이 없을 때에는 거의 매일을 단식하며 기도생활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후 그는 성 에단을 계승하여 페른스의 주교가 되었으나, 몇년 후에 스스로 사임하고 자신의 옛생활로 되돌아갔다.
▶베드로(Peter) / 06월17일
1435 창설자 피사 성 베드로는 25세 때에 부친이 다스리던 피사 공화국의 궁중을 떠나 몬떼벨로의 움브리아 은둔소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주로 인근 마을에서 애긍을 청하면서 회개생활을 시작하였다. 1380년, 그는 12명의 동료들과 더불어 기도소와 움막을 지었고, 성 예로니모를 수호성인으로 모심과 아울러 그의 규칙을 채택하여 "성 예로니모 은수자회" 혹은 "성 예로니모의 가난한 형제회"를 창설하였다. 그의 수도자들은 연중 네 번의 사순절을 지내고,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마다 단식하였다. 1393년, 그의 부친과 형제들이 살해당하여 공화국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그를 지도자로 모시려는 신하들 때문에 한동안 유혹에 빠졌으나, 성녀 글라라 감바꼬르따의 표양에 따라 그는 살인자들을 완전히 용서하였다. 1421년, 그의 수도회가 교황 마르띠노 5세에 의하여 승인되었다. 그는 80세의 나이로 베니스에서 운명하였다.
▶베사리온(Bessarion) / 06월17일
4세기경 은수자 에집트 성 베사리온은 에집트 출신으로, 이상한 부르심을 들은 후 사막으로 들어가 성 안토니오의 제자가 되었다가, 그후 다시 성 마카리오의 제자로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마치 새들이 지붕 이쪽 저쪽으로 날아다니며 살듯이 그렇게 살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철저한 침묵과 단식으로 지냈는데, 한번은 40일간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지내면서, 찔레밭 속에서 살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자 비를 내리게 한적이 수차례 있고, 나일강을 걸어서 건넜으며, 악마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다수의 사막의 교부들처럼, 성 베사리온도 수를 누렸는데, 모세, 요수아, 엘리아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 비길 수 있다고도 한다.
▶보톨프(Botolph) / 06월17일
680 원장 잉글랜드 보톨프는 중세의 잉글랜드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성인이었으나, 그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게 없다. 그의 형인 성 아둘프와 함께, 그는 수도자가 되었는데, 654년에 이카노흐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흔히 그를 린컨셔의 보스톤에 결부시킨다.
▶아둘포(Adulf) / 06월17일
680년경 원장 이칸호 토리니의 원장 폴카드의 기록에 따르면, 아둘포는 보뚤프와 형제지간인데, 색손의 귀족 자제로서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수도자가 된 것이다. 아둘포는 우트렉트이거나 아니면 마에스트릭트의 주교가 된듯하지만, 분명치는 못하다. 그후 성 아둘포는 남부 앵글 왕 에텔문드의 요청으로 이칸호라는 곳에 수도원을 짓고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아비토(Avitus) / 06월17일
530년경 원장 프랑스 뚜르의 성 그레고리오에 따르면, 성 아비또는 페르슈 옛 관구를 설정했던 프랑스의 원장이며, 오를레앙에 안장되어 있는데 큰 공경을 받았다고 한다. 성 그레고리오는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을 방문했으며, 그분의 기적적인 권능으로 일어난 기적들이 수없이 많았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처음에 성 아비또는 미시 수도원에 쳥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사실 배우지 못했고 또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성 막시미노 외에는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성 막시미노는 그의 높은 성덕을 일찌기 알아보았으며, 그를 지하 보관실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후 수도원을 떠나 은둔소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성 막시미노가 서거한 후에야 비로소 성 아비또의 높은 덕을 알게된 수도자들은 그를 찾아 원장으로 모셨다. 하는 수없이 그는 미시 수도원에 얼마간을 머물렀지만 결국은 도망하여 페르슈의 은수자로서 숨은 생활만을 즐겼던 것이다. 국왕 클로테르는 성 아비또와 동료 은수자들을 위하여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지금의 샤토덩이다.
▶안티디오(Antidius) / 06월17일
265년 주교 순교 베장송
▶이스마엘(Ismael) / 06월17일
362년 순교
▶인노첸시오(Innocentius) / 06월17일
순교
▶ 헤르베(Herve) / 06월17일
6세기경 원장 플루비엔 성 하비는 브리타니 전역에서 공경받는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게 없다. 그는 브리튼 애국시인의 아들이었는데, 태중 소경이었다. 그는 젊어서 은수생활을 시작한 뒤로 플루비엔의 원장으로 있다가 운명하였다. 그후부터 그의 이름은 영국의 일반적인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히메리오(Himerius) / 06월17일
707년 주교 므와이엥무티에
▶히빠시오(Hypatius) / 06월17일
446년 원장 소아시아 그는 프리지아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부친은 그당시의 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공부보다는 은수자 생활을 더 바랐기에 18세 때, 부친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은 뒤로 집을 나와서 수도자가 되려고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목동 노릇을 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하루는 어느 사제가 시편을 노래하는 그를 보고, 전직 군인이던 요나라는 은수자와 만나게 해주었다. 그 후 그는 부친과 화해하고, 본격적으로 은수생활을 하였는데, 그는 소아시아로 가서 루피니안의 옛 수도원을 부흥시켰고, 정통 교리 고수를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학자"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활동하였고, 특히 그의 기적과 예언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8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