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해탈의 세계와 기독교의 영생의 세계는 어떻게 다른가? (구원론) (4)

작성자서재생|작성시간12.12.05|조회수298 목록 댓글 0

불교의 해탈의 세계와 기독교의 영생의 세계는 어떻게 다른가? (구원론) (4)

 

5. 열반(涅槃)에 대한 불교계의 해석

불교에서 인생의 고뇌로부터 해방인 해탈의 경지를 표현할 때 열반(涅槃)이라는 말을 씁니다. 열반은 불교에서 구원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열반은 해탈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럼 해탈은 또 무엇일까요? 해탈이란 두 번 다시 생명을 부여받지 않고 두 번 다시 생존하지 않으며, 윤회(輪廻)의 윤(輪)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집착과 욕망과 번뇌의 끈을 자르면 생사윤회로부터 해탈(解脫)해 열반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구원받은 세계인 영생(永生)의 세계를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열반은 일반적으로 불교 고유의 중심개념으로 알고 있으나, 인도에서는 자이나교나, 브라만교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던 관념을 채용한 것입니다.

열반은 산스크리트어 “비루비나(zirvana)”를 음사한 말로 “동요를 가라앉힌다.” “조용하게 가라앉는다.”는 의미로도 사용한 예가 있지만, 보통은 “불꽃을 불어 끄는 것” 또는 “불어 끈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역(漢譯)에서는 적멸(寂滅), 멸도(滅度)등으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열반(涅槃)의 어의(語義)가 나타내고 있는 “불이 껴진 상태”는 불교의 이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인간이 무명업력(無明業力)에 의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그릇된 가치에 얽매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반(涅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했을 때 성취됩니다. <잡아함경>에 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일체번뇌가 영원히 없어져야 열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화경에는 “집착하는 마음만 없으면 자기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면 윤회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된다. 태어나지 않으면 늙음, 죽음, 슬픔, 고통, 번뇌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사실은 구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멸망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이는 열반의 세계가 무(無)존재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1) 불교의 구원인 해탈(解脫)의 세계는 정적인 무(無)의 세계입니다.


해탈의 세계는 첫째로 기쁨도 슬픔도 없는 절대적인 정적(靜寂), 즉 절대적 무(無)의 상태입니다. 이것이 근본에 가까운 해석입니다. 실제로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어<니르바나>로 “꺼져 버린 상태”라는 뜻을 가지며 마치 거센 바람에 꺼져 버린 불꽃처럼 열반은 거센 바람에 의해 생명의 불꽃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열반(涅槃)에 들어간 사람은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영원히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에게는 저러한 것을 측량할 만한 기준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즉, 이렇다 저렇다 논할 만한 실마리가 그에게는 없다. 모든 것이 완전히 끊어지고 모든 논의의 길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결국 석가모니는 열반은 윤회(輪廻)라는 생존(生存)의 틀 밖으로 나간 것이기에 통상적으로 말하는 유무(有無)의 차원에서 “열반(涅槃)에 들어간 자가 존재 하는가 존재(存在)하지 않는가?”라고 물을 수는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열반은 생명에 관한 모든 것들이 끊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무생(無生)무사(無死)의 현상을 의미하면서 생사환멸 연기라고도 합니다.

2) 해탈(解脫)의 상태가 너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른 일부 후세 사람들은 해탈의 세계인 열반에 들면 기쁨을 누린다고 말하기 시 작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변화해 해탈이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天國)과도 같은 이미지를 주게 된 것입니다. 해탈의 세계인 열반(涅槃)은 <정토>나 <불국토>라는 말과 결부되어 그곳에는 환희와 행복과 영생이 있다고까지 말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열반의 해석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불교의 본래 사상이라기보다는 후세에 와서 부가(附加) 또는 변질된 것입니다.

 

초기불교 경전을 보면 해탈세계는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이 단절된 절대적인 무(無)를 의미합니다. 불교는 원래 생사윤회로부터의 해탈을 목표로 해서 생긴 종교(宗敎)입니다. 즉 생존의 틀 밖으로 벗어나고픈 희망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해탈인 열반의 세계란 거기에는 즐거움도 슬픔도 없는 단지 불이 꺼진 상태의 정적만이 있을 뿐입니다. 즉 생사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불교에 있어서 열반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삼법인(三法印)에도 이 뜻을 포함하는 교리로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으로 열반(涅槃)은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성제인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을 통해 실현된 그 곳도 모든 번뇌(煩惱:-탐, 진, 치)와 무지(無知)가 사라져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멀리 초월된 해열반의 세계 해탈의 세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서재생목사(서울대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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