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야구 보러 갈래?"
큰딸의 한마디에 남편과 셋이 수원 화서역에서 만나 KT위즈파크로 향했다.
사실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야구라고 생각했다.
공 하나 던지고, 한참 서 있다가 또 던지고.
도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야구장에 가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응원전이 그렇게 재미있대."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는 말을 들으니 궁금해졌다.
그날도 사실 마음이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오기 전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속이 더부룩하고 체한 것처럼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집에 누워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미 표를 예매해 놓았으니 따라나섰다.
야구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우리는 5층 테라스석에 자리를 잡았다.
탁 트인 경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6월은 보훈의 달이라며 국가유공자 자녀가 시구를 했다.
국민의례가 시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경기장은 순식간에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더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상대 팀이 공격하면 상대 팀 응원가가 울리고,
KT가 공격하면 홈 관중석이 들썩였다.
치어리더들은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응원단장은 관중들의 손을 이끌었다.
전광판에는 선수 이름이 뜨고,
안타가 나오면 귀여운 동작으로 환호를 유도했다.
나는 공보다 사람들을 보는 게 더 재미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사실 나는 눈이 좋지 않다.
멀리 날아가는 공은 자주 놓쳤다.
누가 안타를 쳤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느새 주자가 어디까지 갔는지도 헷갈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미있었다.
공은 잘 안 보여도 분위기는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6회까지는 KT가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7회에 역전을 당했다.
그 순간 경기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실망할 줄 알았던 팬들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앉아서 구경만 하던 나도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KT! KT!"
나도 모르게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양 팀이 밀고 당기는 모습에 나도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8회.
KT가 다시 역전에 성공했다.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9회 말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순간,
관중석은 축제장이 되었다.
야광봉을 흔드는 사람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람들,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는 사람들.
나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경기장에는 빨강, 초록 불빛이 반짝였다.
야구방망이 모양의 야광봉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흔들렸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나도 하나 사서 흔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야구가 재미있었던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응원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같은 팀을 응원하고,
기뻐하고,
아쉬워하고,
다시 힘을 내는 모습.
그 안에는 묘한 에너지가 있었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체기와 두통으로 힘들었는데,
돌아올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묵은 체기를 내려주는 약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응원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야구라고 생각했던 나.
하지만 이제 누가 야구 보러 가자고 하면,
아마 제일 먼저 야광봉부터 챙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