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미사 때 남편과 함께 예물 봉헌을 했다.
남편은 성체가 될 제병을, 나는 물과 포도주를 들고 신부님께 봉헌하는 순서였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떨렸다.
평소에는 2층 성가대석에서 예물 봉헌하는 모습을 내려다 보곤 했다. 부부가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경건해 보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조금만 더 빨리 걸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서 보니 마음이 달랐다.
흰 장갑을 끼고 쟁반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지역장님이 "네 번째 신자들의 기도가 끝나면 출발하세요." 하고 알려 주셨다.
드디어 신호가 왔다.
나는 긴장한 탓인지 평소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가. 천천히."
하지만 이미 출발한 내 발걸음은 쉽게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결국 남편도 내 보폭에 맞춰 함께 걸어왔다.
신부님 앞에 도착해 인사를 드리고 예물을 봉헌했다.
그때 신부님께서 우리 부부를 마주 보게 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안수해 보세요."
순간 조금 쑥스러웠다.
남편은 두 손을 내 머리 위에 올리고 조용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도 남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같은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결혼한 지 마흔다섯 해.
돌아보면 힘들었던 날도 많았다.
먹고살기 바빠 서로를 챙기지 못한 날도 있었고, 사는 게 고단해 말없이 하루를 보낸 적도 많았다.
그런데 신부님 앞에서 서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신부님께서도 우리 부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주셨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물었다.
"오늘 예물 봉헌하니까 어땠어?"
남편은 별다른 말 없이 웃기만 했다.
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
생각해 보면 젊은 날의 우리는 늘 앞만 보고 달렸다.
아이 셋을 키우고 먹고살기 위해 바쁘게 살았다.
그러는 사이 세 딸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우리 부부는 성가대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성전 청소와 커피등 차 봉사도 하며 지내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행복이 멀리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보니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주일 미사에 함께 앉아 있는 일.
같은 성가책을 펼쳐 노래하는 일.
그리고 예물 봉헌을 하며 서로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행복이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범한 하루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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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은연못 작성시간 26.06.17 예물 봉헌이 있는 날은 그계절에 가장 단정하고 예쁜 옷을 준비한다.
목욕재계하고 그 날은 싸울일이 있어도 애써 참는다. 깔끔한 복장으로 본당안에 들어서면 신자들은 미리 알고서 " 오늘 예물봉헌 있으시죠? " 라고 인사를 하죠.
그 날은 부부가 聖스러운 날이다.
아무나 봉헌을 못하기에 선택받은 날이다. -
작성자단 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남자는 양복 여자는 한복입고 했었는데 이번신부님은 전례복을 입고 하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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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은연못 작성시간 26.06.18 우리 부부는 독서. 봉헌 30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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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단 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8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지기님이 많은 은총 받고 게시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