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예약해 준 스페인 클래식 기타 공연을 다녀왔다.
평소라면 공연 시작 시간에 맞춰 들어갔겠지만 이날은 조금 일찍 도착했다.
공연장 로비에는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고,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들이 환한 미소로 관객들을 맞고 있었다.
커피 한 잔과 다과를 들고 소파에 앉아 있으니 공연을 보러 왔다기보다 어딘가 특별한 초대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해설가는 우리에게 말했다.
"여권 준비하시고 스페인의 낭만으로 떠나 보실까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어느새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기타 독주가 잔잔하게 흐르더니 바이올린이 더해지고,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까지 합류하면서 무대는 점점 풍성해졌다.
드레스를 입은 연주자들의 모습과 아름다운 조명은 나를 잠시 다른 세상으로 데려갔다.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어느 순간 오른발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이어 왼발도 움직였다.
몸이 음악에 맞춰 살랑거리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분의 머리가 음악에 맞춰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줄에 앉은 다른 관객의 모자도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나만 음악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다음 곡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었다.
기타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마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눈앞에서는 연주자가 연주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어느새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을 거닐고 있었다.
라이브 공연만이 줄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이어진 「카르멘」의 느린 선율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한 남자의 슬픔과 고통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듯했다.
가슴 한쪽이 저릿해지며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사랑의 로망스」가 연주되었다.
영화 금지된 장난으로도 유명한 곡.
열일곱 살 무렵, 오빠가 치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나도 흉내 내어 몇 소절 연주해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세상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절.
가을이면 코스모스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던 젊은 날의 내가 잠시 다녀갔다.
마지막 무대는 플라멩코였다.
빨간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빨간 구두를 신은 집시 여인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손에는 캐스터네츠.
그녀가 몸을 돌릴 때마다 치맛자락이 흔들리고, 캐스터네츠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무대 바닥을 힘차게 두드리는 발놀림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대 위에는 스페인의 태양과 열정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공연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유튜브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사랑의 로망스」를 다시 찾아 들었다.
눈을 감으니 공연장의 조명과 연주자들의 모습, 그리고 플라멩코를 추던 집시 여인의 빨간 구두가 다시 떠올랐다.
그날 밤은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오늘,
기타가 아니라 클래식과 사랑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내야.
다음 달 공연도 예매해 줄래?
오늘 네가 선물한 한 시간은
이 엄마에게 천국에 다녀온 시간이었다.
고맙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작은연못 작성시간 26.06.19 요즘 젊은애들은 엄마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집 딸들은 다방면에 뛰어납니다.
따님 덕분에 초여름밤을 완전히 클래식에빠져버렸네요.
저 또한 같이 즐긴 느낌입니다.
자주 문화생활을 하세요..
행복한 시간으로 쭈우욱 이어 가세요. -
작성자단 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9 제가 보고싶은 공연이나 영화 들어오면 제가 먼저 예매해달라 부탁을 한답니다.
돈 보내준다니 되었다며 계속 지원해주겠다고 언제든 좋은거있음 말하래요
그래서 다음달 아프리카공연 친구거까지 예매대행 해주었네요
전 예매같은거 할줄 모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