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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484 이의총( 二義塚) (4)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05|조회수2 목록 댓글 0

[列國誌]484
장강의 영웅들 (141)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8장 이의총( 二義塚) (4)


난서(欒書)는 불안하고 가슴이 떨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밥을 먹어도 밥을 먹는 것 같지 않았고, 등청하여 일을 보아도 일을 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진도공을 대할 때마다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날이 갈수록 난서(欒書)는 초췌해졌다.

마침내 난서(欒書)는 불안과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모든 벼슬을 내놓았다.
- 신은 늙어 쓸모가 없습니다. 새로운 인물로써 주공을 보필케 하십시오.
진도공(晉悼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림으로써 난서의 사직을 수리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신임 중군 원수가 발표되었다.
"한궐을 재상 겸 중군 원수로 삼노라."

조순의 사동(使童)으로 출발한 한궐, 지혜롭되 지혜를 드러내지 않고 위기에 처해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한궐(韓厥).
그는 마침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진(晉)나라 제일의 권자에 오른 것이었다.

일찍이 조순(趙盾)이 진(秦)나라와 하곡에서 전투를 벌일 때의 일이었다.
행군 도중 조순의 병차를 모는 어자가 물통 가져오는 일을 잊어 뒤늦게 물통을 갖고 대열 사이를 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 한궐(韓厥)은 조순에 의해 처음으로 사마(司馬)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는데, 그 어자의 행동을 보고는 잡아다 목 베고 조순의 병차를 부숴버렸다. 이 일로 모든 사람들은 한궐이 참수형을 당할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조순(趙盾)은 예상 밖으로 한궐을 불러 칭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 다음날 진(晉)나라 정권을 잡을 자는 한궐일 것이다. 한씨는 장차 번성할 것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조순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한궐(韓厥)에게 있어서 조씨 일족은 둘도 없는 은인이었다.
더욱이 조씨 일족이 도안가(屠岸賈)에 의해 멸족당하고 조정에서 퇴출된 이후로는 그 원통함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한궐(韓厥)은 중군 원수직에 오르자 진도공에게 그 일부터 청원을 했다.
"조씨 일문은 조쇠(趙衰) 이래로 대대로 나라에 큰 공훈을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누명을 써서 마침내 멸족당하는 큰 화를 입고야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신료와 백성들은 그 일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늘이 도우사 다행히 조씨의 일점 혈육인 조무(趙武)가 살아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공 있는 자에겐 상을 주시고 죄 있는 자에겐 벌을 내리셨습니다. 청하건대, 조씨의 억울한 원정(寃情)을 살펴주십시오."
진도공(晉悼公)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물었다.

"조씨 일문의 일은 나도 선친으로부터 들은 바 있소. 당시 조삭(趙朔)의 일점 혈육도 죽었다고 했는데, 그럼 그게 아니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당시 도안가는 조삭의 유복자인 조무(趙武)를 죽이려고 갖은 짓을 다했습니다만, 조순의 문객인 공손저구(公孫杵臼)와 정영(程嬰)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때 도안가가 죽인 아이는 조무가 아니라 정영의 아들입니다."

"조무(趙武)는 지금 어디 있소?"
"정영이 우산(盂山)으로 데리고 가 몰래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쯤 아마 열두어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진도공(晉悼公)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글썽거렸다.

"악(惡)은 선(善)을 멸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조무의 일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러하도다. 나는 조무(趙武)를 꼭 보고 싶소. 원수는 과인을 위해 그를 찾아올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하오나 지금 궁중에는 아직 도안가(屠岸賈)가 머물고 있습니다. 주공께선 당분간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알겠소. 염려하지 마시오."

그 날 저녁, 한궐(韓厥)은 미복 차림으로 도성을 나와 조무와 정영을 데리러 우산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우산에 당도해보니 과연 조무(趙武)는 훌륭한 소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한궐은 감격했다.

한궐, 조무, 정영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모든 시련은 끝났소."
한궐(韓厥)은 두 사람을 수레에 태우고 도성인 신강(新絳)으로 돌아왔다.

정영(程嬰)은 거리를 둘러보았다. 성은 옛 성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런만큼 그의 감회는 더욱 새로웠다. 자신도 모르게 조무의 손을 움켜잡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한궐(韓厥)은 몰래 조무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진도공(晉悼公)은 조무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간의 고난을 위로했다. 그들은 한참 동안 낮은 말로 무엇인가를 의논했다.

다음날 진도공(晉悼公)이 병이 났다는 소문이 조정에 퍼졌다.
신료들은 걱정이 되어 앞다투어 공궁으로 달려갔다. 한궐도, 도안가도 그속에 끼어 있었다.

진도공(晉悼公)은 병석에서 일어나 신료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병이 난 것은 공훈 있는 신하들이 불행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오."
대부들이 영문을 알지 못해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공훈 있는 신하들이 불행한 일을 당했다는 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도공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조쇠와 조순이 이 나라의 공신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대(代)가 끊어졌소. 이 어찌 불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있소?"
"조씨 일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것은 신들도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것은 이미 12년 전의 일입니다. 후손이 끊어진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신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때였다. 진도공(晉悼公)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조무여, 이리 나와 대부들에게 인사를 올려라!"
뒷방 문이 열리며 한 소년이 걸어나왔다. 대부들 앞에 서서 공손히 절을 올렸다.

대부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소년은 누구입니까?"
진도공은 대답 대신 신료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중군 원수 한궐이었다.

한궐(韓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소년은 바로 조씨 일문의 일점 혈육 조무(趙武)입니다. 지난날 죽음을 당한 아이는 실은 정영의 아들이지요."
이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도안가였다.

그는 이미 사색이 되어 조무와 한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진도공(晉悼公)이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머금으며 도안가를 향해 외쳤다.
"그대는 할말이 있으면 해보아라."
도안가(屠岸賈)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 비틀거리듯 일어나 뜰 아래로 내려가 땅바닥에 엎드렸다.

"신은........신은.........."
그런 도안가의 머리 위로 진도공(晉悼公)의 차가운 음성이 내리꽂혔다.
"조씨 일문의 비극은 모두 도안가에게서 비롯되었다. 이런 악인을 살려두고 어찌 조씨 일문의 원혼을 위로할 수 있으리오. 여봐라,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을 끌어내어 목을 베라!"
그 날 도안가(屠岸賈)는 시장 거리에 끌려나가 참수를 당했다.

한궐(韓厥)은 군사를 이끌고 도안가의 집으로 가 그 일족을 도륙내고 재산을 압수했다. 조무(趙武)는 진도공의 허락을 받고 도안가의 목을 들고 아버지 조삭(趙朔)의 무덤으로 가 제사를 올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도성 안 사람들은 모두 통쾌하며 기뻐했다.

조무(趙武)는 열세 살 소년이었지만 몸은 이미 성인이나 다름없었다.
진도공(晉悼公)은 지난날 조씨 일문의 소유였던 모든 전답과 재산을 조무에게 돌려주는 한편, 경(卿)의 지위도 내려주었다.

조무의 복권(復權)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감동을 안겨준 사람은 조씨 문객이었던 정영(程嬰)이었다.
-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은인의 자식을 살리다니, 놀라운 의리다.
한동안 도성 안은 온통 정영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진도공(晉悼公) 또한 정영의 일을 듣고 크게 감복했다.
- 조정에는 이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정영을 불러 군정(軍正)벼슬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정영(程嬰)은 눈물을 뿌리며 사양했다.

"공손저구(公孫杵臼)가 죽음을 자청하고 신이 살아남기를 자청한 것은 오로지 조씨의 일점 혈육을 살려 조씨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조무(趙武)는 관직에 복위되었고, 원수도 갚았습니다. 어찌 신이 혼자만 살아 부귀공명을 누리고 죽은 공손저구를 혼자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제 황천(黃泉)에 가서 공손저구를 만나볼까 합니다."
말을 마치자 조문 밖으로 나온 정영(程嬰)은 칼을 빼어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조무(趙武)는 정영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크게 통곡했다.
그 슬픔이 하늘에 닿았음인지 별안간 주위가 어두워지며 빗발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비는 사흘 동안 멈추지 않고 내렸다.

조무는 운중산(雲中山)으로 가 공손저구(公孫杵臼)의 무덤 곁에다 정영(程嬰)을 정성스럽게 묻었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의 무덤을 '이의총(二義塚)'이라 불렀다.
두 개의 의로운 무덤이라는 뜻이다.

조무(趙武)는 부모에게 하듯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그무덤을 지켰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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