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486
2부 장강의 영웅들 (143)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8장 이의총( 二義塚) (6)
오(吳)나라는 신비의 나라다.
갑자기 중원에 출현했다.
갑자기라고 했지만, 실은 그 전부터 오(吳)나라는 존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사서(史書)에서고 이전까지의 오나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개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했으면서도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중원과 교류할 기회가 없어서였을까?
중국에는 두 개의 큰 강이 수평으로 가로질러 있어 대륙을 삼등분하고 있다.
이 두 개의 강 중 위쪽에 있는 강을 황하(黃河)라 하고, 아래쪽에 있는 강을 장강(長江), 또는 양쯔강이라 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그저 '하(河)'라고 하면 황하를 말함이요, '강(江)'이라고 하면 장강을 가리킨다.
장강(長江)은 매우 길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수천 리에 달하며, 그 지류만도 수천 개가 넘는다.
장강의 상류 일대는 우리가 잘 아는 촉(蜀)이라는 땅이요,
중류는 형만이라 불리는 초(楚)나라 근거지였으며,
하류 쪽으로 내려오면서 오(吳)라는 나라를 형성하고 있다.
오(吳)나라가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BC 585년이다.
이 해는 주왕실 연호로 주간왕(周簡王) 1년이요, 진(晉)나라 연호로는 진경공 15년이다.
진나라가 수도를 강(絳)에서 신전(新田)으로 옮긴 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해에 <사기>나 <춘추>는 오(吳)나라에 대해 처음으로 기록을 남긴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해가 바로 오나라 추장인 수몽(壽夢)이 왕호를 사용한 해이며,
이때부터 오(吳)나라는 중원 국가들에 의해 정식으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기(史記)>를 보면 물론 그 이전의 오나라 역대 추장들의 이름이 일일이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연호나 행적에 대해서는 일절 기록된 것이 없다.
이로 미루어볼 때 이것들은 모두 오(吳)나라가 강대해진 이후에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사기>의 <오태백세가>에 의하면, 오나라 시조는 주태왕(周太王)의 큰아들 태백(太伯)이다.
태백에게는 계력(季歷, 주문왕의 아버지)이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아버지 주태왕이 동생인 계력에게 군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그는 다른 동생 중옹(仲雍)과 함께 장강 하류 지방으로 도망가 몸에 문신을 새기고 머리를 잘랐다.
그 후 그곳 원주민을 규합하여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곧 구오(句吳), 혹은 오(吳)라고 불리는 나라였다.
도읍지는 역시 오(吳)로서, 오늘날 소주 근방이다.
태백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뒤 동생 중옹(仲雍)이 수장에 올랐으며 그가 바로 오중(吳仲)이다.
그 뒤로 오중의 자손들이 계속 수장을 물려받아 수몽(壽夢) 대에까지 이르니, 태백으로부터 19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이러한 계보는 후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오(吳)나라는 수몽 대에 이르러 진(晉)나라와 교류하면서 부쩍 강성해졌다.
그 전파역을 담당한 사람은 초나라에서 진나라로 망명한 무신(巫臣)과 그 아들 무호용(巫狐庸)이다.
그러나 이는 중원 시각에서 본 것일 뿐, 실제로는 나름대로 독자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사서(史書)들이 기록하고 있는 대로 오나라가 형편없는 미개국이었다면 어찌 한순간에 강대국으로 변모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명에 진나라 무신(巫臣)이 전해준 중원의 선진 문명이 더해져 오(吳)나라 국력을 꽃피운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전쟁 방법이나 기술 등은 오(吳)나라보다 중원 쪽이 앞섰을 것이다.
이런 것은 단기간에 전수할 수도 있다.
초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는 무신(巫臣)과 무호용(巫狐庸)으로서는 복수를 위해서라도 집중적으로 병기와 전술을 전수해
오나라의 전쟁 능력을 극대화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록에 의하면, 오(吳)나라는 수몽 대에만 초나라와 10여 차례의 큰 전투를 벌였는데, 승패는 반반이었다.
중원의 패자국으로 자리매김한 바 있는 강대국 초(楚)나라를 상대로 이러한 접전을 벌인 것만 보더라도
당시 오나라의 전투력이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오(吳)나라의 국력 증강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제철법(製鐵法)의 발달이다.
이 무렵은 바야흐로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무렵이었는데,
대륙 동남방에 위치한 오나라에도 제련법이 도입되었다.
그런데 오(吳)나라 근방에서 나는 철은 중원의 것보다 상당히 양질이라 중원의 병기보다 훨씬 단단하고 예리했다.
그러니 전투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오나라에 검술이 발달하고, 유달리 명검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점과 무관하지 않다.
어찌 되었건 오(吳)나라는 진나라를 통해 중원 문화를 흡수했고,
삽시간에 초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강대국의 면모를 갖춘 채 홀연 역사 무대로 등장하게 되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