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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誌]487 이의총( 二義塚) (7)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07|조회수2 목록 댓글 0

[列國誌]487
2부 장강의 영웅들 (144)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8장 이의총( 二義塚) (7)


이 무렵, 무호용(巫狐庸)은 오나라에서 행인(行人, 외교관)의 자격으로 국정 자문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오나라 군사들에게 병차 제작법 및 조종법과 진법 등을 전수하는 한편 수시로 고국인 진(晉)나라와 연락을 취했다.

BC 570년이면 오나라 연호로 수몽(壽夢) 16년이다. 진나라 연호로는 진도공 3년에 해당한다. 그 해 정월, 무호용(巫狐庸)은 진나라 중군 원수 한궐(韓厥)로부터 비밀 지령을 하나 받았다.
- 오왕으로 하여금 초나라를 공격케 하라!
그는 곧 수몽을 알현하고 초(楚)나라를 칠 것을 주장했다.

이에 수몽은 장남인 제번(諸樊)을 대장으로 삼고 둘째 아들인 여제(餘祭)와 셋째 아들인 여매(餘昧)를 부장으로 삼아 초나라와의 접경 지역인 구자로 나가게 했다. 구자(鳩玆)는 지금의 안휘성 무호현 동쪽에 있는 읍으로 장강 연안의 도시다.

그러나 초나라 임금인 초공왕(楚共王)도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그는 많은 세작들을 오나라 땅에 잠입시켜 수시로 오군(吳軍)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 오군의 전선이 서진하여 구자 강안(江岸)에 정박하고 있습니다.

세작들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은 초공왕(楚共王)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날파리처럼 달라붙어 때도 없이 괴롭히는 오나라가 여간 괘씸하지 않았다.
"이 기회에 오(吳)나라를 박살내리라!"
그러고는 숙부인 영윤 영제에게 정예병 2만 명을 내주어 이쪽에서 먼저 오나라를 침공하게 했다.

영제(嬰齊)는 전선과 병차를 거느리고 수륙 양로로 진격하여 제번이 주둔하고 있는 오나라 구자(鳩玆) 땅을 급습했다. 이 기습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제번(諸樊)은 구자를 초군에게 내주고 장강 하류 쪽으로 후퇴했다.

첫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영제(嬰齊)는 계속해서 군대를 몰아 형산(衡山)까지 진격했다. 형산 역시 오(吳)나라 영토로서, 지금의 안휘성 당도현 동북쪽에 있는 산이다.

이에 영제(嬰齊)는 오군을 깔보는 마음이 생겼다.
- 내친 김에 오왕의 항복까지 받아내리라.
그때 영제를 도와 함께 출전한 장수로 등요(鄧廖)라는 사람이 있었다.

등요(鄧廖)는 초나라에서도 명장 반열에 낄 만큼 용맹스럽고 지휘 능력이 뛰어난 장수였다. 그는 영제(嬰齊)가 친히 오나라 수도까지 진격하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이 부근의 강은 흐르지 않고 괴어 있는편입니다. 따라서 나가기는 쉽지만 물러서기는 어렵습니다. 소장이 먼저 전선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가 유리하면 진격하고 불리하면 돌아오겠습니다. 원수께서는 구자(鳩玆)에 머물러 계시다가 사세를 보아 만전지책을 세우십시오."

듣고보니 그것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영제(嬰齊)는 등용에게 크고 작은 배 1백여 척을 내주어 동쪽으로 나가게 하고, 자신은 구자에 머물며 등요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다렸다.

한편 오군 대장 제번(諸樊)은 구자를 빼앗기고 양산(梁山) 방면으로 후퇴하여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초군을 필시 첫 싸움에서 이긴 기세를 타고 동쪽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나는 매복지계로 초군을 섬멸하겠다."

각 군에 명을 내렸다.
- 둘째 여제(餘祭)는 전선 1백 척을 거느리고 나가 채석항(采石港)에 매복해 있다가 초군이 나타나면 두들겨 부숴라.
- 셋째 여매(餘昧)는 전선 50여 척으로 양산으로 나가 초군과 싸우되 거짓 패한 체하고 채석항 방면으로 달아나라.
- 나는 뒤편에 머물러 있다가 상황을 보아 적장을 사로잡으리라.

초군 장수 등요(鄧廖)는 장강을 따라 조심스럽게 양산 방면으로 나갔다.
양산 근처에 이르자 오군 장수 여매(餘昧)가 50여 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등요는 친히 북채를 잡고 북을 울렸다.

둥둥둥......넓은 장강의 강물 위로 진격의 북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오군 장수 여매(餘昧)는 초나라 수군을 맞이하여 몇 번 싸우다가 짐짓 패한 체 동쪽으로 달아났다. 등요(鄧廖)는 적함을 놓칠세라 뒤쫓아 채석항 근처까지 추격했다. 그때 오군 대장 제번(諸樊)의 수군이 나타났다. 두 나라 수군 사이에는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전세는 팽팽했다.
등요(鄧廖)가 제번의 배를 노리고 앞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별안간 뒤편에서 포성이 진동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채석항에 매복해 있던 여제(餘祭)의 수군이 장강을 뒤덮을 듯 나타나 초나라 수군의 뒤를 업습했다.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앞뒤로 오나라 수군을 맞이한 초나라 전선들은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초군 장수 등요(鄧廖)는 얼굴에 화살을 세 대나 맞았다. 그는 아픔을 무릅쓰고 화살을 뽑아 강물에 내던진 후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오(吳)나라 전선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큰 갈고리와 긴창으로 초나라 전선을 어지러이 치고 잡아당기고 떠밀었다.
"아, 내가 여기서 패하는구나."
마침내 등요(鄧廖)는 오군에게 사로잡혔다.
그러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당했다.

오군(吳軍)의 대승이요, 초군(楚軍)의 완패였다.
1백여 척의 초나라 전선은 모두가 불타거나 부서져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목숨을 구해 달아난 병사들은 겨우 3백여 명에 불과했다.

구자에 머물며 승전 소식을 기다리던 영제(嬰齊)는 비참한 행색으로 도망쳐온 초군 병사들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예전에 공자 측(側)의 언릉 전투 패배를 힐책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바 있던 그였다. 그 일로 인해 가뜩이나 초공왕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던 영제였다.

그는 영성으로 돌아갈 일이 두려웠다.
한 심복 부하가 그런 영제의 마음을 눈치채고 아뢰었다.
"우리는 이미 오나라 땅인 구자(鳩玆)를 빼앗았습니다. 패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원수께서는 이 점을 강조하여 보고서를 올리되, 등요(鄧廖)가 제멋대로 군사를 몰고 나갔다가 패했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런 문책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제(嬰齊)가 고개를 끄덕이고 초공왕에게 올릴 보고서를 쓰려 할 때였다.
채석항 전투에서 크에 이긴 오군 대장 제번(諸樊)이 승세를 타고 구자까지 쳐들어왔다. 영제는 부랴부랴 전선을 거느리고 나가 싸웠으나 사기 충천한 오나라 수군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영제(嬰齊)는 구자까지 빼앗겼다.
패잔병을 수습하여 영성으로 향하던 그는 끝내 두려움과 울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한 말이나 토한 후 죽었다.

이리저리 쫓겨다니다가 기진맥진하여 죽게 하겠다는 옛 동료 무신(巫臣)의 저주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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