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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誌]489 스승의 스승은 (1)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10|조회수5 목록 댓글 0

[列國誌]489
2부 장강의 영웅들 (146)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9장 스승의 스승은 (1)


정(鄭)나라를 놓고 벌이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간의 다툼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진(陳)나라에 이어 정나라 마저 떨어져 나가자 이번에는 진(晉)나라 쪽에서 발끈했다.

"진(陳)과 정(鄭) 두 나라가 모두 우리나라를 배신했소. 어느 쪽을 먼저 치는 것이 좋겠소?"

진도공의 물음에 모든 사람이 중군 원수 한궐(韓厥)을 바라보는데, 

한궐은 오히려 상군대장 순앵에게 눈짓하여 먼저 말해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순앵(荀罃)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陳)은 소국이기 때문에 잃는다 해도 별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鄭)나라는 중원의 노른자와도 같은 지대입니다. 

진나라 같은 것은 열 개를 잃을지라도 정나라 만큼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군사 일을 결정하는 데는 중군 원수의 의견이 중요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그 의견을 따르는 것이 관례다. 

그만한 경륜과 능력을 지녔기에 중군 원수에 오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날 한궐(韓厥)의 태도는 이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순앵에게 말할 기회를 양보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도공(晉悼公)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원수의 생각은 어떠하시오?"

그 무렵 중군 원수 한궐(韓厥)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기력이 쇠진함을 느끼고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적당한 기회를 찾던 중 그날 회의가 열린 것이었다.

조당에 나와 있는 신료들의 면면을 살펴보는데 상군 대장 순앵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상군 대장이라면 6장(六將) 중 제2의 서열이다. 

유력한 원수 후보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순앵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 원수로서의 그의 자질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행히 순앵은 한궐의 생각과 같았다.


한궐(韓厥)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도공에게 아뢰었다.

"순앵의 말이 옳습니다. 앞으로 정나라 일을 해결할 사람은 순앵일까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신은 이제 늙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순앵에게 중군의 원수직을 넘겨줄까 합니다."

진도공(晉悼公)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궐은 계속해서 사의를 표명했다.

"정(鄭)나라 일은 결코 한두 번의 싸움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일관되고 지속적인 군사정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기에 신(臣)은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순앵을 중군 원수직에 임명하십시오.“

결국 진도공은 한궐의 사의를 받아들이고 순앵을 중군 원수에 임명했다.



신임 원수 순앵(荀罃)은 곧 대군을 거느리고 정나라를 치러 갔다.

진군이 호뢰 땅에 당도했을 때 정나라는 재빨리 사자를 보내와 동맹을 요청했다. 

이에 순앵은 정나라의 맹세를 받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이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초공왕(楚共王)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침공했다. 

정나라는 또 즉시 초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맹세를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쉽게 번복하는 정나라의 태도에 진도공(晉悼公)은 오히려 기가 막혔다.

"정(鄭)나라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다. 

나가면 항복하고 물러가면 배반이라니, 이래가지고서야 언제 정나라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순앵(荀罃)은 고심 끝에 새로운 계책을 아뢰었다.

"우리가 정나라를 제압하지 못하는 것은 초나라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초나라 기세부터 꺾어놓아야 합니다. 

신에게 우리는 편안하고, 초나라는 피곤하게 할 묘책이 있습니다."

"그 묘책이라는 것을 어서 말해보오.“

"자고로 군사를 너무 자주 출동시키면 피곤해집니다. 주공께서는 임시로 군제를 개편하십시오."

지금 진(晉)나라 군제는 상, 중, 하, 신군 - 이렇게 4군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것을 당분간 3개 군단으로 나누어 1군단씩 교대로 출동시키되, 나머지 2개 군단은 쉬게 한다는 것이 순앵(荀罃)이 생각해낸 계책이었다.

"그래서 초군(楚軍)이 오면 우리는 물러서고, 초군이 물러가면 우리는 전진합니다. 

또한 상대가 싸움을 걸면 피하고, 상대가 쉬려고 하면 싸움을 겁니다. 

이것을 여러 번 반복하면 우리는 교대로 나가기 때문에 피로하지 않지만, 

초군은 먼 길을 여러 번 오가기 때문에 지쳐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진도공(晉悼公)은 무릎을 쳤다.

"기막힌 계책이오. 당장 실행에 옮깁시다.“


순앵(荀罃)은 4군을 3개 군단으로 재편성하고 각 군단별로 출동 순서를 정해주었다.

순앵은 모든 장수를 불러놓고 지시했다.

"첫번째로 제1군단이 출정하고, 두번째로는 제2군단이 출정하고, 세번째로는 제3군단이 출정하시오. 

중군은 각기 그 소속을 따라 접응하되 윤번제로 교대할 것이오. 

다만 유의할 것은, 이번 싸움의 목적은 적의 맹세를 받아내는 것이니만큼 힘껏 싸울 필요는 없소."


군제 편성이 끝났을 때 작은 소동 하나가 발생했다.

진도공의 친동생으로 양간(楊干)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열아홉 살의 양간은 혈기왕성했다. 

정나라를 치러 간다는 말을 듣자 신명이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중군 원수 순앵을 찾아가 말했다.

"나도 전쟁에 참가하고 싶소. 선봉에 세워주시오.“

순앵(荀罃)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전쟁의 목적은 속히 나가고 속히 물러서는 데 있을 뿐 싸워서 공을 세우는 데 있질 않습니다. 

또한 이미 부서와 순서를 다 정했으니, 공자께서는 다음 기회를 기다려주십시오."

그래도 양간(楊干)은 출전할 것을 고집하며 계속 졸라댔다.

순앵(荀罃)은 양간이 진도공의 친동생임을 감안하여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정히 그렇다면 신군에 배치해드리겠습니다.“

"신군은 제3군단이 아니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소? 나는 제1군단에 들어가고 싶소."

"그것만은 안 됩니다.“

순앵(荀罃)은 분명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양간은 자기가 임금의 동생인 것만을 믿고 부하들을 거느린 채 자기 마음대로 제1군단 뒤에 가서 섰다.


사마(司馬)는 군대 내의 질서와 법령을 다스리는 직책이다.

이때의 사마는 위강.

위강(魏絳)이라면 군령을 바르게 집행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추호의 어지럽힘도 용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진도공과 순앵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사마 위강은 상군과 중군 일부 병사들로 구성된 제1군단의 정렬 상태를 둘러보던 중 

신군 소속인 양간(楊干)이 그 뒤편에 열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사열을 중단하고 모든 군사들에게 외쳤다.

"양간(楊干)은 군령을 어기고 군사 행렬의 순서를 어지럽혔다. 

군법대로라면 당장 목을 끊어야 하지만, 주공의 친동생이므로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다. 

양간의 죄를 대신해서 그 어자(御者)를 목 베리라."

그러고는 양간이 타고 있는 병차의 어자(御者)를 끌어내어 모든 군사가 보는 앞에서 한칼에 쳐죽였다. 

삽시간에 군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졌다.


양간(楊干)은 평소부터 방자한 행동을 일삼았다.

또한 군법의 준엄함도 알지 못했다. 

그는 자기 대신 어자가 죽는 것을 보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무섭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이놈, 어디 두고 보자.“

양간(楊干)은 그 즉시로 병차를 몰아 궁을 향해 달려갔다.

진도공 앞에 이르러 엎드리며 통곡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는 자신의 잘못을 빼고 위강(魏絳)이 어자를 죽인 일만 강조해 고하고는 그를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진도공(晉悼公)은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중군위 부장 양설적(羊舌赤)을 불러 분부했다.

"나의 아우 양간이 처벌당한 것은 곧 나를 모욕함이로다. 

내 기필코 위강을 죽일 것이니, 그대는 당장 위강(魏絳)을 잡아 대령시켜라."


그러나 양설적(羊舌赤)은 누구보다도 위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위강(魏絳)은 곧고 바른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피하지 않으며, 죄가 있을지라도 형벌을 두려워할 사람이 아닙니다. 

사열이 끝나면 반드시 제 발로 걸어들어와 자초지종을 고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구태여 위강을 잡으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시각.

과연 위강(魏絳)은 사열을 끝낸 후 공궁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상소장을 들고 있었다. 

그는 진도공 앞에 가서 상소장을 바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가 조문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대부 하나가 조문 밖으로 나오다가 위강을 발견하곤 걱정스런 얼굴로 위로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공께서 그대를 잡아오라고 분부하셨네. 들어가서 공손히 사죄하게."

이 말을 들은 위강(魏絳)은 뒤따라오던 종자(從者)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주공께 갈 것까지 없다. 너는 이 글을 주공께 갖다 바쳐라.“

상소장을 건네주고는 즉시 칼을 뽑아 자기 목을 찌르려 했다.


그때였다.

뒤편에서 두 장수가 황급히 달려와 위강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하군 좌장 사방(士魴)과 대부 장노(張老)였다. 

두 사람 모두 위강의 인품과 능력을 존경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마(司馬)가 궁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양간에 관한 일이라 여기고 뒤쫓아오는 길이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자기 생명을 이렇듯 가벼이 취급하시오?“

"이미 주공께서는 나를 죄인으로 취급하여 잡아오라 명하셨다 하오. 

내 어찌 군법을 굽히면서까지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겠소?"

"이번 일은 나라의 공사(公事)이외다. 사마는 군법을 시행한 것이지 개인 감정에 의해 양간을 벌준 것은 아니오. 

일이 이러하거늘 어찌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한단 말이오?"

사방(士魴)과 장노(張老)는 빼앗다시피 위강이 쓴 상소문을 들고 조당으로 들어가 진도공에게 바쳤다. 

진도공(晉悼公)은 위강의 상소장을 펴 읽기 시작했다.


주공께선 신의 불초함을 버리지 않으시고 신에게 중군 사마직을 맡기셨습니다. 

신이 듣건대, '3군의 목숨은 원수의 명령 한마디에 달려 있고, 원수의 권리는 그 명령을 내리는 데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명령해도 군사가 따르지 않고, 원수가 계책을 정해도 군사가 계책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군대는 이길 수 없으며 이기지 못하면 3군은 모두 죽습니다.

신은 출전에 앞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를 죽여 사마(司馬)의 직책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주공의 동생을 벌한 것이므로 신의 죄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디 신의 시체를 사구(司寇)로 넘기어 주공의 뜻을 널리 밝히십시오.


진도공(晉悼公)은 상소장을 읽고 나서야 위강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방과 장노에게 황급히 물었다.

"위강(魏絳)은 지금 어디 있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것을 신들이 극구 말렸습니다. 

그는 지금 궁문 밖 뜰에서 대죄하고 있습니다."


진도공(晉悼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맨발로 달려나갔다.

위강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내가 양설직(羊舌赤)에게 한 말은 아우를 친애하는 마음에서였고, 

그대가 양간(楊干)을 처벌한 것은 군법에 의해 행한 일이었소. 

내가 동생을 가르치지 못해 군령을 어기게 했으니 이는 모두 나의 허물이오. 

그대에게는 아무 죄도 없으니, 부디 칼을 거두어 나의 허물을 이중되게 하지 말아주시오."

그러고는 위강(魏絳)을 신군 좌장으로 승진 발령내고, 위강의 후임으로는 장노(張老)를 임명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로 위강에 대한 진도공(晉悼公)의 신임은 더욱더 두터워졌다.

위강 또한 끝까지 진도공을 보필하여 진(晉)나라가 패자국으로서 위엄을 떨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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