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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誌]490 스승의 스승은 (2)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列國誌]490
2부 장강의 영웅들 (147)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9장 스승의 스승은 (2)


BC 563년(진도공 10년) 겨울.

마침내 진나라 제1군단은 정나라를 향해 쳐들어갔다.

진군(晉軍)은 일단 우수(牛首) 땅에 진을 치고, 병력을 나누어 호뢰 땅에도 군대를 파견했다.

그런데 이 무렵, 정(鄭)나라에서는 공실 내부에 심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정나라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은 재상인 자사(子駟)를 비롯해 사마 자국(子國), 사공 자이(子耳), 사도 자공(子孔) 등이었다.

3년 전, 이들은 반대파인 자호, 자희, 자후, 자정 등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바 있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들의 부하였던 위지(尉止)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 자사(子駟)를 비롯한 집정 대신들을 모조리 살해한 것이었다.


이때 자공(子孔)만이 위지의 반란을 눈치채고 미리 궁을 빠져나가 겨우 살아났다. 

자공은 곧 자사의 아들 자서(子西), 자국의 아들 자산(子産) 등과 힘을 합해 가병을 거느리고 궁을 들이쳐 위지 일당을 토벌했다.

이로써 정나라 정권은 자공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자공(子孔)은 우수와 호뢰 땅에 진군 연합군이 주둔해 있는 것을 알고 즉각 사자를 보내 화평을 청했다.


진도공의 업적을 논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 진도공(晉悼公)은 군대를 출동시킨 지 세 번 만에 초(楚)나라를 제압했다.


이번 군대 출병은 그 세 번 중 첫번째였다.

이에 대해 초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초공왕(楚共王)은 영윤 정(貞)을 시켜 정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정나라 땅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순앵(荀罃)은 본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정나라는 다시 초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진(晉)나라로서는 이미 예견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군제까지 삼교대로 편성하지 않았던가.

이듬해 여름, 진도공(晉悼公)은 이번에는 제2군단을 출동시켜 동맹을 파기한 정나라를 들이쳤다. 

이때는 연합군까지 결성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제나라 세자 광(光)과 송나라 대부 향술(向戌)이 가장 먼저 신정에 당도하여 동쪽 성문을 공격했고, 

그날 저녁에 진군 원수 순앵과 하군대장 난염이 당도하여 서쪽 일대를 유린했으며, 위나라 재상 손림보(孫林父)는 정나라 북쪽 변경을 침공했다.

정간공(鄭簡公)은 아홉 살의 어린 나이라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것을 재상 자공에게 일임을 했다. 

자공(子孔)은 처음 군대를 내어 맞서 싸우려 하다가 사로(四路)에서 몰려드는 진나라 연합군의 기세에 크게 겁을 먹었다.

그는 얼른 성문을 열고 나가 진군 원수 순앵에게 화평의 뜻을 전했다.

이에 순앵(荀罃)은 박(亳) 땅으로 물러나 여러 제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동맹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강대국을 위한 맹약일 뿐이었다. 

특히 동맹을 강요당하는 정(鄭)나라로서는 어떤 내용을 맹세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차피 초(楚)나라의 침공을 받으면 또 파기할 것을.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기 전에 초군에게 짓밟힐 것이 뻔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진(晉)나라와 정(鄭)나라는 서로 입술에 피를 바르고 맹세한 후 헤어졌다. 

이것이 진도공(晉悼公)이 세 번 군대를 낸 것 중 두 번째였다.

정나라가 진나라와 동맹을 맺자 이번에는 초공왕 쪽에서 즉각 반응을 보였다.

- 정(鄭)나라는 정말 괘씸한 자들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단단히 결심하고 군대를 내기에 앞서 진(晉)과 경쟁국이라 할 수 있는 진(秦)나라에 연합을 청했다. 

이때 진(秦)나라 군주는 진경공.

초공왕(楚共王)이 진경공과 연합을 착안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진경공의 여동생이 초공왕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두 나라가 인척 관계를 맺은 것은 진(晉)나라가 오나라를 사주하여 후방을 괴롭히는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서였다.

초공왕으로부터 연합 제의를 받은 진경공(秦景公)은 순순히 승낙하고 공족대부 영첨(嬴詹)을 대장으로 임명하여 정나라를 향해 출발케 했다.

이에 맞추어 초공왕도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형양을 향해 떠났다.

- 내가 이번에 정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하면 맹세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정(鄭)나라는 다시 초나라의 공격을 받은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이때쯤 해서는 나이 어린 정간공(鄭簡公)이라고 하지만 자기네 나라의 슬픈 운명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의 맑은 눈에는 절로 눈물이 맺혔다.

"언제까지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침공을 받아야 하는가?“

하지만 달리 대책은 없었다. 

재상 자공을 비롯한 신료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대부 공손사지(公孫舍之)가 일어나 말했다.

"지금 진, 초 두 나라의 군대 움직임을 보면 진군은 쳐들어올 때는 느리고, 돌아갈 때는 빠릅니다. 

반면, 초군은 쳐들어올 때는 빠르고 돌아갈 때는 느립니다. 

따라서 진군은 피로가 덜하고 사기가 충천하며, 반대로 초군은 늘 피로에 지쳐 있고 예기(銳騎)가 전과 같지 않습니다.

신(臣)은 이번 기회에 진군과 초군을 싸우게 하겠습니다. 

만일 두 나라가 정면으로 싸운다면 진나라가 이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공께서는 그때를 기다려 진(晉)나라를 섬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가 보건대, 진나라는 고의로 초나라와의 싸움을 피하고 있소. 

그런데 그대가 무슨 방법으로 그들을 싸우게 할 수 있단 말이오?“

"신에게 진(晉)나라를 격분시킬 묘안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짐짓 초나라와 동맹을 맺는 척하며 함께 송(宋)나라를 치는 것입니다. 

송나라는 진나라와 친한 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송나라를 치면 진(晉)나라는 격분하여 즉시 군대를 출동시킬 것이요, 

초(楚)나라 또한 물러가기 전이므로 우리는 진, 초 두나라가 싸우는 것을 앉아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공손사지(公孫舍之)의 말을 들은 정간공 및 대부들은 무릎을 쳤다.

"묘책이오.“

서글픈 회의가 아닐 수 없었다.

공손사지(公孫舍之)는 단신으로 수레를 타고 남쪽을 향해 달려가 영수를 건너 초군을 영접했다. 

정나라로부터 사신이 왔다는 말에 초공왕(楚共王)은 공손사지를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한 후 꾸짖었다.

"정나라같이 배신을 밥 먹듯 하는 나라는 처음 봤다. 도대체 너희 나라는 신의(信義)라는 것을 아느냐?"

공손사지(公孫舍之)가 공손히 아뢰었다.

"우리나라는 대왕의 위엄을 공경하여 평생 섬길 생각입니다만, 진(晉)나라가 워낙 포악무도하여 마지못해 그들과 화평을 맺은 것뿐입니다. 

특히 이웃나라인 송(宋)나라는 진나라의 수족이 되어 수시로 우리나라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번 기회를 맞아 대왕께서는 송나라를 치시어 그들의 버릇을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정(鄭)나라는 대왕께 충성을 다하는 동시에 앞으로 절대 배신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듣자 초공왕(楚共王)은 분노가 씻은 듯 사라졌다.

"과연 송(宋)나라는 괘씸한 나라다. 

내가 이번에 진(秦)나라와 연합하여 출정했는데, 그들이 오기를 기다려 함께 송나라를 치리라.“

그러나 공손사지로서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는 하루빨리 진, 초 간의 싸움을 성사시키고 싶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진(秦)나라 도읍인 옹성은 우리나라와 너무나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들이 언제 이곳에 당도할 것이며, 과연 진(晉)나라가 진군(秦軍)을 통과시켜줄 것인가도 의문입니다.

지금 초군(楚軍)은 천하제일의 강군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서쪽 오랑캐의 힘을 빌려야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초공왕(楚共王)은 방향을 틀어 오히려 정나라 군대와 합세하여 두 길로 나누어 송나라를 향해 쳐들어갔다.


느닷없이 초, 정 연합군의 기습을 받은 송(宋)나라는 크게 당황했다.

송평공은 방어군을 내어 초, 정군의 침공을 저지하는 한편 대부 향술(向戌)을 진(晉)나라로 급파하여 진도공에게 원병을 요청했다.

이때 진(晉)나라는 정나라를 치고 돌아온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여유롭게 군대를 동원했을 것이겠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진나라의 가장 심복인 송(宋)나라가 위급지경에 처하지 않았는가.

진도공(晉悼公)은 원수 순앵을 불러 명했다.

"즉시 군사를 일으키시오. 이번에는 제3군단 차례요!“

순앵은 이미 출정에 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진도공에게 아뢰었다.

"초나라가 이번에 진(秦)에게 연합을 청했다는 것은 이제 그들이 지쳤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온 힘을 모아 몰아붙이면 초군은 더 이상 정(鄭)나라를 넘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소. 이번 기회에 초나라의 콧대를 완전히 꺾어놓아야 하오. 원수는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제후국의 군대를 출동시키는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속히 각 나라에 격문을 보내 정(鄭)나라 땅으로 진격하라 지시하십시오.“

"알겠소. 곧 사자들을 각 나라로 보내겠소.“

진도공(晉悼公)은 11개 나라에 출전 격문을 보냈다.


그 해 9월. BC 562년 가을에 진(晉)나라 군대는 강성을 떠나 정나라 신정을 향해 쳐들어갔다. 

동시에 11개 나라의 군사도 각기 자기 나라를 출발해 정나라 땅으로 진격하니 그 기세는 가히 천하를 뒤삼킬 듯했다.

이것이 진도공이 세 번 군대를 출동시킨 것 중 세번째였다.

초공왕(楚共王)은 송나라 수도인 상구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갑자기 급보가 날아들었다.

- 진나라를 비롯한 12개 연합군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초공왕(楚共王)은 대경실색했다.

그러할 때 정나라 사자 공손양소(公孫良霄)가 초군 진영을 찾아왔다.

"우리 주공의 말씀을 전합니다. 

진군(晉軍)이 또 우리나라로 쳐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 같아서 언제 망할지 조석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왕께선 속히 군대를 돌려 진나라 연합군을 무찔러주십시오."

초공왕(楚共王)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영윤 정(貞)을 불러 물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영윤 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우리 군사는 한 달이 멀다하고 출정했기 때문에 피로할 대로 피로해 있습니다. 

아쉬운 일이지만 잠시 정(鄭)나라를 진나라에 넘겨주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초공왕(楚共王)은 울화를 참을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감정대로 행했다간 더 큰 화란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초공왕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회군하라!"


이로써 정(鄭)나라를 놓고 대결을 벌이던 진, 초 두 나라의 다툼은 진나라의 승리로 막을 내렸으며, 

모처럼만에 정나라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진도공(晉悼公)이 이룬 업적 중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초나라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치기로 했던 진군(秦軍) 대장 영첨은 진(晉)나라 땅을 우회하여 정나라로 향하던 중 

초나라가 이미 회군하여 본국으로 돌아갔고, 정나라는 진(晉)나라와 화평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첨(嬴詹)은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 우리는 공연히 진(晉)나라의 원망만 샀구나.

그러고는 군대를 돌려 옹성으로 귀환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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