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492
2부 장강의 영웅들 (149)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9장 스승의 스승은 (4)
해프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군 대장 난염의 동생으로 난침(欒鍼)이 있었다.
지난날 소년 시절 송나라 대신 화원(華元)을 따라 초나라로 가 영윤 영제와 일문일답을 나누어 영제를 탄복시킨 바 있는 바로 그 난침이다.
이때 난침은 진도공의 차우(車右)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이번 원정에 진도공이 직접 참전하지 않았으므로 따로이 군사를 거느리고 역림까지 나와 있었다.
그는 하군 대장 난염에 이어 원수 순언(荀偃)마저 회군하자 기가 막히다는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이번 출동은 진(秦)나라를 응징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가면 이건 우리 진(晉)나라의 수치다.
주공을 모시는 융우(戎右, 차우)로서 이 같은 부끄러움을 안고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고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범개의 아들 범앙(范鞅)을 꼬드겼다.
"함께 돌격하여 무공(武功)을 세우지 않겠는가?“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소. 함께 가서 진(晉)나라의 위용을 빛냅시다.“
난침과 범앙은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진군(秦軍)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느닷없는 진군(晉軍)의 기습에 진군(秦軍)은 당황했다.
난침과 범앙의 저돌적인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퇴각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진군(晉軍)의 후속부대가 전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진군(秦軍)은 비로소 적병이 외로운 군사인 것을 알고 총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전세는 역전되어 난침과 범앙이 밀리기 시작했다.
범앙이 난침에게 권했다.
"이 정도면 우리 진(晉)나라의 체면을 세웠으니 그만 돌아갑시다.“
그러나 난침(欒鍼)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더욱 용맹을 발휘하여 적진 사이를 누볐다.
그러는 사이 진군(秦軍)의 궁병대가 도착했고, 난침을 향해 소나기 같은 화살을 퍼부어댔다.
결국 난침(欒鍼)은 그 화살비를 피하지 못하고 적진에 쓰러져 죽었다.
범앙(范鞅)만이 겨우 탈출하여 병차를 몰고 강성으로 돌아왔다.
하군 대장 난염(欒黶)은 뒤늦게 동생 난침이 없어진 것을 알고 성밖으로 나왔다가 혼자 돌아오는 범앙을 만났다.
"내 동생은 어찌 되고 그대 혼자만 돌아오는가?“
범앙(范鞅)은 풀이 죽어 대답했다.
"난침(欒鍼)은 진군과 싸우다가 불행히도 전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용감했습니다.“
순간 난염의 가슴속에 커다란 분노가 일었다.
"이놈, 함께 갔다가 너만 살아서 돌아왔단 말이냐?“
그는 대뜸 창을 들어 범앙을 찔렀다.
"앗, 잠깐만............."
범앙(范鞅)은 겨우 창을 피하긴 했으나 난염의 험악한 기세를 보고 더 이상 말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재빨리 달아나 아버지 범개가 머물고 있는 중군 진영으로 몸을 피했다.
난염(欒黶) 역시 놓칠세라 범앙의 뒤를 쫓아 범개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범개(范匃)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난염을 보고 물었다.
"사위는 무슨 일로 그리 분개하는가?“
범개와 난염은 장인 사위 간이었다.
즉 범개의 딸인 기(祁)는 난염의 아내였던 것이다.
난염은 여전히 분노를 참지 못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범앙(范鞅)이란 놈이 내 동생을 꼬드겨 진군(秦軍)과 싸우다가 내 동생은 죽고 그놈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내 동생은 장군의 아들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장군이 범앙을 도성에서 추방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제가 반드시 범앙을 죽여 내 동생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범개(范匃)는 난염의 무례한 말투에 화가 치밀었으나 겨우 눌러 참고 그를 달랬다.
"그대는 진정하라. 내가 그대의 말대로 범앙(范鞅)을 도성 밖으로 추방하겠다."
문 밖에 숨어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을 엿들은 범앙(范鞅)은 도저히 난염의 보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그는 그 길로 뒷문으로 빠져나가 진(秦)나라로 달아나버렸다.
진경공(秦景公)은 망명해온 범앙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에게 객경(客卿) 벼슬을 주었다.
어느 날, 진경공(秦景公)이 범앙과 환담을 하는 중에 물었다.
"진(晉)나라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범앙(范鞅)이 대답했다.
"명군입니다. 특히 사람을 잘 골라서 씁니다.“
"군주가 그러하다면 신하 중엔 누가 현명한가?"
"여러 현신(賢臣)이 있습니다.
조무(趙武)는 학문과 덕망을 겸비했고, 위강(魏絳)은 바르고 청렴하여 법을 잘 지키고,
양설힐(羊舌肹)은 역사에 밝으며, 장노(張老)는 신의와 지혜가 있으며,
기오(祁午)는 사람을 잘 다스리며, 신의 부친 범개(范匃)는 능히 대세를 짐작할 줄 압니다."
"내가 알기로 진(晉)나라 내에는 여러 족벌이 있다.
모두가 성할 수는 없을 터인데, 그 중 누가 먼저 세력을 잃을 것으로 보는가?“
뜻밖의 물음이었으나, 범앙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난씨가 가장 먼저 몰락할 것입니다.“
"난염(欒黶)이 교만해서인가?"
"그렇습니다. 난염의 교만함은 극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화를 면할 것입니다.
난씨가 망하는 것은 그 아들인 난영(欒盈)대에 가서일 것입니다.“
"왜 그리 생각하는가?"
"난염의 아버지 난서(欒書)는 살아 있을 적에 많은 덕을 베풀었습니다.
난서는 비록 진여공을 죽인 사람이지만, 진나라에선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난서의 덕망이 워낙 컸기 때문이지요.
옛말에 '소공(召公)을 사모하는 자는 감당(甘棠)나무까지 사랑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무왕 때 정치를 잘한 명신 중 주공 단(旦)과 더불어 소공 석(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지방 순행을 나갔다가 감당나무 아래에서 쉰 일이 있었다.
이후 소공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그 감당나무를 돌보며 지극히 애호했는데, 이때부터 이런 말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난서(欒書)의 덕행은 그의 친아들인 난염에게까지는 미칠 것입니다.
하지만 난염이 죽으면 사람들은 난서의 덕을 잊을 것이요. 난염(欒黶)의 교만함만 기억할 것입니다.
따라서 난염의 아들 난영(欒盈) 대에 이르러서는 원망하는 자들이 생겨나 마침내는 그 집안을 들이칠 것입니다."
범앙(范鞅)의 말에 진경공은 탄복했다.
"그대는 흥망성쇠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도다.“
그 뒤 진경공은 진도공에게 사자를 보내어 초나라를 도와 정나라를 치려 했던 일을 사죄하고 범앙의 귀국을 주선해주었다.
진도공 또한 진(秦)나라와의 화친을 수락하고 범앙을 돌아오게 하여 지난날의 벼슬을 돌려주었다.
아울러 난염을 불러 범앙에 대한 원한을 풀도록 중재했다.
그해 난염(欒黶)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난영(欒盈)이 하군 좌장의 직위에 올랐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