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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誌]493 스승의 스승은 (5)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列國誌]493
2부 장강의 영웅들 (150)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9장 스승의 스승은 (5)

진(晉)나라를 비롯한 12개국 연합군이 진(秦)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진나라 대신들의 내분으로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실없이 회군한 해인 BC 559년(진도공 14년).

위(衛)나라에서는 대신이 군주를 국외로 내쫓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른바 '위헌공(衛獻公) 축출 사건'이다.


위(衛)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아니, 위나라가 이상한 게 아니라 위나라 군주들이 이상하다. 

멍청한 임금들이 유독 많이 나왔다.

지난날 위의공(衛懿公)은 학을 좋아하다가 나라까지 말아먹었다. 

위나라 임금 중 가장 명군이라는 위문공(衛文公)도 중이(重耳, 진문공)를 공연히 박대했다가 도성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위나라는 재기불능의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5, 6대가 흘러 위헌공(衛獻公) 대(代)가 되었다.

위헌공은 위정공(衛定公)의 아들로서 재위 18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역시 군위에 오른 이래 군주다운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가까이하는 인물이라곤 모략을 일삼고 아첨하는 데 능란한 자들뿐이었다.

나랏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음악과 수렵에 정신을 빼앗겼다. 

여기서 음악이란 고상한 음악이 아니다. 

위나라 음악은 위풍(衛風)이라 불리는 것으로, 음탕하기로 소문이 났다.

이런 임금을 조정 신료들이 믿고 따를 리 없었다.

- 악(樂)을 멀리하고, 예(禮)를 가까이하시오.

위헌공의 생모인 정강(定姜)은 아들이 군주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염려하여 누누이 훈계했으나, 위헌공(衛獻公)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 무렵 위나라의 집정 대신은 상경 손림보(孫林父)와 아경 영식(寧殖)이라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위나라 대대로 명문세도가 출신이다. 

그들은 위헌공의 혼암스런 행동을 걱정하며 늘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이었다.

위헌공(衛獻公)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손림보와 영식에게 며칠 뒤 점심식사를 하자고 약속했다.

약속한 날이 되어 손림보(孫林父)와 영식(寧殖)은 예복을 차려입고 공궁으로 들어가 위헌공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위헌공(衛獻公)으로부터 아무런 기별이 없는 것이었다.

'곧 사람을 내어 부르시겠지.‘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었다.

하루 종일 굶은 두 사람은 매우 배가 고팠다. 

마침내 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궁 문을 두드렸다.

내관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주공께 우리가 왔다고 전하여라.“

"주공께선 지금 후원 동산에서 활을 쏘시는 중입니다. 두 대신께서 주공 뵐 일이 있으시면 직접 후원으로 가보십시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림보(孫林父)와 영식(寧殖)은 노기가 치밀었으나 눌러 참고 후원 동산으로 향했다.

과연 후원에서는 위헌공(衛獻公)이 사사 공손정(公孫丁)을 데리고 활쏘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사사(射師)란 궁술 스승이라는 뜻이다. 

공손정은 위나라에서 명궁으로 소문난 사람으로 많은 제자를 배출해냈다. 

위헌공도 틈만 나면 공손정을 불러 활쏘기를 배웠다.

위헌공(衛獻公)은 활쏘기에 빠져 있었음인지 손림보와 영식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더욱 화가 난 손림보(孫林父)가 위헌공 가까이 다가갔다.

"주공!“

그제야 위헌공은 눈을 거만스럽게 치켜뜨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대들은 무슨 일로 왔는가?“

"주공께선 신(臣)들과 점심식사를 하자던 약속을 잊으셨습니까? 
신들은 지금까지 내궁 밖에서 기다리다 못해 들어왔습니다.“

"어, 그런가? 내가 활 쏘는 일에 정신이 팔려 그 약속을 잊었구나. 
그대들은 물러가라. 다음날 다시 약속하리라."

그때 마침 기러기 한 떼가 울면서 공중을 날아가고 있었다.

위헌공(衛獻公)은 공손정을 돌아보며 급히 말했다.

"이번에는 저 기러기를 쏘아보자. 누가 맞추나 내기를 하자.“

손림보(孫林父)와 영식(寧殖)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휭하니 내궁을 나왔다.

두 사람은 걸으면서 탄식했다.

"주공이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대신들을 길가에 떨어진 말똥보다 하찮게 여기는구려. 

장차 우리들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모르겠소.“

"임금이 무도(無道)하면 스스로 재앙을 받게 마련이오. 

그가 어찌 남을 불행하게 하겠소?"

"선군의 동생인 흑배(黑背)의 아들 공손표(公孫剽)가 사람됨이 어질어 능히 성군의 자질을 갖추고 있소. 그대 뜻은 어떠하오?“

이렇게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인 사람은 상경 손림보였다.

야경 영식(寧殖)의 눈이 반짝였다.

"좋은 생각이오. 조정 신료들도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기회를 보아 성사시킵시다.“

그날로 손림보(孫林父)는 자기 영지인 척(戚) 땅으로 내려갔고, 영식은 도성인 제구(帝丘)에 남아 비밀리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척은 오늘날 하남성 복양현 일대로, 제구에서 1백여 리 떨어진 곳이었다.


척읍에 당도한 손림보(孫林父)는 자신의 심복 부하인 유공차(庾公差)와 윤공타(尹公佗)를 불러 은밀히 군사를 정돈하라 지시했다.

아들 손괴(孫蒯)가 손림보에게 말했다.

"아버님께서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계시면 주공의 의심을 살 것입니다. 

소자가 대신 도성으로 올라가 아버님의 안부를 전하겠습니다.“

"네 말이 옳다. 주공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며칠 후 손괴(孫蒯)는 도성으로 올라와 위헌공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신의 아비는 요즘 감기가 걸려 척읍에서 조섭하고 있습니다. 신이 아비 대신 문후를 여쭙고자 합니다.“

위헌공(衛獻公)은 얼마 전의 일로 손림보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간 것에 대해 여간 괘씸하게 여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손림보의 아들 손괴(孫蒯)를 조롱하기 위해 술상을 들여오게 하고 자신의 음악 스승인 태사(太師)와 악공까지 불러들였다.

"지난번에 그대 아비는 몹시 시장했을 것이다. 내가 오늘은 그대를 배불리 먹여주고 노래도 들려주리라."

술이 한두 잔 돌았을 때 태사(太師)가 위헌공에게 물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오리까?“

위헌공(衛獻公)이 손괴를 슬쩍 돌아본 후 대답했다.

"교언(巧言)의 종장을 노래해보라. 그것이 지금 시국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태사(太師)는 깜짝 놀랐다.

'교언'이라면 <시경>에 나오는 시(詩)다. 

서주의 마지막 왕인 주유왕(周幽王) 때 한 대부가 난세인 것을 탄식한 노래로, 

종장은 소인배들이 난동을 부린들 아무 염려가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태사(太師)가 놀란 것은 다름이 아니다.

위헌공(衛獻公)이 손림보를 소인배에 비유함으로써 그를 조롱하려는 의도를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태사(太師)는 얼른 위헌공을 만류했다.

"교언(巧言)은 불길한 시입니다. 이런 자리에선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른 노래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손림보의 아들 손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아닌가. 

그들 부자를 자극하는 노래를 피하고자 하는 충정에서였다.

그 자리에는 사조(師曹)도 앉아 있었다.

사조란 악사장(樂士長) 조(曹)라는 뜻으로, 악사장은 오늘날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해당하는 직위다.

사조(師曹)는 태사와 달리 위헌공을 몹시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태사를 꾸짖으며 말했다.

"주공께서 노래를 부르라면 부를 일이지, 어째 말이 그렇게 많소. 
그대가 부르기 싫다면 내가 부르겠소."

원래 그는 거문고의 명인이었다.

수년 전 위헌공의 분부로 그 애첩에게 거문고를 가르친 일이 있었다. 

위헌공의 애첩은 전혀 거문고에 소질이 없었는데 연습에도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사조(師曹)는 화가 나서 위헌공의 애첩을 때렸다. 

애첩은 매를 맞은 것이 분하여 그 길로 위헌공에게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사조를 험담하였다.

이에 위헌공(衛獻公)은 사조를 불러 애첩이 보는 앞에서 곤장 3백 대를 때렸다. 

이때부터 사조는 위헌공을 속으로 원망하였다.

그런 중에 위헌공(衛獻公)이 손괴 앞에서 '교언'의 시를 부르게 하자 

그는 위헌공에게 보복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태사를 꾸짖은 후 노래부르기를 자청한 것이었다.

사조(師曹)는 거문고를 뜯으며 청아하게 목청을 뽑았다.


저자는 누구인가

황하 물가에 살고 있도다.

힘도 용맹도 없으면서

오직 변란 일으킬 일만 꿈꾸네.

정강이와 발뒤꿈치에 종기 났으니

네깐 놈이 용기가 있으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잔꾀가 있다고 하지만

그자를 도울 자 얼마나 될까.


위헌공(衛獻公)이 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은 이런 마음에서다.

- 손림보(孫林父)야, 
네가 나에게 화를 내고 황하 물가인 척읍으로 내려갔지만, 네가 감히 어쩌겠다는 것이냐. 

그래봐야 너는 일개 신하이고, 나는 한 나라의 임금이다. 

네가 재상이라고 하지만 너를 도울 자는 몇명되지 않을 것이다. 

까불지 말고 어서 올라와 네 직무나 충실히 해라.


반면 사조(師曹)는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교언'의 노래를 불렀다.

- 손림보(孫林父)여, 
이 나라 임금은 그대를 변란도 일으키지 못할 정도의 보잘것없는 놈으로 여기고 있소. 

이 노래를 듣고도 가만히 척읍 땅에 앉아 있다면 그대야말로 진짜 소인배요, 졸장부로다. 

명색이 재상인데, 언제까지고 암군 밑에서 발바닥이나 핥는 노릇을 할 것인가.


그러나 정작 노래를 듣는 손괴(孫蒯)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했다.

- 손림보(孫林父)야, 
내가 이미 모반을 일으키려는 너의 계획을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당장 군사를 보내 너를 토벌할 수도 있으나,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터이니 자중하고 근신하여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손씨 일족을 멸하겠다.

즉 아버지 손림보의 모반 계획이 발각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사조(師曹)가 노래 부르기를 마치자 위헌공은 손괴를 향해 말했다.

"잘 들었으면 돌아가 그대 아비에게 내 뜻을 전하라.“

손괴(孫蒯)는 이미 마음속에 두려움을 잔뜩 품었다.

"신의 아비가 딴 뜻을 품었을 리 있겠습니까?“

궁에서 물러나온 손괴(孫蒯)는 그 길로 척읍으로 돌아가 아버지 손림보에게 고했다.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속히 거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가 먼저 멸문지화를 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손괴의 말에 손림보(孫林父)는 대경실색했다.

"주공이 나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구나. 

안되겠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덕망이 높은 사람은 거백옥(蘧伯玉)이다. 

내 친히 그를 설득한 후 나라의 큰일을 도모하리라.“

그리고는 비밀리 도성으로 잠입하여 거백옥의 집을 찾아갔다.


"지금 주공이 포악한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오. 

장차 나라가 망할 판인데, 그대는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거백옥(蘧伯玉)은 손림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군주요, 어찌 신하로서 군주를 범할 수 있겠소? 

설사 신하가 군주를 범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보다 더 나은 정치를 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이오?“

손림보(孫林父)는 거백옥이 거절의 뜻을 밝히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심 초조하여 다시 물었다.

"그대는 여기 계속 있을 것이오?“

도성에 머물며 위헌공의 편을 들 것인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거백옥(蘧伯玉)이 대답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법은 간단하오. 

간(諫)해야 할 일이 있으면 간하되, 간할 수 없을 경우에는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뿐이오. 

이것 외에 나는 알지 못하오.“

손림보의 뜻에 동조하지도 않거니와 암군인 위헌공의 편도 들지 않겠다. 나는 위나라를 떠나리라. 

이런 대답이었다.


그제야 손림보(孫林父)는 마음이 놓여 재차 척읍으로 돌아왔다.

과연 거백옥이 도성을 빠져나가 노(魯)나라로 망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이제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이렇게 말하고는 유공차(庾公差)와 윤공타(尹公佗)등 심복 장수들을 불러 제구성을 향한 진격 명령을 내렸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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