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494
2부 장강의 영웅들 (151)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9장 스승의 스승은 (6)
- 손림보(孫林父)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급보가 날아들었다.
위헌공(衛獻公)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는 손림보의 정확한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점심식사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에 화가 나 군대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했다.
위헌공은 즉각 이복동생인 공자 교(蟜), 백(伯), 피(皮) 삼형제를 사자로 삼아 손림보에게 보냈다.
"지난번 일은 내가 잘못했소.
그러니 군대를 거두고 도성으로 돌아와 재상직에 복귀하시오.“
하지만 손림보(孫林父)는 냉소를 머금은 채 그들을 단칼에 베어 죽이고 계속 도성을 향해 진격했다.
비로소 위헌공(衛獻公)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장수 북궁괄(北宮括)을 불러오게 했다.
그러나 북궁괄은 병을 핑계삼아 궁으로 들지 않았다.
다른 신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야경 영식(寧殖)이 이미 그들을 포섭해두었던 것이다.
위헌공의 사사 공손정(公孫丁)이 수레를 대령하며 재촉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속히 달아나 목숨을 보존한 후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위헌공(衛獻公)은 친위 군사 2백명을 거느리고 공손정과 함께 제(齊)나라를 바라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손림보(孫林父)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제구(帝丘)에 입성하였다.
영식이 다른 대부들과 함께 그들을 맞이했다.
"포악한 군주는 이미 달아났소.
그냥 내버려두면 큰 후환거리가 될 것이오. 어서 군대를 보내 잡아와야 할 것입니다."
손림보는 장자 손괴(孫蒯)와 둘째 아들 손가(孫嘉)를 불러 위헌공을 추격케 했다.
그들은 하택 벌판에서 위헌공 일행을 따라잡았다.
양측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과는 손괴(孫蒯) 형제가 이끄는 반군의 승리였다.
위헌공의 친위대 2백여 명은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겨우 남은 자라고는 10여 명뿐이었다.
위헌공(衛獻公)은 형세가 곤궁했다.
"아아,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는가.“
그는 오로지 공손정(公孫丁)만 의지했다.
공손정은 사사(射師)인만큼 활을 잘 쏘았다.
단 한 대 남은 수레에 올라타 위헌공을 보호하는 한편, 추격군을 향해 연신 화살을 날렸다.
그가 쏘는 화살은 한 대도 빗나가는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손괴(孫蒯) 형제는 좀처럼 위헌공의 수레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때 유공차(庾公差)와 윤공타(尹公佗) 두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그곳에 당도했다.
"우리는 재상의 명을 받들어 그대들을 도우러 왔소.“
손괴(孫蒯) 형제는 반가웠다.
유공차와 운공타 역시 위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활을 잘쏘는 명수였기 때문이었다.
"위후의 친위대 중에 활 잘 쏘는 장수가 있어 도저히 접근하지 못하겠소. 장군들이 가서 어떻게 좀 해보시오.“
유공차(庾公差)가 윤공타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장수가 바로 나의 스승인 공손정(公孫丁)이 아닐까?"
군에 들어오기 전 유공차(庾公差)는 위나라 제일의 궁수인 공손정을 스승으로 모시고 활 쏘는 법을 배웠다.
그 후 유공차는 윤공타를 제자로 거두어 궁술을 전수했다.
그러므로 공손정, 유공차, 윤공타는 3대에 걸친 사제지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윤공타(尹公佗)가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위후가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어서 추격합시다.“
두 장수는 병차를 몰아 위헌공 일행을 쫓기 시작했다.
십오 리쯤 추격하여 마침내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따라붙었다.
이때는 위헌공의 수레를 몰던 어자가 부상을 입어 공손정(公孫丁)이 말고삐를 잡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병차 바퀴 소리에 공손정이 돌아보니 지난날 자기 제자인 유공차가 쫓아오는 게 아닌가.
공손정(公孫丁)은 위헌공에게 말했다.
"주공께선 이제 안심하십시오.
지금 우리를 추격하는 장수는 바로 신의 궁술 제자입니다.
예부터 제자가 스승을 해치는 법은 없습니다.
신이 능히 그를 돌려보내겠습니다."
공손정(公孫丁)은 수레를 멈추고 유공차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유공차는 위헌공을 호위하는 장수가 공손정임을 확인하고 윤공타에게 속삭였다.
"틀림없는 나의 스승이다.“
유공차(庾公差)는 얼른 병차에서 내려 공손정에게 절을 올렸다.
"스승님께서는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공손정(公孫丁)은 인사를 올리는 유공차를 향해 손을 들어 답례한 후 외쳤다.
"잘 지냈노라.
그대는 활로 나를 쏠 것이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라.“
유공차(庾公差)는 주춤하며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만일 활을 쏘면 이는 스승을 배반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쏘지 않으면 주인을 배반하는 것이 된다. 아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구나."
마침내 그는 결심했다.
전통에서 화살을 뽑아 활촉을 모두 부러뜨린 후 공손정을 향해 큰소리로 외쳐댔다.
"나의 스승이시여,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주인을 위해 활을 쏘아야겠습니다. 또한 스승을 위해 활촉을 부러뜨렸습니다.“
말을 마치자 연거푸 네 대의 화살을 쏘았다.
첫번째 화살은 위헌공이 탄 병차 뒤에 가 맞았고,
두 번째 화살은 수레바퀴에 가 맞았고,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수레의 좌우 멍에를 맞혔다.
그러나 촉이 없는 화살이라 모두 튕겨 땅바닥에 떨어졌을 뿐 수레는 한 곳도 상하지 않았다.
활 쏘기를 마친 유공차(庾公差)는 병차를 돌리며 다시 외쳤다.
"스승님께서는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그러고는 평원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공손정(公孫丁)은 그러한 유공차의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제자도 부디 평안히 지내시게.“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위헌공을 모시고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편, 유공차와 동행했던 윤공타(尹公佗)는 위헌공을 잡아감으로써 큰 공훈을 세우고 싶었다.
그런데 유공차가 위헌공을 놓아주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쳤다.
그는 유공차가 스승이기 때문에 감히 말을 못 하고 병차를 돌리기는 하였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돌아가는 중에 유공차를 돌아보며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공손정(公孫丁)은 장군에게는 스승이 되지만, 저에게는 스승의 스승이라 인연이 멉니다.
제게는 주인의 명령이 더 소중합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손(孫) 재상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다시 추격하여 위헌공을 잡아올까 합니다.“
유공차(庾公差)는 고개를 저었다.
"스승의 스승도 스승이다.
나의 스승이 없었더라면 어찌 내가 있었을 것이며, 또 그대인들 있었겠는가.
더욱이 나의 스승 공손정(公孫丁)의 활 솜씨는 고금에 보기 드물 정도다.
초나라 양유기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는 않다.
결코 네 솜씨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그대는 다치기 싫거든 그냥 돌아가라."
그러나 윤공타(尹公佗)는 유공차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단독으로 병차를 돌려 다시 위헌공의 수레를 뒤쫓아갔다.
20여 리를 달려가자 위헌공의 수레가 보였다.
공손정(公孫丁)이 윤공타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다시 돌아왔는가?“
"당신은 유공차의 스승이지만, 나는 유공차의 제자일 뿐이오.
당신에게 한 번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으니, 어찌 당신의 제자라 할 수 있겠소?
나는 그대와 위후를 잡아가야겠소.“
공손정(公孫丁)이 노하여 대답했다.
"너는 근본도 모르는가?
내가 유공차를 가르쳤기 때문에 네가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더 이상 의를 상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
하지만 윤공타(尹公佗)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활을 들어 공손정을 향해 쐈다.
공손정(公孫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손을 들어 날아오는 화살을 가볍게 낚아챘다.
"가소롭구나, 윤공타여.“
그러고는 그 화살을 시위에 매겨 윤공타를 향해 되쐈다.
윤공타(尹公佗)는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러나 화살은 이미 윤공타의 왼팔에 가서 꽂힌 뒤였다.
그제야 윤공타는 공손정의 활 솜씨에 기겁하고 병차를 돌려 부리나케 도망쳤다.
이로써 위헌공은(衛獻公) 무사히 국경에 이르러 제(齊)나라로 망명할 수 있었다.
손림보의 쿠데타는 성공했다.
그는 위헌공이 제나라로 망명한 사실을 확인한 후 야경 영식(寧殖)과 더불어 공손표를 군위에 올려세웠다,
그가 위상공(衛殤公)이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