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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496 동방의 암운 (2)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16|조회수3 목록 댓글 0

[列國誌]496
2부 장강의 영웅들 (153)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0장 동방의 암운 (2)


최저(崔杼)의 국정 장악에 반기를 들고 은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사람은 

선대부터 악연을 맺어온 고고의 아들 고후였다.

고후(高厚)는 최저에 의해 축출된 고무구의 동생으로, 늘 최저에게 보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가장 빠른 길은 주공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제영공의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 중에 고후(高厚)는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제영공의 마음이 세자인 광(光)에게서 상당히 멀어져 있음을 알아챈 것이었다.


제영공에게는 여러 여인이 있었다. 

그의 정실 부인은 노나라 공실의 딸이다. 

이름을 안의희(顔懿姬)라고 했다. 

그런데 안의희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 

제영공이 첫 아들을 본 것은 안의희가 시녀로 데려온 질녀 종성희(鬷聲姬)에게서였다. 

그 아들이 곧 세자 광(光)이다.

그 후 중자(仲子)와 융자(戎子)라는 자매를 후궁으로 들였다.

중자도 아들을 낳았다. 

그가 공자 아(牙)다. 

지난날 숙손교여가 후궁으로 바친 딸도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저구(杵臼)였다.

궁중의 여러 여인 중 제영공은 융자를 가장 총애했다. 

융자(戎子)는 욕심이 많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들을 생산하지 못했다. 

대신 언니인 중자의 소생인 공자 아(牙)를 무척 사랑했다.

공자 아(牙)는 성장하면서 총명함을 보였다. 

융자(戎子)는 자주 자신의 침실을 찾는 제영공에게 틈만 나면 공자 아(牙)를 칭찬했다.

- 가히 군주의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숙사위(夙沙衛)라는 시인(侍人)이 가세했다. 

시인(侍人)이란 후궁의 사무를 맡아보는 환관이다. 

숙사위는 융자의 처소에 머물며 자주 제영공을 접했다. 

말재간이 뛰어난 그는 이내 제영공의 신임을 받았고, 마침내는 제영공의 침전으로 옮겨 공궁의 일까지 관여하기에 이르렀다.

융자와 숙사위로부터 공자 아(牙)의 얘기를 자주 들은 제영공은 점차 세자 광(光)을 멀리하고 공자 아에게 애정을 쏟았다. 

이것을 고후(高厚)가 눈치챈 것이었다.


- 지금 세자는 무능하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공자 아(牙)를 세자로 올리려는 마음이 있는 융자(戎子)와 숙사위(夙沙衛)는 그런 고후를 보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뻐했다. 

그들은 비밀리 궁중에 당을 만들고 공자 아가 뜻을 펼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하기로 결의했다.

이러한 고후의 암암리 행동은 마침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제영공이 고후를 공식적으로 공자 아의 부(傅)로 삼은 것이었다. 

부(傅)란 스승 혹은 후견인을 말함이다.


- 고후가 공자 아의 부(傅)가 되었다고?

최저(崔杼)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고후(高厚)는 이미 제영공의 총신(寵臣)으로 자리를 굳힌 뒤였다. 

최저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우 같은 자!'

그 무렵해서 내나라를 정벌하러 떠나갔던 안약으로부터 보고가 날아들었다.

- 내성(萊城) 함락.

- 내(萊)나라 군주 도주.


승전이었다.

제(齊)나라 공궁에는 기쁨의 환호가 일었다.

수백 년 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던 내(萊)나라가 아니던가. 

제나라의 숙원이랄 수도 있었다.

그것을 안약(晏弱)이 멋지게 이룩해낸 것이었다.

BC 567년(제영공 15년) 11월의 일이었다.


1만 군사를 거느리고 임치성을 떠난 지 2년 만의 쾌거.

이 무렵은 진도공(晉悼公)이 정나라를 놓고 초나라와 수차례 대결을 벌이던 때이기도 했다.

"3년을 약속했었는데, 1년을 단축시켰군.“

최저(崔杼)의 소감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안약을 정벌군 대장으로 천거한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배어 있었다.


그 다음해 정월, 

안약(晏弱)은 임치로 개선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로써 850리에 달하는 바다까지의 길이 뚫리게 되었구려. 참으로 빛나는 공훈이오.“

제영공(齊靈公)은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안약을 맞이했다.

당연히 그에 대해 포상도 내렸다.

- 이유(夷維) 땅을 안약의 영지로 내리노라.

이유는 내나라 땅이었던 곳으로 내성(萊城)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지금의 산동성 고밀현 일대다.


안약(晏弱)은 감격했다.

송나라에서 제나라로 망명해온 1세대로서 어엿한 안씨 일족의 영지를 확보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안약의 집안은 이유(夷維)로 이주했다. 

안약에게는 안영(晏嬰)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관중(管仲)과 더불어 제(齊)나라 최고 재상으로 손꼽히는 바로 그 안영이다. 

이 무렵 안영은 열서너 살의 소년이었을 것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열전>을 보면,

안평중(晏平仲) 영(嬰)은 내나라 이유 사람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바로 그 아버지인 안약 대에 이유(夷維)를 영지로 받았기 때문이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안영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안영의 자(字)는 중(仲)이다. 둘째 아들이라는 뜻이다. 

형이 있었을 것이겠으나 어떤 사서에서고 장남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일찍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사람들은 안영을 안평중(晏平仲)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평'은 아마도 시호인 듯싶다. 


안영(晏嬰)의 출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안영(晏嬰)은 태어났을 당시 몸이 몹시 작고 허약하여 울음조차 제대로 터뜨리지 못했다. 

모두들 며칠 못 가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갓난아기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안약은 이 아이에게 '영(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영'이란 조개를 엮어 만든 목걸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갓 태어난 계집아이에게 이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조개를 생명력의 상징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갓난 계집아이를 영아(嬰兒)라고도 한다. 

안약(晏弱)이 자신의 아들에게 '영'이라고 하는 계집아이 이름을 지어준 것은 주술적인 면이 강하게 작용한 때문이 아닐까.

만일 그랬다면 안약의 이 축원은 대단한 효험을 거둔 셈이다.

훗날 이 아이가 성장하여 고금을 통해 이름을 날리는 명재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萊)나라 합병 이후 제영공(齊靈公)은 눈에 띄게 변했다.

- 패자(覇者).

제환공 이후 제나라 군주들의 꿈이었다. 

제영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나라를 병탄하고 부쩍 자신감을 가졌다.

'나도 언젠가는...............‘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무엇보다도 서방의 강대국 진(晉)나라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그 무렵, 진도공(晉悼公)은 많게는 1년에 서너 차례씩, 적게는 1년에 한 번씩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맹을 가졌다. 

대부분은 초나라의 동맹국을 치는 일 때문이었다.

이것이 제영공에게는 여간 아니꼬운 게 아니었다.

첫 패공을 탄생시킨 동방의 대국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야심을 품은 제후로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제영공은 이 연합군의 참여를 공실의 일과 교묘히 연관시켰다.

- 세자 광(光)이 나 대신 참석하라.

자신의 대리인으로 세자 광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 수행자로서는 세자 광(光)의 태부(太傅)이자 재상인 최저(崔杼)가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세자 광과 최저는 열심히 나라 밖으로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회맹을 자주 소집하는 진도공의 오만함에 대한 불만으로 대리인을 보내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저(崔杼)는 눈치챘다.

'이게 뭔가? 세자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려는 수작이 아닌가?'

전장(戰場)이란 위험한 곳이다. 

자칫하면 죽거나 포로가 되는 것이 전쟁인 것이다. 

그런 전쟁에 다음 후계자인 세자를 한두 번도 아니고 대여섯 차례나 내보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세자를 위해하려는 음모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음모를 눈치챈 사람은 최저(崔杼)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안약(晏弱)도 제영공의 위험한 놀이의 저의를 간파했다.

"싸움에서 공을 세우지 못하면 세자와 그 수행자는 자연히 무능하다는 소문이 나돌겠지요."

지나가는 말투로 던진 안약의 말에 최저(崔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공은 세자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되자 최저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고후(高厚)의 얼굴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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