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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誌]497 동방의 암운 (3)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18|조회수2 목록 댓글 0

[列國誌]497
2부 장강의 영웅들 (154)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0장 동방의 암운 (3)


이 무렵, 제나라 수도 임치성 안에 이상한 유행 하나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이른바 '장부(丈夫)의 치장'이었다.

궁 안이고 밖이고 여인들이 남자 복색을 한 채 활개 쳐대고 있었다. 

도성 안의 시장에서는 남성용 장신구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러한 현상은 제(齊)나라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으나, 

달리 해석하면 제나라 공실의 어지러움을 상징하는 유행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남장(男裝)여인이 유행하게 된 배경을 추적하면, 

그 원인은 제나라 임금인 제영공, 아니 그의 애첩인 융자(戎子)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융자(戎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융 출신의 여자였다.

활달한 풍속을 배경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천성까지 거리낄 것 없는 그녀는 어느 때부터인가 궁중 의상을 벗어버리고 남자들이 입는 활동복을 즐겨 입기 시작했다.

그것을 제영공(齊靈公)이 보고 몹시 기뻐했다.

그 뒤로 장부의 치장은 궁중 여인들에게로 번졌고, 

마침내는 성안의 모든 여인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남성용 장신구를 착용하고 거리를 나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사는 참 묘하다.

이 유행이 엉뚱하게도 안영(晏嬰)을 역사 전면으로 등장시키는 매개가 될 줄이야.


장부 복색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거리마다 가득한 것을 본 제(齊)나라의 뜻있는 신료들이 제영공을 찾아가 간(諫)했다.

- 복장의 어지러움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여인들이 남장을 하는 것은 남녀의 구별을 잃는 것이요, 비속(卑俗)입니다. 

또한 재정의 낭비이기도 합니다. 

장부의 치장을 법령으로 금하십시오.


제영공이 보기에도 남장 여인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제영공(齊靈公)은 신료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여인들의 남장(男裝)을 법으로 금지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날 이후로 보이지 않아야 할 남장 여인들이 여전히 거리를 활개치고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더 늘어나는 추세였다. 

신료들은 다시 제영공에게 간(諫)했다.

- 장부(丈夫)의 치장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법령을 시행하는 관리들이 태만하기 때문입니다. 

관련 부처의 관리들에게 엄정하게 법을 시행하라 이르십시오.


제영공(齊靈公)은 다시 명을 내렸다.

- 남장 여인을 발견하는 대로 옷과 띠를 베어라. 

한 사람의 위반자라도 남아 있으면 단속하는 관리들을 벌주겠다.

그날, 임치성 거리 여기저기서는 진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단속 관리들에 의해 겉옷과 허리띠가 잘린 여인들이 속옷을 드러낸 채 교성을 내지르며 질주해대는 광경이었다.


'이 정도면 다 사라졌겠지.‘

관리 책임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음날 거리로 나가보았다. 

그러나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장(男裝) 여인의 수가 전날보다 더 많아져 있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눈을 부릅뜬 관리 책임자는 다시 수하들을 다그쳤다. 

거리에서는 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칼을 든 관리들은 남장 여인들을 쫓고, 관리를 발견한 그녀들은 괴성을 질러대며 날렵하게 도망쳤다. 

이러한 광경은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벌어졌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제영공(齊靈公)은 분노했다.

- 감히 나라의 법을 무시하다니.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관리 책임자를 파직시킨 것이 고작이었다.

후임 책임자가 들어섰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장부(丈夫)의 치장이 유행하였다. 

제영공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고민거리가 생긴 것이었다.


이럴 즈음 안영(晏嬰)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어릴 적의 영향 때문인지 키는 작았다. 

6척이 채 안 되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총명과 예지(叡智)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아버지 안약을 따라 궁으로 들어가 제영공을 알현할 기회를 가졌다. 

제영공이 경대부(卿大夫)들과 그 자제들을 초청하여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무렵은 남장 여인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때라 제영공(齊靈公)의 얼굴은 퍽 어두웠다. 

식사를 마치고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 문제가 대두되었다.

"묘안이 없겠는가?"

제영공(齊靈公)의 물음에 경대부들과 그 자제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문제로 인해 제영공의 기색은 무척 사나워 있었다. 

이럴 때는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보신(保身)의 처세다, 라고 그들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문득 무거운 공기를 가르는 듯한 맑은 음성이 실내를 울렸다.

"황공하오나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생기에 찬 음성이라 사람들은 깜짝 놀라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눈길을 돌렸다. 

이제 막 출사(出仕)하여 행정 부서의 말단 관리로 일하는 안영이었다.

그러나 제영공도 그렇고, 경대부들도 그렇고,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제영공(齊靈公)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안영이라고 합니다.“

"성이 안(晏)인 것을 보니 안약의 아들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대 의견을 말해보라."


안영(晏嬰)이 주저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남장 여인의 일은 오로지 주공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지금 남장 여인에 대해 안에서는 허용하시고, 밖에서는 금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소의 머리를 가게 문 앞에 내걸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궁중의 남장(男裝) 여인부터 금지하지 않으십니까? 

궁 안에서 그러한 복색이 사라진다면 궁 밖의 일은 걱정하실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순간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니, 숨까지 멎은 듯했다. 

이 청년이 지금 제정신인가.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하여 사나운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제영공에게 '잘못은 주공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형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그런 직설적인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안영(晏嬰)의 말은 참으로 지독한 빈정거림이었다.

잘못은 궁중 안에 있는데, 어찌 죄 없는 궁중 밖의 백성들만 괴롭히는 것인가. 

이보다 더 심한 직언은 없으리라. 

그 아버지 안약(晏弱)까지도 안색이 돌변했다.


하지만 정작 안영만은 태연자약(泰然自若)했다.

아니 또 한 사람, 눈 속에 광채를 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제영공(齊靈公)이었다.

- 밖에는 소의 머리를 내걸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판다.

절묘한 비유였다.

실제로 그랬다. 

궁중에서는 융자(戎子)를 비롯한 그 시녀들이 여전히 남장을 하고 궁 안팎을 들락거리는 것이었다. 

이것을 어찌 백성들이 알지 못하겠는가.

'아 -!'
제영공(齊靈公)은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노여움의 전율이 아니었다.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무엇인가의 신선함이 상쾌하리만큼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제영공(齊靈公)은 고개를 들고 전에 없이 큰소리로 외쳤다.

"숙사위를 불러라.“

근시(近侍) 숙사위가 총총걸음으로 나타났다가 제영공의 지시를 받고는 다시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되어 임치성 안에서는 남장 여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제영공(齊靈公)은 결코 명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니, 암군(暗君)에 가까운 군주였다. 

명군과 암군의 차이는 크지 않다.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다. 

올바른 신하의 간언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때 제영공(齊靈公)은 결코 쓰디쓴 간언을 용납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는 달콤한 말을 좋아했다. 

최저(崔杼)의 등장도, 고후(高厚)의 재기도 모두 그러한 배경하에 이루어졌다.


가까이로는 근시 숙사위(夙沙衛)가 가장 좋은 예이다. 

그는 자신을 향한 비아냥이나 독설을 듣고 홀연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명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안영의 간언을 수용했다는 것은 큰 사건이었다.

아니, 뒤집어 말하면 그런 제영공을 설득한 안영(晏嬰)의 용기와 설변이 더 크게 빛나는 일화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랬다.

그날 후로 안영은 일약 임치성내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이렇게 안영(晏嬰)은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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