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500
2부 장강의 영웅들 (157)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0장 동방의 암운 (6)
진(晉)나라 군대가 출병하리라는 최저(崔杼)의 예상은 들어 맞았다.
그 무렵 노(魯)나라는 이미 진나라에 원병을 요청한 상태였고, 진나라 강성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진(晉)나라 중신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분하고 있었다.
하나는 다섯 차례나 노나라를 침공함으로써 노골적으로 진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맹 체제를 깨뜨리려는 제(齊)나라에 대한 분노였다.
또 다른 하나는 신임 군주 진평공(晉平公)의 거상(居喪)을 핑계로 지금까지 원군 파병을 피해온 중군 원수 순언(荀偃)에 대한 조롱과 멸시였다.
- 역대 재상 중 지금 재상이 가장 무능력하다.
이런 험담이 공공연히 순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순언(荀偃)은 괴로웠다.
그는 이미 4년 전 진(秦)나라와의 전투에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바 있었다.
그때 하군 대장 난염(欒黶)이 자신의 명령에 불복하고 제멋대로 철군함으로써
그는 졸지에 12개 연합군의 제후들이 보는 앞에서 바보가 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일은 정말 나의 실수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반성했다.
그후로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인 각오를 다졌다.
그런 중에 제(齊)나라가 진(晉)나라에 반기를 들고 노(魯)나라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신들은 즉각적인 출병을 요구했다.
그러나 순언(荀偃)은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 주공께서는 상중(喪中)이오.
이것이 거절의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전력의 축적이었다.
지금까지 진(晉)나라는 정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군량과 전력을 소모했다.
그것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충분하다.‘
진도공에 대한 진평공의 거상도 끝났다.
때맞추어 제나라가 또 노나라를 침공했고, 노(魯)나라는 사신을 파견하여 원군을 요청했다.
이번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순언의 결단은 빨랐다.
지금까지의 우유부단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노(魯)나라를 도와서 제(齊)나라를 공격합시다.
뿐만 아니었다.
노나라를 비롯하여 송, 위, 정, 조나라 등 11개 동맹국 제후들에게 사자를 급파했다.
- 10월에 노나라 제수(濟水)가에서 회합을 갖고 제나라를 토벌합시다.
진나라 수도 강성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군대를 발진시키는 일뿐이었다.
꿈이란 정말로 미래를 암시하는 예언인가.
진나라 군대가 강성을 출발하기 며칠 전, 중군 원수 순언(荀偃)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천제(天帝)를 보았다.
천제는 전상(殿上)에 앉아 여러 죄인들을 꿇어 앉히고 재판을 벌이고 있었다.
궁전 뜰에 꿇어앉은 죄인들 속에는 전 군주 진여공도 있었고, 난서도 있었고, 정활도 있었다.
또 순언(荀偃) 자신도 그 속에 끼어 있었다.
소송인은 진여공이었고, 피소송인은 난서, 순언, 정활이었다.
진여공(晉厲公)이 일어나 자기가 죽던 당시의 상황을 천제에게 호소하자, 천제가 세 사람을 굽어보며 말했다.
- 너희들도 할말이 있으면 해보아라.
난서(欒書)가 먼저 변명했다.
- 진여공을 죽인 사람은 정활이었습니다.
그러자 정활(程滑)이 일어나 소리쳤다.
- 저는 난서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천제(天帝)가 판결을 내렸다.
-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사람은 난서였다.
그러므로 군주를 죽인 원흉은 난서다.
앞으로 5년 안에 난서(欒書)의 자손은 멸망하리라.
진여공(晉厲公)이 또 일어나 순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 순언 또한 주모자입니다.
이에 천제가 판결했다.
- 순언(荀偃)을 참수하라.
천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진여공(晉厲公)이 날이 큰 창을 들어 순언의 목을 후려쳤다.
꿈속에서도 순언(荀偃)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른 두 손을 내밀어 떨어지는 목을 받아들고 문 밖으로 달아나다가 마침 그 앞을 지나는 경양(梗陽) 땅에 사는 무당 고(皐)를 만났다.........
꿈은 거기까지였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꿈이었다.
- 목이 떨어지는 꿈을 꾸다니.... 기분이 나쁘구나.
꿈을 꾼 후 순언(荀偃)은 우울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일은 그 다음날 벌어졌다.
궁으로 들어가는 도중 우연히 거리에서 꿈속에서 보았던 경양 땅의 무당 고(皐)를 만난 것이었다.
경양(梗陽)은 도성인 신강 서남쪽에 있는 읍이다. 바로 순씨의 식읍이다.
"아니!“
순언(荀偃)은 무당 고를 보자 간밤의 꿈을 떠올리고 크게 놀랐다.
무당 고(皐)도 순언을 보고 그 앞으로 다가왔다.
"그대가 여기 웬일인가?“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경(卿)을 뵈러 올라오는 길입니다.“
"그대가 꾸었다는 꿈이......?“
순언(荀偃)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혹시나 하는 예감은 들어맞았다.
무당 고(皐)도 같은 내용의 꿈을 꾼 것이었다.
순언(荀偃)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괴이한 일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그대는 아는가?“
무당 고(皐)는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죽은 이들의 원혼이 붙었습니다. 경(卿)께서는 이번 원정길에 죽을 것입니다."
순언(荀偃)은 가슴이 뜨끔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내가 장차 동쪽을 칠 것인데, 그 싸움에서 패배한다는 뜻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동방에서의 싸움은 경(卿)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순언(荀偃)의 눈에 활력이 되살아났다.
"제나라를 쳐서 이길 수만 있다면 나는 죽어도 한이 없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무능한 원수가 아니라는 것을 모든 진(晉)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뒤, 순언(荀偃)은 진평공과 함께 3군을 거느리고 대망의 제나라 정벌길에 올랐다.
거의 같은 무렵, 제(齊)나라 군대는 노나라 공격을 중지하고 군대를 재정비하고 있었다.
- 진나라를 비롯한 12개국 연합군 발진.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던 일이었다.
"오라!“
제영공(齊靈公)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싸움의 승패는 병사 수가 아니라 기세에 의해 좌우된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나는 명실공히 패공에 오른다.‘
최저(崔杼), 고후(高厚), 경봉(慶封), 석귀보(石歸父), 식작(殖綽) 등 뭇 장수를 둘러보는 제영공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기는 높았다.
문제는 어느 곳을 싸움터로 정하느냐였다.
상대는 10만이 넘는 대군이다.
반면 제군(齊軍)은 그 절반인 5만 병력이다.
정면 대결로서는 승산이 없다.
이긴다 하더라도 희생이 크다.
최저(崔杼)는 수백 번의 가상 전투 끝에 이렇게 말했다.
"지세가 험한 화부주산(華不注山)이 좋을 듯싶습니다.“
"화부주산이라면 지난번 제경공께서 진(晉)나라와 싸워 패한 곳이 아닌가?“
제영공(齊靈公)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이 패었다.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고후(高厚)가 나서서 다른 안을 내놓았다.
"화부주산(華不注山)은 불길한 곳입니다. 평음(平陰)이라면 능히 대군을 맞이하여 싸울 수 있습니다.“
평음은 대읍(大邑)이다. 지금의 산동성 평음현 일대다.
제수 남쪽의 산악지대로 주변에 평원이 펼쳐져 있다.
그곳을 중심으로 북쪽의 노(盧)라는 읍에 일군을 배치하고, 남쪽의 경자(京玆)라는 땅에 일군을 배치하여
그 읍들을 연결하는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이 고후의 안이었다.
이번에는 제영공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좋다. 평음(平陰)을 총지휘부로 삼겠다.“
이어 각 군을 배치했다.
- 최저(崔杼)는 경자로 진격하여 진군을 막아라.
- 고후(高厚)는 노읍(盧邑)으로 나가 적의 왼쪽을 위협하라.
- 나는 중군을 거느리고 평음성에 머무르리라.
최저(崔杼)는 불안을 금치 못했다.
평음을 3군 지휘부로 삼겠다는 것은 12개국 연합군과 정면 대결을 벌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만일 적군이 제영공이 머물러 있는 평음성(平陰城)을 집중 공격하게 되면 제군(齊軍)은 속수무책이 된다.
그러나 제영공의 뜻이 이미 정해진 마당에 어쩔 수가 없었다.
각 군은 배정받은 땅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영공(齊靈公)이 거느리는 중군은 평음성으로 들어갔다.
이때 제영공을 보좌하는 장수들로는 경봉(慶封), 석귀보(石歸父), 식작(殖綽), 곽최(郭最), 시인(侍人) 숙사위 등이었다.
평음성 주변을 둘러본 제영공(齊靈公)은 다소 뜻밖의 명을 내렸다.
"평음성 서남쪽에 방문(防門)이라는 성벽이 있다.
그곳 밖에다 참호를 파서 정병을 배치하면 능히 적의 대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날부터 제군은 방문(防門) 밖으로 나가 커다란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참호의 넓이는 무려 1리가 넘었다.
1리는 지금의 단위로 약 4백 미터.
시인 숙사위(夙沙衛)는 비록 내관이었지만 곧잘 군사에 관한 일을 제영공에게 말하곤 했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석귀보(石歸父)가 파놓은 참호를 보고 나서 제영공에게 간(諫)했다.
"방문 밖의 참호를 너무 믿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차라리 먼저 군사를 내어 적의 일부를 공격하는 것이 낫습니다.
적은 열두 나라로 구성된 연합군인지라 군사 수는 많지만, 그 마음은 한결같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나라건 한 나라를 기습하여 패주시키면 나머지 나라는 기운을 잃고 싸울 생각이 없어질 것입니다.
만일 그럴 생각이 없으시면 험한 곳으로 옮기어 그곳을 지키십시오."
그러나 제영공(齊靈公)은 자신만만했다.
"네까짓 게 무엇을 알겠느냐?
저렇게 깊고 넓은 참호가 있는데, 어찌 적군이 이곳을 넘볼 수 있으리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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