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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501 동방의 암운 (7)

작성자이광춘|작성시간26.06.21|조회수3 목록 댓글 0

[列國誌]501
2부 장강의 영웅들 (158)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0장 동방의 암운 (7)


순언(荀偃)이 이끄는 12개국 연합군은 제수가의 격량(湨梁)이라는 곳에 집결해 있었다.

"방문(防門) 밖에 참호를 파놓았다고?“

순언은 범개를 불렀다.
이때 범개의 직위는 중군 좌장, 원수를 보좌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순언으로부터 제군의 동정을 들은 범개(范匃)는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제공(齊公)의 각오가 대단하군요.“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오. 
묘책이 없겠소?"

각오라면 순언(荀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진(晉)나라 사람들로부터 공공연히 무능한 원수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그였다.
이번 원정에 임해서는 경양 땅의 무당 고(皐)로부터 죽을 것이라는 예언까지 들었다.

'죽음으로써라도 나의 명예를 회복하리라.‘

범개(范匃)는 그러한 순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빙긋 웃음을 지었다.

"묘책이랄 것도 없습니다. 
제게 이미 적의 대군을 물리칠 방안이 마련되어 있으니, 원수께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소.“

"적은 지금 세 곳에 나뉘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노읍(盧邑)에는 고후가 방비하고 있고, 경자(京玆)라는 곳에는 최저가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께서는 이들에 대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먼저 
등, 설 나라 군대로 하여금 노읍(盧邑)을 공격케 하고, 조, 기, 소주의 군대로는 경자(京玆)를 공격케 하십시오. 
그러면 자연적으로 평음성에 머물러 있는 제공(齊公)은 고립됩니다."

"그런 제공(齊公)을 우리 중군이 집중 공격하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저 참호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요.“

"참호를 돌파하는 일은 더 간단합니다. 
원수께서는 돌격하기 전에 짐 싣는 수레에다 나무와 돌을 가득 실어 참호 속으로 밀어넣으십시오. 
이렇게 사흘간을 퍼부으면 방문(防門)의 참호가 제아무리 깊다 한들 어찌 메워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늘에 쌓여 있던 순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범개의 손을 잡았다.

"이제야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구려.“

순언(荀偃)은 본래 '마음놓고 죽을 수 있겠다' 라고 말하려 했으나, 
무당 고(皐)의 예언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한 바 없기 때문에 얼른 말을 고쳤던 것이다.
이윽고 진군(晉軍)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진평공과 순언은 후방으로 물러나고 중군 좌장 범개(范匃)가 실질적인 지휘봉을 잡았다.

"나무와 돌과 흙을 실은 수레를 참호 속으로 집어넣어라!"

범개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진(晉)나라 중군 병사들과 송(宋), 정(鄭)나라 군사들은 일제히 방문(防門)을 향해 진격했다. 
참호 안에 배치되어 있던 제(齊)나라 군사들이 활을 쏘아댔으나 수레를 앞세우고 달려드는 진군의 돌격을 막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이윽고 첫 수레가 참호 속으로 빠졌다.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수레도 참호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사흘간을 계속해서 나무와 돌과 흙을 메워 넣은 동안, 참호는 어느새 평지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범개(范匃)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병차대는 돌격하라.“

구름 같은 먼지가 일었다. 
진나라 중군 병사들과 송, 정나라 연합군은 마음놓고 병차를 몰아 방문 성벽을 지키고 있는 제군(齊軍)들을 도륙했다.
방문(防門) 수비대장 석귀보(石歸父)는 성난 파도와도 같은 진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는 반 이상 사상자를 내고 평음성 안으로 도주해 들어갔다. 
그 와중에 대부인 공자 가(家)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포로로 잡혔다.

- 노나라 병사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석귀보는 숨을 헐떡이며 보고했다.
제영공(齊靈公)은 그제야 최저나 숙사위의 말대로 정면으로 싸워서는 진군을 당해낼 수 없음을 알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최저와 고후 군을 출동시켜라.“

그러나 연이어 날아드는 급보는 제영공의 마음을 또 한 번 어둡게 하였다.

- 최저(崔杼) 군대는 진나라 하군과 대치 중입니다. 
경자에서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다는 전갈입니다.

- 고후(高厚) 군 역시 진나라 상군에게 포위를 당해 고읍을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제영공은 절망했다.

"평음성을 철저히 지키는 수밖에. 
농성 태세를 갖추어라."

한편, 
방문 성벽을 점령한 범개(范匃)는 진평공과 순언에게 승리를 보고한 후 즉각 다음 작전에 돌입했다.
그는 이미 제군의 동요와 사기 저하를 알아차렸다.

"굳이 군사를 희생시켜가며 평음을 공격할 필요도 없다."

그 날 밤, 
범개(范匃)는 공자 가(家)가 갇혀 있는 군막을 찾아갔다.
지난날 공자 가는 사신의 자격으로 강성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범개로서는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공자 가(家)를 위로한답시고 은근히 말을 흘렸다.

"어쩌다 진(晉)나라와 제(齊)나라가 싸우는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소. 
하지만 너무 걱정마시오. 
조만간 그대 군주는 우리에게 항복할 테니까 말이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대와 친분이 있어 하는 말이오만, 
사실 우리 주공께서는 이미 노(魯)나라와 거(莒)나라 제후에게 명하여 각각 1천 승(乘)의 병차로 하여금 임치성을 공격하게 했소. 
며칠 후면 임치성이 함락될 것이고, 그러면 싸움은 끝나는 게 아니겠소? 
그대는 고생스럽더라도 조금만 참으시오."

범개의 말에 공자 가(家)는 속으로 기겁했다.
제(齊)나라 운명이 결정되는 일이 아닌가. 
범개가 돌아간 뒤 공자 가(家)는 주변을 살폈다. 
마침 군막을 지키는 병사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여 그곳을 탈출하여 평음성으로 달려갔다.

"뭣이, 
2천 승(乘)의 병차가 임치성으로 향했다고?“

제영공(齊靈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물론 공자 가(家)가 전해준 범개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제일 수비선이 무너진 지금, 그 사실 여부를 탐지할 수 있는 능력도 정신적 여유도 제영공에게는 없었다.
그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를 왔다갔다 했다.

"임치가 함락되면 나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곁에 있던 내시관 숙사위(夙沙衛)가 다급히 물었다.

"공자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공자라 하면 임치 수비를 맡은 공자 아(牙)를 말함이었다.
즉시로 평음성 뒷문이 열리고 수레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공자 아(牙)에게 위급을 알리는 파발이었다.
아버지 제영공의 승리를 낙관하고 있던 임치성의 공자 아(牙) 또한 2천 승의 적군이 기습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모든 대부들을 불러보아 긴급회의를 열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여막에서 거상중인 안영에게도 입궐 명령을 내렸을까.
그러나 안영(晏嬰)은 공궁으로 들지 않았다. 
상주의 자리를 뜨지 않겠다는 뜻에서였다. 
대신 가재(家宰)를 시켜 말을 전하게 했다.

- 병차 2천 승의 군대가 기습한다는 것은 적이 우리를 동요시키려는 수작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공께서는 본래 겁쟁이인지라 반드시 도망쳐올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놀라지 마시고 사람을 보내어 도망치지 말라고 말을 전하십시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 주공은 원래 겁쟁이' 라는 말이다.
안영(晏嬰)은 평생동안 군주에 대해 여러 차례 직간(直諫)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 중 대표적인 직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말이다.
<사기>도 <춘추좌씨전>도 모두 이때의 말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가(史家)들이 안영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였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 주공은 원래 겁쟁이' 라는 말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고언(苦言)이요, 지독스런 비판이 아닐 수 없다.

- 도망치지 마십시오.

안영의 이 간언은 가재를 통해 공자 아(牙)에게 전달되었고, 다시 사자를 통해 평음성의 제영공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물론 며칠이 지나서였다.
아마도 그 사이 평음성의 상황에 아무런 변동이 없었더라면 
제영공(齊靈公)은 안영의 말에 자극을 받아 허둥지둥 도망치는 꼴 사나운 행동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임치성의 사자가 평음에 당도했을 때는 상황은 이미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변한 것이 아니라 변한 것처럼 보였다.
그 무렵, 
진나라 중군 좌장 범개(范匃)는 거짓 풍문으로써 제군을 동요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음인지 
또 다른 계책을 내어 제영공을 현혹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 허장성세(虛張聲勢)

그랬다. 
범개(范匃)는 중군 사마 장군신(張君臣)을 시켜 평음성 주변의 숲과 못에다 기치창검을 가득히 꽂아두었다. 
또 풀로 만든 허수아비에 갑옷을 입혀 빈 병차마다 올려앉히고, 그 병차 뒤에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비끄러매어 마구 달리게 했다.
아울러 산골짜기마다에는 장수의 깃발들을 무수히 꽂아두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괴물 하나가 두 개의 앞다리를 높이 치켜들고 당장에라도 평음성을 덮칠 듯 노려보고 서 있는 광경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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