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182) 제4권 “신무기”라는 이름으로 물건처럼 소모되는 마루타
제16장. 이시이와 요시다는 다시 한 번 후미코를 사이에 두고 진검 대결
2절. 이시이와의 진검 승부 결과
요시다 대위를 비롯하여 현장에 있었던 이토오 중위와 모리가와 중위는 731부대로 귀대하여 총무부장 나카루(中留) 중좌와 부대장 기타노(北野) 소장이 있는 부대장의 방에서 문초를 받았다.
"결투가 금지되어있는 것을 모르나, 요시다 대위."
나카루 중좌가 요시다를 쏘아보며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두 중위는 증인으로 군법회의에서 증언해야 한다."
나카루가 이토오 중위와 모리가와 중위를 취하며 대답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기타노 소장이 말했다.
"군법회의까지는 필요없다." 하고 그는 잘라 말했다.
"사령부로 보내서 군법회의를 받게 할 이유는 없다. 요시다 대위의 잘못은 결투를 했다는 사실 뿐인데 그것은 훈계 정도로 끝날 수 있다. 그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시이의 죽음은 자신이 패배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한 일이다. 그렇지 않나, 나카루 중좌."
"하이, 그렇습니다만--."
"731부대 장교를 관동군 사령부로 보내 재판을 받게 한다는 것부터 우습다. 중좌, 자네는 모든 것을 원리원칙대로 하려고 해서 골치 아파."
"요시다 대위는 당분간 근신하고 이 일은 없는 것으로 처리하라. 이시이 대위는 할복으로 처리하지 말고 사고로 처리하게."
"그건 곤란합니다." 하고 총무부장 나카루 중좌가 말했다.
"그의 아버지 이시이 지로(君井次郞)가 특별반장으로 지금 이 부대에 근무하고 있고, 삼촌 이시이 시로(君井四郞) 중장이 관동군 사령부에 있습니다. 사인(死因)은 그대로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대장 기타노(北野) 소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귀관이 알아서 처리하게."
부대장은 모두 물러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나카루 중좌를 비롯한 세 명의 장교들은 부대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오해하지 말게. 내가 자네를 군법회의에 회부한다고 한 것은 부대장에게 결정권을 주기 위해서였네.
부대장이 부대 장교를 희생시키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지."
"오해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후미코 양과는 일이 잘되어 가나?"
"네."
"자네는 여복도 많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난 알고 있네. 자네 안위를 걱정하는 여자들이 많더군."
"무슨 말씀인지......."
"시침 떼지 말게. 어쨌든 후미코 양과 잘되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결혼식은 언제 올릴 것인가?"
"가을이 좋겠습니다."
"기다리겠네."
"감사합니다."
장교들과 헤어진 요시다 대위는 가족 진료소로 향했다.
머리 위에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쪼였다.
벌판 저편으로 아지랑이가 보였다.
그는 관사 앞을 지나 식물연구소와 가족 진료소가 있는 오른쪽 샛길로 들어갔다.
길가에 수양버드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좁은 길은 나무 밑에 터널같이 뻗쳐 있었다.
식물연구소 건물에서 나오던 여자 군속 한 명이 요시다 대위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며 반가워했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요시다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요시다 대위님."
"안녕하십니까?"
요시다 대위는 하루히메를 보자 지난날 온실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 꺼림칙했다.
어색한 느낌으로 그녀를 보고 있자 하루히메는 다가서며 말했다.
"요사이 더 핸섬해지셨어요. 좋은 일이 있나요?"
"글쎄요."
"시침 떼실 건가요? 후미코와 결혼하신다면서요?"
"예."
요시다의 결혼 이야기가 물속에 잉크 번지듯이 부대내에 퍼져 있는 것을 느꼈다.
"결혼하기 전에 내 방으로 한번 놀러 오세요."
"그러지요."
"좋은 게 좋은 거예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요시다는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시다 대위는 웬지 그녀가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해졌다.
옆으로 지나칠 때 그녀의 몸에서 화장품 냄새와 체취가 풍겼다.
그 냄새는 본부 건물 쪽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만큼 불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별로 유쾌한 느낌은 주지 않았다.
요시다 대위가 가족 진료소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녀들은 근무 중에도 후미코가 보고 싶어 찾아오는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후미코는 환자 회진을 마치고 간호원실로 들어왔다.
기다리고 있던 요시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미코는 아침에 나카루(中留) 중좌를 통해서 요시다 대위가 결투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를 보자 웬지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요시다를 외면하면서 욕실 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간호원들이 목욕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을 겸하고 있는 방이었다.
"어머, 어디까지 따라오세요. 여긴 탈의실이에요."
요시다 대위는 당황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간호원실에는 두 명의 다른 간호원들이 킬킬거렸다.
그녀들은 배를 잡으며 웃었다.
창피한 생각이 든 요시다 대위는 복도로 나왔다.
후미코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요시다는 변명할 말을 궁리했다
그는 복도를 서성거리다가 지나가는 뚱뚱한 부인과 부딪치기도 하였다.
환자로 보이는 그 낯선 부인은 요시다가 사과하기 전에 먼저 허리를 굽히며 지나갔다.
가네스기 미요코(金杉妙子)가 그를 보고 다가왔다.
"대위님, 안녕하세요?"
"미요코 양,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군."
"이기신 것을 축하 드려요."
"축하받을 일이 못돼, 한 사람이 죽었어."
"생명을 건 결투라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는 거잖아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후미코가 어떻게 알았지? 미요코 양이 얘길 했나?"
"아뇨. 후미코 양이 제 방을 갑자기 방문해서 알게 되었어요."
"방문해서 얘기해 주었나? 지난 일인데 할 수 없지 뭐."
"얘기 할려고 한 것은 아닌데요..."
미요코는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가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 것을 들켰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요시다 대위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후미코 양을 만나셨나요?"
"만나려고 하는데 탈의실로 숨고 나오지 않아. 화가 났나봐."
"대위님, 다시 들어가 보세요. 문밖에서 기다리시면 나올 거예요. 하루 종일 그 안에 있을 수도 없잖아요?"
"그건 그런데 다른 간호원들이 자꾸 웃어서 말이야."
"쑥스러운게 문제예요? 파랑새를 놓치면 어떡할려구요?"
미요코는 재잘거리고 까르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