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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

4권. 제16장. 8절. 마루타들도 자신의 쓰임새와 미래를 알고

작성자정기진|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마루타(188) 4권 신무기라는 이름으로 물건처럼 소모되는 마루타

16이시이와 요시다는 다시 한 번 후미코를 사이에 두고 진검 대결

 

8절. 마루타들도 자신의 쓰임새와 미래를 알고

 

두 마루타가 철문 앞에 서자 334번도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334번은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문에 가서 섰다.

밖에 있는 군속이 체온계를 세 개 꺼내어 그들의 입 안에 넣었고 260번은 팔뚝을 걷게 하고 혈압을 쟀다.

혈압을 재면서 260번이 군속에게 물었다.

"이 온도계 이놈 저놈이 입에 무는데 전염병 옮기지 않습니까?"

"눈깔로 보면 모르나? 소독통에 넣었다가 꺼냈잖아."

"아, 그랬군요."

"너는 그 질문을 자주 하는 놈 같구나. 언젠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놈이 있는데"

"바로 나라고는 볼 수 없지요. 그런 생각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을 테니까요."

"걱정마. 모두 당신들의 건강한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야. 건강해야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뭘요, 난 다 압니다. 건강해야지 해부실에 누웠다가 불구덩 속으로 들어가지요."

 

"이 새끼가......."

군속은 화를 내다가 혈압을 보았던 수치를 잊었다.

그는 다시 혈압을 재면서 투덜거렸다.

"독방에 갇혀 있는 너희들이 어떻게 그리 아는 게 많지?"

"눈 감으면 천 리를 알고, 눈 뜨면 만 리를 내다보지요."

"다음 사람--."

군속은 260번 마루타의 혈압과 체온을 재고 다음 745번의 혈압을 쟀다.

 

745번은 체온계를 입에 물고 지껄였다.

"내가 죽을 날이 언제요?"

"시끄러워."

"얘기해 주시오. 유서같은 거 써 놓을 수 있소?"

"시끄럽다니까--"

"당신네들은 할 짓 다하면서 우리에게 그 정도의 혜택도 없소?"

"체온계 떨어지겠다. 입 닥치고 있어."

군속은 745번의 입에서 체온계를 빼내어 기록했다.

 

다음에는 334번이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상처가 있는 오른쪽 눈을 들여다보며 군속이 어떠냐 물었다.

"계속 통증이 옵니다."

"다리는 어떻소?"

"마찬가집니다."

"헌병대 개새끼들,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법이 어디 있지?"

군속은 334번 마루타를 동정하며 지껄였다.

334번은 아무 말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내 혈압과 체온이 얼마요?" 하고 뒤쪽에 있던 260번이 물었다.

"가르쳐 줄 수 없어."

"좀 가르쳐 주시오. 젠장할--."

"여기 규칙이야. 가르쳐 줄 수 없어."

"정상이오?"

"그래, 정상이다."

7호실이 끝방이었기 때문에 군속과 특별반 경비원은 왔던 복도로 다시 걸어 나갔다.

"이 위층에 여자들이 잡혀 있다는 사실 알지?" 하고 260번이 745번에게 물었다.

"알고 있어. 난 그녀들 중 한 명을 본 일도 있지. 저기 복도 밖 잔디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 여자를 봤지.

러시아 여자인데 금발이었어. 기가 막히게 예뻤지. 그러나 자세히는 볼 수 없었어.

처치실로 들어가며 힐끗 보았을 뿐이니까."

"여자를 안 본 지도 한 달이야." 하고 260번이 시름에 잠겼다.

"나는 두 달이야. 물론 한 달 전에 그 러시아 여자를 보기는 했지만."

"나는 여자와 그 짓을 해본 지 여러 달이 지나 그 생각이 나서 미치겠더군.

아침마다 그놈이 대포처럼 벌떡벌떡 서서 말이야."

"하하하, 곧 뒈질 놈이 찾는 것도 많군."

"뭐가 어째?"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자 "좀 조용히 합시다." 하고 334번이 말했다.

그는 벽에 몸을 기대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수갑 찬 두 손은 앞으로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한 눈은 어차피 보이지 않으니 한 눈만 감으면 되었다.

그는 항상 침구를 쌓아 놓은 앞에 앉았다.

다른 두 명의 마루타들은 그 자리에는 앉지 않았다.

약속한 일은 없었으나 그 자리가 334번이 앉아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관절, 형씨," 하고 260번이 334번에게 말했다.

"형씨라고 부르면 실례가 되겠군. 아저씨라고 부를까?"

"그럴 거 뭐 있나. 334번이라고 하면 되지."

"그렇지, 334번 봅시다. 늘 눈을 감고 앉아서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시오?

보아하니 염불하는 것도 아니고, 주기도문 외우는 것도 아닌데 말씀이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오?"

"......"

334번은 아무 말이 없었다.

 

수갑 찬 손에 모두 젖혀지거나 빠진 손톱을 내려다보던 260번은 몸을 부르르 떨고 말을 이었다.

"손톱을 빼는 고문은 아팠겠구려. 무슨 몹쓸 죄를 지었으면 이렇게 고문을 했을까?"

334번이 계속 침묵하자 260번은 조용했고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제부터 새로운 군속들이 마루타를 점검하며 도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각 반의 연구팀은 그들의 피실험자 상태를 살피거나 직접 실험하기 위해 마루타 특설감옥을 방문했다.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일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쪽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소리의 위치로 보아 2호실이나 3호실의 잡거실이었다. 잡거실은 열 명 정도 수용하는 큰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잡거라는 말은 마루타들이 각종 전염병을 지니고 함께 수감되어 있기 때문에 붙인 말이었다.

한 사람의 마루타가 복도로 끌려 나오다 버티는 듯했고, 그러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는 군속의 말이 들렸다.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야지 나갈 게 아니오?"

"난 아프지고 않은데 무슨 회복이오?"

마루타와 군속 간에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260번은 키득거리고 웃었다.

 

끌고 나온 마루타는 7호실 옆방에 있는 처치실로 데리고 갔다.

260번은 몸을 일으켜 철문 창으로 가서 열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복도에는 흰 가운을 입은 젊은 군속 네 명과 몸이 뚱뚱하고 머리가 희끗한 중년 사내가 지나갔다.

그들의 사이에 경비원 한 명이 마루타 한 명을 잡고 걸어갔다.

흰 가운을 걸친 군속들의 손에는 여러 기구들을 담은 용기들이 들려 있었다.

그중 한 사내는 260번의 눈에 익은 혈청연구반장 우치우미 이에모지(內海家茂)였다.

우치우미 반장은 몸이 뚱뚱해서 걸어갈 때 발자국 소리가 달랐다.

마루타 가운데 오랫동안 살아남은 고참들은 우치우미의 발자국 소리를 알 수 있었다.

고참 마루타들이 싫어하는 반장은 동상을 연구하면서 손발을 얼게하는 요시무라(吉村)라든지, 한 번 걸리면 며칠 가지 못하고 죽게 되는 페스트 연구반장 다카하시(高橋)라든지, 해부를 전담하는 오카모토(岡本) 반원이나 이시가와(石川) 반원들이었다.

오카모토 반장이나 이시가와 반장이 직접 마루타 감방을 들여다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살아남은 고참 마루타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일 개월도 되지 않은 마루타들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7호실의 260번과 745번이 다른 마루타보다 내용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처치실 옆방이어서 그곳에서 지껄이는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더러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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