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중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가 개통됐습니다.
높이 625m로 에펠탑 본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이 거대한 구조물은 인류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국 더 타임즈는 이 다리를 "불안한 토대 위에 세워진 세계 최고 높이 다리"라고 표현했습니다.
화려한 기록 뒤에 숨겨진 중국 지방정부의 천문학적인 부채와 경제 성장의 그림자,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려를 들여다봅니다.
에펠탑보다 두 배 높은 거대한 다리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에 위치한 화장협곡대교는 높이 625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높이는 에펠탑 본체보다 두 배 이상 높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보다도 약 70m나 더 높은 수치입니다.
구이저우성 정부는 이 다리가 개통되면서 수도 구이양에서 쓰촨성의 수도 청두까지 기차로 3시간, 광저우까지는 5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됐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습니다.
교통 인프라의 획기적인 개선을 통해 지역 경제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죠.
구이저우성에만 세계 최고 다리가 다섯 개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 열 개 중 다섯 개가 모두 중국 구이저우성에 위치해 있다는 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세계 최고 높이 다리라는 타이틀이 고작 120마일 떨어진 같은 성 내의 다른 다리에서 화장대교로 넘어왔다는 사실입니다.
더 타임즈는 이 사실만으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이 모든 다리들이 2000년대 이후에 건설됐다는 점은 구이저우성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인프라 투자를 진행해왔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20억 위안(약 3,800억 원)에 달하는 화장협곡대교는 오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한 수많은 고비용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죠.
승진을 위한 경쟁, 그리고 쌓여가는 빚
중국이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공산당의 독특한 인센티브 구조에 있습니다.
공산당은 지방정부들이 투자를 열심히 하도록 부추겼고, 지방 관료들은 지역 경제를 성장시키면 승진할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2008년 서방의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효과적으로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방식이 "일단 빌려서 당장 성과를 내고, 나중에 생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방 관료들은 자신의 임기 중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만 집중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채는 후임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숨겨진 빚까지 합치면 GDP의 120%
중국은 전체 부채 수준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재정 규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정부들은 빚의 상당 부분을 공식적인 장부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숨겨진 빚까지 모두 합치면 중국 전체의 국가 부채는 나라 전체에서 벌어들이는 돈, 즉 GDP의 약 120%에 달합니다.
이 수치는 영국보다 훨씬 나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빚을 갚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영국은 높은 세금으로 빚을 갚으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세금을 낮추는 정책을 선호합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정부가 세금으로 걷어들이는 돈도 계속 줄어들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는 침체된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펌프 프라이밍 정책을 쓰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펌프 프라이밍 정책은 정부가 침체된 경제에 일부러 돈을 투입해 경제 활동을 자극하고 전체적인 경제 회복을 유도하는 정책을 말하는데, 이미 빚더미에 앉은 상황에서는 추가로 돈을 쓸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노동력 유출만 가속화할 뿐
더 타임즈는 화장협곡대교가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구이저우성 정부는 이 다리로 인해 다른 대도시로 가는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고 자랑하지만, 이것이 단지 노동력의 이탈을 가속화한다면 건설 비용을 회수할 기회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통이 편리해지면 가난한 지역의 젊은이들이 더 쉽게 대도시로 떠날 수 있게 됩니다.
구이저우성 같은 낙후된 지역에서 청두나 광저우 같은 대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지역의 인재들이 더 빠르게 떠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국 막대한 투자를 통해 만든 인프라가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인구 유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일본식 장기 침체의 그림자
전문가들은 중국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궁극적으로는 국가이기 때문에 서방에서처럼 대규모 금융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중국 정부가 강력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금융 위기는 피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개혁이 없다면 일본과 같은 완만한 하락, 즉 장기 침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했는데, 중국도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컨설팅 회사 로듐 그룹의 애널리스트 로건 라이트는 중국이 부채를 탕감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시진핑 주석이 미래를 보는 첨단 산업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구이저우와 같은 농촌 지역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반도체, AI, 전기차 같은 첨단 산업은 대도시 중심으로 발전하며,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낙후된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것이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는 이처럼 복잡한 경제적 딜레마가 숨어 있습니다.
에펠탑보다 두 배 높은 다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은 있지만, 그 다리를 만들기 위해 쌓아올린 빚을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