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술 마셨어?"
남편은 매일 밤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피했고,
나는 그런 남편이 점점 싫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이 집에 오는 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장례식 날,
나는 남편의 낡은 가방 속에서
한 장의 진단서를 발견했다.
그리고 평생 지울 수 없는 후회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매일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남편
결혼 18년 차.
남편 박정우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중소기업 생산관리팀에서 성실하게 일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변한 건
2년 전부터였다.
남편은 이상하게 술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회식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심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이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매일이 되었다.
밤 11시.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아휴...
술 냄새 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중학생 딸도,
고등학생 아들도
방 문을 닫아버렸다.
남편은 억지로 웃었다.
"우리 딸 자?"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래..."
그렇게 남편은 늘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남편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하다."
그게 전부였다.
변명도 없었다.
화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답답했다.
가족을 위해 살겠다던 사람이
왜 술에 무너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도 점점 아버지와 멀어졌다.
딸은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맨날 술만 마셔."
아들은 아예 대화를 끊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도 있었다.
남편은 술에 취했는데도
한 번도 소란을 피운 적이 없었다.
술주정도 없었고,
고함도 없었다.
그저 방에 들어가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새벽마다
화장실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저 숙취인 줄 알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어느 비 오는 밤이었다.
남편은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다.
얼굴이 유난히 창백했다.
"괜찮아?"
"응."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새벽 3시.
쿵.
큰 소리에 잠이 깼다.
남편이 화장실 앞에 쓰러져 있었다.
구급차가 왔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장례식장.
아이들은 처음으로 크게 울었다.
나는 멍하니 영정사진만 바라봤다.
화도 내지 못했다.
원망도 하지 못했다.
그저 허무했다.
'왜 그렇게 술만 마셨을까.'
장례를 마친 뒤,
나는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낡은 서류가방 하나가 나왔다.
안에는 각종 영수증과 서류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래.
두꺼운 병원 봉투 하나.
무심코 열어 본 순간,
손에서 서류가 떨어졌다.
[췌장암 4기]
눈앞이 흐려졌다.
날짜는 2년 전.
남편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넘겼다.
진료 기록.
항암 치료 기록.
진통제 처방 기록.
그리고 의사 소견서.
[평균 생존 기간 6개월~1년 예상]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그때 봉투 안에서
작은 수첩 하나가 떨어졌다.
남편의 글씨였다.
[아이들 수능 끝날 때까지 버티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음 장.
[아내는 겁이 많으니까 아직 말하지 말자.]
다음 장.
[통증이 심한 날은 술 마신 척하면 된다.]
순간,
숨이 막혔다.
남편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암 통증 때문에 얼굴이 창백했던 것이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것이고,
화장실에서 토하던 것도
항암 부작용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봐,
가족이 무너질까 봐,
그는 일부러 술 마신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수첩 마지막 장.
[아이들이 나를 술꾼으로 기억해도 괜찮다.
대신 아픈 아빠로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울부짖었다.
"왜 말 안 했어...
왜 혼자 견딘 거야..."
그날 처음 알았다.
남편은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이
죽음보다 무서웠다는 것을.
며칠 후.
나는 아이들에게 수첩을 보여 주었다.
딸은 울면서 말했다.
"아빠가...
술 마신 게 아니었어?"
아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 사진 앞에 앉아
처음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아빠..."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영정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울었다.
몇 달 뒤.
남편 생일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식탁을 차렸다.
남편이 좋아하던 된장찌개와 불고기.
그리고 빈자리 하나.
딸이 말했다.
"엄마."
"응?"
"아빠는 우리 걱정만 하다 간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걱정 안 하게 잘 살게."
사랑은 늘 거창한 말로 남지 않는다.
때로는 숨겨진 통증으로,
때로는 오해받는 침묵으로,
때로는 끝까지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남는다.
우리는 종종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늦게 이해한다.
여러분은 가족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나요?
오늘은 늦기 전에 꼭 전해 보세요.
내일은 당연하게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한국감성 #눈물나는사연 #가족이야기 #남편의비밀 #페이스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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