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임신한 지 석 달 만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위로금으로 팔천만 원을 받았고, 시부모님께서 또 얼마간 보태서 총 억 원을 주며 애를 낳아 달라고 애원하셨어요. 노인분들은 두 눈이 빨개져서 말씀하셨어요. “이건 우리 아들이 세상에 남긴 핏줄이란다. 낳아 주기만 하면, 앞으로는 우리 다 같이 힘내서 살아보자.” 저는 그 카드를 꽉 쥐었고,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어요.
저는 울지 않았어요. 그저 매일 일곱 시 정각에 일어나서 엽산 먹고, 임산부 우유 마시고. 산모 수첩에는 영수증이 가득했어요: 첫 초음파에 만삼천오백 원, NT 검사에 삼만육천 원, 등록 보증금 십만 원. 시어머니는 매주 수요일마다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오셔서 보온통을 들고 오셨는데, 갈비탕 속에 대추 다섯 알이 둥둥 떠 있었어요. 항상 그랬어요.
갈등은 임신 여섯 달에 터졌어요. 시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으셨어요. “애기 낳으면... 우리 집 성을 따라도 될까? 우리 늙은 김이…” 제가 아기 옷을 개고 있다가 손을 잠시 멈추더니, 이내 소매를 계속 접었어요. “어머니, 낳고 나서 생각해요.” 그날 시어머니는 설거지해 놓은 도시락 통을 두고 가셨어요.
반전이 생긴 건, 송금 영수증 한 장 때문이었어요. 칠월 십오일, 제게 은행에서 문자 한 통이 왔어요. 계좌에 삼백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메모: 진료비로 쓰세요. 시어머니께 전화했더니, 노인분이 머뭇거리셨어요. “네 아버지께서 밤에 창고 지키는 일을 구하셨어. 한 달에 사십만 원이래.” 알아보니 그 창고는 교외에 있었고, 밤 여덟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였어요. 나이가 육십오 살이신데.
저는 아무 말 안 했어요. 다음 날 은행에 가서 그 억 원을 3.25% 금리로 3년 정기 예금으로 돌렸어요. 집에 오는 길에 수박 두 개를 샀는데, 하나는 아래층에 사는 왕아줌마한테 주고, 하나는 시댁으로 가져갔어요. 시어머니가 문을 열었는데,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밀가루 묻히신 채 만두를 빚고 계셨어요. 부추와 달걀 소였다고요. 탁자 위에는 고혈압 약이 놓여 있었어요. 니페디핀, 7.5mg짜리로.
“어머니,” 제가 자리에 앉아 밀반죽을 밀면서 말했어요. “아이 이름 생각해 봤는데, 김편안이라고 지을까 해요.” 시어머니의 밀대가 바닥에 굴러떨어졌고, 세 번을 주우셨어요. 시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오셨는데, 오래된 통장을 움켜쥐고 계셨어요. 첫 장을 펼치니 1988년에 쓴 글씨였어요. “이 천만 원은… 원래 손자 교육 자금으로 모아둔 거였단다.”
제가 통장을 도로 밀어드렸어요. “돈은 충분해요. 정기 예금 이자로 분유 살 돈은 되고, 제 월급으로 생활비는 되니까. 밤샘 일은 그만두세요.” 잠시 멈칫하다가 덧붙였어요. “아이 성은 김씨로 할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두 분 다 건강하셔야 해요. 적어도 애가 초등학교 갈 때까지는.”
그날 만두는 여러 개가 터졌어요. 아무도 신경 안 썼어요. 시어머니는 제일 예쁜 걸 골라 제 그릇에 담아 주셨는데, 세어보니 딱 열 개였어요. 시아버지는 약주를 한 잔 따라서는 곧바로 다시 뚜껑을 닫으셨어요. “편안이 돌 지나면 그때 마시자.” 하셨어요.
아이는 삼월에 태어났어요. 몸무게 3.15킬로그램. 분만실에서 제가 휴대폰을 시어머니께 건넸어요. “어머니, SNS에 제일 먼저 올리세요.” 시어머니는 화면에 손가락을 댄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곱 글자를 쳤어요. “우리 손자, 김편안.” 사진은 아기의 작은 발이었는데, 발목에는 아빠와 똑같은 연갈색 점이 있었어요.
지금 편안이는 두 살이에요. 저는 예전 직장에 그대로 다니고 있어요, 아홉 시에 출근해서 다섯 시에 퇴근해요. 시부모님은 낮에 아이를 봐 주시고, 밤이면 제가 자가로 데려와요. 억 원짜리 정기 예금은 작년에 만기가 됐는데, 저는 오십만 원을 찾아서 어르신들 종합 건강검진을 해드렸어요. 나머지는 다시 3년 예금으로 넣어 두었어요. 지난달에 시어머니 허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제가 팔십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샀어요. 회사에서 복권 당첨됐다고 하고는.
주말에 같이 밥을 먹었는데, 편안이가 비틀비틀 걸어와서 제 손에 사탕 하나를 쥐어 주었어요. 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말했어요. “사실 그때 나도 무서웠어.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애가 아빠 어디 있냐고 물으면 어쩌나.” 손에 깐 풋콩 껍질을 벗기며 말했어요. “그런데 요즘 생각드는 게, 인생이 바로 이 풋콩 같아. 직접 까봐야 알 수 있어. 속에 알이 세 개일 때도 있고, 한 개일 때도 있지만, 아예 빈 껍질은 없더라고.”
창밖에서는 편안이 웃음소리와 시어머니가 물 마시라고 다독이시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저는 깐 콩들을 그릇에 담았는데, 그릇 바닥을 가득 채울 만큼, 그것도 모자람없이 딱 알맞게 담겨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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