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김치 냄새 좀 안 나게 해."
친구들의 한마디에
나는 도시락 뚜껑을 급히 닫았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가 만든 김치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엄마가 그 김치 만드는 법을 영영 잊어버린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후회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만든 마지막 김치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시장에서 채소를 팔며 나를 키웠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도매시장에 나갔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엄마는 꼭 김치를 담갔다.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계절마다 달랐다.
엄마는 늘 말했다.
"집밥은 먹어야 힘이 난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 말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어느 날 점심시간.
친구들이 내 도시락을 보더니 말했다.
"와...
진짜 옛날 스타일이다."
"요즘 누가 집 김치 싸 오냐?"
"냄새 장난 아닌데?"
아이들은 웃었다.
나도 따라 웃는 척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짜증을 냈다.
"엄마!
이제 김치 좀 넣지 마!"
엄마는 잠시 멈췄다.
"...왜?"
"애들이 놀린단 말이야."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안하다."
그날 이후,
도시락에 김치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밥맛도 함께 사라졌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고,
나는 바쁘게 살았다.
엄마는 나이가 들었다.
그래도 명절만 되면
커다란 김치통을 들고 찾아왔다.
"이거 가져가."
"엄마.
요즘 김치 다 사 먹어."
"그래도 집 김치가 낫지."
나는 귀찮다는 듯 받아 두곤 했다.
냉장고 구석에 넣어 두고
며칠 동안 먹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
엄마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가스 불을 끄는 걸 잊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병원 검사 결과는
알츠하이머 초기였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늙어서 그런 거지 뭐."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점점 엄마는 많은 걸 잊어 갔다.
내 생일도,
집 주소도,
심지어 아버지 얼굴도.
그리고 어느 날.
엄마는 김치를 담그다가 멈춰 섰다.
"어?"
손에 고춧가루를 묻힌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엄마?"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말했다.
"...다음에 뭘 넣어야 하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평생 김치를 담가 온 사람이었다.
눈 감고도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레시피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엄마는 연신 머리를 두드렸다.
"왜 생각이 안 나지..."
"괜찮아 엄마."
"아니야.
분명 알았는데..."
엄마는 결국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숨이 막혔다.
며칠 뒤.
나는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김치통 하나를 발견했다.
엄마가 몇 달 전에 담근 김치였다.
마지막으로
제정신일 때 만들었던 김치.
나는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입에 넣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바로 그 맛이었다.
어릴 적 새벽 시장 냄새.
학교 끝나고 돌아오던 골목.
비 오는 날 먹던 김치찌개.
아버지 제삿날 식탁.
그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엄마..."
나는 김치를 먹으며 울었다.
왜 그때 부끄러워했을까.
왜 더 많이 먹지 않았을까.
왜 맛있다고 한 번 더 말하지 못했을까.
그날 밤.
엄마는 나를 보며 물었다.
"학생은 누구니?"
순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엄마는 이제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들이야."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아들?"
"응."
잠시 후 엄마가 웃었다.
"우리 아들 김치 좋아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는 나를 잊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던 기억만은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몇 달 후.
마지막 김치통도 비워졌다.
나는 수없이 따라 만들어 봤다.
인터넷 레시피도 찾아보고,
시장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맛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비슷하게 만들어도
엄마 김치가 아니었다.
아마 세상에는
레시피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사랑.
희생.
기다림.
그런 것들이 들어간 음식.
그래서 다시는 똑같이 만들 수 없는 맛.
오늘도 나는 김치를 먹을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엄마.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여러분에게도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나요?
그 음식에는 누군가의 사랑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늦기 전에 꼭 고맙다고 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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