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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

작성자청산|작성시간26.03.15|조회수14 목록 댓글 0

☆ https://youtu.be/_vvIB55kgoI?si=iatX8Cyu2zkga8I1 

미국 제 33 · 34대 대통령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1950년 6.25 전쟁 시 1분도 지체하지 않고 美軍을 참전시킨 감동적인 글

♤글 김성열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출처 나무위키]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 1884~1972)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34대 부통령 임기 도중,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으로 연임한 지 한 달여 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 트루먼 개인으로서는 부통령이 된 지 단 82일 만에 미국의 33대 대통령이 되었다.

재임 당시에는 미국 역사에 손꼽히는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 영웅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에 가려 평범한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서 냉전기로

이어지는 급격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냉철한 판단력으로 전후 세계의 질서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

재평가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고평가 되고 있는 대통령 중 한 명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매우 인연이 깊은 미국

대통령인데, 그가 바로 6.25 전쟁 당시 미군을 파병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시골로 평가받는 미주리주 출신이며, 20세기 미국 역사상 유일한 고졸 대통령이다. 앤드루

잭슨과 비슷한 아웃사이더 출신이라고 볼 수 있지겠만 잭슨은 자수성가한 어마어마한 재력가(미국 대통령 보유 자산 순위 4위지만 트루먼은 꼴찌다)였다. 여기에 초임 '러닝메이트'가 아닌 후임자 부통령, 대통령직 승계, 재임 당시의 낮은 인기 등 제럴드 포드와도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다. 중서부 출신 대통령도 그 자신과 포드 이 두 명 밖에 없다. 다만 재선에 실패한 포드와 달리 트루먼은 재선에도 성공했고, 굵직한 정치적 결단들을 통해 미국 역사, 더 나아가 세계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는 차이가 있다.

2. 이름

퍼스트 네임인 해리는 해리 S. 트루먼의 외삼촌이자 어머니 마사 엘런 영 트루먼(Martha Ellen Young Truman)의 오빠인 해리슨 "해리" 영(Harrison "Harry" Young)에게서 따왔다. 외삼촌은 해리슨이 정식 이름이고 해리는 애칭이었지만, 해리 S. 트루먼은 해리 자체가 정식 이름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친필 서명. 미들네임 S 뒤의 점이 선명하다.

트루먼의 미들네임은 그냥 'S' 한글자뿐이다. 그의 친할아버지 앤더슨 십 트루먼(Anderson Shipp Truman)과

외할아버지 솔로몬 영(Solomon Young)의 이름을 동시에 따왔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알파벳 한 글자를 그대로 미들네임으로 하는 건 스카치 아이리시 사이에서 흔한 관습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미들네임이 알파벳 한 글자인

경우 구두점을 찍지 않지만, 트루먼 본인은 공문서나 조약 등에 서명할 때는 분명히 'Harry S. Truman'이라고

적었으며 자서전에도 미들네임 뒤에 점을 찍어 본인의 이름을 표기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표기할 때에도 이를 존중하여 S 뒤에 점을 찍어 표기한다.

이름을 두고 트루먼은 "할아버지가 내 출생신고를 하면서 서류 위에 국수 한가닥을 흘렸어."라고 농담하거나,

트루먼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를 진행한 할런 F. 스톤(Harlan Fiske Stone) 연방 대법원장은 트루먼의 풀네임을

오해하여 그에게 "나 해리 십 트루먼은(I Harry Shipp Truman)"이라고 말하게 시켰는데 트루먼 본인은 알아서 "나 해리 S. 트루먼은(I Harry S. Truman)"으로 고쳐서 선서한 일화가 있다.

(출처 나무위키) ​

3. 약력(이하생략)

 

편집부   |   2025-06-18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 1884~1972)은 미국 제 33 · 34대 대통령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 출신이다. 

정치 세계에서는 그의 타고난 우직함과 순박함이 약점으로 작용했을지 몰라도, 그러했기에 오히려 한국을 전쟁에서 구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음을 기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독교인으로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끈기 있게 실천했다.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보고를 받고 10초 만에 한국 참전을 결정한 미국 '트루먼' 대통령! 엄청난 돈 투입, 5만 명이

넘는 전사자(戰死者), 10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전쟁에서도 한국을 포기하고 연합군을 철수하자는 주장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끝까지 지켜준 분 많은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자기 나라에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면서 국방

예산을 올려 전비(戰費)를 조달해 준 대통령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미국의 감사를 잊지 말자! 한미동맹 강화는 당연하다!

 

1950년 6.25 전쟁 시 1분도 지체하지 않고 美軍을 참전시킨 감동적인 글

글 김성열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편집부   |   2025-06-18

※ 아래는 금성 김승태 교장이 인용하여 단톡방에 올린 글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 1884~1972)은 미국 제 33 · 34대 대통령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 출신이다. 

어릴 때 '트루먼'은 육군 사관학교에 가고 싶어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 꿈을 펼치지 못했다고 한다.

학벌도 없고 집안 배경도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었을 때 그가 가졌던 직업 역시 변변찮았다. 기차역에서

검표원을 하기도 하고, 조그마한 상점을 경영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잘되지 않아서 문을 닫아야 했다.

이러한 평범한 사람이 세계 최강 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트루먼'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예비해 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용기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혔을 때 약한 자의 편을 드는 정의로운 용기가 '트루먼'에게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원해서 입대했다.

원래 '트루먼'은 지독한 근시 때문에 군 복무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 육군 신체검사에서 시각검사 판을 통째로 외워서 통과한 후 포병장교가 되어 열심히 싸웠으며 대위까지 승진하였다.

용감하고 서민적이고 그리고 아주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 바로 '트루먼'이다.

1944년의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되었고 1945년 4월, '얄타' 회담 직후 '루스벨트'가 뇌일혈로 별세하자 이어서 대통령이 되었다. 지도력을 검증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처리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보고를 받고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지시했다. 생각해보면 '트루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마지막 사건을 장식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48년 재선에서 '트루먼'의 재선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대통령 선거 날 자신의 패배를 예상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아침에 일어나자 박빙의 차이로 당선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한국전쟁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있던 사람이 '맥아더' 장군이었다.

'트루먼'은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는데도 못 갔지만 '맥아더'는 육사 출신일 뿐만 아니라 수석 졸업생이기도

했다. 이 천재 장군이 얼마나 교만하게 굴었는지 '트루먼' 대통령이 꽤 고생했다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과의 대립 관계 속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내하지만 결국 인천 상륙작전

이후 확전(擴戰) 하려는 '맥아더'를 해임하기도 했다. 또 '트루먼'과 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당시 남한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다.

이승만은 조선의 왕족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인재다. 

굉장히 곧고 또 오만한 성격이다. 

다 망해가는 나라를 미국이 구해줬음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절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백악관에서 회담하다가도 '트루먼' 대통령을 향해서 “이런 고약한 사람이 있느냐?”면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받아 가면서도 한국을 도와준 사람이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트루먼'은 두 번에 걸쳐 한국을 도와주었다.

1. 첫째는 한국전쟁에 파병한 것이다. 미국 시각으로 1950년 6월 24일 토요일 밤 아홉 시에 잠자리에 들려던

'트루먼'에게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런 보고를 받을 때 정치적인 계산을 할 것이다. 이 전쟁이 본인의 나라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트루먼'은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단 10초 만에 한국 전쟁에 미군 참전을

결정했다.

계산할 줄 모르는 농부처럼 '트루먼'의 생각은 한가지였다. 나쁜 놈들이 쳐들어왔으니 물리쳐야 한다는 단순

논리였다. 바로 그 용기 있는 결정이 한국을 살렸다. 그 순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골 출신의 '트루먼'을

대통령으로 세우셨다.

2. 두 번째로 '트루먼'은 한국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1950년 10월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졌을 때 영국 '에틀리' 수상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에 배치된 병력을 유럽으로 철수시키자고 제안했다.

영국의 제안에 미국의 주요한 인물들이 찬성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 대사를 지낸 '조셉 케네디'다. 

그는 공개적으로 한국 포기론을 주장했다. 명문가 출신에 정치 감각이 뛰어난 자들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골 출신으로 의리를 중요시하는 '트루먼'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한국을 도왔다.

“우리는 한국에 머물 것이고 싸울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도와주면 좋습니다. 그러나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는

어떻게든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을 버린다면 한국인들은 모두 살해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편에서 용감히

싸웠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연합군의 철수를 거절하고 의리 있게 행동했다. '트루먼'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1차, 2차 대전 때에도 하지 않았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그는 물가와 임금을 통제하고 그걸 가지고 한국에 쏟아 부었다. 

국방 예산을 올리고 중국군과 맞서 싸웠다.

결국 엄청난 돈이 투입되고 5만 명이 넘는 미군이 목숨을 잃고 10만 이상이 다친 후에야 전쟁이 멈췄다. 우리나라

역사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미국의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성장할 수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세계사와 우리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미국의 도움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들도 이제는 바로 알고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당시 '트루먼'은 한국전에 막대한 물자와 군인을 투입한 것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트루먼'에 대한 평가는 더욱 좋아졌다. 공산화 위기에 놓인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이후 계속해서 성장해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한국을 독단적으로 도와준 '트루먼'의 평가도

더욱 높아졌다.

강대국 대통령이라기에는 약점이 많고 학벌도 부족했으며 출신 배경도 좋지 않았던 '트루먼',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시간이 갈수록 높게 평가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한반도를 파멸의 위협에서 구해낸 숨은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세계에서는 그의 타고난 우직함과 순박함이 약점으로 작용했을지 몰라도, 그러했기에 오히려 한국을 전쟁에서 구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음을 기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독교인으로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끈기 있게 실천했다.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보고를 받고 10초 만에 한국 참전을 결정한 미국 '트루먼' 대통령! 엄청난 돈 투입, 5만 명이

넘는 전사자(戰死者), 10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전쟁에서도 한국을 포기하고 연합군을 철수하자는 주장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끝까지 지켜준 분 많은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자기 나라에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면서 국방

예산을 올려 전비(戰費)를 조달해 준 대통령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미국의 감사를 잊지 말자! 한미동맹 강화는 당연하다!

 

※ 재경대사9회 그레고리오 금성 김승태 교장이 단톡방에 올린 글 편집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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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큐문 맹순이 맹식이

주: ☆ 편집자, ※ 금성 김승태 교장이 단톡방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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