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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회

파키스탄(Pakistan)의 불교 유물⋅유적

작성자청산|작성시간26.03.16|조회수2 목록 댓글 0

☆ https://youtu.be/G2aN-UrZrR0?si=HBZKOXAxOQNWF_6a

 

타르티바히의 불교유적

 

파키스탄이 오늘날에는 이슬람국가이지만 고대 부처님 세상에선 불교 중심지이자 모법적인 불교국가 지역이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파키스탄 곳곳에 불교 유물유적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이란이나 아프카니스탄처럼 극단적인 원리주의가 심하지 않아서 불교유적을 훼손하지 않고, 발굴 작업도 펼치면서 유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외국의 불교 신자들의 불교 유적지 방문을 환영하는 추세다.

그리하여 파키스탄의 불교유적은 화려한 간다라 문명 중심지였을 때의 것이 많이 남아있고,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대왕 시대의 영향 아래 형성된 스투파⋅사원 터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그리고 파키스탄(간다라) 지역과 카슈미르 지역은 쿠샨제국(Kushan) 시대 대승불교의 발흥지여서 대승불교 교의가 정립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과의 교류는 마라난타(摩羅難陀) 승려의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일을 통해 확인된다. 마라난타는 4세기 간다라지방 초타라호르가 고향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파키스탄 지역 출신 승려로서, 384년(침류왕 원년)에 중국 동진(東晋)을 거쳐 지금의 전남 영암 법성포에 도착해 백제로 와서, 불교를 전파했다.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파함으로써 백제에 불교가 시작된 것이다. 옛 파키스탄과 우리나라는 이런 연결 고리가 있다.

 

 

――――파키스탄 지역의 유명 불교 유적――――

 

• 간다라(Gandhāra) 미술의 중심지

간다라는 인도 서북지방과 지금의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동부에 걸쳐 있던 옛 지역을 말한다.

쿠샨 왕조 중심지였던 간다라는 원래 간다리족(Gandhari族)이 사는 땅이란 뜻인데, ‘간다라’라는 이름은 ‘꽃향기가 가득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중심지는 지금의 파키스탄 북서부의 페샤와르(Peshawar)지역이었다.

간다라는 인도의 서북관문이며 문명의 교차 지점으로서 BC 3세기 이래 인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는 했었지만 이곳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적 요소를 고루 지니고 있고, 다양한 민족문화가 섞여 있어서, 여러 면에서 독톡한 지역이었고, 기후 풍토도 인도와는 달랐다.

따라서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미술의 조형형식은 헬레니즘 양식을 적용시켜 일종의 혼합미술로 발전했다.

 

간다라는 부처님 당시의 인도 지배국 16개국 중의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아소카왕 때는 불교 전파의 중요한 길목이었고, 그 이후엔 쿠샨제국(대월지국/大月氏國)에 의해 정복돼, 그 중심부를 이루었다. 이후 쿠샨제국 왕들은 헬레니즘 지역과 활발한 교류를 지속했다.

 

그리고 AD 127년부터 쿠샨제국의 통치자가 된 카니시카(Kanishka)왕은 수도를 간다라(페샤와르)로 옮겼다. 그리고 1~5세기에 걸쳐 간다라는 쿠샨제국 왕들의 비호 아래 정치, 문화, 예술, 특히 불교에 있어서 최고정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쿠샨제국 이후에도 간다라는 AD 11세기경까지 번성했다. 현장(玄奘) 법사의 기록에 의하면, 동서가 1천여 리, 남북이 8백여 리로서 동쪽은 인더스강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유식불교를 발전시킨 무착(無着), 세친(世親), 중현(衆賢)과 AD 2세기경 카니시카(Kaniska)왕의 후원으로 제4차 불전결집을 주도했던 협(脇, Parsva/파르스바) 존자 등이 간다라 출신이다. 따라서 대승불교가 간다라지방에서 흥기한 것이다.

 

간다라(Gandhāra)미술은 쿠샨왕조시대인 기원 전후부터 4~5세기까지 간다라지방에 유행한 불교미술을 말한다. 간다라미술의 특징은 헬레니즘양식이라 일컫는 그리스⋅로마 풍의 조각위주 불교미술이다. 동서 문화교류에 의해 유입된 서방요소가 짙은 미술로서 전통적인 인도미술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당시 로마세계에서 유행헸던 헬레니즘미술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해 그 당시 서방의 공장(工匠)들이 간다라에 들어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하여 간다라에서 처음으로 불상(佛像)이 만들어졌다.

간다라불상에서 특이한 것은 머리카락이 고수머리가 아니고 물결모양의 장발이라는 점과 용모는 눈언저리가 깊고 콧대가 우뚝한 것이 마치 서양 사람과 같다는 점이다. 또 얼굴의 생김새가 인간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점, 착의(着衣)의 주름이 깊게 새겨지고, 그 모양이 자연스러워서 형식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즉, 간다라불상 표현은 헬레니즘양식의 자연주의⋅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현재 전하고 있는 고행하는 붓다상도 이 지역에서 조성됐었다. 이 ‘고행 불상’은 간다라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라흐르박물관 붓다 고행상

 

• 라호르(Lahore) 박물관

라호르(Lahore)는 파키스탄 북동부 펀자브 주의 주도이다. 카라치(Karachi)에 이어 파키스탄에서 두 번 째 큰 이 도시는 인더스강의 지류인 라비강을 끼고 있으며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펀잡 주에 위치한 라호르박물관은 건축 양식도 멋지고 총 8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전시물은 바로 고행하는 붓다상이다. ‘붓다 고행상’ 등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라호르박물관 중앙 홀에 위치한 ‘간다라의 방’으로 들어서면 왼쪽의 진열장 중앙에 있다. 높이 약 80cm의 이 앉아있는 좌상은 뼈만 앙상한 형태로,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케 한다.

 

⋅ 시크리 스투파(sikri stupa) 부조

간다라 미술 형식의 정교한 스투파 부조로 라호르박물관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기원 후, 2세기 시크리 지방에서 만들어진 스투파는 붓다의 일생을 세밀하게 부조해 놓은 아래 부분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어 멋진 조각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 간다라 불교미술품과 실크로드 교역품 등이 대량으로 전시 혹은 보관돼있다.

• 탁실라(Taxila) 유적

탁실라(Taxila)는 파키스탄 펀자브 주 북서쪽 끝,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서쪽으로 30여km 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산스크리트로는 ‘탁샤실라’라고 한다. 고대 상업도시로서 BC 6세기∼AD 5세기 말까지의 유적이 있다.

1913년부터 10년에 걸쳐 영국의 고고학자 J.H. 마셜 등이 발굴했다.

BC 6세기∼BC 4세기에는 페르시아제국 아케메네스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침입해 헬레니즘 문명이 전파됐다.

BC 3세기에는 마우리아왕조가 들어와 불교문명을 전했으며,

BC 2세기 무렵에는 그리스문명(박트리아왕국),

AD 1세기에는 쿠샨왕조가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중요 유적들은 BC 6세기부터 박트리아왕국 말기에 이르는 불교유적은 기원 전후에서 들어선 쿠샨왕조가 건설한 5세기 무렵의 탁실라 시르카프(Sirkap) 유적과 도성 시르수흐(Shirsukh) 유적이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후 2세기까지 번성했던 그리스계 왕조(박트리아)와 쿠샨 왕조의 도시 유적지이고,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적 전체가 높은 도시벽에 둘러싸여 있다. 이외에도 많은 사원 터와 스투파(불탑) 유적들이 동서문화의 교류역사상 귀중한 증거로 보존돼있다.

 

탁실라의 대승탑으로도 알려진 다르마라지카 불탑(Dharmarajika Stupa)은 부처님의 작은 뼛조각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곳에 탁실라 최초의 불교 수도원이자 기도하는 장소로 아소카왕이 설립했다.

이곳에서 발견된 부처님의 치아는 현재 탁실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탁실라는 파키스탄에서도 대규모의 간다라 유적지가 많이 소재한 곳이다. ‘잘린 돌’ 혹은 ‘잘린 머리’라는 뜻의 탁실라는 간다라 지역에서 폐샤와르와 더불어 대승불교와 불교미술이 가장 크게 꽃 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보존이 뛰어나고 희소가치가 있는 유적지와 유물이 가득하다. 1980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탁실라 대학 유적

 

• 만키알라 스투파(Mankiala Stupa)

만키알라 스투파(Mankiala Stupa)는 파키스탄 북서부,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떨어진 곳에 위치한 불교 유적이다. 스투파는 1~2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간다라의 스투파 중에서도 상부까지 보존돼 당시의 원형을 유추할 수 있다.

 

------발굴⋅보존 현황(최근 동향)------

2024년 한국의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과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최영창)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고고학박물관국(총괄국장 압둘 아짐(Abdul Azeem)과 함께 만키알라 스투파의 발굴조사를 했다. 한국과 파키스탄은 만키알라 스투파의 북쪽 계단 하부 구조를 드론⋅측량 등 최신 장비로 공동 발굴하며, 보존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번 발굴조사에는 한국의 국가유산진흥원의 고고학 전문 연구원과 보존과학 연구원이 각 1명씩 투입됐다.

파키스탄 측은 미래 고고학 분야를 이끌어갈 콰이드 이 아잠(Quaid-i-Azam) 대학교 고고학과 재학생 7명도 참여해 현장 경험을 쌓았다. 발굴조사는 10월에 시작돼 12월까지 두 달 간 진행됐다.

가니-울-래만(Ghani-ur-Rahman) 콰이드 이 아잠 대학교 부속 탁실라 아시아문명 연구소장은 “우리 대학 고고학과 학생들의 발굴조사 실무 교육은 지난 2016년 이후 중단되었었다. 대한민국의 지원으로 우리 학생들이 현장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산 나지르 자미(Hassan Nasir Jamy) 파키스탄 국가유산문화부 차관은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문화유산 분야 협력에 감사하며, 이번 발굴조사가 파키스탄 유적 보존관리 역량강화와 더불어 미래세대를 위한 고고학도를 양성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파키스탄 만키알라 스투파는 부처의 전생 중 하나인 ‘살타태자’가 굶주린 어미 호랑이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국보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에 살타태자의 이야기와 연관된 그림이 조각돼있어 한국과 파키스탄의 불교문화의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는 유물이다.

‘살타태자’ 이야기는 법흥왕과 이차돈의 대화(삼국유사)에서도 등장할 만큼 이른 시기에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또한 만키알라 스투파는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간다라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도시 라왈핀디(Rawalpindi) 지역의 4대 대탑 중 하나로 알려져 있어, 이번 발굴조사의 역사적 가치와 잠재력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스투파’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불교 시설로 형태는 봉분 모양의 반구형 구조물이다.

 

• 타흐티바히(Takht-i-Bahi) 불교 유적

타크티바히(Takht-i-Bahi)의 불교 유적 단지는 페샤와르(Peshawar)에서 약 80㎞, 마르단(Mardan) 시에서 북서쪽으로 16㎞ 떨어진 곳에 1세기 초에 세워졌다. 높은 언덕의 산마루에 위치해 있어서, 연이은 외세의 침략을 모면했으며, 여전히 예외적으로 잘 보존돼있다.

기원전 1~7세기 간다라 수도원과 도시 공동체의 건축⋅공간 구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된다. 파키스탄 노스웨스트프런티어(North West Frontier) 주에 위치한다.

타흐티바히(Takht-i-Bahi)의 ‘시원의 왕좌’(Throne of Origins)라는 뜻의 불교 유적과 불교 수도원군(修道院群)은 1세기 초에 건설됐다. 인근에는 비슷한 시기에 세운 작은 요새 도시 사리바롤(Sahr-i-Bahlol)의 유적이 있다.

타흐티바히와 주변 시리바롤의 도시 유적은 이러한 유형의 구조물 중 가장 특이한 형태에 속한다. 타흐티바히의 불교 수도원은 1세기 초에 세워진 후, 현대 들어 자선단체의 기부금이 끊기면서 사용이 중단되기 전까지 계속해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규모를 확장해 왔다.

 

수도원은 언덕 꼭대기에 있으므로 훈족과 다른 적대 민족의 침입을 피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수도원의 원래 특성이 대부분 오늘날까지 잘 간직돼있다. ‘타흐티바히’라는 명칭은 언덕 꼭대기의 샘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샘물 왕’(Spring Throne)‘이라는 뜻이다. 이 수도원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완전한 불교 수도원이며, 4개의 군(群)으로 이루어졌다.

 

1871년에는 티흐티바히에서 많은 조각상이 발견됐다. 어떤 조각은 석가모니가 살았을 당시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고, 좀 더 종교적인 나머지 조각들은 석가모니와 보살(菩薩, Bodhisattava)에 대한 것이다.

사리탑 구획은 삼면이 야외 정자나 불당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을 발굴한 사람들은 원래 이곳에 불교의 성인(聖人)을 기리는 불상 혹은 좌불(座佛)이나 입불(立佛)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북쪽의 수도원은 작은 방들과 부엌, 식당에 둘러싸인 공개 구역으로 이루어진 2층 구조로 돼있었을 것이다.

 

• 스와트(Swāt)⋅부트카라(Butkara) 불교유적

파키스탄 스와트⋅부트카라 지역의 불교유적은 간다라 문화권의 초기 불교 전통과 사리탑(사리탑) 유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라호르⋅탁실라⋅페샤와르 등과 함께 세계적인 불교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유적은 아래와 같다.

⋅부트카라 사리탑(Butkara Stupa) : 스와트⋅부트카라 지역에서 대표적 유적으로, “아소카 왕이 세운 사리탑이라는 전설”이 언급된다.

⋅갈리지 불상(갈리바이 불상) : 스와트 박물관 지역에서 보존⋅관람되는 불교 유물이다.

⋅ 니모그램 수도원(Nimogram Monastery) : 스와트 지역의 수도원 유적이다.

 

스와트 계곡에서 약 2000년 된 초기 불교 사원이 발굴되었고, 초기 불교 순례⋅숭배의 중심지였음을 시사한다.

파키스탄 스와트(스와트 계곡)⋅부트카라(부트카라 사리탑)는 간다라 문화권의 대표 불교 유적으로, 라호르⋅탁실라 등과 함께 불교문화의 원형을 현장에서 체험하는 순례⋅연수 일정에 포함되는 곳이다.

 

파키스탄 북서부의 스와트 협곡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으로, 남쪽의 간다라와는 산악으로 구분된다. 옛날에는 우디야나(Uddiyāna)라고도 했으며,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외래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고 쿠샨시대부터 8세기경까지 불교가 번성했으며 중국 승려 법현, 송운, 현장, 혜초, 오공 등의 여행기에 성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1956년 이후 이탈리아 중ㆍ근동연구소에 의해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행해졌다.

우디야나국의 수도는 현재의 사이두 샤리프의 북동 3km 정도의 민고라(Mingora)이며, 이 부근에 유적이 많다. 민고라 남쪽의 부트카라(Butkara)의 불교사원유적이 가장 중요하며, 5번 확장된 대 스투파 주위에 약 200개의 소 스투파가 있으며, 그들 주벽 밖에 승원이 있었던 것 같다.

 

사이두 샤리프 서방의 우데그람(Udegram)에는 도시유적이 있으며, 마우리야왕조(기원전 4세기)부터 사산 왕조 침입 시(4세기)까지의 층위가 확인되었다.

불교조각은 간다라 미술과 유사하면서도 토착화의 경향이 강하며, 중인도와 연결되는 점도 있어서 중앙아시아로의 전파를 생각하는데 귀중하다. 출토품의 대부분은 사이두 샤리프의 스와트 박물관에 소장돼있다.

 

• 페샤와르(Pishawar) 박물관

파키스탄 북서부에 자리 잡은 페샤와르는 고대부터 다양한 문명이 교차하며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매혹적인 도시이다

오늘날 옛 간다라 땅인 파키스탄 서북 변경지역으로 이곳에는 파슈툰족이 살고 있고, 파슈툰족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카이버 고개 너머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어서, 그곳의 내전으로 인해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며, 그 중심도시가 고대 쿠샨제국 시대 수도였던 페샤와르라는 것이다. 페샤와르는 ‘변방의 요새’라는 뜻이다.

이는 곧 불상의 발상지인 간다라의 불교유적지 대부분이 파슈툰족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탈레반의 소행이기는 했지만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의 대불(大佛) 2기를 로켓포로 폭파한 것에서 보듯이 그들은 불교유적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라고 할 만한 카이버 고개는 페르샤의 다리우스1세도 이 고개를 넘었고, 알렉산더대왕도, 카니시카왕도, 나아가 현장도, 혜초도, 티무르도 이 고개를 넘었다. 페샤와르 동쪽 50㎞ 지점에 위치한 고개다. 따라서 페샤와르는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로 나가는 관문이다. 따라서 ‘변방의 요새’라는 이름을 가진다.

 

카이버 파크툰크와 주에서는 자울리안 불탑, 바말라 불탑, 샤바즈 가르히, 탁티바히 사원, 붓카라 석탑 등 5개 불교 유적지와 페샤와르⋅스와트 박물관이 관심의 대상이다.

 

이곳 페샤와르 박물관은 간다라 미술의 정수를 모아놓은 곳이다. 페샤와르 박물관에 소장된 간다라 유물이 3만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

영국의 식민통치 시절인 1906~7년,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탑신마다 협시불을 동반한 불상이 새겨져있다.

초기 불탑은 산치대탑처럼 복발형(사발을 뒤집어놓은 듯한 둥근 돔형)이었는데, 그러다가 AD 2~3세기에 들어서면서 탑의 모습이 달라진다.

3만 점의 간다라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페샤와르 박물관 본관에는 부처님의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생애를 74개의 스토리보드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곳은 페샤와르 박물관이 유일하다고 한다. 좌불상, 입상 등 거대한 크기의 다양한 모습을 한 부처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간다라 미술의 컬렉션으로는 라호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최대 최고를 자랑하는 박물관의 하나이다. 홀과 복도에는 갖가지 불상들이 줄지어 있다.

페샤와르 박물관은 간다라 미술을 광범위하게 소장하고 있으며, 불교 석조 조각, 테라코타 조각상 및 기타 불교 유물을 포함한다. 주요 전시실의 간다라 미술 전시품에는 붓다의 생애 이야기, 기적, 상징 숭배, 유물 함, 그리고 개별적인 서 있는 붓다 조각상이 있다.

 

페샤와르를 여행할 때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먼저,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이므로,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이 좋다. 특히 여성의 경우, 몸을 가리는 옷을 입는 것이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방법이다.

또한, 페샤와르는 아프카니스탄 인접 지역이어서 치안이 불안정한 곳이므로, 여행 전에 현지 상황을 확인하고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고, 물은 반드시 생수를 마셔야 하며, 길거리 음식은 위생 상태를 확인하고 먹는 것이 좋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아미산

주: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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