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Ed4CxGk_QA?si=OXii0UOytZH36VYV
요시자와 겐키치 일본 공사
‘국민’의 신분으로 전락한 부의는 순친왕부에서 며칠을 머무르다가 북경의 일본공사관으로 달아났다. 풍옥상은 그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공언했지만, 일본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만이 군벌들의 각축장이 된 북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부의는 생각했다.
일본공사 요시자와 겐키치(1874~1965)는 즉각 부의를 보호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호시탐탐 만주병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일본으로서는 호박이 넝쿨 채 들어온 셈이었다.
1925년 2월 부의는 일본군의 경호를 받으며 조계지(租界地) 천진의 장원(張園)과 정원(靜園)으로 거처를 옮겼다. 북경보다는 천진이 그를 관리하는 데 훨씬 편리했기 때문이다. 정원은 원래 일본 공사의 대저택이었는데 일본이
부의를 포섭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에게 거처로 제공했다.
부의는 일본의 보호 아래 다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천진 주재 외국 공사들은 그를 황제처럼 대우했다. 각국의 경축일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릴 때마다 그는 최고 귀빈으로 초청되었으며, 외국 공사들은 황제를 대하는
예법으로 그를 맞이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부의를 황제로 존경한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를 활용할 때에만 그의
면전에서 굽실거렸다. 그럼에도 부의는 자기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청조의
유신들은 또 그에게 황제로 다시 등극해야 한다고 꼬드겼다.
일본의 유력한 신문과 잡지는 그를 동정하는 기사를 자주 실었다. 그를 만주국 괴뢰 황제로 추대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었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 관동군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만주사변(9.18사변)을 일으켰다. 관동군은 만주 지방을 장악한 뒤 괴뢰정권인
만주국 수립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 있었던 청조의 유신들은 일본의 힘을 빌려 한족을 몰아내고 청조를 다시 세우려고 시도했다.
청조의 귀족 출신이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희흡(熙洽, 1884~1952)이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일본군이 장춘을 공략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성문을 열고 투항했다.
그는 부의에게 급히 전보를 보냈다.
“황상께서는 조종의 발상지인 만주로 돌아오셔서 대청제국을 다시 건설하셔야 합니다. 재난에 빠진 백성을
구하시고 우방국 일본의 지지를 받고 먼저 만주를 통치하신 후에 다시 중원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아직도 만주 지방에 청조의 충신이 있다는 사실을 안 부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또 만주국 건설을 막후에서
주도했던 관동군 특무대장 도이하라 겐지(1883~1948)가 부의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만약 만주로 가면 황제로
추대하겠다는 유혹이었다.
마침내 그의 권고에 따라 부의는 1931년 11월에 천진에서 요녕성 여순을 거쳐 길림성 신경(新京, 지금의 장춘)으로 들어갔다.
관동군 특무대장 도이하라 겐지
만주국 길림성 신경(지금의 장춘)에 위치했던 일본 관동군사령부
만주국 집정에 추대된 부의
1932년 3월 1일 일본 관동군은 만주국을 세우고 부의를 집정(執政)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하고 아울러 연호를
대동(大同)으로 정했다. 같은 해 3월 8일 부의는 신경에서 만주국 집정으로 취임했다.
취임하자마자 부(府), 원(院), 부(部) 등 국가 조직을 갖춘 후 관리들을 임명했다. 중국 정부는 일본의 처사에 강하게 반발했다. 만주국을 국가로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로 그것을 ‘위만주국(僞滿洲國)’이라고 칭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이 주도하여 국제 협력을 위해 세운 기구였던 국제연맹에서도 만주국이
만주인이 자발적으로 세운 국가가 아니고 일본군의 조종에 의해서 생긴 조직이라는 것을 문제 삼아 만주국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과 국제연맹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934년에 이르러서는 국호를 만주제국, 집정을 황제, 연호를 강덕(康德)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부의는 28세 때 또 황제의 옥좌에 앉게 되었다. 그가 황제가 되기 전에 이미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와
만주국 총리 정효서가 「일만협정서(日滿協定書)」를 체결했다. 무토 노부요시는 만리장성 일대에서 중국군 20개 사단을 격파한 맹장으로 ‘만주국 수호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었다.
무토 노부요시
만주국 황제가 된 부의
만주국 황궁 정문(위쪽), 만주국 황궁 내부 회의실 모습(아래쪽)
만주국 황제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부의
만주국에 주둔하는 일본군의 경비를 만주국에서 제공하며 철도, 항만, 항로 등을 모두 일본에서 관리하며 일본인을 만주국 관리로 임명하는 권리를 일본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일만협정서」의 주요 내용이었다. 심지어 일본인을
만주로 이주시킨다는 조항도 있었다.
일본은 조선과 만주를 식민지로 삼아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을 야욕이었다. 형식적으로는 황제국가
간의 동맹이었지만, 사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가였으며, 부의도 일본의 중국 침략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허수아비 황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청조의 역대 황제들은 전통적으로 불교를 숭배했기 때문에 부의도 불교 신자였다. 하지만 일본의 강압으로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만주국의 국교로 공인하는 작태를 벌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기 직전인 1945년 8월 8일에 소련이 일본에 선전 포고를 했다. 소련군은
기계화 부대를 앞세워 만주로 진격했다. 같은 달 15일 일본국왕 히로히토(1901~1989)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일본 제국주의에 절대 복종했던 부의는 망연자실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만주국 황제의 퇴위 조서를 서둘러
반포하고 일본으로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8월 17일 만주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8월 19일 길림성 통화(通化)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달아나던 중에 중간 기착지인 봉천에서 소련군에게 체포되었다.
▣ 출처: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저자: 강정만
출판: 주류성
출처: 여름을 청하다